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통기한 1년짜리 교과서, 이젠 '공용화' 하면 어떨까
[주장] 버려지는 교과서가 만들어낼 환경오염... 탈탄소를 향한 한 걸음
▲ 유통기한 1년짜리 교과서학년 말 쓰레기장에 버려진 교과서 ⓒ 백경자
"쓰레기 차가 곧 도착합니다. 개인용 교과서를 쓰레기장에 가져다 버려주세요."
방학식 날, 이런 멘트를 날려야 하는 담임교사로서는 곤욕스럽기 짝이 없다. 1년간 쓰던 교과서를 쓰레기로 규정해 버리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기서 말하는 절약은 개인이 악착같이 부를 쌓는 과정상의 절약이 아닌, 환경적 가치와 연결된 개념을 말한다. 즉, 미래가 짊어져야 할 환경적 비용을 따지고자 할 때 필요한 개념으로 제한해 절약의 의미를 생각해 보고자 한다.
학교에서는 절약의 필요성과 심각성을 이렇게 가르친다.
'대한민국의 목재 자급율은 15%에 불과하며 나머지는 수입에 의존할 수밖에 없습니다. A4 용지 한 장 만드는데 2.88g의 탄소가 배출되며, 우유 팩 1톤을 만들기 위해서는 20년생 나무 20그루가 필요합니다, 우리나라의 1인당 연간 종이 사용량은 전 세계 1인당 연평균치보다 3배 가량 많습니다(전 세계 1인당 연평균 종이 사용량 56.2kg, 대한민국의 1인당 연간 종이 사용량은 189.2kg, 데일리환경.2021.05.26. 참조).'
이런 내용으로 경각심을 일깨워 놓고는 연말이면 보란 듯이 이 상황을 무시한다. 학교 규모가 클 경우 쓰레기 차를 부를 정도로 해마다 배출되는 교과서 쓰레기양과 무게는 어마어마하다.
교과서를 유통기한 1년짜리 쓰레기로 취급하는 문제를 놓고 몇몇 분들과 얘길 해보면 이런 답들이 주로 돌아온다.
"우리나라도 이제 잘 사는데, 굳이 그런 데까지 신경 쓸 필요 있나요!"
"그래야 경제가 돌아가요. 교과서 회사도 먹고 살아야죠!"
한편으론 맞는 말들이다. 물자가 풍부한 시대에 이런 단어를 끄집어 내는 것이 누군가에게 불편함을 줄 수도 있고 식상하기까지 하다.
하지만 그렇게 치부하기엔 주위 환경이 만만치 않다. 2030년부터 우리나라 주요 수출대상국인 미국과 유럽연합에선 자국 내 수입 물품에 대해 탄소세를 부과한다고 한다. 이런 이유로 얼마 전 국회에선 탄소배출량을 2030년까지 2018년 이산화탄소 배출량 대비 최소 35% 감축하기로 결정하였다. 수출 경쟁력 강화를 위해 산업시스템 전반에 걸친 탈탄소 경제 전환이 절실히 필요함을 시사한 바이다. 절약이라는 단어, 미래의 환경과 탄소 감축에 대해 신경 쓰는 일을 내려놓지 않는다면 포기할 수 없는 가치임에 틀림 없다.
이런 상황 앞에 학교에서 배움과 실천이 물과 기름처럼 반복적으로 분리된다면 미래를 짊어질 학생들이 이 문제에 관심을 갖고 해결할 수 있는 역량을 키울 수 있을지 의심스럽다. 가르침과 행동이 불일치 하는 환경에서 배움을 몸으로 체득하지 못한 학생들이 미래의 환경문제를 제대로 책임질 수 있을지 걱정스럽다.
이것을 절약 정신의 부족 탓인 것처럼 포장하여 개인에게만 책임을 물릴 순 없다. 학교에서 문제 인식을 못한 것에 대해 반성하고 함께 해결 방안을 찾아야 한다.
방법은 있다. 교과서의 공용화이다. 전 과목에 적용하자는 것은 아니다. 학생들의 수요가 적은 교과서에 국한하여 시행하면 가능하다.
고등학교 현장에서 교과서를 나눠주고 한 해 동안 학생들의 활용도를 지켜보면 예체능 교과서나 역사부도 내지는 지리부도의 활용도가 다른 과목 교과서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은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물론 선생님마다 편차가 있긴 하지만 실기가 주인 교과서는 학년 초에 개인 서랍장에 흠 없이 모셔 두었다가 학년말에 그대로 쓰레기통에 버려지는 경우가 많다. 그런 교과서를 전교생 모두에게 배부하는 것보다 한 반 분량을 교과 교실에 비치해 놓고 필요할 때마다 활용한다면 교과서의 경제성을 살릴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대신 그만큼의 절약 비용을 학생들에게 돌려주는 당근이 필요하다. 학생들 스스로 절약해 낸 비용을 그들의 복지와 학교생활을 위해 쓰게 하는 것이다. 그런 경험을 통해 학생들은 학교생활의 풍요로움을 맛보고 재정적 효능감이 무엇인지 확인하게 될 것이다. 이런 당근은 아마도 다른 교과서의 공용화 내지는 교과서 물려주기 등의 참여 확대를 끌어낼 수도 있다.
공정 소비, 착한 소비, 윤리 소비, 이런 단어들을 학생들은 이젠 너무 잘 안다. 이런 소비를 배움의 현장에서 직접 실천할 때 학생들은 환경문제를 '내 문제'로 실감할 것이고, 또 이런 문제를 함께 고민하면 해결할 수 있다는 것 또한 확인할 수 있게 된다.
요즘 젊은이들은 깨어있는 의식을 갖고 있다. 조금 비싸도 공정하다면, 환경문제에 기여한다면 과감하게 자기 지갑을 열 줄 안다. 넉넉해서가 아니다. 그만큼 환경의 가치가 그들에게 절실하기 때문이다. 그들의 이런 '멋찜'은 학교에서의 실천과 연습을 통해 더욱 가능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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