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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게-멍부... 조직궁합표를 아십니까?

재미 삼아 해본 MBTI가 내게 가르쳐준 것

등록|2022.02.28 16:09 수정|2022.02.28 16:09
"과장님은 완벽한 ESTJ예요. MBTI 해보셨죠?"

얼마 전 회사 후배에게 처음 들었던 말이다. 외계어처럼 느껴지기도 한 ESTJ는 무엇인가? 호기심에 무료 MBTI 검사를 한 뒤에 부서 단톡방에 올렸다. 반응은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다.

"저는 ESFJ예요, OO님은 ISFJ시죠?"

동료들의 MBTI 결과를 잘 맞히는 후배가 새삼 놀라웠다. 부서 팀장님도 나와 결과가 같은 ESTJ였는데 어렵고 멀게만 느껴지던 상사가 나와 공통점이 있다니 심리적 친밀감이 느껴졌다. 사실 팀장님과 대화를 하다 보면 꽤 자주 의견과 생각의 흐름이 일치해 흠칫 놀랐던 적도 있었는데 같은 ESTJ여서 그랬던 걸까?

회사 문화로 퍼진 MBTI
 

▲ 직장 동료는 하루 동안 가장 오랜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이다. ⓒ envato elements


돌이켜보면 예전에도 이런 유형별 검사가 존재했다. 싸이월드 시절 유행했던 혈액형별 유형이 그것이다. 혈액형은 A, B, O, AB 4가지 유형이었는데 MBTI는 항목별로 16가지 결과가 나오니 꽤 구체적인 결과를 기대할 수 있다.
 
MBTI 유형별 분류
1. 외향성 E / 내향성 I
2. 현실위주 S / 상상위주 N
3. 공감성 F / 논리성 T
4. 인식 P/ 사고 J

나는 몇 번을 검사해도 ESTJ가 나왔다. ESTJ는 '엄격한 관리자형'으로 구체적이고 현실적이며, 사실적이고 활동을 조직화하고 주도해 나가는 지도력이 특징이라고 한다. 일반적인 특성으로는 감정이 잘 드러나 직설적인 언어로 표현하며 솔직하고 화끈하다, 주장이 강하다 등이다.

그중 가장 마음에 와닿았던 특성은 '전철을 탈 때도 어떤 칸에 타야 갈아타기 편한지 계산한다' 였는데 결과를 읽어가며 '맞다 맞다, 이거 내 얘기다' 하며 실소를 터트렸다.

나는 굉장히 정확하고 공정한 것을 좋아한다. 모든 일을 대할 때 엄격한 기준을 들이대니 스스로가 그에 부합하고 합당하려고 나 자신을 통제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다 보니 규칙과 규율을 따르고 그것을 지키려 애쓴다. 나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은 나 자신이다 보니 스스로를 속이고 모른 척 할 수가 없다.

예를 들어, 퇴근 후 지친 몸을 이끌고 마을버스 환승을 하려고 줄을 서 있다. 계절이 덥거나 추울수록, 더 가혹한 계절일수록 짜증이 날 법도 한데 꼭 줄을 서서 차례를 기다린다.

그러다 보면 우르르 먼저 타겠다는 사람들이 새치기한다. 그것은 내가 만삭의 임산부였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럼 나는 내 차례를 기다리며 양보하다 보니 제일 꼴찌로 버스를 타게 된다.

그럼 꽉 찬 버스에서 간신히 몸을 비틀거리며 집으로 향한다. 짜증이 나기도, 줄을 서지 않는 사람들에게 화가 나기도 하지만 아주 기본적인 줄서기를 나부터라도 지켜야 하니 답답하고 고지식할지라도 늘 이렇게 꼴찌로 버스를 타게 된다.

나는 나 자신을 가장 속이기 힘든 타입이란 생각도 든다. 남들은 몰라도 나는 알고 있으니 지켜야 할 것을 지키려 한다. 학생 때는 시키는 대로 학업을 이어갔고, 회사에서도 늘 최선을 다하려고 애를 썼다. 그러다 보니 늘 칼날 끝에 서 있는 잣대로 타인을 평가하기도 한다.

SNS에서 유행하는 상사-부하 궁합표

조직 생활을 하다 보면 다양한 군상의 사람들을 경험하게 된다. 일주일의 5일 8시간 이상 함께 하는 직장동료가 가장 오랜 시간 하루를 보내는 사람들이다. 사람들이 모인 곳이어서 그랬을까? 어느샌가 소셜네트워크에는 '상사와 부하의 궁합표'가 나왔다. (물론 이 궁합표는 MBTI와 직접 관련은 없다.)
 

▲ 똑게, 멍부 등 직장인들 사이에서 핫했던 조직궁합표. ⓒ 네이버 화면 캡처


상사와 부하 직원을 '똑똑-멍청', '부지런함-게으름'으로 나뉘어 16가지 결과가 나온다. 그중 최고의 궁합은 똑똑하고 게으른 상사와 똑똑하고 부지런한 부하직원이라고 한다. 똑똑한 상사가 지시를 내리면, 똑똑하고 부지런한 부하직원이 재빠르게 상사를 대신해 업무를 실행한다고 한다.

하지만 이는 이상적인 궁합이고 현실 세계에서는 다르다. 최근 채용 시장에서 MBTI를 활용하며 특정 유형은 지원 불가하다고 해서 논란이 된 것도 이때문이다.

주로 내가 겪었던 상사들은 부하 직원들에게 너그럽고 호의적이지는 않았다. 그분들을 통해 내가 배운 것이 있다면, 상사는 부하 직원의 능력을 발현할 수 있게 이끌어 주어야 하며, 부하 직원은 상사의 내공과 경험을 존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조직궁합표를 보면서 나는 어디에 있는지 걱정과 긴장감이 몰려왔다. 나아가 타인에게 더 관대해져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자기객관화를 통해 자신의 허물을 인식하고, 나에게만 관대하고 남에게만 엄격한 기준을 내세우는 것은 아닌지 '내로남불'의 자세를 주의해야겠다고 다짐했다.

사람들은 왜 이런 것에 열광할까

이 모든 검사를 해보며 느낀 것은, 사람들의 특성과 성향을 구별하는데 붙인 테스트 이름만 바뀌었지 흡사 사주팔자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주팔자는 사람의 생년월일시를 2글자씩 8자 기둥으로 세워서 나온 글자를 해석하는 것이다. 어느 이야기엔 중국 고나라 시대에 이미 사주명리학을 보았다고 하니 어느 정도 큰 흐름이 있는 통계치의 결과라는 생각도 든다.

어떤 확률에 기대어 무언가 답을 얻고 싶은 사람들의 마음, 그러나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상에서 점점 더 깊이 생각하고 싶어하지 않는 사회를 반영하는 듯하다. 복잡하고 미묘한 인간관계를 몇 가지로 단순화하고 스테레오타입화 시켜 인스턴트처럼 빠르고 단순하게 만드는 것이 아닐까? 실제로 MBTI를 네이버에 검색하면 연관검색어로 MBTI 궁합, 서로 잘 맞는 유형 등이 나온다.

결국 우리는 모두 서로에게 기대며 살아가는 관계지향적 인간이기 때문에 단시간에 서로를 파악하려 이런 유형별 결과에 열광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서로에게 기대며 살아가는 우리는, 그 관계지향적 사회에서 외면받지 않기를, 그러면서도 나와 비슷한 무리임을 확인하며 안도하는 것은 아닐까? 혹은 일종의 지피지기 백전백승이거나.

물론 특정 프레임에 갇혀서 사람을 규정지을 수는 없을 것이다. 지구에 사는 고유 한 명 한 명마다 제각기 다른 성격과 고민을 가지고 있으니 말이다. 우리의 사는 모습은 각양각색으로 인생을 살아가는 모습은 다르지만 결국 같은 방향으로 수렴할 것이다.

무수히 많은 무지갯빛 스펙트럼 중 나만의 고유색깔을 찾아가는 과정, 그 과정에 사주 궁합이, 때론 별자리가, 때론 혈액형이, 지금은 MBTI 검사가 궤적을 이어온 것일 뿐. 내 인생은 내가 선택하고 결정하고 책임을 다하며 사는 것. 그것이 우리의 사명일 것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운명과 숙명으로 서로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 우리는 서로가 서로에게 기대어 살아갈 것이다. 재미로 시작된 MBTI 검사는 문득 내 주변의 다른 이를 곱고 애정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게 해주었다. 역지사지를 통한 자아 성찰의 시간, MBTI 검사가 나에게 남겨준 것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개인 브런치와 블로그에 게재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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