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혼·1인가구입니다, 이번 대선 기대해도 될까요?
[2022대선 정책오픈마켓] 40% 넘은 1인가구 위한 주거·돌봄 정책 필요
▲ 비혼주의자 서현주(황정음 분)의 이야기를 다룬 KBS 드라마 <그놈이 그놈이다>의 한 장면. 남녀 주인공은 드라마 말미에 '비혼식'을 치른다. ⓒ KBS
일본의 정신과의사이자 <나이듦의 심리학> 저자 가야마 리카는 50대 비혼이다. 그녀가 쓴 <나이듦의 심리학>에는 나이 들면서 필요한 것들이 잘 제시되어 있다. 심리적인 것뿐만 아니라 실질적으로 필요하고 준비해야 할 것은 공감이 되면서도 유익했다. 그 중에서도 가장 공감이 간 것은 '주거' 부분이다.
그녀는 아이가 없기 때문에 아이 없이 혼자 나이 들어가는 노후 생활의 현실에 맞부딪힌다. 그러면서 현재 대출을 끼고 갖고 있는 집을 팔고 요양원 입주 비용을 마련해야 하는지를 고민한다. 그렇다고 요양원 비용이 적은 것도 아니다. 요양원은 지금 생각할 수 있는 최후의 보루이지만, 사실 그녀가 생각하는 노후의 주거 조건은 명확하다.
노후에 필요한 두 가지, 주거와 돌봄
그 부분을 읽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비혼인 나도 나의 노후 생활을 생각했을 때 그와 별반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외롭지 않고, 커피를 좋아하니 마시고 싶을 때 언제든 갈 수 있는 커피숍이 있고, 거기에 하나 더 추가한다면 가까운 거리에 병원이 있는 곳.
사실 그러기 위해서는 어디 사느냐가 중요하다. 비혼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이 노후를 생각할 때 떠올리는 것은 '주거'와 '돌봄' 두 가지 아닐까.
노후를 위해서는 내가 준비해야 할 것, 예를 들면 노후 생활 자금이라든가 보험 같은 것들은 차근차근 마련해 두어야 한다. 하지만 개인이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도 있다. 20대 대선 과정을 지켜보면서 여러 가지 정책들을 보고 있는데, 아무래도 비혼이나 1인 가구 관련 내용을 살펴보게 된다.
아이를 낳은 합법적 부부에게 공제 혜택 등 많은 부분이 지원된다. 나 같은 비혼은 공제를 받지 못하고 있으니 사실상의 비혼세를 내고 있는 셈이다. 공제를 못 받는 것까지는 이해하고, 부양할 가족이 많은 가구에 혜택을 주는 것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결혼을 하지 않는 청년들이 많아지고, 1인 가구도 전체 가구의 40%(2021년 10월 행안부 발표)를 넘은 지금, 주거 정책이나 복지제도의 개편은 필요해 보인다.
가장 중요한 건 주거인데 사실 1인가구 주거 정책은 여전히 미비하다. 특히 청약제도는 사실상 1인가구를 배제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집은 주로 3040에게 필요하지만, 가족이 많을수록 청약 가점이 올라가므로 1인가구에겐 그림의 떡이나 다름없다. 민간분양의 경우 가족 1명당 5점이 추가되기 때문에 부양가족이 많을수록 당첨 확률도 높아진다. 한 언론은 최근 7인가구(부양가족 만점인 35점을 받을 수 있는 가구) 중에 청약 만점(84점)자들이 속출하면서 3~4인 가구들이 희망고문에 괴로워 한다는 기사를 내놓기도 했다. 7인가구라면 부모 부양 2명, 자녀 3명 또는 부모 부양 1명, 자녀 4명, 부모 양가 부양 4명, 자녀 1명 등인데 세상에 이런 집이 얼마나 될까.
그나마 결혼이라도 하면 신혼특공에 생애최초, 희망타운 등 옵션이 많지만, 결혼을 하지 않은 경우에는 청약 자체가 불가능하다. 다행히도 지난해 9월 국토부가 발표한 '생애최초-신혼부부 특별공급제도 개편안'에 따라 1인 가구나 무자녀·고소득 신혼부부 또한 청약의 기회와 좀 더 가까워졌다. 안에 따르면, 민간분양에 한해 신혼 특공과 생애최초 특공 공급 물량 중 30%를 추첨제로 돌려 자녀유무나 소득기준을 따지지 않고 공급한다. 아주 반가운 변화지만, 현재 우리나라 총 가구 수 2092만 가구 중 1인 가구가 664만이란 점을 떠올려보면, 턱없이 부족하게 느껴진다.
주택 공급은 국민 일반을 대상으로 포괄적으로 적용되어야 한다. 다행히 이번 대선 후보들은 1인 가구에 걸맞은 공공 주택 공급을 늘린다는 공약을 발표했다. 청년에 비중이 쏠린 것이 다소 아쉽기는 하지만, 그래도 1인 가구를 위한 주거 정책이 고려되고 있다는 건 환영할 만한 일이다.
혼자 사는 사람들을 위한 시스템이 필요하다
▲ 주거와 함께 고려되어야 할 것은 돌봄이다. ⓒ 픽사베이
주거와 함께 고려되어야 할 것은 돌봄이다. 얼마 전 갑상선에 문제가 생겨서 대학병원에 가서 검사를 받은 적이 있다. 검사를 받으러 가는 날, 80이 넘은 엄마는 50 넘은 딸에게 넌지시 물었다.
"내가 같이 가줄까?"
엄마의 진지한 물음에 웃음이 터져나왔다. 80이 넘은 엄마는 딸이 혼자 병원에 가는 게 안쓰러워서 한 말이겠지만, 어느새 엄마의 보호자가 된 나는, 내 보호자로 따라나서겠다고 하는 엄마가 어쩐지 못 미더웠던 탓이다.
접수부터 영상촬영 CD를 복사하는 일까지 절차가 복잡했다. 순간 당황했다. 이내 도와주는 안내데스크를 찾아가 도움을 받긴 했지만, 기계에 익숙하지 않은 노인들은 당황스럽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은 조금 헤매더라도 혼자 할 수 있고, 몸 상태가 괜찮았기 때문에 낯선 절차들을 감당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더 나이가 들어서 이런 상황을 맞이한다면 분명 당황하리라는 게 쉽게 예측되었다.
병원에 가는 것뿐만 아니라 1인 가구가 질병이나 치매에 걸릴 경우 대비할 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내가 나를 돌볼 수 없을 때, 혹은 위험한 순간이 닥쳤을 때 즉각적으로 도움을 청할 수 있는 시스템 말이다. 이미 성년후견제도(2013년 7월부터 시행, 정도에 따라 성년후견·한정후견·특정후견·임의후견으로 나뉨)가 마련돼 있지만, 우리나라보다 먼저 노령화사회를 맞은 일본에서 성년후견제도 이용률이 저조한 걸 보면 사회에 잘 정착할 제도라 장담하긴 어려울 듯하다. 돌봄을 이처럼 개개인의 선택에 맡기기보단 어려움 없이 혼자 살 수 있도록 관련 시스템을 마련하는 게 더 낫지 않을까.
1인 가구가 증가하는 건 우리나라만의 일이 아니다. 다른 국가들도 1인 가구의 증가로 이들을 위한 정책을 내놓고 있다. 1인 가구를 위한 공동주택과 임대주택 공급확대, 주거 수당 등 다양한 주거 지원 정책이 이루어지고 있다. 일단은 주거가 안정되어야 하고, 그걸 토대로 서로를 돌보고 지켜볼 수 있는 공동체를 만들자는 것이다.
비혼으로서, 그리고 나중에 1인 가구가 될 확률이 많은 여성으로서 예측해 보자면, 내가 지금 걱정하는 미래는 분명 현실이 될 것이다. 누군가는 "그럼 누가 혼자 살라고 했냐? 거봐라 늙으면 후회한다. 너가 선택해서 결혼 안 한 건데 왜 나라에 책임지라고 하냐"라고 할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비혼 1인 가구는 아무것도 요구해서는 안 되는 걸까. 결혼 안 한 죄(?)로 모든 불이익을 참고 있어야만 하는 걸까.
결혼을 하고 안 하고는 개인의 선택이고, 1인 가구 또한 40%를 넘어섰으며, 납세의 의미를 성실하게 이행하고 사는 국민이기에, 최소한의 사회 안전망을 요구한다. 비혼자들이 더 이상 정책에서 소외되지 않길, 그리고 그들을 위한 최소한의 사회안전망이 만들어지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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