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시민은 기자다

사업주도 노동자도 아니다? 백화점의 이상한 노동환경

[성평등노동 없는 대선, 여성노동자가 말한다③] 백화점 매니저의 안쓰러운 현실

등록|2022.03.03 20:39 수정|2022.03.03 20:40
2022년, 20대 대선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노동자, 시민들은 자본의 이익이 중심인 사회가 아니라, 상호 돌봄하며 모두가 존엄하게 살아갈 수 있는 사회를 소망하고 있지만, 현재 대선 국면에서는 상호 돌봄은 커녕 또 다시 성장 중심, 자본 중심의 경제를 구축하겠다는 공약들만 난무한다. <BR> <BR>노동자도, 여성도 보이지 않는 대선을 앞두고 여성노동자회는 기획기사 <성평등노동 없는 대선, 여성노동자가 말한다>를 통해 여성노동자들의 목소리를 담았다. 7회의 기획 연재 기사를 통해 여성노동자들이 처한 현실을 알리고, 이들에게 진정 필요한 대선 의제란 무엇인지 이야기하고자 한다.[기자말]
'노동자'하면 떠오르는 것이 있는가?

화이트칼라, 블루칼라, 골드칼라 등... 머릿속에 그려지는 이미지는 그러한 색채의 대비일까? 이같이 알록달록 화려한 이면 아래, 사업자 등록증을 쥔 채 특수고용직과 사업주 마인드를 강요 받고 노동자로서 그 어떤 권리도 누리지 못하는 특수고용 노동자가 있다. 이 글에선 백화점과 대리점의 중간관리 매니저로 20년 이상 일한 노동자의 일상을 마주 보고자 한다.

지난 2월 23일 인터뷰에 응한 B씨는 노동자라 하면 전태일 열사, 근로기준법, 4대 보험, 퇴직금, 연차가 생각난다고 말했다. 하지만 백화점의 중간관리 매니저는 사업자등록증을 내고 장사를 하기 때문에, 앞서 열거 한 노동자의 기본권 중 단 하나도 적용받지 못하니 노동자가 아니라고 했다.

매출, 실적의 압박 속에서 일하는 '백화점 매니저'
 

▲ 백화점에서 일하는 B씨는 특수고용노동자로 일하고 있지만, 노동자로서의 기본권에서 고 있다. 못하고 매출과 실적의 압박에 시달리고 있다. (사진무관) ⓒ 픽사베이

 
B씨에 따르면, 백화점 매니저가 되려면 먼저 최소 한 분야에서 5년 이상의 경력을 채워야 하고 채용될 시 본사에 보증금 약 1000~2000만 원을 낸 뒤 일정 퍼센트의 상품 판매 수수료를 받아 직원의 월급을 지급하면서 매장을 꾸려나간다. 하지만 매니저라고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본사뿐만 아니라 백화점 소속 직원의 통제를 받으며, 매장 매출에 대한 보이지 않는 압력을 받기도 한다.

백화점 관리자는 매장을 순회하면서 직원들이 고객을 응대하는 것을 멀리서 지켜보거나 불량한 근무태도 등을 지적하고 시정을 요구한다. 또한 매니저들의 고충을 듣는다는 얄팍한 명분 아래 저조한 매출에 관한 화두를 꺼내며 은근히 매출 압박을 가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출이 좋지 않으면, 매장은 안 좋은 자리로 밀려나다가 끝내는 철수하는 경우가 잦다.

백화점의 압박도 압박이지만, 본사는 매출에 따라 등급제로 운영하기 때문에 등급이 낮아지면 본사에서 상품을 적게 받게 되고 또 그로 인해 매출이 줄어드는 악순환이 이어진다. 경영 악화 시 매니저가 교체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출 신장이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 매장은 철수하게 된다.

이 때문에 매니저는 항상 매출을 올려야 한다는 압박에 시달리게 된다. 따라서 자체적으로 행사를 진행하고, 이를 준비하기 위해 늦게까지 근무를 하는 등 업무 피로도가 높아지기 일쑤다. 매출과 직결된 이벤트성 행사를 대비하기 위해 시간제 노동자를 채용할 수밖에 없는 환경에 봉착하게 되는데, 만약 시간제 노동자를 채용할 여력이 되지 않는 경우에는 가족을 동원하는 경우도 발생한다. 매장과 행사장은 점심시간이나 휴식시간 등을 이유로 비워둘 수 없다. 이런 이유로 최소 2명은 상주해야 하니, 통상 매니저 포함 2~3명이 일할 수밖에 없다.

사업주이면서 노동자? 특수고용노동자에게 떠넘기기

매장 운영 시 매출이 잘 안 나오면 직원의 퇴직금, 4대 보험, 주휴수당, 휴가, 유니폼 지급 등 모든 항목이 부담스럽게 다가온다. 특히 매출을 올리기 위해 행사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장시간 노동으로 인한 직원들의 불만을 인지해도, 연장수당은 지급하지 못하고 회식으로 마음을 달래줄 뿐이다. 이런 부분에선 사업주의 면모가 드러날 수밖에 없다.

상품 판매 수수료에는 직원 고용 등 매장의 기본 운영에 필요한 비용이 포함돼 있어 오래 일한 직원에게는 퇴직금을 지급해야 하지만, 정작 매니저 본인은 장기 근속해도  본사에서 퇴직금을 받을 수 없다. 이처럼 백화점 매니저는 사업자 등록증을 가지고 있는 사업주라 하기에도 모호하고 특수고용 노동자라고 하기에도 애매한 위치에 놓여있다.

그렇다면 대리점의 중간관리 매니저직과 백화점 매니저를 견주면 어떠할까? 주 업무에선 큰 차이가 없다. 아침에 입고 상품을 수령하여 검수한 뒤, 매장 청소 및 진열을 마치고 고객을 응대하는 것이다. 더불어 창고 정리와 재고 관리, 행사를 도맡아 한다. 하루 온종일 서있기 때문에 직업병인 하지정맥류가 따라오는 것은 덤이다.

아무리 의자가 주어지고 편의를 봐준다고 해도 고객을 응대하려 서 있는 시간도 상당하고, 상품 정리 시 커다란 박스를 지고 옮기고 하는 육체노동은 임산부에겐 자칫 위험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결혼과 출산을 이유로 퇴사하고, 아이가 어느 정도 자라면 다시 노동 시장에 재진입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 백화점 매니저와 대리점의 중간관리 매니저의 주 업무는 다르지 않지만 백화점에서 일하는 노동자는 '사업자등록증'을 내고 일하기 때문에 노동자로서의 권리는 보장받지 못한다. (사진무관) ⓒ 한국여성노동자회

 
세월이 지남에 따라 근무환경에도 다소 변화가 생겼는데, 이는 최소한의 것도 지켜지지 않은 매장에 취업하려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라고. 백화점과 대리점도 4대 보험이 적용되고 근로계약서를 작성하며, 주휴수당을 지급하지 않으면 운영에 어려움을 겪기 때문에 대부분 잘 지켜지고 있다.

B씨에 다르면 대리점의 문제는 정확한 휴식시간과 휴식공간의 구분이 없다는 것이다. 식사 도중에도 고객이 오면 응대해야 한다. 점심시간이 1시간이고, 4시간마다 30~40분 휴식시간을 가질 수 있으며 작지만 직원 휴게공간도 마련되어 있는 백화점의 상황과는 대비되는 지점이다.

특수고용노동자의 노동권이 '보편'이 된다는 것은

대리점의 실질적 운영은 대리점주가 하고 매니저와 직원들은 점주에게 급여를 받기 때문에 점주(사장)가 CCTV로 매장 근무자들의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보더라도 어쩔 도리가 없어 항의조차 못한다.

B씨가 현재 근무하고 있는 대리점은 최저임금을 위반을 피하기 위해서 임금 인상이 아닌 영업시간 단축을 택했다. 이 때문에 오전 10시~오후 10시 근무를 하던 그는 오전 10시 30분~오후 9시로 근무시간이 줄었다. 하지만 근무시간 조정 등에도 임금은 변동이 없어 최저 임금 인상에 따른 체감도가 없다. 또한 재량으로 주어지던 월 1회 유급 휴가마저도 무급으로 바뀌어 마음대로 사용하지 못한다. 이에 영향을 받아, 2022 여성노동자회가 제안하는 대선 의제 정책 대안 중 '사각지대 없는 일터'와 '5인 미만 사업장 노동법 적용'이 크게 와닿았다고 한다.

30대에 백화점 매장 직원으로 시작해 경력을 쌓아 매니저라는 직책까지 오르는 등 20년 동안 서비스업에 종사하면서도 당사자가 자신을 노동자가 아니라고 생각했던 게 가장 큰 문제로 여겨진다. 하지만 이렇게 되기까지 분명 구조적인 문제가 있다. 고객을 상대하는 서비스업이 특수고용형태의 노동자로 분리되면서, 노동자이면서도 노동자의 권리를 전혀 누리지 못하고 살아온 것이다. 장시간 노동하지 않고 유급 연차 휴가를 보장하여 눈치 보지 않고 사용할 수 있게끔 변화하길 바란다는, 소박한 바람을 들어줄 수 있는 사회가 되었으면 한다.
덧붙이는 글 글쓴이는 전북여성노동자회 활동가입니다.
원문 기사 보기

주요기사

오마이뉴스를 다양한 채널로 만나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