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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대재해처벌법' 취재, 과연 공정했다고 할 수 있을까요

[부산 지역언론 톺아보기] 직접 인용의 44%가 기업 목소리... '건강한 공론장' 역할 고민해야

등록|2022.02.07 17:39 수정|2022.02.07 17:39
19·20대 국회에서 발의됐지만 논의도 이뤄지지 않은 채 자동 폐기됐던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은 21대 국회에서 국회 국민 동의 청원에 10만 명 이상이 참여하면서 입법 궤도에 오를 수 있었다.

올해 가장 긴 연휴를 앞두고 있던 1월 27일,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이하 중대재해처벌법)이 1년 유예기간 끝에 시행됐다. 노동계도 경영(제)계도 중대재해처벌법의 개정을 요구하면서 양 입장이 충돌하는 갈등 이슈로 언론에 등장했다.

하지만 잇따른 산재 사망사고를 막기 위해 10만 국민이 뜻을 모은 사안이자, 지역언론도 지난해 기획기사를 통해 필요성을 드러낸 중대재해처벌법을 갈등 이슈로만 다루는 것은 언론의 책임을 외면하는 것이다. 언론은 중대재해처벌법의 취지를 설명하고 논쟁이 되는 지점에 대해선 다양한 영역의 목소리가 경합할 수 있는 공론장을 형성했어야 한다.
 

▲ 2022년 1월 한 달, ‘중대재해법’, ‘중대재해처벌법’ 기사 연관어 분석 결과 ⓒ 빅카인즈


한국언론진흥재단이 제공하는 뉴스 빅데이터 분석시스템 <빅카인즈>에서 1월 한 달(22.1.1.~22.1.31.)을 기간으로 설정해, 54개 매체를 대상으로 '중대재해법', '중대재해처벌법' 키워드를 검색했다. 언급량은 2589건이었다.

연관어 분석 결과를 보면, 경영(제)계 주체로 '경영책임자', '사업주', '기업들', '경영계', '경총', '건설업계' 등이, 노동계 주체로 '노동자', '근로자' 등이 등장했다. 개인으로서 노동자는 등장했지만 대변하는 노동단체(민주노총, 한국노총 등)는 주요 주체로 등장하지 않았다.

지역언론은 중대재해처벌법에 대한 다양한 의견, 노동계와 경영(계)의 주요 주장 등에 적절한 비중을 안배했을까? 누구의 어떤 목소리로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을 지역민에게 알렸을까?

1월 한 달간, 부산 지역언론의 중대재해처벌법 관련 기사 27건을 대상으로 모니터를 진행했다(참고 <표1>). 특히 목소리의 주체를 명확하게 알 수 있는 직접 인용을 중심으로 살펴봤다.
 

▲ <표1> 1월 한 달간 지역언론 ‘중대재해법’ 관련 기사 목록(보도 날짜 순) ⓒ 부산민주언론시민연합

 

▲ 부산 지역언론 중대재해처벌법 관련 기사의 직접 인용 빈도 ⓒ 부산민주언론시민연합

 

▲ 중대재해처벌법 관련 기사 직접 인용 - 경영(제)계 목소리 ⓒ 부산민주언론시민연합


부산 지역언론의 중대재해처벌법 관련 27건의 기사에서 직접 인용으로 전달한 목소리는 52개였다. 이를 경영(제)계(23개), 노동계(8개), 전문가(5개), 정치권(3개), 행정부(7개), 공공기관(4개), 기타(2개)로 분류해 살펴봤다. 직접 인용 52개 중 23개를 차지해, 기업의 목소리가 가장 많이 전달됐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기업은 주요 업종과 협회(단체)로 분류했다. 23개 중 14개가 업종(건설업·철강업·조선업 등)의 몫이었고 9개가 단체(전국경제인연합회, 중소기업중앙회 등) 목소리였다. 14개의 업종 목소리 중 6개가 산업재해 발생률이 높은 건설업계 목소리였다. 건설업 외 업종은 항만업, 철강업, 조선업, 제조업 등이 있었다.

'긴장', '우려', '막막', '발 동동'
기업 상황 전달에 치중한 중대재해처벌법 보도


기업의 목소리는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에 따른 우려와 불만 토로, 대응에 초점 맞춰졌다. 우려와 불만은 중소기업의 상대적 열악함, 규정의 모호함으로 중대재해처벌법 대응에 어려움이 있다는 것이었다.
 
"이미 산업안전법을 통해 안전사고에 대한 감독을 받고 있는데 중대재해법까지 시행돼 과도하다는 불만이 팽배하다", "최대한 현장에서 조심하도록 하는 것 외에 뾰족한 대응 방법이 없다"
대한전문건설협회 부산시회 한종석 사무처장/ 국제신문(1/18)
"오는 27일부터 시행되는 중대재해처벌법은 제정 당시부터 모호한 법률 규정과 과도한 처벌 수준으로 논란이 됐다"
전국경제인연합/ 부산일보(1/18)
"대기업이나 중견기업은 전문경영인을 따로 두지만 중소기업의 경우 기업의 대표가 영업, 생산, 총무 등 1인 4역 이상을 맡는다. 만약 사업장에서 사고가 나서 대표가 구속되면 회사를 경영할 사람이 사라지는 셈이라서, 법 자체가 공포로 다가온다."
부산울산중소기업중앙회 허현도 회장/ 부산일보(1/26)
"시행령이 규정하고 있는 9가지 의무에 대해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이 없어 대응이 어렵다."
부산 철강업체 A사/ 부산일보(1/26)

중대재해처벌법 보도와 관련해 부산일보가 가장 눈에 띄었다. 1월 한 달간 관련 기사 11건, 사설 1건, 기고 1건으로 가장 많은 보도량을 보여줬을 뿐 아니라, 이중 4건에서 기업의 '혼란'만을 부각했기 때문이다. 기업의 혼란을 부각한 기사 외에도 <"새 정부 1순위 노동 과제는 '재해처벌법'">(1/18)과 같이 전국경제인연합회에서 낸 설문조사 결과만을 기사화 한 경우도 있었다.

<중대재해법 시행 '코앞'…정확한 지침 없어 현장 대혼란>(1/17)
<시장·구청장도 '중대재해법' 대상…지자체, 대응책 마련 분주>(1/19)
<'중대재해처벌법' D-2…비상 걸린 산업계 '발 동동'>(1/25)
<대응책 막막한 산업계 "모호한 규정에 일단 하던 대로 할 수밖에">(1/26)
 

반면, 부산일보의 중대재해처벌법 관련 기사에서 노동계가 취재원으로 등장한 경우는 2건에 그쳤다. 이마저도 노동자의 입장에만 주목한 기사라기보다는 '희비'라는 이분법적 구도로 보도하거나, 한 지면에 노동계 입장 1건, 경영(제)계 입장 1건을 배치해 사안의 갈등성을 부각하는 지면 편집을 보였다.

<급물살 탄 건설안전법, 노동계-건설업계 '희비'>(1/24)
<성에 안 차는 노동계 "안전 사각지대 없애고 조사 더 투명하게">(1/26)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을 앞두고, 경영(제)계도 노동계도 시민사회도 개정을 요구하고 있기에 이를 각각의 입장에서 충실하게 전달하는 것은 건강한 공론장 형성을 위해 필요하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언론은 최소한의 객관과 공정을 지켜야 했음에도,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에 따른 기업의 우려와 불만을 더욱 비중 있게 전달했다. 기사에서 직접 인용한 목소리만 봐도 기업의 목소리가 44%로 과대 대표 됐음을 알 수 있었다.

핫팩 나눔으로 노동 환경 좋아질 수 있나?
중대재해처벌법 시행마저 기업 홍보 수단으로


중대재해처벌법 관련 보도에서 법 시행에 따른 기업의 대응을 전하는 보도는 크게 두 갈래로 확인할 수 있었다. 하나는 기업의 안전 강화 방안이었고 다른 하나는 1호 처벌을 피하기 위해 휴무를 결정했다는 것이었다.

지역언론은 부산상공회의소의 모니터링 결과를 토대로, 지역기업이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을 앞두고 선제적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전했다. 선제적 노력의 구체적 사례로 안전 경영 선포식, 안전교육 강화, 책자 배포, 현장점검 확대, 노무사와 컨설팅 등을 나열했다. 모두 기업의 발표를 지면으로 옮기는 데 그쳤다.
 
"안전보건조직을 이번에 확대 개편했고요. 앞으로 예산과 인력을 점진적으로 늘려 전사 차원에서 안전 관리 강화에 힘쓸 예정입니다."
롯데건설 홍보팀/ KNN(1/18)
"안전 TF팀을 구성해 사업장을 체계적으로 관리하고 안전보건경영시스템 ISO45001 인증을 취득했다"
조선 기자재 업체 C사/ 부산일보(1/26)

하지만 대표적인 산재 현장의 준비 상황은 취재하지 않았다. 지난해 5월 부산에서는 3명의 노동자가 집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신항 물류센터, 기장 음식물 쓰레기 업체, 동구 보건소의 노동자였다.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후, 이들 노동자의 삶의 터전에 변화가 있었을까. 지역언론은 노동 현장을 직접 방문해 취재하기보다는,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에 맞춰 배포한 기업의 보도자료를 지면에 실었다.
 

▲ (좌) 부산일보 1월 28일자 2면, (우) 국제신문 1월 28일자 10면 ⓒ 부산일보, 국제신문


1월 한 달간, 변하지 않은 노동 현장의 위험성을 노동계 목소리로 전한 건 KNN <화력발전소 '위험의 외주화' 여전>(1/24)이 유일했다.
 
"높이가 20M 정도 됩니다. 그 구간에는 물도 있고, 슬러지(찌꺼기) 때문에 굉장히 미끄러워요. 그래서 항상 추락 위험이 있고요." "(하루) 20톤 가까이 되는 (부유물) 물량을 치우기 위해서 여기 인원들이 다 투입됩니다. 그러면 실질적으로 해야 되는 경상정비 업무는 하지 못하고…"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발전HPS지부장/ KNN(1/24)
 

▲ KNN뉴스아이 1월 24일 ⓒ KNN


기업의 책무보다 어려움만 강조
노동자 안전하게 일할 권리는 어디에?

 

▲ (좌) 국제신문 1월 26일자 3면, (우) 부산일보 1월 26일자 1면 ⓒ 국제신문, 부산일보


부산일보는 1월 26일 자 1면 머리기사를 "1호가 될 수는 없다!"로 시작했고, 국제신문은 같은 날 3면 제목으로 "1호 피하자"를 올려, 경영(제)계의 입장을 강조했다.

중대재해처벌법 제정 이후 1년의 유예기간이 있었지만 두 기사 모두 1년의 시간 동안 지역기업이 노동 환경 개선을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였는지는 주목하지 않았다. 그보다는 '지역 업체들의 혼란이 극에 달하고 있다', '최소한의 안전장치를 마련하고 있지만 불안감은 여전하다', '건설업체들이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을 앞두고 초긴장 상태다'와 같은 서술로 기업의 심적 부담을 드러내는 데 주목했다.
 
"사실상 업계에서는 1호가 되지 않기를 바라고 있다", "정확한 지침은 사고가 일어나야만 알 수 있다는 인식이 퍼져있는 상황"
대형선망의 한 관계자/ 부산일보(1/17)
"법 시행 첫 날인 27일 괜히 공사했다가 주목받을 수 있으니 최대한 공사를 자제하자는 분위기다"
건설업계 관계자/ 국제신문(1/26)

언론의 위와 같은 보도 경향은, 1호 처벌을 피하기 위한 기업의 꼼수를 '고발'하는 데 있었다고도 볼 수 있다. 하지만 KNN의 <중대재해법 시행, "60대 이상 나오지 마세요">(1/27)를 통해 알 수 있었던 변칙 휴업에 따른 지역 건설노조의 보상 요구, 건설업 현장에서 벌어지고 있는 60대 이상 노동자 기피 현상 등 기업의 '꼼수'가 노동자에게 미친 영향은 언급하지 않았다.

지역언론은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된 배경, 이로 인해 기대되는 변화에 주목하기보다는 기업의 우려와 불만, 홍보성 보도자료, 심적 부담 등을 주요하게 전달함으로써 기업의 입장에 치중해 중대재해처벌법을 전했고, 결과적으로 이 법에 대한 부정적 감정만을 불러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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