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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품 끊은 지 8년, 피부가 다시 태어났다

맨 얼굴이 주는 자유, 자연과 더 가까워진 나의 삶

등록|2022.02.28 08:58 수정|2022.02.28 08:58
얼굴에 아무것도 바르지 않은 지 어느덧 8년째 들어간다. 아무것도 바르지 않는다는 것은 글자 그대로 맨 얼굴로 산다는 뜻이다. 화장은 물론 하지 않고, 흔한 로션이나 아이크림도 바르지 않고, 여름에도 선크림조차 바르지 않는다.

물론 나이가 있으니 주름이야 당연히 있지만, 육십을 바라보는 나이에 생얼로 어디든 다닐 수 있고, 민망하지만 피부 좋다는 말을 자주 듣는 것을 볼 때, 나의 이 맨얼굴 프로젝트는 성공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나는, 늘 비가 와도 공기는 건조한 밴쿠버 지역에 살고 있다. 덕분에 집안에서 뭐 말리는 것은 그다지 어렵지 않은 일이지만, 주변에 들어보면 건조한 피부 때문에 괴롭다는 말을 종종 듣는다. 그러고는 나에게 무슨 화장품을 쓰느냐고 묻는 사람들이 많다.

나도 한때는 맨 얼굴로 슈퍼마켓 가기도 꺼려했다. 20대부터 풀코스를 모두 발라야 했고, 간혹 한 가지라도 떨어져서 건너뛰면 얼굴이 심하게 당겨서 피곤을 느낄 만큼 건조한 피부였다.

그리고 또 하나의 문제는 바로 피부염이었다. 고등학교 때까지는 참으로 깨끗했던 얼굴 피부가 오히려 대학교 가면서 여드름이 생기기 시작했던 것이다.

돌이켜보면, 교복세대였던 우리가 화장품을 처음 접한 것은 수능 이후였다. 여러 화장품 회사에서 앞다투어 학교를 방문하여 홍보하였기 때문이다. 예쁜 언니들이 와서 시범을 보이면 촌스럽던 우리 얼굴이 피어나는 것처럼 보였다.

소녀에서 여자가 되는 신세계를 경험하기 위하여 바르기 시작한 스킨, 밀크로션, 아스트린젠트, 아이크림, 영양크림 풀코스, 이런 것들이 주범일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그 향기롭고 예쁜 병 안에, 나를 힘들게 할 것이 있으리라고는 생각할 수 없었다.

내 얼굴 피부염은 대학 졸업 후에 더욱 심해져서 나는 결국 유명하다는 피부과를 찾았다. 한 달 다니니 신기하게도 완전히 깨끗해졌다. 그러나 문제는 그 이후, 그 피부과 약을 끊을 수 없었고, 결국은 그것을 계속 바르고 거기서 관리를 해는데도 피부는 더욱 더 나빠져만 갔다. 모공이 넓어지는 약을 바르게 하고 억지로 계속 여드름을 짜내면서 피부는 얇아지고 예민해져 갔던 것이다.

거울을 보면 눈물이 났다. 보기 흉해서 뿐만 아니라, 더덕더덕 난 여드름이 아프기까지 했기 때문이다. 그러던 중 또 다른 희한한 피부과를 새로이 소개받게 되었다.

동대문 뒷골목 어느 후미진 곳에 위치한 작은 피부과의원의 할아버지 선생님은 다행히 여드름을 억지로 짜거나 하지 않았다. 그저 돋보기로 얼굴을 들여다본 후, 모공을 줄여야 한다며 별말씀 없이 무슨 약을 주셨는데, 정말 작은 양이었다. 그것을 손바닥에 두 방울 덜어 바르면서 피부는 깨끗해져 갔다. 그 약을 참 오래 발랐던 것 같다.

그렇게 해서 내 피부에서 고질적으로 붙어있던 여드름은 사라졌지만, 내 피부는 갈수록 예민해졌다. 화장품 회사들은 같은 제품을 꾸준히 출시하지 않는다. 나에게 맞는 것을 사용하다 보면 어느샌가 절판이 되고, 나는 울며 겨자 먹기로 새로운 시리즈를 선택해야 했는데, 그것이 정말 큰 모험이었다.

내 피부는 하염없이 예민해져 갔다. 아무리 순한 화장품을 써도 염증은 계속 발생했다. 그렇게 완전히 지친 어느 날 나는 아주 새로운 책을 발견했다. 우츠기 박사의 <화장품이 피부를 망친다>라는 책이었다(지금 찾아보니 절판되었다).

피부과 의사인 저자는 환자들을 위한 화장품을 개발하다가 깨달음이 왔다고 했다. 얼굴에 밀어 넣는 그 좋은 성분들은 일시적으로 들어갈 뿐, 진짜로 흡수되어 피부의 일부가 될 수 없으며, 그런 것들로 인해서 세포들이 오히려 힘들어지고 피부 조직이 망가진다는 사실을 발견했다고 주장했다.

건강한 피부는 매끄러운 물광 피부가 아니라, 보송보송한 아기 피부이며, 만져보면 의외로 거친 느낌이 나는 게 정상이라고 했다.

각질이 건강하게 붙어있어야, 그 자체로 훌륭한 보습막을 해줘서 진피를 촉촉하게 유지하게 해 주기 때문에 잔주름도 덜 생길 수밖에 없고, 그래서 예쁜 피부로 보인다는 것이다. 매끄러운 피부처럼 보이기 위해서 각질을 열심히 제거한다면 피부는 건조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굉장히 그럴듯하게 들렸기 때문에 고민을 접고 실천을 해보기로 했다. 그때가 2014년 이 시작되는 참이었다. 새해 결심처럼 나는 1월 초부터 화장품을 일체 끊었다. 정말 그냥 딱 끊었다.
 

▲ 부드러운 크림 ⓒ Pexel


모든 화장품을 끊었다

세수는 물 세안을 했고, 얼굴에는 시어버터(shea butter)를 아주 조금 손에 묻혀서 손을 비빈 다음에 얼굴에 살짝 눌러주는 정도만 했다. 보습을 하기 위함이 아니라, 피부에서 수분이 빠져나가는 것을 살짝 막아주는 역할이었다.

이렇게 하자 물론 피부는 극심하게 당겼지만, 어느 정도 지나면 괜찮아진다는 말을 믿어 보기로 하였다. 신기하게도 일주일 정도 지나자 당김이 느껴지지 않기 시작했다.

그리고 뭔가 하얀 피지 같은 것들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당황스러웠지만 그게 일반적인 수순이라고 읽었기 때문에 그냥 두고 기다렸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니 피지는 저절로 떨어져서 없어졌다! 하도 오래되어서 기억이 희미하지만 대략 2주일에서 한 달 사이었던 것 같다.

처음에는 예민하게 거울을 매일 들여다보고 변화를 찾아보곤 했지만 어느 순간 모든 것을 놓아버리고 잊어버리고 살았더니 그냥 아주 편안한 피부가 되었다.

당시에는 과연 이 생활을 얼마나 할 수 있을까 했는데, 8년 차가 되었다니 나도 놀랍다. 한 일 년쯤 지났을 때부터는 더 이상 피부에 신경을 쓰지 않게 되었고, 완전히 적응을 했다. 선크림을 바르지 않아도 기미는 오히려 줄었다.

세안은 물로만 한다. 화장하는 사람들은 저녁에 자기 전에 "씻기 싫다!" 이런 생각 많이 하는데, 이제는 그냥 화장실 간 김에 씻으면 순식간에 끝나기 때문에 귀찮음을 느낄 일이 없다.

그리고 피곤해도 화장이 안 먹는다고 불평할 일이 없다. 분위기를 약간 내려면 눈가에 섀도 약간, 입술에 립스틱 약간 발라주는 것이 전부인데, 다들 분 바른 줄 안다. 피부염과는 완전히 작별했다. 가장 좋은 것은 코 옆 피지가 완전히 사라진 것이다. 코팩이라든가, 코 피지 제거는 이제 생각할 필요도 없다.

아침에 나갈 때의 얼굴이나 저녁때 들어올 때의 얼굴이나 똑같다. 무너진 화장발 같은 것도 전혀 없다. 악건성에 시달리던 시절은 사라졌고, 무슨 클렌징 제품을 써야 할지 고민하던 시절도 끝났다. 여행할 때에도 화장품을 작은 병에 옮겨 담느라 애쓰지 않아도 되고, 가방도 가볍다.

나는 이렇게 화장품으로부터 독립을 하였고, 더이상 그립지 않다. 그리고 나는 이렇게 자연에 한 걸음 더 가깝게 된 것이다.
덧붙이는 글 같은 내용이 기자의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https://brunch.co.kr/@lachouet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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