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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청년들은 어디 있느냐'라는, 게으른 질문

[당신 곁의 페미니즘] 19번째 편지: 대선후보들이 잡은 손과 놓은 손

등록|2022.02.04 13:22 수정|2022.02.04 13:22
페미니즘을 뭐라고 번역하시나요? 우린 '성평등주의'로 읽습니다. 성별로 인한 차별을 없애자는 얘기죠(오바마도 페미니스트라네요!). 페미니즘이 오해받는 한국, 그 안에서 페미니스트로 사는 두 여성의 이야기. 2주마다 한번씩 편지를 주고받으며, 연대와 성장을 꾀해봅니다.[편집자말]
현실이 절망스럽기만 한 당신에게, 혜미가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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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 곁의 페미니즘 · '여성 청년들은 어디 있느냐'라는, 게으른 질문

설 연휴는 잘 보내셨나요? 2022년 첫 달이 훌쩍 지났네요. 성애님이 지난 편지에서 쓴 '부끄러운 고백' 부분을 보며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부끄러워 해야 할 건 오히려 법을 어기는 정치인들 아닌가' 하는 생각요. 유권자라면 누구나 더 나은 정치, 더 좋은 민주주의를 바라게 마련이고, 지지하는 정치인·정당이 있다는 건 자연스러운 일일 테니까요.

최근 저를 동요하게 만든 건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의 <오마이뉴스> 인터뷰였어요. 이 대표는 "20대 여성이 어젠다를 형성하는 데 뒤처지고 있다"며 "담론이 추상적이라 정치권이 대응하기 어렵다"고 했더라고요. 문제를 해결해야 할 정치인이 해결은 않고 평가만 내리는 건데, 이건 '직업 정치인'으로서 직무유기 아닌가요. 20대 여성을 정치적 권리가 없는 '무권자'로 보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들었어요.

그에게 되묻고 싶어집니다. 여성·청소년 성 착취로 논란이 된 'n번방'을 막기 위해 여자들이 거리 시위에 나서고, 국회에 입법청원을 하는 동안 당신은 뭘 했느냐고요. 강력범죄 피해자 2만5000여 명 중 약 90%가 '여성'인 사회(*2011~2020년 10년간 통계·출처 뉴스톱), 꾸준히 생기는 교제살인 현실을 왜 한 치도 변화시키지 못 했냐고요.

성범죄를 줄이려 국민의힘 정치인들은 대체 어떤 노력을 했느냐는 거죠. 오히려 'n번방 방지법은 사전검열법'이라는 근거없는 주장만 했었잖아요.

윤석열의 일곱 글자 구호, 이재명의 출연 취소 
 

▲ 텔레그램성착취공동대책위 회원들이 2020년 3월 26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n개의 성착취, 이제는 끝장내자'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이른바 'n번방'을 드나들었던 회원 숫자는 26만 명으로 추정된다. ⓒ 권우성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준석 대표만 저런 건 아닌 듯해요. 정치권의 '이대남 눈치보기'는 여야 할 것 없이 현재진행형이니까요. 정치인들이 시민 의견을 듣는 건 당연하겠지만,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가 가타부타 설명도 없이 '여성가족부 폐지'란 일곱 글자만을 소셜미디어에 올리는 건 '선동'에 가까운 것 아닌가요.

백 번 양보해 그런 주장을 한다 치더라도, 내용도 없이 유권자를 '낚시질' 하는 모습은 지켜보기 괴롭습니다. 저는 그런 대통령 후보가 있는 사회에 절망을 느껴요.

얼마 전엔 이재명 민주당 후보가 한 온라인 커뮤니티 반발을 시작으로 특정매체들 출연을 취소하는 일도 있었죠. 해당 방송사 노조는 "예정됐던 출연을 보류한 이 후보에게 유감을 표명한다. (후보 측은) 오해에 휘둘리기 전에 씨리얼 콘텐츠부터 정주행해달라"고 알리기도 했습니다. 이 후보는 반면 '닷페이스'와는 취소를 번복한 뒤 인터뷰했다지만, 다행인지는 모르겠어요. 해당 매체 노동자들에게 쏟아진 악플 등 사이버 불링은 이미 심각했거든요.
 

▲ 1월 20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가 출연한 유튜브 채널 '닷페이스' 방송 화면 ⓒ 닷페이스 갈무리


관련 보도에 따르면 같은 당 김남국 의원이 단체대화방에서 '닷페이스에 출연하면 2030 여성표가 나오느냐'고 물었다죠? 갈팡질팡, '갈 지(之) 자'로 걸으면서도 여성들 표는 챙기려는 의도도 웃기지만, 5000만 국민을 대표하게 될 대통령 후보에게 '거긴 표가 안 되니까' 출연하지 말라고 하는 것도 좀 안타깝습니다. 그런 사람을 측근으로 둔 이재명 후보도요.

정치권 일각에선 '여성 청년들이 보이지 않는다'는 얘기도 들려요. 하지만 아시나요? 직전 선거인 19대 대선에서 20대 여성 투표율이 20대 남성보다 높았다는 걸요. 25세~29세 여성의 투표율은 79.0%로 같은 나이 남성보다 확연히 높았습니다(25~29세 남성은 71.1%). 이쯤 되면 2030 여성이 안 보이는 게 아니라, 그냥 안 보는 게 아닐까요. 제 주변의 여성들은 말합니다, 우리를 대변할 정치인과 정당이 보이지 않는다고요.
 

▲ 지난 2017년 5월 실시된 19대 대통령 선거 성별 연령대별 투표율(출처: 중앙선거관리위원회) ⓒ 이종호


이런 마음이 드러난 게 지난 서울시장 선거였다고 생각해요. 당시 지상파3사 출구조사 결과에서 18·19세 포함 20대 여성의 15.1%가 거대 양당이 아닌 제3 후보에 투표했다고 답했거든요(전체 평균에 비해 5%P가량, 같은 연령대보단 3배 높은 비율이었습니다).

20대 여성 유권자들은 오히려 더 선명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현재의 정치권이 누구의 손을 잡았고, 누구 손을 놓치고 있는지를요.

민주주의에 도움이 되는 분노로 나아가기

저는 지난해 동안 정치철학자 마사 누스바움의 책 읽기 모임을 친구들과 했었는데, 책 <타인에 대한 연민>에는 이런 문장이 등장해요.

"대중의 분노는 부당함에 대한 정당한 반응일 경우 민주주의에 도움이 되지만, 타인의 고통이 집단 혹은 국가적 문제의 해결책이라도 되는 듯 불타는 보복 욕구를 포함하기도 한다." (97쪽)

누스바움은 운동과 정치의 영역에서 '분노'가 전부가 돼선 안 된다고 강조하지만, 저는 최근 여성들의 분노가 부당함에 대한 정당한 반응이라고 생각해요. 이들의 연대는 여성에서만 끝나지 않고 다른 소수자들과도 함께 가고 있는데, 오히려 이런 움직임을 따라가지 못하는 정치가 안타깝고요.
 

▲ 정치철학자 마사 누스바움. ⓒ Adam Singsinthemountain


누스바움은 또 말합니다. "희망은 무기력해선 안 되고, 무기력할 수도 없다."(251쪽) 마치 우리가 더 나은 정치와 민주주의를 바란다면 무기력해선 안 되고, 변화를 실천하려면 무기력할 수도 없을 거라고 말하는 것 같아요.

저희 모임에선 2021년 마무리겸 누스바움에게 메일을 보냈었는데요. 답장에서 누스바움은 썼습니다. 얼마 전 자신의 딸이 세상을 떠났는데, 그 딸의 관심사였던 '동물권'에 대한 책을 자신이 최근 펴냈다고요(누스바움의 딸은 사망 전 국제비영리단체인 '동물의 친구들 Friends of Animals' 변호사였다고 해요). 개인적 아픔을 딛고 계속 희망하는 사람들, 그 덕에 이 땅이 더 살기 좋아진다는 걸 느꼈습니다.

우리도 그렇게 뚜벅뚜벅 가야 하지 않을까요. 30여 일 앞으로 다가온 대선, 현실은 암울하더라도... 손잡고 함께 걷기로 해요.

▲ 당신에게 추천합니다: 더 나은 내일을 바라는 당신께, 마사 누스바움 <타인에 대한 연민> "희망은 가능성의 문제가 아니라 늘 선택의 문제다".

2022년 2월 2일
희망을 택하는 당신 곁에 서며, 혜미 드림.

[관련 기사] 
"우린 유권자로 보이지 않나요?" 20대 여성들의 반문 http://omn.kr/1wyz3
<추적단 불꽃>의 '불', 민주당 선대위 합류 http://omn.kr/1x27z

* 혜미와 성애가 2주에 한 번씩 주고받으며, 격주 금요일에 게재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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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기사는 추후 개인브런치에도 게재됩니다.

<김혜미>
연재는 처음이라. 마포에 살고, 녹색 정치를 하며, 사회 정책에 관심있게 움직이는 사람. 셰어하우스에 살며 분리수거를 잘 하고싶은 페미니스트. 삶과 이상을 잇고-짓고 싶은 사회복지사. 날기싫은 비행기와 춤추고 싶은 멋쟁이 토마토를 간신히 연주할 수 있는 우쿨렐레 초보. 토마토 음식으로 해장하는 사람.

<유성애>
아픈 몸을 사는 사람, 편집노동자. 스스로 장애인-비장애인 경계에 있다고 생각한다. 20대 초반 한 팔 두 다리가 부러졌던 경험이, 의도치 않게 여자로 태어나 살며 겪었던 일들이 지금의 나를 만든 것 같다. 소외된 사람들 목소리에 마음이 더 기운다. 성평등한 국회, 성평등한 오늘을 꿈꾸는 페미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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