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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30년차, 올해 설 명절은 쇠지 않습니다

오미크론으로 인한 국가적 '비대면' 설... 그 틈에 돌아본 30년 차례상 준비

등록|2022.02.01 11:31 수정|2022.02.08 19:51
오미크론으로 인해 확진자가 1만4000명(2022.1.27. 14,518명)을 넘어서고 있다. 남편은 구정 연휴 다음날부터 마지막 항암치료를 남겨두고 있다. 당장 설 명절이 걱정이었다. 명절을 쇠러 오가는 길에 다시 코로나에 감염이 될까 싶어 불안한 마음이 있었지만 주장을 내세울 입장은 아니었다.

어떻게 해야 하나 걱정하던 차에 어머니께서 이번 설 차례는 모이지 말자고 먼저 말씀하셨고 남편도 그러는 것이 좋겠다고 했다. 결혼 30년 차, 코로나로 인해 처음으로 명절 차례상 준비에서 놓이게 되었다.

결혼 30년 만에 차례상 없는 첫 명절
 

▲ 설 연휴를 앞둔 28일 오후 서울 송파구 새마을전통시장에서 시민이 떡을 고르고 있다. 2022.1.28 ⓒ 연합뉴스


시간을 되짚어보니 주부의 이름으로 명절을 보낸 것이 어느덧 30년이 넘었다. 결혼 초기엔 두 달에 한 번씩 오는 제사에, 시댁 식구들의 생일을 달력에 일일이 적고 챙기기 바빴다. 그렇게 제사나 기념일이 제법 익숙해지기까지 십여 년은 허둥대며 보낸 시간이었다. 제사는 물론이고 기념일도 밖에서 간단히 해결했던 적은 거의 없었다. 늘 고된 수고가 따랐고 반드시 해야만 하는 걸로 생각했다.

명절은 더 특별했다. 일주일 전부터 명절용 김치 담그기가 명절 준비의 시작이었다. 준비하는 매일이 힘들었지만 특히 명절 당일은 새벽 5시도 못돼 눈이 떠졌다. 사실은 밤에 푹 잠들지 못했고 뒤척이다 일어났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며칠을 준비한 음식은 집안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고 상차림의 결과물은 여전히 까마득했다.

아침 8시가 지나면 본격적인 상차림이 시작되었다. 제사상에 놓일 음식들 외에도 친척들이 좋아하는 음식을 따로 준비했기에 두서없이 눈에 들어오는 대로 접시에 담았고 식탁에 늘어놓았다. 해물찜, 생선 조림과 구이 등, 생선도 종류가 많았고 육류도 마찬가지였다.

채반 가득 해 놓은 전은 준비한 양이 무색하게 접시 하나에 소복이 담겼다. 당일 아침에 만든 잡채와 튀김, 하루 종일 빚은 만두가 들어간 떡국에 몇 가지의 나물과 종류별로 담근 김치까지, 준비한 음식을 빠뜨리지 않기 위해 정신을 차려야 했다.

9시가 되면 작은집 식구들이 도착했다. 어른들의 진두지휘로 제사상이 차려졌다. 홍동백서, 조율이시, 생선과 육류와 전과 탕과 포와 과일들이 차례로 올랐다. 차례를 지내고 나면 산 사람들을 위한 음식이 다시 차려졌다. 음식 준비하느라 수고했다는 인사와 별로 차린 것도 없다는 의미 없는 말이 오갔다.

차려진 음식을 누군가 더 달라고 하면 최고의 찬사였다. 상을 물리면 바로 과일과 후식, 술상이 차려졌다. 그렇게 오전을 보내고는 친척들은 돌아갔다. 시댁과 명절의 무게는 무거웠고 내 생각은 중요하지 않았다. 까마득한 미래 언젠가 가정의 전권이 내게 돌아온다고 해도 음식을 차리는 수고를 안 하겠다고는 못하겠지만, 무리한 상차림은 줄이고 싶다는 것이 시간이 지날수록 드는 생각이었다.

하루를 위해 일주일을 고생한 셈이었다. 친척들을 위해 조금씩 포장해서 나누고도 남은 음식은 냉동실로 직행했다. 준비했던 수고가 아까워서라도 나중에라도 먹겠다고 넣었지만 한두 달 후엔 영락없이 버려졌다. 명절 음식은 기름 냄새만으로 이미 물렸고, 식구들은 라면, 된장찌개, 해물탕 등 담백하고 칼칼한 음식을 찾았다. 명절 음식은 말 그대로 명절만을 위한 음식이었던 것이다.

결혼하고 10년이 지나도 명절이 다가오면 가슴이 두근거렸다. 두려움과 긴장 때문이었다. 언제쯤이면 명절에 긴장하지 않고 넘어갈 수 있을지 아득했다. 상차림에 들어가는 비용은 때론 부담이 되었고 아무리 애를 써도 상이 특별해 보이지는 않았다. 최선을 다해도 뻔한 상차림은 수고를 허무하게 만들었다.

코로나 한참 이전부터 명절 연휴에 가족 단위 해외여행을 떠나는 일이 많다는 보도가 있었다. 그들은 인터넷으로 차례상에 진설할 음식을 주문한다고 했고 국내뿐 아니라 해외 여행지에서 인터넷으로 차례를 드린다고 했다. 변하는 세상의 모습이 충격적으로 다가왔지만 그때까지도 남의 이야기였다.

2020년과 2021년에도 코로나 상황이었지만 사찰과 성당에서 가족들의 신청을 받아 합동차례를 지낸다고 했다. 그것도 신세계였다. 종교가 풍속까지 바꾼다는 생각이 들었다. 코로나로 인해 신청 가정의 수와 규모는 축소되었다지만, 종교를 통한 명절 차례 지내기는 올해도 이어지지 않을까 싶다. 지금처럼 오미크론이 심각한 상황이라면 특히 더 조심해야 마땅하겠지만.

코로나가 시작되고 우리에게도 명절이면 때마다 걱정이 있었지만 그동안도 차례는 한 번도 빠뜨리지 않고 어머니와 함께 지냈다. 음식 준비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다 먹지 못해 버려지는 음식이 없도록 몇 년 전부터 가짓수와 양을 조금씩 줄여왔지만 주부에게 명절이 주는 부담에 특별한 대안은 없었던 것 같다.

'어머니의 명절'로부터의 독립
 

▲ 차례와 성묘는 생략하겠지만 본래 의미대로 한 해 동안의 복을 조용히 빌어 볼 것이고 가족들과 떡국을 나누게 될 것이다. ⓒ 최은경


어느새 세월이 흘러 30년 전 어머님의 나이가 되었다. 어머님은 솜씨가 뛰어난 분이셨다. 사람들을 거두고 먹이는 것을 좋아하셨고, 엄청난 양도 순식간에 풍성한 음식으로 바꾸는 능력자였다. 모든 사람들이 그 솜씨를 칭찬했다.

명절이나 온갖 행사를 진두지휘했던 팔순의 어머님은 몇 년 전부터는 내가 하는 대로 맡기신다. 음식에 대해 냉정했던 평가도 이제는 관대해지셨다. 나이는 먹었어도 당시의 어머님처럼 음식을 맛깔나게 잘하지는 못하지만 어머니의 명절로부터 독립한 것 같기는 하다.

30년을 지나오며 명절 음식 준비 과정은 조금씩 수월해졌다. 나름 익숙해지기도 했고, 이전처럼 두려움과 긴장이 크지는 않다. 명절에 집을 찾아오는 친인척의 수도 시간이 지나며 자연스럽게 줄었다. 물론 간단하게 한다고 해도 명절 전 이틀은 장보기와 음식 하는 것으로 여전히 시간을 보내야 했지만, 올해처럼 부모님을 찾아뵙지 않는 명절은 30년 전을 생각하면 어쩐지 격세지감을 느낄 정도로 큰 변화임에는 틀림없다.

오미크론 변이와 항암치료로 인해 올 설 명절은 달라졌지만, 어떻든 30년 만에 가장 몸이 편안한 명절을 보내게 될 것 같다. 입에 맞는 맛있는 거 먹는 특별한 날. 좀 느긋하게 일어나도 되고 복잡한 절차나 음식 준비는 하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에 모든 것이 여유롭기까지 하다.

국가적으로도 '비대면(언택트) 설 명절'을 강조할 수밖에 없을 듯하다. 마지막 치료가 끝나면 바로 가서 뵙겠지만, 쓸쓸한 명절을 보낼 어머니가 마음에 쓰이고 못 가는 마음은 어쩐지 불편하다. 한 번도 거르지 않았던 세배는 어색하게 화상통화로 인사를 하게 될 것이고 세뱃돈은 계좌이체로 보내드려야 하나 싶다.

생각지도 못했던 특별한 설, 차례와 성묘는 생략하겠지만 본래 의미대로 한 해 동안의 복을 조용히 빌어 볼 것이고 가족들과 떡국을 나누게 될 것이다. 설 명절엔 한 해의 운수가 설과 관계가 있다고 믿어 운수를 점치고 풍년을 기원한다고도 한다. 용한 무당이나 역술인은 전혀 아는 바 없으니 인터넷에 떠도는 점이라도 봐야 하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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