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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세 대학생이 1800만 원으로 방 3개 아파트 산 비결

[이봉렬 in 싱가포르] 이렇게만 하면 신혼 살림을 내 집에서 시작할 수 있다

등록|2022.03.23 05:49 수정|2022.03.23 05:49

▲ 싱가포르의 흔한 공공아파트 (HDB) 단지. 싱가포르 국민의 86%는 이런 아파트에서 살고 있습니다. ⓒ 이봉렬


스물 셋 먹은 대학생인 제 딸 예림이가 싱가포르에서 아파트 분양을 받았습니다. 도심과 가까운 지하철역 근처에 있고, 방도 세 개나 되는 제법 큰 아파트입니다. 40층이 넘는 고층 아파트라 공사 기간이 5년 정도라고 하니까 예림이가 스물여덟 살이 되면 입주를 할 겁니다. 지금 하고 있는 공부를 마친 후 사귀고 있는 남자 친구와 함께 살 신혼집으로 딱 좋습니다.

여기까지 읽은 분들은 몇 가지 의문을 가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스물세 살 미혼 여성에게도 아파트 청약 자격을 주는지, 청약을 위해 청약통장 같은 기본적인 조건은 없는지, 싱가포르는 물가 비싸기로 유명한 곳인데 돈도 안 버는 학생이 아파트 값은 어떻게 부담하는지 같은 것 말입니다.

23세가 방 3개 아파트 분양 받은 비결

하나씩 답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우선 싱가포르 국민의 86%는 HDB라고 부르는 공공아파트에 살고 있습니다. 나머지는 콘도라고 부르는 고급 민간아파트와 단독주택입니다. 도시국가인 싱가포르에서는 HDB가 가장 일반적인 주거 형태이고, 예림이가 분양 받은 아파트도 HDB입니다.
 

▲ 이번에 분양 받은 HDB의 모형도입니다. 공공아파트지만 건물 높이도 점점 높아지고 또 고급스러워지고 있습니다. ⓒ 싱가포르 주택개발청


HDB는 땅은 국가 소유이고 집만 개인이 임대 형식으로 분양 받는 형태인데 "토지임대부 아파트"라고 합니다. 임대 기간인 99년 안에는 사유재산이기 때문에 필요할 때 사고 팔 수 있습니다. 국유지 비율이 80%가 넘는 싱가포르이기에 가능한 방식입니다.

땅이 국가 소유이기 때문에 집값을 많이 낮출 수가 있습니다. 게다가 분양할 때는 정부가 각종 보조금을 더해 주기 때문에 시세에 비해 훨씬 낮은 가격으로 살 수 있습니다. 모든 도시계획이 이 HDB를 중심으로 이뤄지기 때문에 교통시설이나 교육환경, 쇼핑 및 편의시설도 민간아파트에 비해 훨씬 좋습니다.

물론 이 좋은 HDB를 분양 받으려면 자격조건이 있습니다. 스물한 살 이상의 싱가포르 국민으로 가족 구성이 최소 2명이어야 합니다. 독신으로 분양을 받으려면 서른다섯 살 이상이 되어야 가능합니다. 부부 합산 소득 월 1만 4천 달러 (약 1200만 원) 이하여야 하고 싱가포르에도 해외에도 다른 집이 있으면 안 됩니다. 청약통장 같은 건 필요가 없습니다. 한마디로 싱가포르 성인으로서 집이 필요한 무주택 서민 가족은 모두 신청이 가능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여기서 잠깐, 예림이는 아직 학생으로 결혼도 안 했는데 어떻게 분양 받을 수 있었을까요? 서류상으로 결혼을 하지 않은 남녀도 입주 시점까지 결혼을 하겠다는 서류만 작성하면 청약자격이 됩니다. 결혼과 동시에 내 집에서 신혼살림을 시작할 수 있도록 제도가 마련되어 있는 겁니다.

자격 요건은 그렇다고 해도 돈이 없는 학생이 어떻게 집값을 감당할 수 있느냐 하는 의문이 남습니다. 이건 그냥 예림이의 경우를 예로 들어 설명하겠습니다.

1인 1800만 원, 이조차도 부담된다면

이번에 분양 받은 아파트의 가격은 대략 50만 달러(약 4억 5천만 원)입니다. 여기서 최소 10%에서 최대 25%만 분양 계약할 때 내고 나머지는 대출을 받아서 매월 갚아 나갈 수 있습니다. 10%라고 하면 5만 달러(약 4500만 원)입니다. 물론 이것도 학생 신분에 비춰 많습니다. 방법이 있습니다. HDB를 처음 분양 받는 20대에 한해서 계약금의 절반을 입주할 때 낼 수 있습니다.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HDB를 살 때 최소 인원이 두 명입니다. 즉 예림이는 남자 친구와 반씩 부담을 하면 됩니다. 여기에 별도로 취득세 3%가 더해지면 결과적으로 예림이가 준비해야 할 금액은 대략 2만 달러 (약 1800만 원)입니다.

이 금액이 부담스러운 경우에는 또 다른 방법이 있습니다. CPF라고 부르는 싱가포르의 국민연금이 있습니다. 개인과 기업이 합해서 월급의 최대 37%까지 의무적으로 납입하게 되어 있어서 일정 기간 일을 하게 되면 제법 큰 금액을 모을 수 있습니다. 이걸 HDB 계약금으로 낼 수가 있습니다. HDB를 팔게 되면 CPF에서 빼 쓴 금액을 다시 반환하는 조건입니다.

예림이의 경우에도 인턴이나 아르바이트를 하는 동안 CPF를 넣었는데 이걸 계약금으로 쓸 수 있는 겁니다. 여기에 개인의 소득 수준에 따라서 최대 8만 달러(약 5600만 원) 보조금을 받을 수 있습니다. 예림이는 고정 소득이 없으니 보조금도 최대로 받을 수 있을 겁니다. 이 모든 제도를 적절히 활용하면 당장 목돈이 필요하지 않은 것입니다.
  

▲ 싱가포르의 공공아파트 (HDB) 공사 현장 ⓒ 이봉렬


분양가도 저렴하고 구매 조건도 이렇게 좋으니 경쟁률이 높습니다. 다만 집 없는 서민의 주거안정이 주목적이다 보니 입주 후 5년 동안은 집을 팔 수 없습니다(도심 지역의 경우는 그 기간이 10년입니다). 어쩔 수 없이 팔게 되면 분양 주체인 주택개발위원회가 시세가 아닌 분양가 수준으로 매입을 합니다. 그 기간 동안 임대도 내놓을 수 없습니다. 들어 가 살 집이 필요한 사람만 분양 받으라는 게 확고한 방침입니다.

입주 후 5년이 지나서 집을 팔 때도 조건이 있습니다. HDB 구매 자격을 갖춘 사람, 즉 싱가포르 국민(영주권자 포함) 중 무주택 서민에게만 판매가 가능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HDB, 즉 전체 집의 86%가 이런 원칙 아래서 거래가 되기 때문에 싱가포르의 아파트는 투자 수단이기보단 실제로 거주하는 곳이라는 인식이 더 강합니다. 그래서 싱가포르의 자가보유율은 90% 수준으로 한국의 60%에 비해 월등히 높습니다.

국유지를 활용한 저렴한 분양가, 집 없는 서민계층에 대한 우대, 소득에 따라 차별화된 보조금, 주택 구입 시 CPF같은 연금 활용 가능 등이 스물세 살 먹은 대학생이 부모의 도움 없이 세계에서 가장 물가가 비싸다는 싱가포르에서 아파트를 분양 받을 수 있는 이유입니다.

한국과 비교해 보니

한국의 스물 셋 청년이 서울 용산 정도에 방 세 개 있는 주공아파트 하나를 분양 받으려면 돈이 얼마나 필요할까요? 그 돈을 학교 다니면서 과외와 아르바이트만으로 모을 수 있을까요? 아니 그 전에 청약을 위한 자격은 되는 걸까요?

작은 도시국가 싱가포르 하고 한국을 단순 비교할 순 없을 겁니다. 그래도 서민들의 주거안정을 위한 다양한 노력 중에 배울 만한 게 없지는 않을 겁니다. 주거 안정을 위해 누구를 대상으로 어떤 식으로 보조를 하는지만 참고해도 청년들의 내 집 마련에 대한 꿈을 조금은 앞당길 수 있을 겁니다. 스물 셋 예림이의 내 집 마련 사례가 한국에서도 흔하게 있는 일이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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