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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고한 '유리천장' 목격한 90년대생 여성의 선택

[성평등노동 없는 대선, 여성노동자가 말한다⑥] 성차별 없는 사회에서 살고 싶습니다

등록|2022.03.07 16:56 수정|2022.03.07 16:56
2022년, 20대 대선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노동자, 시민들은 자본의 이익이 중심인 사회가 아니라, 상호 돌봄하며 모두가 존엄하게 살아갈 수 있는 사회를 소망하고 있지만, 현재 대선 국면에서는 상호 돌봄은 커녕 또 다시 성장 중심, 자본 중심의 경제를 구축하겠다는 공약들만 난무한다. <BR> <BR>노동자도, 여성도 보이지 않는 대선을 앞두고 여성노동자회는 기획기사 <성평등노동 없는 대선, 여성노동자가 말한다>를 통해 여성노동자들의 목소리를 담았다. 7회의 기획 연재 기사를 통해 여성노동자들이 처한 현실을 알리고, 이들에게 진정 필요한 대선 의제란 무엇인지 이야기하고자 한다.[편집자말]
하반기 공채에서 결국 또 다시 탈락의 고배를 마셨다. 본격적으로 취업 준비를 시작한 지 1년이 넘어가면서 슬슬 조급해지기 시작했다. 친구들과 모이면 코로나19 시국을 탓하며 위로를 나누면서도 속으로는 나의 능력 부족을 탓하며 괴로워했다.

기업은 구직자에게 이력서, 자기소개서, 공인영어점수, 각종 자격증명 등 다양한 응시요건을 제시하고 자료제출을 요구하지만, 막상 채용과정이 끝나면 합격 여부만 알려줄 뿐이다. '불합격의 이유'를 모르다 보니 다음 시즌을 기다리면서 어떻게 취업 준비를 해야 할지 막막함이 앞섰다.

출구 없는 캄캄한 터널 속에 갇힌 기분으로 버틴 하반기 공채 시즌이 끝나고, 주위를 둘러보니 '90년대생' 또래이자 '여자'인 친구들 대다수는 나와 같은 상황에 처해 있었다. 누구는 면접에서 '결혼과 출산 계획'을 질문 받았다고 했고, 누구는 '여자인데 1박2일 출장이 가능한지'를 질문 받았다고 했다. 또 다시 가슴이 막혀왔다.

잘못된 건 성차별적인 한국사회, 나를 그만 탓하기로

코로나19가 장기화되며 채용 자체가 활발하게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상황을 탓하며 손 놓고 있을 수 없었다. 평소와 다를 바 없이 스터디카페에서 자기소개서를 쓰던 중, 문득 전부터 관심이 가던 스웨덴이 떠올랐다. 다양하게 검색을 하다 보니 스웨덴과 우리나라가 워킹홀리데이 협정이 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정보 검색에 몰입해 '한국에서 쌓은 경력으로 스웨덴에 취업한 한국여성들의 사례'를 찾기 시작했다.

사실 이전부터 국내뿐 아니라 해외취업에도 관심이 많았고, 직장을 선택할 때 워라밸이 중요한 요소 중 하나였다. 스웨덴은 소위 워라밸이 좋은 나라로 유명하고, 특히 남녀 평등의식이 높은 편에 속한다고 익히 들어온 터라 이 나라에서 일한다면 행복하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강해졌다.
   

▲ 2018년 금융권 채용성차별 사건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에 참여한 참가자가 "유리천장이 눈으로 드러나는 분노스런 사건 기가막힌다! 똑바로 하세요!"라는 문구가 담긴 피켓을 들고있다. 4년이 흐른 오늘날에도 여성노동자들은 채용성차별을 시작으로 입사 후 성별분리배치, 업무배제, 승진차별 등의 구조적 성차별을 맞닥뜨린다. ⓒ 한국여성노동자회

   
나는 대학 때부터 취업에 도움이 될까 싶어 제법 규모가 큰 회사에서 수차례 인턴으로 일한 경력이 있었다. 하지만 인턴으로 일하던 컨설팅펌에서 내가 보고 겪은 바는 대체로 실망과 씁쓸함을 안겨주었다. 회사에서 높은 직급은 모두 남자가 차지하고 있는, 아주 견고한 유리천장을 목격했다. 유리천장을 깨고 높은 직급에 위치한 여성이 단 2명이라는 걸 알게 되었을 때 나는 직감했다. '아 한국에서는 내가 원하는 만큼 오래 일하는 것이 어렵겠구나.' 이는 스웨덴행을 결심하게 된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해외로 눈을 돌리자 막상 떠나기로 결심하기까지는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아마도 취업 준비 기간 동안 애써 억눌러 왔던 것들이 폭발한 것 같다. 누적해서 경험한 성차별적 채용관행과 유리천장을, 이제 더는 견디지 않겠다고 비장한 결심이라도 한 것처럼 곧바로 스웨덴 워킹홀리데이 비자를 신청했다. 물론 이 결정 과정에서 대한민국 90년대 여성이 곧 마주하게 될 결혼이라는 숙제에 대해 주변에서 많은 우려와 걱정을 들었지만, 우선 내 생각과 결심대로 실행에 옮겼다. 그래야만 살 것 같았다.

모든 게 급박하게 진행되는 중이었지만, 다행히 스웨덴 출국 직전 스웨덴 내 스타트업 인턴에 합격하게 되었고, 14시간 비행기를 타고 날아가 2021년 10월, 나는 아무 연고도 없는 낯선 스톡홀름 땅을 혼자 밟게 되었다. 그렇게 90년대생 대한민국 취업준비생이던 여성은 북유럽 국가 스웨덴에서 새로운 시작을 감행했다.

한국에서 살아온 90년대생 여성이 감각한 성평등한 사회

스웨덴에 도착한 첫날, 신기하고 놀라운 광경을 직접 보았다. TV에서나 보았던, 라떼파파(커피를 손에 들고 유모차를 끌고 다니는 육아에 적극적인 아빠를 의미하는 말로 남녀 공동 육아 문화가 자리 잡은 스웨덴에서 유래)들이 유모차들을 끌고 다니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상이었다. 쇼핑몰의 키즈존, 도서관 키즈존 등 아이들과 함께하는 공간 어디에서든 평일과 주말 가리지 않고 아기들과 시간을 보내는 아빠들을(심지어 엄마는 없이) 쉽게 볼 수 있었다. 풍문으로 듣는 것과 직접 목격하는 것은 확실히 달랐다.

세계 최저 출산율을 기록 중인 나라에서 온 나에게는 '그림같'고 신선했다. 여성직원들이 출산휴가를 다녀온 후에 그 어떤 걱정도 없이 당연히 회사에 복귀하고, '남편도 반드시 육아휴직을 사용'하는 일터에 나도 일원이 된 것이다. 허울뿐인 제도가 아니라 제대로 작동하는 시스템을 보고 있자니 한국의 현실이 절로 떠올랐다. 우리나라도 최근 남자들이 육아휴직을 사용하는 경우가 있다지만, 주변의 이야기를 직접 들어보면 속내는 편치 않았다. 회사의 눈치는 물론, 동료들의 눈치까지 봐야 해서 실제로 육아휴직을 쓰기가 어려운 현실이라고 들었다. 스웨덴처럼 '남성도 무조건 육아휴직을 써야' 하는 환경이라면 우리나라도 달라질 수 있을까?

스웨덴은 말로만 듣던 워라밸(Working and life balance)이 현실로 이루어지는 곳이다. 대부분의 사람이 오후 5시경 퇴근해 주로 가족과 시간을 보낸다. 나는 많은 동료들이 회사의 눈치를 보지 않고 아이의 유치원 하원시간에 맞춰 4시 반~5시경에 퇴근하는 광경이 굉장히 놀라웠다. 이곳은 근무시간에 본인의 일만 집중해서 잘 끝낸다면 일찍 퇴근하는 것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리고 스웨덴은 성중립화장실(한 화장실에 세면대, 용변기가 설치되어 모든 성의 사람들이 사용할 수 있는 화장실)을 쓴다. 내가 일하는 회사의 화장실도 내외부에 성별이 적혀 있거나 그림으로 표시하고 있지 않다. 또한, 어느 직종이든 여성의 고용비율 50% 이상을 지켜야 하며, 성별임금격차 역시 한국과는 비교할 수 없다. 성평등의식이 높고, 이것이 국가의 여러 제도와 인프라에 반영되어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들이다.

스웨덴에 온 지 몇 개월 되지 않아 아직 경험치가 짧은 내가 무조건적으로 스웨덴의 문화와 제도, 정책, 근무환경이 옳다고 말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 다만 한국의 성차별적인 구조에 지치고 좌절해 한국을 떠난 90년대 여성노동자가 경험 중인 스웨덴은 적어도 여성들이 일하기에, 여성들이 살아가기에, 조금 더 편하고 안전한 환경을 제공해 주는 국가라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다. 내가 태어나고 자란 국가가 보장해주지 않는 안전망을 지구 반대편에서 경험하고 있다.
     

▲ <2022 페미니스트 주권자행동: 차별과 혐오, 증오선동의 정치를 부수자> 집회에 참여한 한 참가자가 '그 많은 여학생들은 다 어디로 갔나! 채용성차별, 유리천장, 성별임금격차 다 부수자! 우리의 노동이 보편이 될 때 까지'라는 내용의 피켓을 만들어 한국사회의 구조적 성차별을 짚어냈다. ⓒ 한국여성노동자회

   
모든 여성들이 성평등한 사회를 누리길 바라는 마음으로

스웨덴에서 다양한 사람들과 만나고 지내면서 크게 깨달은 것이 한 가지 있다. 90년대생 한국 여성들이 전 세계 어느 나라에서든 인정받을 만큼 다재다능하고 생존력이 강한 멋진 사람이라는 것이다. 90년대생 한국여성은(여성으로 국한하고 싶지는 않지만 내가 속했던 집단이기에 이렇게 지칭하겠다) 누구보다 간절하게 자신의 커리어를 쌓고 계속해서 일하고 싶어 하며, 기회가 주어지면 그 기회를 적극 활용해 성장할 수 있는 잠재력을 가졌다.

나는 스웨덴에 온 뒤 이곳에서 만난 한국여성들과 소통하며 이 생각을 자주한다. 각자의 상황과 이유로 한국을 떠나온 그들. 때로는 파도처럼 밀려드는 어려움에 휩쓸리다가도 꿋꿋이 다시 일어서며, 제 시야가 좁다면 그 시야를 넓히기 위한 발돋움을 멈추지 않는 그런 멋진 여성들을 이곳에서 종종 만난다. 그럴 때면 나와 함께 공부하고 취업준비를 하던, 능력 있고 넘치게 노력하지만 성차별적 구조 앞에 수없이 좌절하던 90년대생 여성노동자, 그녀들이 떠오른다.

타국에서의 인턴십 4개월차, 나는 마케팅 인턴에서 주니어로 나아갈 준비를 하며 유럽 기업에 취업하고자 꾸준히 인터뷰에 임하고 있다. 해외에서의 구직 역시 쉽지 않지만, 여성들이 조금 더 눈을 넓혀서 여성들이 주체적으로 일할 수 있는 환경을 겪어보고, 새로운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았으면 한다.

한국이 그런 환경을 만들어주지 못한다면, 밖으로 눈을 돌려볼 필요도 있다는 것이다. 꼭 스웨덴이 아니더라도, 여성에게 결혼과 출산, 육아를 책임지우고 강요하는 환경이 아니라면 어디든 좋겠다. 모든 여성들은 자신이 원하는 곳에서 일을 하고, 평등하게, 존중받으며 자신의 삶을 꾸릴 권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나의 도전은 계속될 것이다. 그리고 내가 태어난 국가가 미래에는 더 나은 제도와 인식을 갖추기를, 한걸음씩이라도 개선되길 바란다.
 
기사 후일담

이 글은 2021년 여성노동자회가 진행한 '90년대생 여성노동자 실태조사'에 참여한 96년생 여성노동자가 쓴 글이다. 여성노동자회가 구글폼으로 조사 참여자를 모집한다고 했을 때, 기획단의 예상을 뒤엎어버리는 수준으로 청년여성의 참여신청이 쏟아졌다. 신청의 이유를 적어달라는 항목을 빼곡하게 채운 수많은 청년여성들, 면접조사 전 신청 이유만 읽어도 그 사람의 노동이력과 삶의 히스토리가 파악이 되는 경우가 다수였을 만큼 90년대생 여성노동자는 할 말이 많은 상태로 아우성치고 있었다.

Hannah도 그 중 한 사람이었다. Hannah와 서울여성노동자회의 인터뷰가 진행된 것은 7월 말이었는데, 인턴으로 일하고 있었으며 정규직 채용을 확답 받았다고 했다. 하지만 Hannah는 연말쯤 스웨덴으로 떠날 결심을 굳히고 있었다. 그토록 바라던 정규직 채용을 목전에 두고도 이런 결정을 내린 이유는 한국사회의 구조적 차별과 성차별적 조직문화 때문이었다. 노력한 만큼 성장할 수 없는 사회, 계속 일하기 어려운 사회, 단지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그 부당함을 감내해야 하는 사회라고 판단한 것이다. 이렇게 우리는 또 한 명의 청년여성을 잃었다. 앞으로 더 많은 Hannah를 떠나보내야 할 수도 있다.

Hannah로부터 온 기고글을 열어 보고, 정확한 이해를 위해 소통하는 동안 분한 마음을 참을 수 없었다. Hannah가 글을 쓰며 가장 고민한 부분은 혹시라도 자신의 글에 성차별적인 발언이 섞여 있거나, 청년여성이 느낀 절망과 존중받는 노동과 삶을 위해 내린 결단이 혹여 '나라 탓을 하며 떠난 나약한 청년여성'으로 읽히지 않을까 조심스러웠다고 했다. 우리 사회가 청년여성들을 얼마나 배제하는지, 성차별적으로 대우하고 있는지 느껴지지 않는가? 존엄하고 주체적인 삶을 위해 노력하는 청년여성에게 매사 자기검열을 하도록 만드는 사회가, 정말 '정상'인지 되묻고 싶다.
덧붙이는 글 글쓴이는 2021년 여성노동자회에서 진행한 '90년대생 여성노동자 실태조사'에 참여한 96년생 여성노동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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