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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정의당 때문이야!" 대선 후폭풍 우리집 강타하다

정의당원 아내-민주당 지지자 남편 이야기... "당선 안 됐으면 뭐가 문제였는지 생각해야지"

등록|2022.03.17 20:58 수정|2022.03.17 20:58

▲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10일 새벽 서울 영등포구 당사에서 대선 패배를 선언한 뒤 인사하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이게 다 정의당 때문이야!"

대선이 끝난 다음날 아침 남편이 내게 말했다. 남편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당선되기를 바랐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나는 이재명 후보가 좋아서가 아니라,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가 대통령이 되는 게 싫었다. 민주당을 지지하지 않는 사람들은 아마 나 같은 입장이 많았을 것이다. 그러나 결과는 둘 다의 바람대로 되지 않았다. 매우 근소한 차이로 윤석열 후보가 당선인이 됐다.

남편은 낙담한 기색이 역력했다. 나도 그랬다. 하지만, 나의 낙담과 남편의 낙담은 깊이가 달랐다. 남편은 예전부터 민주당 지지자였다. 나는 정의당의 당원이다. 낙담의 깊이가 같을 수 없다. 나는 정의당의 당원이기에 양심에 비춰 봐도 우리 당 후보에게 표를 주는 것이 맞다. 하지만, 이번 선거는 좌로 보나 우로 보나 최악의 선거였다. 정권의 재창출이냐, 정권의 교체냐의 문제가 아니다. 윤석열이라는 사람이 대통령이 돼서는 안 되는 이유가 차고 넘쳤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가장 대표적인 것은 여성가족부(여가부)를 폐지하겠다는 그의 공약이다.

여가부는 2001년 여성부라는 이름으로 여성 정책을 기획하고 종합하는 기구로 만들었다. 가정 폭력·성폭력을 방지하고 여성의 지위 향상에 관한 사무를 관장하는 기관이었다가 2005년 6월 22일 여성가족부로 개편됐다. 여가부가 20년이 넘도록 유지해 온 이유는 여가부의 역할이 단순히 여성정책에만 치중한 사업을 하는 곳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여가부를 폐지하겠다는 윤석열의 공약을, 나는 납득하기 어려웠고 용납이 안 됐다. 안 그래도 남성 여성 갈라치기 논쟁으로 서로 으르렁거리고 있는데, 여가부를 폐지한다는 말은 대안이 되지 않을 뿐더러 갈등의 골만 깊게 할 뿐이다. 그밖에도 리더로서의 자질이 검증되지 않아 대통령감으로는 부족하다는 게 내 생각이다.

윤석열의 당선만큼은 막고 싶었다 

나는 어떻게든 윤석열의 당선을 막고 싶었다. 그의 낙선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하겠다는 마음을 먹기도 했다. 선거일이 다가올수록 고민이 깊어졌다. 내가 속한 당 후보에게 표를 주느냐, 싫어하는 사람의 당선을 막기 위해 다른 당 후보에게 표를 주느냐의 갈림길에 섰다.

이번 고민은 강도가 셌다. 내 인생에서 이렇게 심각하게 오랫동안 고민을 한 적은 없다. 평소의 나는 꽤 즉흥적으로 사는 사람이다. 만약에 후자를 택한다면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당원들 보기 창피해서 얼굴을 들지 못할 것 같았다.

투표장에 가는 날까지 고민은 거듭됐다. 기표소에 들어가기 전까지도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기표소에 들어서자 더 이상 망설일 수가 없었다. 이번에는 '차악'을 선택했다. 사실 윤석열 후보가 당선돼 활개치는 모습은 상상하기도 싫었다. 눈 앞이 캄캄하고 머리가 아찔했다.

투표 시간이 끝나고 출구조사 결과가 발표됐다. 매우 근소한 차이로 윤석열 후보가 당선된다는 결과다. 좌절했다. 남편에게는 이재명 후보에게 표를 줬다고 말하진 않았다. 남편은 내가 투표장에 가는 것을 보고서도 이번 한 번만 민주당에 표를 주면 안 되겠냐고 하지 않았다. 정말 간절했다면 말이라도 한번 꺼냈을 텐데 말이다.

어쩌면 본인이 말하지 않아도 내가 이재명에게 표를 줄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일까. 아니면 상대방의 소중한 투표권에 이래라 저래라 하는 것은 '예의'가 아니라는 걸 알기 때문일까. 그것도 아니면, 나의 고집은 아무도 꺾지 못한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이라서였을까.

최종 개표 결과, 0.73%p차이로 윤석열이 당선했다(대선 결과 정의당 심상정 후보의 득표율은 2.37%, 그외 윤석열 48.56% 이재명 47.83% 등이었음- 편집자 주). 한숨이 나왔다. 윤석열의 당선을 막기 위해 우리 당의 많은 당원들이 피눈물을 흘리며 이재명에게 표를 주었다는 이야기도 들렸다. 그럼에도 이재명은 낙선했다.
 

▲ 윤석열 제20대 대통령 당선인이 10일 새벽 서울 여의도 국회도서관에 마련된 개표상황실을 찾아 당지도부와 환호하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낙선에는 많은 이유가 있겠지만, 지난 5년간 민주당이 보여준 행보의 결과라고 본다. 부동산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고,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은 구멍이 난 채로 통과시켰다. 연동형 비례대표제도를 만들었지만 보수당과 똑같이 위성정당을 창당해 국민의 신뢰를 잃었다. 이렇게 하고도 사과를 하기는커녕 '우리가 무엇을 그렇게 잘못했느냐'는 오만함을 보인 적도 있었다. 배신감을 느낀 국민은 표를 주지 않는 것으로 답을 한 것이다. 이재명의 '정치교체'라는 프레임은 이미 등 돌린 국민의 마음을 바꾸지 못했다.

워낙 박빙의 접전이라 개표는 새벽에 끝났다. 아침에 남편이 내뱉은 말에 나는 몹시 기분이 상해 있었다. 내심 바라던 결과가 나오지 않은 것도 화가 나는데 남편의 '정의당 때문'이라는 소리를 듣자, 부아가 치밀었다. 출근 후 자투리 시간을 내 카톡을 보냈다.

"사실은 나도 이재명에게 표를 줬어. 그 말을 하지 않은 건, 쪽팔려서였어. 당신도 알다시피 나는 정의당 당원이잖아. 당원이 다른 당 후보에게 표를 준다는 건 말이 안 되는 일이잖아. 나 같은 당원들이 피눈물을 흘리면서 이재명에게 표를 줬어. 그런데도 이재명이 졌어. 그게 왜 정의당 때문이야? 정의당이 준 표 때문에 초박빙 선거가 됐어. 민주당은 고마워해야 해. 그리고 당선이 안 됐으면 왜 안 됐는지, 문제가 뭐였는지를 생각해 봐야지. 남탓은 그만하고."

허탈하고 답답한 심정으로 하루를 보냈다. 남편은 끝내 답장을 하지 않았다. 배꼽시계는 나의 허탈한 심정은 알 리가 없다는 듯 요동을 쳤다. 집으로 가는 버스에 올라탔다. 몇 정거장이 지나자 익숙한 '카톡' 알림 소리가 났다.

"나는 박정희 시대에서 20대를 보냈어. 그 시절을 겪으면서 치열하게 운동하고 사회를 바꾸려고 했어. 그 시절을 보낸 사람들은 그 시간이 얼마나 혹독했는지를 알기 때문에 보수당이 만든 사람은 안 된다고 보는 거야. 그래서 이번 선거에서 더욱 간절히 이재명이 당선되기를 바랐어. 전체 지형을 보고 전략적인 행동을 하는 진보정당이었으면 해. 당신이 준 표는 고맙게 생각해. 아침에 화내서 미안해."

부글부글 끓던 마음이 조금 가라앉았다. 좀처럼 사과를 할 것 같지 않던 남편에게 사과를 받으니 기분이 한결 나아졌다. 뭔가를 잘못한 후, 사과를 한다는 것은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다. 그걸 알기에 남편의 사과가 고마웠다.

남편에게 원망 섞인 말을 들었던 날, 나는 남편과 있었던 일을 페이스북에 썼더랬다.

"우리 집은 선거때만 되면 갈등이 증폭한다. 지지하는 당이 다르고, 지지하는 후보가 다르기 때문이다. 한 집에서 언제까지 이러고 살아야 하나. (중략) 이재명이 패배한 게 왜 정의당 때문인가. 그동안 참고 살았지만 더 이상은 못 참겠다."

분노가 쌓이면 털어놓는 게 나의 스타일이다. 그날 퇴근길에 남편의 사과를 받았겠다, 저녁도 든든히 먹었겠다, 대통령 선거는 내 뜻대로 안 됐으니 일찍 자야겠다 싶었다. 다음날 아침, 남편은 인상을 쓰면서 또 볼멘소리를 했다.

"집에서 있었던 일을 페북에 올려서 방방곡곡 소문을 내는구나!"
덧붙이는 글 이 글은 필자의 브런치에도 싣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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