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의 일방적 침공인데... 이재명의 상황 판단 문제점
[주장] 개전 이전 러시아 요구만 봐도... 전쟁은 나토 가입과는 무관하다
▲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 후보가 26일 오후 경기도 고양시 일산문화공원에서 열린 '고양의 수도권 서북부 경제 중심지 도약을 위해!' 집중 유세에서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 국회사진취재단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가 지난 25일 TV토론에서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을 폄하했다는 지적에 대해 그 다음날인 26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본의와 다르게 일부라도 우크라이나 국민 여러분께 오해를 드렸다면 제 표현력이 부족했던 것"이라고 해명했다.
이 후보는 "TV토론 전문을 봤다면, 제가 해당 발언 직후에 러시아의 침공을 분명하게 비판했고, 우크라이나 대통령을 폄하한 것이 아니라 윤석열 후보의 불안한 외교·안보관을 지적한 것임을 누구나 알 수 있다"며 폄하 지적에 대해 반박했다. 그런 뒤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를 향해 "우크라이나 사태를 자신의 선제타격론과 핵무기 공유론을 정당화하고, 저와 문재인 대통령을 비난하는 기회로 삼고 있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재명 후보의 25일 TV토론 발언 전문을 보더라도 그의 발언이 문제가 없다고 할 수 있을지는 의문점이 생긴다. 다음은 이 후보의 관련 발언 전문이다.
"'전쟁은 정치인들이 결정을 하고 전쟁에서 죽는 것은 젊은이다'라는 이야기가 있다. 우크라이나에서 똑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다. 6개월 초보 정치인이 대통령이 되어서 나토가 가입을 해주지 않으려고 하는데 가입을 공언하고 러시아를 자극하는 바람에 충돌했다. 물론 러시아가 주권과 영토를 침범한 행위는 강력하게 규탄을 해야 한다. 그러나 외교의 실패가 곧 전쟁을 불러온다는 아주 극명한 사례이고 전쟁이 경제에 악영향을 미치는지는 말할 필요가 없다."
위 발언에서 이 후보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원인으로 '6개월의 초보 정치인인 젤렌스키가 대통령이 돼 나토 가입을 추진해 러시아를 자극했기 때문'이라고 짚고 있다. 그러나 이는 정확한 진단이 아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원인은 단순히 나토 가입 때문이라고 보기 힘든, 복잡하고 오래된 연원을 지니고 있다. 단순히 개전 이전 러시아 측의 요구만 살펴봐도 나토 가입이 원인이 아님은 명백해 보인다.
▲ 푸틴 러시아 대통령(자료사진). 사진은 2021년 8월 23일 모스크바 외곽 패리어트 공원에서 열린 국제군사포럼 'Army-2021' 개막식 연설 중인 모습. ⓒ AFP=연합뉴스
지난해 12월 15일, 러시아 외무부는 미국과 나토 측에 안전보장안을 전달했다. 러시아는 안전보장안에서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 금지 ▲우크라이나, 동유럽, 카프카스, 중앙아시아에서의 나토군 활동 중단과 중·단거리 미사일 배치 금지 ▲1997년 5월 이후 나토에 가입한 국가는 무기 및 병력 배치 시 러시아의 승인을 얻을 것 등을 요구했다. 특히 마지막 요구의 경우 헝가리와 폴란드, 발트 3국을 포함한 동유럽의 모든 나토 회원국이 포함되는 요구로 사실상 동유럽의 나토군을 무력화하겠다는 뜻이다.
러시아는 안전보장안에 대해 "이런 요구는 유럽의 긴장 완화와 우크라이나 사태를 해결하기 위한 필수요건"이라며 "우리의 요구를 나토가 거부할 경우 군사적 충돌이 일어날 수 있다"고 엄포를 놨다. 하지만 사실상 동유럽 나토군 무력화를 뜻하는 러시아의 요구를 나토나 미국이 받을 가능성은 지극히 낮다.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 금지 역시 주권국가의 결정을 미국이나 나토 등 타국이 함부로 막을 순 없다. 우크라이나의 국가주권을 완전히 무시하는 처사이기 때문이다.
또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개전 직전인 지난 22일 ▲크림반도에 대한 러시아의 주권 인정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 포기 및 중립지대화 ▲우크라이나의 부분적 비무장화 등 최후통첩성 요구를 제시했다. 하지만 타국이 주권국가의 국방을 결정하는 것은 결코 받아들일 수 없는 사안임을 감안하면 푸틴의 이 같은 요구는 사실상 어떻게든 침공을 하고야 말겠다는 선언이나 다름없다.
국가간 전쟁 책임은 전쟁을 시작한 국가에 있다는 상식
▲ 우크라이나 군인들이 26일 오전(현지시각) 우크라이나 수도 키예프에서 러시아 공격대와 교전 후 불발탄을 찾고 수거하고 있다. ⓒ AFP=연합뉴스
이처럼 개전 이전까지 서방과 우크라이나에 대한 러시아의 요구를 살펴보면, 애당초 동유럽에서 나토군을 무력화하고 우크라이나를 국방력이 없는 중립국으로 만들겠다는 의도를 보여왔다. 이런 상황에서 우크라이나가 나토 가입을 추진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러시아의 침공을 막을 수 있을 것으로 판단하긴 어렵다.
설령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전적으로 나토 가입 추진이라는 단일한 원인때문이라고 가정하더라도, 이재명 후보의 발언은 개전의 책임이 피해 당사국에게 있다는 뜻으로 읽힐 수 있다. 그러나 국가간 전쟁은 전적으로 전쟁을 시작한 국가에 모든 책임이 있다.
26일 이재명 후보는 "자유와 평화를 사랑하고, 자신들의 고유한 역사와 문화와 전통을 지켜 나가려는 우크라이나 국민과 정부의 입장과 노력을 전폭 지지한다"면서 "국가의 주권, 독립과 영토보전은 존중돼야 한다. 유엔 헌장과 국제법이 보장하는 것입니다. 러시아의 침략 행동은 결코 정당화될 수 없다. (중략) 러시아가 군대를 즉각 철수할 것을 촉구한다"고 언급했다.
그러나 공공연히 TV토론장에서 나온 발언의 맥락은 '우크라이나가 나토 가입 추진으로 러시아를 자극하는 바람에 전쟁이 일어났다'는 것이다. 지금이라도 이 후보는 자신의 발언이 잘못임을 인정하고 우크라이나 국민에게 '사과'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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