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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를 취존하겠습니다, 이 말의 진짜 의미

엄마 취향과 다른 열일곱의 취향, 긍정하고 인정해주기

등록|2022.02.21 06:07 수정|2022.02.21 06:07
시민기자 그룹 '사춘기와 갱년기'는 요즘 사춘기 아이들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갱년기 부모들의 사는 이야기입니다.[편집자말]
딸 : "왜냐하면 텐션을 올려야 되거든~"
나 : "그래? 오케이! 볼륨 어~~업!"


이제 고등학생이 되는 딸은 학원에 갈 때와 올 때 듣는 음악이 다르다. 그뿐 아니라 수학 학원을 갈 때와 영어 학원을 갈 때 듣는 음악도 다르다. 아니다. 엄밀히 말하면 대부분의 음악은 비슷비슷한데 수학 학원에 갈 때 듣는 음악만 유난히 다르다.

이때는 유독 비트가 강하고 감정이 배제된 음악, 열여섯 소녀의 마음에 어떠한 파장도 일으키지 않는 건조한 음악이 흘러나온다. 시크한 가사와 무심한 목소리가 어우러진, 빠른 템포와 멜로디를 가진 그런 음악 말이다.

왜 그러는지 물어본 적이 있다. 엄마는 발라드 음악이 좋은데 너는 아닌 것 같다고 하니, 아니란다. 자기도 발라드 좋아한단다. 그런데 유독 수학학원에 가기 전에 이런 취저 음악을 들어야 한단다. 이유인즉슨, 텐션 때문이라고.

"안 그래도 수학 문제 풀다 보면 축축 처지거든. 재미없잖아. 이렇게 텐션을 좀 올려놓으면 덜 지겹더라고. 집중도 좀 잘 되는 것 같고. 문제도 좀 잘 풀리고."

하, 이렇게 계산된 선곡이었다니. 나는 깊게 공감하며 짠함과 감탄이 섞인 눈으로 아이를 쳐다보았다. 아이가 나를 향해 부담스러운 눈길을 거두어 달라 부탁할 때까지. 요즘은 정말 아이가 갑자기 다 큰 것 같다고 느낄 때가 많다.

열일곱에게 취향이 생겼을 때
 

▲ 이제 고등학생이 되는 딸은 학원에 갈 때와 올 때 듣는 음악이 다르다. ⓒ envato elements


아이의 취향에 대해 특별히 관심을 기울인 적이 없었다. 내가 들려주고 싶은 것, 보여주고 싶은 것을 권하기에도 바빴다. 개인적인 취향과 개성은 나중에 다 알아서 생기리라 생각했다.

그런데... 엄마의 취향이라는 것이 조금 뻔했다. '닥치고 교육'적일 것이며, 은연중에 내가 좋아하는 것을 권했기 때문에 아이가 접하는 모든 것들은 나에 의해 선택되어진 재미없는 것들이었을 것이다(아직도 내 생각엔 유용한 것들이었지만).

그렇게 취향을 강요당하던 첫째가 슬며시 덕질을 시작한 것은 중학교 1학년 겨울방학 때였다. 아마도 또래에 비해 늦은 편이었으리라. 엄마와 똑같은 취향을 가진 아이가 드디어 독립적인 취향을 향해 한 발을 내민 것이다.

아이가 방문을 닫고 들어가 있는 동안 무엇을 하고 있는지 참 많이도 궁금했다. 궁금함을 참다가 짜증이 날 때면 방문도 쿵쿵 두드려보고 소리도 질러보고 심지어 방문의 잠금장치까지 떼어본 적이 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아마도 아이가 혼자 자기만의 시간을 갖는 것이 낯설었던 것이 아닐까 싶다.

그러고 보면 누구나 동굴에 들어가는 때가 있는 것 같다. 단군신화에도 나오는 친숙한 이야기, 동굴에 들어간 곰이 마늘과 쑥만 먹고 사람이 된 이야기도 어찌 보면 변화를 위한 시간이었을 것이다. 다른 점이 있다면 동굴에 들어간 아이뿐만 아니라 밖에서 기다린 엄마도 함께 인고의 시간을 가졌다는 점이 다르다면 다를까.

그렇게 착실하게 자신만의 시간을 가졌던 아이가 이제 문을 열고 나오니 이전에 알던 내 딸이 아닌 것 같다. 주장도 뚜렷해지고 취향도 확고해졌다. 요즘엔 아이가 종종 자기가 좋아하는 영화와 노래를 이야기해 주는데 솔직히 관심이 가지 않아 난감할 때가 많다.

그런 내색을 부지불식간에 내비치다 문득 풀이 죽는 아이를 보곤 뒤늦게 관심을 가져보지만 때는 이미 늦었다. 그날의 소통은 그것으로 끝. 그런데 남편에게서 나와는 좀 다른 걸 발견했다.

오다가다 듣는 딸의 이야기를 나처럼 흘려듣지 않고 그 가수의 노래를 찾아듣고선 팬이 되었다고 말하는 남편. 남편은 아이의 이야기에 열심히 맞장구를 쳐준다. 맞춰주는 게 아니라 진심으로 통하는 눈치다. 그야말로 유튜브 신조어로 딸과 '불소'(불타는 소통) 하는 아빠가 되었다고 할까. 딸과의 관계에 있어서는 늘 나보다 한 수 아래라고 생각했던 남편에게서 한 수 배운 느낌이었다.

불타는 소통을 위해, 필요한 것

집에 있어도 집에 가고 싶다는 아이, 가끔은 퇴근하는 사람들이 부럽다는 아이에게 덕질은 취향 이상의 것일 수도 있겠다 싶다. 자유롭게 자기만의 시간을 보내는 것을 무조건 쓸데없는 시간이라 치부하는 건 정서적 폭력일 수도 있지 않을까. 무엇보다 뭐든 좋아해서 열심히 찾아보는 것은 건강한 아이로 자라나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고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아이의 시간과 취향과 덕질을 존중하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일 것이다.

그러니 앞으로는 아이가 차에 타기 전에 딸아이가 너무나 좋아하는 가수의 노래를 먼저 틀어놓는 센스를 발휘해야겠다. 딸이 좋아하는 노래가 나오면 무조건 엄지척을 해주는 것도 좋은 방법이고. 내친김에 딸과의 '불소'를 위해 팬클럽에 가입해 볼까? 하는 생각....만 해본다.

무엇이 됐든 퇴근(?)도 없이 고된 일상을 보내는 딸아이에게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아주 작고 사소한 관심을 보내는 일일터. 그러고 보면, 누군가의 취향을 존중해 준다는 것은 그 사람을 긍정하는 일인 것 같다. 그리고 어쩌면 그것은 아이를 한 사람의 독립적인 인격체로 인정해 주는 일이자 든든한 응원군이 되는 일일지도 모른다.

듣기 싫어하는 잔소리는 학교와 학원의 몫이니, 나는 폭풍 잔소리 대신 폭풍 응원 모드로 전환하는 거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취향 존중일 뿐이지만, 내 딸에겐 아마도 그것이 '힘내'라는 말보다 더 기분 좋은 응원일테니.

그리고 혹시 아나... 내가 나중에 호호 할머니가 되어 딸아이가 질색하는 취미와 취향을 가졌을 때, 우리 엄마 최고라고 엄지척을 날려줄지. 오늘도 차에서 내리는 딸에게 진심으로 '네가 고른 노래 너무 좋다'라고 말하니 착하게도 내 플레이리스트에 몇 곡을 추가해 준다. 집에 가면서 들으란다. 그 마음이 고마워 나는 오래도록 딸의 뒷모습을 쳐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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