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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인데 엄마한테 전화 거는 딸, 그 이유가

코로나19가 가족의 대화 방식도 바꿔놓았습니다

등록|2022.03.21 16:11 수정|2022.03.21 16:11
갑자기 고객사 이슈로 아내와 미리부터 잡아놓은 저녁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몇 주 전부터 장모님이 건강 검진을 받기 위해 올라오신다는 얘길 들었고, 그날은 처남, 처제와 밖에서 저녁을 먹기로 했다.

하지만 그날 아침에 발생한 갑작스러운 고객사 이슈로 난 급하게 지방으로 출장을 갈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KTX 같이 교통편이 잘 되어 있다고 해도 당일치기로 퇴근 시간 전까지 지방을 다녀오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최대한 미팅을 일찍 잡아 끝내고 오려고 했지만 좋은 일로 가는 자리가 아니었기 때문에 미팅 시작 시간이며, 끝나는 시간이 내가 원하는 대로 되지 않았다. 결국 난 저녁 자리를 함께 할 수 없었고, 느지막이 장모님이 묵는 호텔로 인사만 드리고 집으로 복귀하는 게 최선이었다.

문제는 다음 날도 대구 출장이 잡혀있었다는 것. 대구 출장에서는 대구 사무실 직원들과 저녁 식사자리까지 이어졌기 때문에 결국 이틀 연속 야근을 하는 모양새가 되었다. 무리한 일정을 소화했더니, 집안 분위기가 냉랭해졌다. 다행히 아내와 나 모두 긴 냉전을 즐기지 않는 탓에 만 하루가 지나고 나서야 조금은 그 분위기가 누그러졌다.
 

코로나 검사 결과코로나 음성 검사결과 ⓒ pixabay (상업적 무료 사용 가능)


"지수가 학교에 갔다 와서 목이 많이 아프다고 해서요. 급하게 병원 신속항원 검사 보냈어요."
"그래요? 열도 나요?"
"학교에서 열도 났었나 봐요. 암튼 검사받고 오면 다시 연락할게요."
"알겠어요. 일찍 갈게요."


퇴근 무렵 아내에게서 딸아이의 검사 결과가 음성이라고 카톡이 왔다. 우선은 다행이었지만 PCR도 아니고 신속항원 검사에서는 정확도가 조금은 떨어진다고 하니 증세가 없어지기 전까지 딸아이는 자가격리라는 얘길 전해 들었다.

우리 집에서 코로나 검사를 가장 열심히 받는 사람은 딸아이다. 직장을 다니며 매일 밖 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고객사로 외근을 다니는 나보다 학교를 다니는 딸아이가 더 전적이 많다.

그래 봤자 이번 신속항원 검사까지 해서 네다섯 번이 전부지만 한 번도 받지 않은 아내에 비하면 높은 수치다. 밀접 접촉자로 검사를 받기도 했지만 주로 인후통이나 감기 증상으로 받았던 적이 더 많다. 하지만 오늘까지 포함해서 검사 결과는 늘 음성이었다.

퇴근 후 집에 갔더니 예상했던 풍경이었다. 딸아이는 당연히 자신의 방 문을 꼭 닫고 있었고, 큰 아이도 덩달아 자신의 방에 머물고 있었다. 아내는 주방에서 마스크를 쓰고 한 참 저녁 준비 중이었다.

결과야 어찌 되었든 증세가 있는 상태에서는 함께 같은 공간을 쓸 수 없다는 아내의 원칙에 따라 딸아이의 동선은 제한적이었다. 딸아이가 이동 가능한 동선은 안방내에 있는 화장실뿐이었다. 거실로는 출입이 제한되었고, 모든 식음료는 방 안에서 전화를 통해 아내에게 요청하면 주는 식이었다. 아내가 식사, 음료를 딸아이 방 문 앞에 두고서 전화로 알려줬다.

네 명의 식구가 함께 살고 있는 공간에서 최대한 주의하며 생활했다. 모여서 생활하는 게 익숙했던 우리에게도 좀처럼 익숙하지 않은 생활 패턴이었다. 늦은 밤 아내의 전화벨이 울렸다. 화면에 뜬 발신인은 딸아이였다.

"엄마, 나 코도 맹맹한데."
"알았어. 자기 전에 인후통 약하고 같이 약 놓아둘 테니 챙겨 먹어. 물은 있니?"


평소 같으면 늦은 저녁 시간에 전화벨이 울릴 리 없었지만 딸아이의 자발적 격리 덕에 그 이후로도 아내의 전화기는 늦은 시간까지 열심히 울려댔다. 딸아이의 자발적 격리는 그러고도 하루가 더 이어졌다. 결국 금요일 저녁까지 증세가 호전되지 않는 듯싶어 아내는 내게 특명을 내렸다. 토요일 아침 병원에 가서 신속 항원검사를 다시 해보라고.

토요일 아침, 주말 아르바이트로 아내는 출근을 했고, 아내의 특명대로 딸아이 방 앞에서 딸아이를 깨웠다.

"지수야, 일어나. 아침 일찍 먹고 병원 가서 신속 항원 검사받고 와."
"아빠... 찮아..."
"딸, 잘 안 들려. 전화해"


잠시 뒤 전화가 울렸고, 전화기 밖으로 딸아이는 지금 자신의 몸 상태를 전했다.

"아빠, 나 이제 괜찮아. 목도 전혀 안 아프고, 코도 안 막히고."

딸아이의 한 마디로 난 딸의 방문을 열었고, 조금 예민하게 굴던 아들도 함께 아침 밥상에 앉아서는 더 이상 잔소리를 하지 않았다. 그렇게 우리 네 식구는 다시 완전체가 되었고, 당장 오늘 저녁부터 함께 식탁에 앉을 수 있게 됐다.

며칠 전 조카를 포함한 동생네 세 식구 모두 코로나에 감염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지금은 다들 괜찮다고는 했지만 조카도 그렇고 매제도 많이 고생했다는 얘길 들었다.

어느덧 코로나 누적 확진자수가 900만 명을 훌쩍 넘어섰다. 이 수치만 봐도 아직까지 우리 네 식구는 감염되었던 적이 없지만 언제고 올 수 있고, 감염이 되어도 전혀 이상할 것 없다. 그래도 만일 우리 가족에게도 코로나가 온다면 가급적 최대한 덜 아프게 금세 넘어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정점이 멀지 않았다고는 하지만, 하루 신규 확진자 수치만 보면 아직도 적응이 되지 않는다. 코로나를 일상으로 받아들이고는 있지만 긴 병에 효자 없다는 말처럼 긴 판데믹에 몸도, 마음도 이젠 모두 지친 듯싶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오히려 너무 익숙해져서 신규 확진자 숫자에 그다지 놀라지 않는 눈치다.

새로운 거리두기도 반발은 있지만 지금의 내겐 크게 와닿지 않는다. 빨리 3년 전 봄과 같이 마스크를 벗고 봄맞이를 하는 날이 왔으면 하는 마음뿐이다. 일상으로 회복하는 날이 오길, 봄이 오는 길목에서 간절히 빌어본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제 개인 브런치에도 연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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