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출하겠다... 아, 전방에 마을이 보인다, 탈출불가"
[살아있는 역사 교과서 대전현충원 32] 민간인 피해 막고 산화한 이상희 대위
▲ 임무수행 중 전투기 추락으로 순직한 고 심정민 소령 안장식이 대전현충원에서 거행되고 있다. ⓒ 국립대전현충원
지난 1월 11일 임무 수행 중 F-5E 전투기 추락사고로 순직한 조종사 심정민(29) 소령(1계급 특진 추서)이 1월 14일 국립대전현충원에서 영면에 들었다.
추락하기 직전 심 대위는 두 차례 "이젝트"(탈출하다)를 외쳤지만 탈출하지 않은 것으로 조사됐다. 항공기 진행 방향에 다수 민가가 있어 이를 회피하기 위해 끝까지 비상 탈출 좌석 레버를 당기지 않고 조종간을 잡은 채 순직했다고 공군은 밝혔다.
장교 11명을 배출한 '병역 명문가' 집안에서 태어난 그는 전투조종사로서의 자부심이 또한 남달라 "언제까지나 전투조종사로서 살고 싶다"는 말을 자주 했다고 한다.
F-5E는 1970년대부터 국내에 도입된 비행기로 설계 수명은 최대 25년으로 알려져 있다. 2010년대 초반에 퇴역해야 했던 기종이다. 하지만 수명 연장을 거듭하면서 퇴역 시기도 계속 늦춰졌다. 이번에 추락한 비행기는 1986년에 공군 제10전투비행단 배치되었고 순직한 고 심정민 소령은 1993년생이다. 자신보다 7년이나 나이가 많은 전투기였던 것이다.
"전방에 마을이… 탈출불가" 산화한 이상희 대위
▲ 살신성인의 정신을 보여준 이상희 대위의 생전 모습 ⓒ 대한민국 공군
민간인의 피해를 막기 위해 자신의 애기(愛機)와 함께 산화한 사례는 30년 전에도 있었다. 당시에도 이번에 추락한 비행기와 동종 비행기인 F-5A이었다. 1991년 12월 13일 오후 3시 1분께 제1전투비행단 학생 조종사 이상희 중위는 공중사격비행 실습을 마치고 착륙을 준비 중이었다.
그러나 앞서 착륙을 시도하던 F-5A 3번기와 공중 추돌하는 불의의 사고를 당하게 되었다. 기체가 제어 불가능한 상태에 빠져 광주광역시 서구 덕흥마을 인근 밭에 기체가 추락해 순직했다.
그는 탈출을 시도하려던 중 기체가 가옥이 밀집한 마을을 향해 급강하하자 민가가 없는 추락지점을 택하다 비상탈출 시간을 놓치고 말았다. 기체는 덕흥마을에서 불과 10여m 밖에 떨어지지 않은 미나리밭으로 추락해 장렬히 산화하였다. 기체에서 찾아낸 블랙박스엔 절체절명의 순간에 이 중위가 외친 마지막 육성이 녹음돼 있었다.
"추락한다. 탈출하겠다. 아, 전방에 마을이 보인다. 탈출불가…"
마지막에 탈출을 결심했으나 민가를 확인하고, 민간인 피해를 막기 위해 산화를 택한 것으로 드러났다. 당시 추락으로 파편이 튀는 등 마을 주민 3명도 중화상 등 부상을 입었으나 사망자는 없었다. 가옥 4채의 울타리들이 부서지는 피해가 났으나 이 중위의 희생정신이 없었다면 더 큰 참사가 빚어졌을 것이었다. 위급한 상황에서 민간인들을 구하기 위해 자기 목숨을 버린 숭고한 희생정신은 많은 사람들에게 귀감이 되었다.
이 대위는 향년 23세로 한국항공대 항공운항학과를 졸업한 뒤, 학군사관 17기로 임관했다. 장례는 부대장으로 치러졌고 사후 대위로 승진됐다.
덕흥마을 주민들과 광주광역시는 사고 현장 근처 마을회관 바로 옆에 이상희 호민헌신 추모비를 건립하고 '상희공원'으로 명명했다. 매년 12월 13일이면 공군부대에서 찾아와 비 주변을 정리하고 마을 주민들과 시간을 갖는다고 한다. 광주 공군기지 내에도 상희공원이 조성되어 있다. 파일럿이 된 군인들이 이 공원에서 조종사로서의 마음가짐을 다진다.
그의 부모가 살고 있는 성남시 분당구 야탑동에도 그의 희생정신을 기려 1995년에 상희공원이 조성됐으며 2009년에 독수리 모양의 추모탑을 설립했다. 매년 성남 공군기지 훈련생들이 찾아와 추모식을 행한다. 이 대위는 국립대전현충원 장교 제1묘역 203묘판 1001호에 안장되어 있다.
▲ 대전현충원 보훈미래관에는 이상희 대위의 숭고한 삶에 대해 전시되어 있다. ⓒ 우희철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시민미디어마당 사회적협동조합 누리집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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