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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징가 귀, 꼬리 탕탕... 고양이와 친해질 수 있을까

'하악질'로 시작해 '눈키스'까지... 고양이 합가 3단계를 알려드립니다

등록|2022.01.30 20:08 수정|2022.01.30 20:23
시민기자 글쓰기 그룹 '반려인의 세계'는 반려동물에 대한 고민과 반려동물로 인해 달라지는 반려인들의 삶을 다룹니다. 이번 주제는 '반려인들의 언어'입니다. [편집자말]
두 마리를 나란히 키우고 나서야 나는 고양이의 성격을 일반화 할 수 없다는 걸 깨달았다. 둘째인 애월은 누구에게나 배를 보이는 천진난만한 성격이지만, 첫째인 반냐는 지독하리만큼 예민하다. B(배우자)와 나 외에는 그 누구의 손길도 허락하지 않고, 조금이라도 심기가 불편하면 집의 가장 침침한 구석으로 도망가 마음이 풀릴 때까지 나오려 들지 않는다. 반냐가 몸을 맡기는 인간은 온 지구에 B와 나, 딱 둘뿐이다.

사실 반냐는 원래 B의 고양이였다. 전 주인에게 버림받았던 전력이 있는 반냐는 오로지 B에게 모든 것을 의지했다. 그러다 우리가 결혼을 하면서 낯선 사람인 내가 둘 사이에 끼어들게 됐다. 예민하고 날카로운 성격의 반냐와 낯선 사람인 내가 친해지기까지는 인고의 시간이 필요했다. 반냐와의 합가 과정을 반려인 단어 사전을 통해 풀어본다.

1단계 - 하악질
 

▲ 고양이에게 하악! 소리를 들었다면 가까이 가지 않는 것이 좋다 ⓒ unsplash


합가 첫날, 고양이와의 포근하고 안락한 삶을 잔뜩 기대했다. 하지만 내 귀에 가장 먼저 들린 것은 공기를 가르는 날카로운 '하악!' 소리였다. 언뜻 쇳소리 같기도 한, 숨을 크게 들이마시는 소리였는데 나는 그 생후 1년도 되지 않은 청소년 고양이에게 잔뜩 겁을 먹었다. 하악질을 하고 나서도 반냐는 입을 반쯤 벌리고 있었는데 나 못지않게 긴장해서 몸이 굳어 있었다. 반냐의 뻣뻣한 몸을 보고 알 수 있었다. 너도 내가 무섭구나.

고양이의 하악질은 경고의 의미다. 이빨을 드러내며 '하악' 하는 소리를 내면서 자신에게 낯설고 위협적일 것 같은 상대에게 메시지를 보내는 것이다. 하악질을 한다고 혼내거나, 맞서서 하악질을 하는 건 고양이와 정서적으로 교류하는 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바로 그 자리를 떠나거나 고양이와 어느 정도 거리를 두는 편이 더 바람직하다.

나 역시 반냐의 '하악질'을 듣고 상심했지만 도리가 없었다. 예민한 성격의 반냐가 낯선 사람인 나를 받아들일 시간과 공간적 여유가 필요한 것이었다. 그날부터 반냐와 최대한 거리를 두며 생활했다. 그러자 차츰 반냐도 하악질의 빈도를 줄였고, 며칠 뒤엔 50cm 거리에서도, 또 며칠이 지나니 바로 지근거리에 있어도 하악질을 하지 않게 되었다.

2단계 – 마징가 귀 / 꼬리 탕탕
 

▲ 고양이는 꼬리로 많은 말을 한다 ⓒ unsplash


하악질 단계는 지났지만 반냐가 온전히 마음을 열지는 않았다는 것을 꼬리와 귀로 알 수 있었다. 남편이 쓰다듬을 때면 반냐는 눈을 지그시 감고 작은 모터처럼 고르릉 거리는 소리를 냈다. 하지만 내가 눈치를 보다 손을 내밀어 등을 만지면 바로 '마징가 귀'를 하며 꼬리로는 땅바닥을 탕탕 쳤다.

'마징가 귀'는 고양이가 귀를 평소와 다르게 양옆으로 눕히는 행위를 뜻하는 단어다. 고양이가 두렵거나 불편한 상태일 때 나오는 신체언어로 '지금 편안하지 않아요'라는 표현이기도 하다. 고양이가 꼬리를 세게 바닥에 탕탕 내리치는 표현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직역하자면 '아 짜증나'라는 표현이라고...).

내심 무안했지만, 그래도 '하악질'을 하지 않았다는 걸 애써 위안 삼는 날들이었다. 이즈음 B와 나는 전략적으로 돌봄 노동을 재편성했다. 반냐에게 환심을 살 만한 사료 주기, 간식 주기, 놀아주기 같은 것들은 내가 하고 남편은 화장실을 치우거나 청소하기, 목욕시키기 등을 맡았다.

게다가 나는 고양이 털 알레르기까지 있어 반냐의 털이 날리는 청소나 목욕이 버겁기도 했다. 이래저래 밥과 간식을 내가 맡는 것이 나은 상황이었다. 나는 일부러 짜먹이는 형태의 습식 간식을 구입했다.

이런 간식류는 먹이는 시간 동안 반냐와 눈을 맞추거나 살짝 몸을 쓰다듬는 일들이 가능했다. 간식과 놀이의 힘이었을까, 아니면 단순히 세월의 힘이었을까. 시간이 걸리긴 했지만 반냐는 차츰 내게도 마음을 열어주었다.

3단계 – 눈키스
 

▲ 고양이 눈키스는 애정과 신뢰의 표현이다 ⓒ unsplash


더 이상 반냐가 '마징가 귀'를 하느냐 마느냐를 신경 쓰지 않게 되었을 때, 어느 날엔가 반냐가 가만히 앉아 내 눈을 바라보면서 천천히 눈을 깜빡였다. 반냐가 내게 '고양이 눈키스'를 보낸 것이었다. 나는 내적 환호를 억누르며 반냐에게 눈키스를 되돌려 주었다.

고양이가 아주 천천히 눈을 감았다 뜨는 행위를 반려인들은 '눈키스' 또는 '눈인사'라고 부른다. 고양이의 눈키스는 상대에게 보내는 애정의 표현이다. '너랑 친해지고 싶어', 또는 '나는 너를 신뢰해'라고도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그간의 서운함이 사르르 녹아내렸다. 이제 정말 반냐와 가족이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10년이 지난 지금은 어떻냐고? 이제 반냐가 내게 '하악질'을 하는 일은 없지만 그렇다고 우리 사이가 매일 다정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녀석과 나는 아직도 애정과 짜증, 연민과 투정을 주고받으며 살고 있다.

발톱을 깎을 때면 예민한 반냐는 줄행랑을 치고, 그 뒤를 내가 허둥지둥 쫓아가다 솜방망이(고양이 앞발)에 얻어맞는다. 그렇게 한 대 맞고 나면 '두고 봐라!' 하며 녀석을 무시하겠노라 다짐하지만, 5분도 못가 일광욕하는 반냐가 너무 귀여워서 다가가 또 지분거리게 되는 것이다. 뺨을 맞고도 다른 뺨을 내어준다는 그 마음, 반려동물과 살아보니 어렴풋이 알 것도 같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필자의 브런치(@gracefulll)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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