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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동인간 논란' 윤석열 '공부왕찐천재' 발언들 살펴보니

[하성태의 사이드뷰] TV 예능 떠난 대선후보들

등록|2022.02.11 16:27 수정|2022.02.11 16:27

▲ SBS <집사부일체> 윤석열편의 한 장면. ⓒ SBS


"난 밥 아예 안 해... 남편이 다 하지."

지난 1월 MBC <스트레이트>에 이어 유튜브 채널을 통해 공개된 김건희씨 발언 중 한 대목이다. 녹취록 공개 직후 지난해 9월 추석을 앞두고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가 출연한 SBS <집사부일체>가 재조명 받는 기현상이 일어났다. 해당 방송을 통해 윤 후보가 이승기 등 출연자들에게 요리해준 계란말이가 회자가 됐다.

당시 <집사부일체>는 본격적인 대선 레이스가 펼쳐지기 전 윤석열 후보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 편을 편성해 주목을 끌었다. 윤 후보가 출연한 지난해 9월 19일 방송은 7.4%, 이 후보가 출연한 9월 26일 방송은 9%라는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다(닐슨코리아 기준).

프로그램이 화제를 모으자 또 다른 대선후보인 안철수 국민의당 대선후보가 '지난해 11월 페이스북에 모 방송사 예능 프로그램 출연 요청을 받고 흔쾌히 응했고 작가 인터뷰 및 자택 카메라 설치까지 마무리됐는데, 훗날 일방적으로 취소 통보를 받았다'고 주장해 이목을 끌었다. SBS 측은 이에 대해 해당 프로그램이 <집사부일체>가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훗날 안 후보가 언급한 프로그램은 종편의 한 예능으로 밝혀졌다.

이처럼 정치인의 예능 프로그램 출연은 방송계의 오래된 논란거리다. 특히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는 특히 민감할 수밖에 없는 사안이다. 시사나 뉴스를 제외하고 대선후보가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일 자체가 정치인의 미화 및 선거운동으로 이어진다는 논란이 따라온다. 1995년 당시 방송위원회가 대선 90일 전 대선후보의 방송 출연을 금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유튜브·OTT로 몰려간 대선후보들

그랬던 대선후보의 예능 출연이 이제 소셜 미디어 및 OTT로 옮겨간 형국이다. '삼프로 TV가 나라를 구했다'는 반응과 함께 기록적인 조회 수를 기록했던 <삼프로 TV>가 전부가 아니다. 이미 각 대선주자들은 OTT인 쿠팡 플레이를 통해 방영 중인 < SNL 코리아 > 시즌1 출연을 마쳤다.

이후에도 키즈 유튜브 채널 <라임튜브>가 최근 이재명 후보 출연 영상을 공개했고, 앞서 고양이 관련 유튜브 채널 <크집사>도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와 심상정 정의당 후보 영상을 공개했다. 관점이 살짝 다를 수 있지만, 이재명 후보가 인권 전반과 여성‧젠더 이슈 등 폭넓은 관심사를 반영하는 <닷페이스>에 출연한 것 자체가 하나의 이슈이자 논란이 됐을 정도였다.

경제‧주식 채널을 표방한 삼프로 TV 영상은 경제 관련 토론 혹은 인터뷰 형식이었다. 하지만 여타 채널은 유튜브 특성상 교양과 예능을 접목시킨 연성화된 형식이라 할 수 있다. TV 예능이 미처 다 담지 못하는 후보자들의 다양한 면모를 담아내고 있는 것이다.

그런 와중에 구독자 107만 명을 자랑하는 유튜브 채널 <공부왕찐천재 홍진경>(아래 <공부왕찐천재>)에 대선후보들이 출연했다. 방송인 홍진경이 진행하는 이 프로그램은 카카오TV에서 출발해 유튜브에 안착, 교육과 예능을 접목시킨 인기 채널이다. 그렇다면 <집사부일체>, <삼프로 TV>에 이어 유력 대선주자들을 다시금 불러 모은 <공부왕찐천재>의 내용은 어땠을까.

실제 윤석열 발언 봤더니
 

▲ 유튜브 '공부왕찐천재 홍진경'에 출연한 대선 후보들. ⓒ 공부왕찐천재 홍진경


"죄송한데…. 전 외고…. 92년 졸업…."

민주당 박주민 의원이 지난 10일 올린 페이스북 글이다. 실제 대원외국어고등학교 중국어과를 졸업한 박 의원이 <공부왕찐천재> 속 윤 후보의 발언을 공유하며 죄송함(?)을 표현한 것이다. 왜 그랬을까.

"나는 중학교까지는 정규교과 과정을 똑같이 배우는 시간을 좀 줄이고, 좀 다양한 걸 배울 수 있는. 고등학교 갈 때는 학교들을 좀 나눠야 할 거 같아. 기술고등학교, 예술고등학교, 과학고등학교. 고등학교부터는 좀 나눠야 될 것 같아요." (윤석열 후보)

지난 9일 공개된 프로그램 속 윤 후보의 말이다. 이 발언이 공개되자 여론이 들끓었다. 이미 과학고, 예술고 등이 1980년대 설립됐다는 사실이나 다양하게 분화된 고교 교육 과정에 대한 이해 자체가 부족한 것 아니냐는 질타였다.

과거 윤 후보가 향후 '구직앱'이 출시될 것이란 예언(?)을 내놓았던 전력과 함께 '냉동인간 아니냐'는 반응이 쏟아졌다. 적지 않은 매체가 윤 후보의 해당 발언과 여야 정치권 및 누리꾼 반응을 기사화하기도 했다.

윤 후보의 해당 발언은 돌출 발언이 아니었다. 윤 후보의 교육 관련 비전을 듣는 준비된 토크가 진행되던 와중에 나온 일종의 교육 철학이었다. <공부왕찐천재> 대선후보 편은 전반부 대선후보가 칠판 앞에서 수학 공식을 알기 쉽게 강의하고 홍진경 등 출연자들이 실제 문제를 풀어본 후, 대선후보들의 교육 관련 철학 및 정책을 포함한 대선 공약을 듣는 형식으로 구성됐다.

윤 후보 편의 경우, 총 18여 분 분량의 영상 중 이차방정식 관련 강의는 전반부 11분, 나머지 7분여가 토크 형식으로 채워졌다. 안철수 후보 영상도 다르지 않다. 총 23분여 분량의 영상 중, 안 후보의 원주율 강의는 10여 분을 차지하고 나머지가 교육 철학 관련 내용이었다.

분명한 것은 유권자들의 트렌드 변화
 

▲ 유튜브 '공부왕찐천재 홍진경'에 출연한 대선 후보들. ⓒ 공부왕찐천재 홍진경


앞서 지난 7일 공개된 안철수 후보 편은 11일 오후 1시 현재 조회수 66만을 기록했고 5천 개 넘는 댓글이 달렸다. 이어 9일 공개된 윤 후보 편은 '냉동인간' 논란에 힘입은 바(?), 2만 개가 넘는 댓글이 달렸고 조회 수도 56만을 넘기며 빠르게 상승 중이다.

<공부왕찐천재> 영상은 이런 외형적인 비교 외에 예능적인 재미가 현저히(?) 떨어지는 수학 강의조차 대선 후보들의 세세한 특성을 포착할 수 있다는 점에서 흥미를 안긴다. 이미 지난해 5월 해당 채널에 출연한 바 있는 안 후보가 나름 아재개그를 구사하는 것과 달리 윤 후보가 수학 강의에만 매진한 것과 같은 차이도 그중 하나다.

하지만 아무래도 눈여겨 보게 되는 것은 대선 후보들의 교육 철학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논란이 된 윤 후보 발언 또한 윤 후보가 "교육의 다양성"이란 평소 철학을 설파하던 와중에 나왔다.

이밖에 윤 후보는 획일화된 공교육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다양한 공교육 자체가 공정"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다음과 같은 발언을 하기도 했다.

"국민 하나하나의 개인기가 뛰어나야 한다. 국가가 좀 간섭하지 않으면서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이 자기 자율과 창의와 이런 거를 십분 발휘해서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의 개인기가 뛰어난 나라를 만들어야 한다. 그럼 나라가, 경제가 발전하게 돼 있다.

정부가 국민보다 더 똑똑하고 낫다는 생각에서 벗어나야 한다. 부가가치, 돈 버는 거, 일자리 만들어 내는 거, 개인과 기업이 하는 거지 국가가 하는 게 아니에요. 정부가 자꾸 시시콜콜 관여 안 하는 거야, 도와주기만 하는 거야."


여러 발언들에 대한 판단은 해당 영상을 찾아 본 시청자들의 몫이다. 이밖에도 윤 후보는 교육 정책 외에도 "국민 개개인의 개인기가 뛰어난 국가, 사회 안전망이 탄탄한 국가, 국제사회로부터 존경 받는 국가"를 공약으로 내세웠다. 누구는 원론적이라 볼 것이고 누구는 거시적인 비전이라 평가할 것이다.
 

▲ 유튜브 '공부왕찐천재 홍진경'에 출연한 대선 후보들. ⓒ 공부왕찐천재 홍진경


안철수 후보의 경우 더 구체적이고 수적으로 많은 공약을 제시했다. 이른바 '5.5.5 공약'을 내세웠는데, 그 내용은 '5대 초격차 과학기술 확보, 5대 글로벌 선도기업 육성, G5 경제강국클럽 진입' 등이었다. 또 청년정책 공약으로 '입시제도 기회의 공정, 군대 문제, 부동산 문제, 연금 개혁, 보육' 5가지를, 코로나19 방역대책으로 '국민 참여 방역, 병상‧의료인력 확보, 백신 주권 확보'를 주장했다.

기본적인 틀만 갖고 공약 소개는 비교적 자율적으로 진행되는 이 형식을 통해 이재명 후보는 또 어떤 공약을 제시하고 또 어떤 반응을 이끌어낼지 관심이 모아진다. 이재명 편은 11일 오후 6시 해당 영상 공개를 예고한 바 있다.

분명한 것은 방송사 내 제약이든 국민정서든, 그 어떤 요인으로든 언론의 주목과 함께 정치적 논란에 휩싸이기 십상이었던 TV 예능을 떠난 대선후보들이 자유롭게 본인의 이미지를 구축하고 직접적으로 공약을 소개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시청자들은 자신들의 기호와 성향에 맞게 찾아보고 있다.

이를 두고 미디어를 통한 일상화된 선거운동에 우려를 보내거나 올드 미디어의 기능 약화에 초점을 맞출 수도 있을 것이다. 그 역시도 유튜브로 몰려가는 시청자들의 선택과 취향 변화에 기반한다는 것 또한 분명한 사실일 것이다. 대선 판에서도 이렇게 미디어를 향한 유권자들의 트렌드 변화가 감지되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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