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걸 주는 사랑은 불가능"... 이 감독의 촌철살인
[인터뷰] 영화 <우리가 사랑이라고 믿는 것> 윌리엄 니콜슨 감독
▲ 윌리엄 니콜슨 감독. ⓒ 티캐스트
가족 해체 문제는 아마도 동서양을 막론하고 현대를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의 고민일 것이다. 특히나 부모의 이혼과 재혼, 상처받은 남은 가족들 이야기는 이미 많은 영화로도 끊임없이 소개되고 있다. 영화 <우리가 사랑이라고 믿는 것> 또한 한 가족의 해체와 그로 인해 고민하는 구성원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 작품이 좀 특별한 건 성인인 아들의 시점에서 부모를 바라보고 있다는 데에 있다. 시를 선별해 책을 만드는 일을 하는 그레이스, 과묵하고 신중한 성격의 역사 교사인 에드워드 사이에서 자란 제이미는 '더 이상 엄마를 사랑하지 않는 것 같다'며 별안간 이혼을 선포한 아버지 에드워드에게 충격을 받는다.
가족 해체의 이면을 바라보다
영화의 출발은 1999년 윌리엄 니콜슨 감독이 직접 쓴 희곡 <모스크바로부터의 후퇴>였다. "자전적 이야기라 영화화할 경우 내가 감독을 할 수밖에 없을 것 같았다"며 그가 운을 뗐다. 연극 무대의 제한된 공간이 아닌 영화를 찍게 되면서 감독은 자신의 실제 고향인 영국 씨포드의 작은 해안마을을 배경으로 삼았다.
"어릴 때 살던 곳이라 굉장히 잘 안다. 호프 갭(Hope Gap) 절벽의 풍광과 언덕은 이 영화의 또 다른 캐릭터라고 볼 수 있다. 영화화 과정에서 가장 중요했던 건 어머니든 아버지든 나쁜 사람은 없다는 사실이다. 영화는 부모의 입장이 아닌 아들의 관점으로 흐르는데 부모의 이혼은 아들이 성인일지라도 같은 아픔과 고통, 책임감을 느낀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영화를 통해 누군가를 악인으로 묘사하고 싶지 않았다. 정말 많은 가족의 해체 이야기가 있는데 보통은 남성을 악당으로 간주하고, 여성은 피해자로 묘사한다. 하지만 내 경우엔 남자든 여자든 이별에 대한 책임을 공유하고 있고, 두 사람 모두 큰 고통을 겪고 있었다고 말하고 싶었다.
극중 그레이스처럼 내 어머님은 실제로 시를 사랑하셨다. 긴 시도 거뜬히 외워서 낭독하는 게 일상이었다. 제가 첫사랑과 헤어지고 힘들었을 때 어머니가 사랑과 이별에 대한 시를 모아 책으로 만들어주셨다. 영화에선 그보다 한 단계 나아간 선택을 하는데 시가 그만큼 이 영화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 영화 <우리가 사랑이라고 믿는 것> 윌리엄 니콜슨 감독. ⓒ 티캐스트
실제 자신이 겪은 일을 바탕으로 했기에 인터뷰 중 윌리엄 니콜슨 감독은 "자녀 입장에서 부모님의 이별이 마치 자신의 책임도 있는 것처럼 느낄 수 있는데 절대 자녀의 탓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며 "각자의 행복은 각자 추구해야 하고, 부부가 불행할 때 이혼을 택함으로 행복할 수 있다면 그 길을 갈 수 있게 지지해줄 수 있어야 한다"고 따뜻한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그레이스를 연기한 아네트 배닝, 그리고 에드워드를 표현한 빌 나이 조합은 감독이 던진 회심의 한 수였다. 국내 관객에게도 익숙한 두 사람은 각각 미국과 영국을 대표하는 배우이고, 작품 선택 면에서도 존경받는 이들이다. 다만 아네트 배닝은 출연하기까지 고민의 시간을 좀 가졌다고 한다.
"빌 나이는 최선의 선택이었다. 영국에서 그는 억압된 남성의 전형을 잘 연기하는 배우로 알려져 있다. 어찌 보면 내 아버지를 연기한 건데 실제 아버지도 억압된 영국 남성이었다. 투자를 받기 위해서도 배우 캐스팅이 중요한데 아네트 배닝이 참여하기까지 어려움이 좀 있었다. 훌륭한 배우임은 의심할 여지가 없지만 미국인이기에 영국인 캐릭터를 연기하는 게 맞는지 스스로 많이 고민한 것 같더라. 출연을 결정하고 촬영에 들어갔을 때 그 걱정이 터무니없는 것임을 알게 됐다. 워낙 뛰어난 연기력이 있으니 캐릭터의 국적은 문제가 안되는 것이지."
일관된 메시지
앞서 말했듯 <레미제라블> <글레디에이터> <에베레스트> 등 서로 다른 장르의 블록버스터 각본을 써온 그다. 자칫 이런 휴먼 드라마, 사랑 이야기와 거리가 먼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가 써 온 작품 속 인물은 대부분 사랑을 위해 투쟁했고, 목숨을 던지곤 했다. 영화 일을 하며 일관되게 사랑을 화두로 삼고 있는 것 같다는 말에 그 또한 동의하며 말을 이었다.
"사랑을 최고 가치로 생각하고 있는 게 맞다. 좀 감성적으로 들릴지 모르겠지만 내가 내 작품 속 캐릭터를 사랑하지 않으면 스토리텔링이 불가능해지는 것 같다. 이번 영화의 경우 부모님의 결혼과 이혼으로부터 배운 걸 잘 담아내야겠다 생각했다. 제가 결혼을 거의 마흔이 됐을 때 했는데 이 결혼 생활을 끝까지 유지해야 한다는 의지가 강했다. 부모님의 전철을 밝으면 안되겠다 생각했지.
내 부모에게 배운 건 항상 배우자에게 솔직하고 진실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실 우리 부모님은 애초부터 서로에 대해 잘알지 못한 채 결혼에 이른 것 같다. 물론 그땐 순수하고 뜨거운 마음이었겠지만 서로에게 각자가 원하는 모습만 본 것 같다. 상대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기보다는 자기가 원하는 배우자상을 머리에 그리며 결혼 생활을 유지한 것 같다.
그래서 그런 불행을 막기 위해서라도 소통과 솔직함, 진실함이 중요하다. 서로에 대한 기대를 적절하게 가져야 한다. 모든 걸 다해주는 사랑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하거든. 사랑하고 있어도 때론 혼자 외로움을 느낄 수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타인의 삶이 자신의 목적이 될 수 없듯이 외로움 또한 사랑의 일부다. 솔직한 대화로 서로 생각을 공유해야 건강하게 결혼을 유지할 수 있는 것 같다. 말씀하신 대로 사랑이라는 주제는 제가 쓴 다른 작품마다 다 녹아 있는 것 같다."
▲ 영화 <우리가 사랑이라고 믿는 것> 윌리엄 니콜슨 감독. ⓒ 티캐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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