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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 투룸 생활' 후 집에 돌아온 내가 알게 된 것

질병과 고통도 '다르게 보기'로 극복할 수 있을까

등록|2022.02.09 09:19 수정|2022.02.09 09:19
한 달 동안 집 근처에 있는 투룸을 빌려 살았다. 이십 수년간 살아온 아파트를 수리하느라 집을 비워야 했기 때문이다. 역시 살림살이는 이사를 해 보아야 정리가 된다. 보관 이사, 투룸 이사를 하다 보니 버려야 할 물건이 너무 많았다. 두꺼운 한자 자전, 인명사전, 10년 전 일기도 다 버렸다. 잘 안 입는 옷도 몇 뭉치나 내놓았다. 제일 어려운 버림은 사진이다. 날짜 있는 사진 중에서 몇 장만 골라 남기고 모두 던졌다.

이것저것 버리다 엉뚱한 소동도 있었다. 현관 앞에 신발 두 뭉치가 놓여있길래 버릴 신발인 줄 알고 헌옷수거함에다 던져 넣었다. 알고 보니 한 뭉치는 당장 신어야 할 신발 포대였다. 헌옷수거함은 항시 열쇠가 잠겨있다. 어렵사리 담당자와 연락해 다음 날 신발을 골라 찾느라 조금 고생(?)했다. 고생한 만큼 '한 달 투룸 생활' 후 헐렁헐렁 비어있는 책장, 옷장, 신발장을 볼 때마다 쾌변 후 뱃속처럼 후련하다.

한 달 후 살림 공간만 후련해진 게 아니다. 가장 놀라운 후련함은 창을 통한 전망이다. 이십수 년간 보아왔던 똑같은 그 창, 그 전망인데 달라졌다. 구름 흐르는 푸른 하늘이 창 절반이나 차지하는 줄 몰랐었다. 매일 베란다 창을 통해 무등산에서 떠오르는 아침햇살을 볼 수 있다는 사실도 이제야 알게 되었다. 한 달 동안 신문지 서너 장 크기의 투룸 창을 통해 옆 투룸 건물 벽만 쳐다본 후 깨닫게 된 후련함이다.

'신문지 크기의 창문, 그 창을 통해 독방에 쏟아지는 햇볕에서 삶의 의미를 느꼈다'는 신영복 교수(1941~2016) 얘기가 생각난다. 신 교수의 <담론>을 찾아 다시 읽어본다. 신 교수는 "나는 왜 자살하지 않고 기약 없는 무기징역을 살고 있는가?" 스스로 묻고 "하루 기껏 2시간, 겨울 독방을 비추는 신문지 크기의 햇볕 때문이었다"라고 답했다. 20년 20일을 옥살이한 신 교수는 "독방은 최고의 철학교실이었다"고 썼다.

철학은 독방 옥살이 같은 극한적인 상황 안에서도 삶의 의미를 찾아낸다. 인간은 어려운 상황을 여러 번 겪다 보면 자연스레 철학자가 되어간다. 편치 않은 생활을 겪어본 후에는 평범한 일상이 편안함인 줄 알게 된다. 병에 걸렸다 나은 후에는 아침에 벌떡 일어나 걸을 수 있다는 사실이 행복이라는 걸 깨닫게 된다. 그러나 막상 역경에 빠졌을 때, 철학자가 되지 못한 우리는 어떻게 삶을 의미 있게 살아갈 수 있는가.

언론인이자 베스트셀러 작가인 에릭 와이너는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에서 '죽은 철학자에게서 얻은 인생 교훈'이라며 "삶의 의미를 찾는 것보다 의미 있는 삶을 살아라"라고 말한다. '자연주의 철학자 소로(월든 작가)의 다르게 보기 법'도 권한다. 소로는 월든호수를 언덕 위에서, 호숫가에서, 호수 위 보트에서, 물속에서, 달빛 아래서 보고, 또 고개를 삐딱하게 기울이고 보고, 머리를 다리 사이로 끼워 거꾸로 보기도 했단다.

길을 걷다가 '소로의 다르게 보기' 중 하나인 '고개를 기울여보기'를 시도해본다. 머리를 오른쪽으로 기울이고 앞을 본다. 도로와 자동차와 아파트 숲이 오른쪽으로 내려앉고 구름이 둥둥 흐르는 푸른 하늘이 왼쪽에서 솟아오른다. 마치 그림 액자를 돌려보는 기분이다. 고개를 왼쪽으로도 돌려본다. 이제껏 보지 못하던 추상화 같은 풍경이 펼쳐진다. 마치 처음 가는 곳을 여행하는 새로움을 느낀다.

고개를 기울이지 않고 머리를 거꾸로 하지 않고서도 난 매일 아침 무등산 일출을 볼 수 있다. 하루 10시간 따뜻한 햇볕이 거실 창을 채운다. 마음을 기울여 만드는 마음의 시각이 덤덤한 일상사를 기적처럼 만든다. 만약, 내가 병에 걸려 고통스러울 때 질병과 고통도 소로의 다르게 보기로 극복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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