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주 동안 매일 10문장 쓰기, 그 후 알게 된 것
글쓰기에서 가장 중요한 건, 타인에 대한 애정과 관심
▲ 한 동안 글쓰기를 멈추다가 다시 하기 위해서는 글근육을 키워야 했다. 우연히 알게 된 '매일 10문장 글쓰기'라는 문구가 보였다. 문구가 반짝거리고 있었다 ⓒ pixabay
덜컥, 글쓰기 동료가 생겼다
매일 24시간의 '마감 시간'이 주어졌다.
인터넷 카페에 가입하고 등업신청 게시물을 올렸다. 나와 같은 게시물을 올린 사람이 13명 더 있었다. 이렇게 모인 14명이 이 글쓰기 모임의 29기였다. 얼굴 한 번 본적 없고 이름도 제대로 모르는 (카페에서는 각자 별명을 사용했다.) 우리가 모여 한 달간 글쓰기라는 커다란 배의 키를 잡고 항해에 나서게 된 것이다.
사실 나는 그때부터 좀 들떠버렸다. 오랜만에 덜컥 '기수'라는 동기가 생기기도 했고 그 단어에서 '함께'라는 따뜻함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 따뜻함이 글쓰기라는 세계에 나를 초대한 것 같았다. 그래서 한 명의 낙오 없이 전원이 미션을 잘 수행해 이 글쓰기 모임의 마지막인 줌(ZOOM) '글쓰기 상담소'에서 모두 만나기를 시작 전부터 응원했다.
그렇게 시작한 하루 10문장 쓰기는 생각보다 즐겁고 까다롭기도 했다. 산문가이자 29기 담당인 김이슬 작가가 매일 밤 자정에 주제를 올려주었다. '가장 기억에 남았던 문장이나 대화', '발견과 깨달음', '인물과 사물' 등의 주제로 우리 '29기 동기'들은 당일 밤 11시 59분까지 10문장을 카페에 올렸다.
밤에 주제를 확인하고 잠을 자고 밥을 먹고 직장에서 일하며 뭘 쓸지 생각하다가 해가 질 때쯤 스마트폰을 엄지로 두드려 10문장을 완성하는 게 생활 패턴이 됐다. 처음에는 말 그대로 '10문장'일 뿐이라 부담이 없었는데 쓰다 보니 부담이 생겼다. 잘 써야겠다는 생각보다 10문장 안에서 글이 완성되어야 한다는 압박 때문이었다. 마치 신문사에서 정해진 지면에 몇 매의 원고지 분량의 기사를 넣기 위해 줄이는 일처럼.
하지만 오랜만에 글쓰기에 집중하는 시간이 생겼다. 아니 만들어졌다. 온종일 틈틈이 어떻게 쓸지 생각하고 있다가 회사 일에 쫓겨 퇴근길에 스마트폰 메모장을 열고 허겁지겁 쓴 적도 있었고 그러다가 간신히 마감 시각에 딱 맞춰서 올린 적도 있긴 했지만. 그렇게 글쓰기 습관은 자라고 있었다.
10문장의 초미니 에세이에는 29기 동기들의 열네 갈래 세계가 열려 있었다. 기억에 남는 인물이나 사물을 쓰라는 주제가 나왔을 때 나는 누군가에게 선물 받았던 기억을 꺼냈고 누군가는 독립해 살게 된 이야기를 말했고 누군가는 가난을 언급했다.
내가 일본어를 잘하고 싶다는 이야기를 꺼냈을 때 누군가는 자신만의 책방을 열어 멋진 할머니로 살고 싶다고 했고 또 다른 이는 바다를 보러 가고 싶다고 했다. 주제는 같았는데 각자의 글은 여러 모양을 하고 있었다. 내용도 형식도 모두 달랐다.
글을 잘 쓰고 못쓰고는 애초 존재하지 않았다. 자신을 억지로 꾸며내려고 하지도 않았다. 이곳에서 글쓰기는 온전하게 나를 바라보는 일이었다. 각자 깊은 내면을 파고들어 가 끄집어내는 진짜 나의 이야기.
다시 말하자면, 얼굴 한 번 본적 없고 서로 이름도 제대로 모르는 사람들이 모인 이곳에서 우리는 서로의 솔직함을 확인하고 이해와 공감으로 각자 자신의 영역을 확장해 나갔다. 모두가 열려있는 이곳의 세계관 덕분에 하루하루 들려올 이야기가 참을 수 없을 만큼 궁금했다.
같이 쓰는 글의 힘
그렇게 매일 쓰기를 거듭할수록 알게 된 사실이 있다. 글쓰기에서 정말 중요한 건 솔직함과 이해, 공감 같은 것들이었다. 차분하면서도 적극적인 관심이라고 할 수 있을까. 쓰는 사람은 자신이 정말 쓰고 싶은 이야기를 최대한 솔직하게 써내려가고, 읽는 사람은 쓴 이의 마음을 이해하려고 하는 것. 양쪽의 노력이 꾸준히 쓸 수 있는 동력으로 이어진다.
이걸 알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있다. 주중에 썼던 글을 한곳에 모아 올리면 주말에 댓글로 동기들끼리 피드백을 해주는 시간이 있었다. 내 글을 읽고 자신의 비슷한 옛 시절을 떠올렸다거나 내 글을 읽고 큰 용기를 받았다는 등의 댓글 하나하나를 읽을 때마다 더 잘 써야겠다는 욕구가 저절로 샘솟았다. 이게 같이 쓰는 힘인가 싶었다.
김이슬 작가는 좀 더 구체적인 피드백을 주기도 했다. 1주차를 마치고 "철저하게 필요한 문장만을, 사실에 기반해 쓰는 것 같다가도 마지막 문장에서는 짙은 여운이 남기도 했다"고 했다. 마음을 들킨 기분과 부족하다는 생각이 동시에 들어 2주차부터는 달라지려고 머리를 좀 굴렸다. 3주차에는 A4가 살짝 넘는 분량의 글을 쓰면서 마침내 긴 글까지 완성할 수 있었다.
그렇게 모임의 마지막 날 마침내 동기들과 김이슬 작가를 줌으로 만났다. 아쉽게 모든 동기들이 다 함께하진 못했지만, 또 글로 마주하다 직접 얼굴을 봐서 긴장을 해버렸지만, 여러 얼굴이 모니터에 떴을 때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우리가 이렇게 3주 동안 글을 썼구나.
다들 글 근육이 얼마나 붙었을까. 근육을 어디선가 또 키우며 글쓰기로 자신의 세계를 확장하고 있을 사람들. 그리고 이 근육을 잃지 않으려고 나도 쓴다. 지난달도 썼고 이번 달도 이렇게 썼다. 자, 오늘도 무사히 마감했다!
덧붙이는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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