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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은 떠나는 이주열 총재 "금리인상 안하면 훗날 큰 비용 치를 것"

최장수 '한은맨' 이주열, 8년 임기 마침표... "단 한 번도 쉬운 결정 없었다"

등록|2022.03.23 16:39 수정|2022.03.23 17:27

▲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23일 오후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열린 송별 기자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 한국은행


박근혜·문재인 정부에 걸쳐 국내 통화 정책 방향의 '키맨' 역할을 했던 이주열 총재가 한국은행을 떠난다. 지난 2014년 4월 처음 취임한지 8년 만이다.

이 총재의 이름 옆엔 자주 '최초'라는 꼬리표가 따라다녔다. 그는 정권이 바뀐 뒤에도 연임된 최초의 총재였다. 또 한국의 국제결제은행(BIS) 가입 이후 처음으로 선임된 BIS 이사이기도 하다. 그런가 하면 지난 43년 간 한은에 몸 담아 최장수 근무 기록까지 세웠다.

그런 그가 23일 오후 열린 송별 기자간담회에서 남긴 마지막 말은 "중앙은행의 존립 기반은 어디까지나 국민들 신뢰"라는 말이다. 이 총재는 "국민의 신뢰라는 건 일관성 있고 예측 가능한 통화정책을 통해서 얻을 수 있다"며 "통화정책은 태생적으로 앞을 내다보면서 움직여야 하기 때문에 쉽지 않았지만 적시에 올바른 결정을 내리기 위해 늘 고민했고 최선을 다했다는 점은 알아주셨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통화정책 결정, 쉬웠던 적 단 한 번도 없었다"
 

▲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23일 오후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열린 송별 기자간담회에서 감사패를 받고 있다. ⓒ 한국은행


이 총재는 8년 동안 주재한 76번의 금융통화위원회(금통위) 통화정책방향 결정 회의를 회고하면서 "쉽게 이뤄진 결정은 단 한 번도 없었다"고 말했다.

이 총재는 가장 기억에 남는 사건 중 하나로 '코로나19에 따른 위기'를 꼽았다. 그는 "코로나19 사태가 처음 터졌을 때 경제부총리와 금융위원장, 관계기관장 등과 긴박하게 협의하고 토론했던 일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며 "고심의 산물로 전례 없는 정책 수단을 동원했고 다행히 그 효과가 나타나 금융시장 불안이 빠르게 진정되고 경제 회복이 가시화됐다"고 평가했다. 이어 "그때부터 다음 고민이 시작됐다. 전례없는 '초완화' 정책을 언제 정상으로 되돌리냐는 것"이었다고 덧붙였다.

이 총재는 재임 기간 기준금리를 9번 내리고 5번 올렸다. 취임 당시 2.50%였던 기준금리는 취임 후 사상 최저치인 0.50%까지 떨어졌다가 최근 다시 1.25%까지 회복됐다. 그의 재임 기간만 놓고 보면, 금리 인하 기간이 더 길었던 셈이다. 이와 관련해 이 총재는 "통화정책의 기본은 경기 흐름이나 변동, 물가와 금융 불균형 등 다양한 사항을 고려하면서 금융 불균형을 줄여나가는 것"이라며 "재임 동안 저금리 기간이 길었던 건 그만큼 경제 상황이 어려웠다는 방증"이라고 해석했다.

한편 그는 앞으로 커지는 불확실성으로 정책 수행의 어려움이 가중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 총재는 "경제환경 변화의 속도가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른 가운데 세계 경제가 더욱 복잡하게 얽히고 설켜 그야말로 불확실성이 상시화되는 세상이 되어 버렸다"고 분석했다.

이 총재는 앞으로도 통화 완화의 축소가 필요하다며 금리인상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최근의 높은 물가 오름세가 상당 기간 이어질 것으로 전망되고 금융 불균형 위험을 줄여나갈 필요성이 여전히 크다는 점에서, 통화정책의 완화 정도를 계속 줄여 나가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특히 미 연준이 빠른 속도의 금리인상을 예고했다"며 "우리는 지난 8월 이후 선제적으로 (금리를 인상해) 대응함해 잠시 금리정책 운용의 여유를 갖게 된 점은 다행이지만 앞으로의 상황은 녹록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또 "금리인상이 경제주체들에게는 금융 비용 부담으로 이어져 인기 없는 정책이지만, 자칫 타이밍을 놓치면 국가 경제는 훗날 더 큰 비용을 치러야 한다는 게 과거 정책운용 경험으로부터 우리가 얻은 교훈"이라고 덧붙였다.

"금리인상, 당장 인기 없지만 안 하면 훗날 더 큰 비용 치러야"

한편 이 총재는 이날 그의 뒤를 이을 한은 총재로 지목된 이창용 국제통화기금(IMF) 아시아·태평양담당 국장에 대해선 말을 아꼈다. 그는 "(이 후보는) 학식이라면 학식, 정책 운용 경험이라면 경험, 국제 네트워크까지 여러 면에서 출중한 분이라고 생각한다"며 "따로 조언드릴 건 없다"고 말했다.

이날 오전 문재인 대통령으로부터 한은 총재직 지명을 받은 이 후보는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와 금융위 부위원장, 아시아개발은행 수석 이코노미스트 등을 두루 거친 경제금융 전문가다. 이로써 당초 우려됐던 한은 총재 장기 공백 사태는 벌어지지 않게 됐다.

하지만 이 총재가 퇴임하는 이달 31일부로 당장 이 후보가 취임하기란 현실적으로 어렵다. 전례를 살펴보면, 청문회 통과까지 짧게 잡아도 보름이 걸리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이 후보가 다음 달 14일로 예정된 금융위 통화정책방향 결정 회의에도 참석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예측도 나온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세계 경제가 위태롭고, 미국이 본격 금리 인상을 시작하는 등 중요한 시점에 총재의 부재는 국내 경제엔 불안 요소다.

이와 관련해 이 총재는 "전례를 살펴보면 (이 후보가) 다음 금통위까진 취임이 가능할 수 있다"며 "부득이 하게 공백이 발생한다고 해도 금통위는 합의제 의결 기관이다. 총재가 없다고 통화 정책은 차질 없이 수행될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최근 윤석열 당선인 중심의 새 정부가 꾸려지면 한은으로서도 더이상 긴축 기조를 이어가기 어려워지는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정부가 대출 규제를 풀어주는 등 완화적 재정정책을 꾸려나갈 경우, 한은의 긴축적 통화정책과 엇박자가 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이 총재는 "거시경제 여건을 보면 당분간은 지금까지 이어져온 정책이 유효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그는 "통화정책과 정부 재정정책 간 조합은 정책을 결정할 당시의 금융 경제 상황에 달렸다"며 "지난 코로나19 위기에 따라 경기 회복을 위해 통화, 재정정책 모두 확장적 운용을 했지만 최근엔 경기가 회복세인 데다 물가 상승의 압력이 날로 높아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떠나는 자리에서 덕담만 나누기엔 우리 경제가 헤쳐나가야 할 어려움이 너무 큰 것이 사실이다. 이를 뒤로 한 채 떠나게 되어 마음이 편치만은 않다"면서도 "후임 총재와 한국은행 임직원들이 이러한 어려운 경제상황에 슬기롭게 대응해 나가리라 믿는다"고 말을 맺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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