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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 혹시 기후문맹이 아닌가요?

[류변의 급진적 책 읽기] 탄소사회의 종말, 조효제 지음

등록|2022.01.27 17:32 수정|2022.02.09 14:46
기후위기와 팬데믹의 시대, 공생공락의 지혜를 찾는 책을 읽고 영상과 글로 나눕니다.[편집자말]

탈핵비상시국선언, 기후위기 대안이 '핵발전'인가?기후위기비상행동, 청소년기후행동, 종교환경회의 등 전국 437개 시민환경단체는 24일 오전 서울 중구 한국YWCA연합회에서 탈핵비상시국선언을 발표했다. ⓒ 권우성



유례없는 폭염과 열대야가 지속된 2016년 8월, 부산교도소에서 두 명의 수용자가 잇달아 열사병으로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교도소측은 당뇨, 고혈압 등 더위에 특히 취약한 기저질환이 있는 망인을 에어컨은커녕 선풍기나 환기구도 없는, 두 다리 뻗고 자기도 힘든 비좁은 방에 여러 수용자와 함께 가두었다.

그리고 교도관들은 사망 당일 망인이 밤새 더위로 힘들어하며 잠을 자지 못하는 모습을 감시용 cctv와 육안으로 계속 지켜보고 있었음에도 필요한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수용자가 더위로 죽는 나라에서 무슨 인권을 말할 수 있을까? 필자는 망인의 유족들을 대리해 국가배상소송을 제기해 승소판결을 받았다.

그런데 폭염과 열대야는 기후변화로 인한 것이고 기후변화를 초래한 그 자체가 위법한 인권침해라는 주장을 했더라면 어땠을까? 이런 생각이 뒤늦게 든 것은 최근 국내외의 기후위기 소송 보도를 보면서였다. 한국의 경우 2020년 3월 청소년기후행동이, 2021년 8월에는 기후위기비상행동이 기후변화를 방치하는 정부와 국회를 상대로 생존권, 인간답게 살 권리 등 기본권 침해를 이유로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외국에는 더 사례가 많고 승소판결도 제법 있다. 올 3월 프랑스 파리 행정법원은 시민단체가 프랑스 정부를 상대로 "마크롱 정부의 기후변화 대응 조치가 온실가스 배출을 억제하기에 충분하지 않다"며 상징적으로 1유료의 배상을 청구한 소송에 대해 프랑스 정부의 책임을 인정하는 판결을 선고했다. 올 5월 네덜란드 헤이그 법원은 사상 최초로 사기업인 유럽 최대 석유기업 로열더치셸에게 2030년까지 탄소배출량을 45% 감축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인권사회학자인 조효제 성공회대 교수는 <탄소사회의 종말>이라는 책을 통해 이 외에도 세계 각국에서 진행되었거나 진행 중인 다양한 기후위기 소송을 소개한다. 그러면서 기후위기의 기본적 인권 침해, 국가의 책무성, 미래세대인 청소년들이 원고인 점, 정책 변화 목표 등 전략적 기후소송의 특성이 모두 들어있는 한국의 소송결과가 전 세계 기후운동에서 주목받을 가능성이 크다고 설명한다. 청소년들을 포함한 행동에 나선 전 세계 모든 시민들에게 그저 부끄럽고 고마운 마음뿐이다.

기후위기, 인권으로 돌파해야
 

▲ 탄소 사회의 종말 ⓒ 21세기북스



이 책에서 가장 새롭고 돋보이는 부분은 기후위기를 인권 담론과 인권 시스템으로 풀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는 데 있다. 기존 과학계에서는 기후변화의 생태적·환경적·경제적 측면에만 초점을 두는 경향이 강했고, 정책적 해법을 추구해왔다. 반면 전통적 인권관으로는 거대하고 장기적이며 사회경제적 함의가 큰 기후변화 사건을 다룰 개념이나 수단이 부족했고, 사법적 해법을 추구하는 경향이 강했다. 게다가 두 영역은 각각 별도로 발전해왔기 때문에 그간 인권운동과 기후문제는 접점을 찾지 못했다.

그러나 최근 국제사회를 중심으로 기후위기를 절체절명의 인권 위기로 보고 인권의 관점에서 다루는 접근이 이루어지고 있다. 기후위기를 인권문제로 본다는 것은 기후위기 피해를 '천재에 의한 불운'이 아닌 '인재에 의한 불의'로 본다는 뜻이다. 그렇게 되면, 국가와 기업에게 기후위기에 대응할 법적 의무를 지울 수 있고, 이를 위반하는 개인이나 기업, 국가의 행위에 대해 책임을 물을 수 있다.

그러나 아쉽게도 최근 국가인권위원회의 실태조사에 의하면, 우리 국민들은 기후위기에 대한 관심은 높지만, 기후위기 취약계층조차 기후변화가 인권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는 제대로 알고 있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한다.

그리고 국가인권위원회는 기후위기가 헌법상 기본권을 침해한다며 제기된 진정에 대한 판단이나 정책권고는 모두 유보했다. 더 치열한 연구를 통해 국가인권위원회가 기후위기가 단순히 북극곰, 빙하, 불타는 숲과 같은 환경만의 문제가 아니라 고용, 경제 등 구체적인 우리 삶과 권리와 직결된 문제라는 사회적 공감대를 확산시켜 주기를 바란다.

기후위기, 사회학적 상상력으로 풀다

관련 연구가 척박한 풍토에서 기후위기를 인권의 관점으로 풀어낸 것만으로도 이 책의 가치는 충분하다. 그러나 여기에 그치지 않고, 저자는 사회학, 인류학, 정치학, 국제관계학, 법학 등 인접 학문 뿐 아니라 최근 소설의 한 장르로 부상한 기후소설 Cli-Fi(Climate Fiction)까지, 최신 연구 성과를 폭넓게 활용해 종합보고서와 같은 책을 펴냈다.

기후위기의 식민지배적 기원에서부터 기후위기를 부인하고 체념하는 개인적 심리에 이르기까지 기후위기의 복합적 성격을 규명하면서, 사회학적 상상력을 바탕으로 보편적 재난과 차별적 피해로 특징지어지는 기후위기를 구조적·종합적으로 분석하고 대안을 제시한다.

저자는 탄소에 의존하는 현재 자본주의 시스템이 초래한 '지속불가능성의 해체'에 목표를 두고, 탈탄소 사회로의 정의로운 전환을 위해 모든 사회 구성원들의 인간적 존엄성, 자율성, 참여권, 접근권을 존중하고 보장하는 사회적 응집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정의로운 전환이란 온실가스를 줄이되 그 과정에서 피해를 입는 사람과 계층의 기본권을 보호하는 원칙과 일련의 정책 프로그램을 뜻한다.

우리는 순조롭게 정의로운 전환을 이룰 수 있을까? 무엇보다 부동산 불평등으로 대표되는 사회경제적 불평등이 커지고 있는 우리 사회에서 기후위기와 불평등이 구조적으로 악순환된다는 점을 인식하고 이를 해소할 구체적 정책이 필요하다. 그러나 대선 후보들의 기후위기 관련 공약은 그 방향성과 구체성에서 높은 점수를 주기 힘들다.

특히 윤석열, 안철수 후보는 탈원전 정책 폐기를 공약하고 있다. 유력 후보가 탄소사회의 지속불가능성이라는 개념 자체를 알지 못하고 오로지 성장제일주의, 기술낙관론에 빠져있으니 너무나 위험하다.

결국 우리 스스로 나서야 한다. 기후위기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산업, 노동, 외교, 안보, 환경, 젠더 등 전 영역을 포괄한다. 따라서 기후위기를 매개로 환경운동, 시민운동, 인권운동 등 다양한 영역이 만나야 한다.

가능할까? 저자는 희망은 객관적 조건의 산물이 아니라 실천적 행동의 창조물임을 강조한다. 과학이 알려주는 현실과 비관적 미래는 우리를 우울하게 하지만 우리에게는 이를 극복할 수 있는 연대심, 정의감, 창의성이 있으니, 양끝을 민주시민의 행동으로 잇는다면 실존의 세기를 건너는 희망도 말할 수 있을 것이라고 역설한다.

비관을 뛰어넘을 실천적 행동을 위해서는 '기후문맹'에서 벗어나 기후가 자신과 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이해할 수 있는 '기후문해력'(Climate Literacy)에 바탕을 둔, 실존적 위기를 헤쳐 나갈 실천적 지혜가 필요하다. 이 책은 이를 위한 최고의 길잡이가 되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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