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자꾸 "더 읽자"던 책, 이유가 있었네요
어린이에게 사랑받는 어른이 되고 싶게 만드는 책, '악당의 무게'
▲ 책 <악당의 무게> ⓒ 휴먼어린이
5, 6학년 추천 동화 목록을 훑어보며 끌리는 제목의 책을 골랐다. <악당의 무게>라. 제목만 보고도 여러 생각이 들었다. 악당이 누구일까. 악당의 무게라는 건 정말 몸무게를 말하는 건 아니겠지. 호기심이 일었지만 먼저 읽지 않았다. 여태껏 경험으로 보자면 나도 처음 책을 접할 때 아이에게 더 재미있게 책을 읽어줄 수 있다.
"자, 오늘 읽어 줄 책은 악당의 무게야."
"악당? 악당은 표지의 늑대를 말하는 건가?"
"늑대? 개 아니니? 사실 엄마도 잘 몰라. 같이 읽어보자."
사라진 개의 정체를 아는 한 사람
처음부터 이야기에 확 몰입되는 사건이 발생한다. 주인공인 5학년 안수용의 집 근처에서 부동산 황 사장이 한밤중에 개에게 물려 병원에 실려 간다. 마을 사람들과 아이들은 모이기만 하면 사건에 대해 떠들어댄다. 개는 종적을 감췄고 경찰들은 개를 찾아 안락사시키려 한다.
수용이는 사건의 개가 자신이 몰래 간식을 주던 악당(수용이가 이름을 지어주었다)이라는 걸 알자 가슴이 쿵 내려앉는다. 요구르트 색에 진돗개처럼 생기고 크기는 진돗개보다 조금 큰, 옆구리에 빨간 스프레이 자국이 있는 개. 수용이의 악당이 분명하다.
하지만 수용이 아는 악당은 사람에게 다가오지 않고 항상 2미터 정도의 거리를 두며 경계한다. 사람이 먼저 공격하지 않았다면 절대 다가가지 않았을 것이다. 이상하다는 생각에 수용과 친구 한주는 자신들만의 수사를 시작한다.
참고로 말하자면, 이 책은 잠자리에서 읽기에는 적절하지 않다. 책을 읽어줄수록 아이의 눈은 또랑또랑해지고 자신도 수용과 함께 수사하는 친구가 된 듯 앞서서 흥분한다. 매일 한 꼭지씩만 읽자고 약속했지만 한 꼭지를 다 읽고 나면 어김없이 "아이, 조금만 더"라고 말한다. 고학년 동화라 글 양도 많은 편인데.
책을 두 번째 읽어준 다음 날 아침. 아이를 깨우려고 아이 방에 들어가니 침대에 엎드려 <악당의 무게>를 읽고 있다. 난 아이가 스스로 책을 읽는 게 좋으면서도 겉으로는 짐짓 그렇지 않은 듯 말했다.
"어머, 배신자! 엄마랑 같이 읽어야지."
아이는 배시시 웃으면 책을 덮는다. 무방비 상태의 나에게 스포일러를 한다.
"엄마, 황 사장이 먼저 악당을 괴롭힌 거였어. 그리고 그 사실을 경찰도 알고 있었어. 황 사장이 잘 못 한 걸 알면서도 악당을 잡아 죽이려고 하는 건 너무하지 않아?"
아이는 뒷이야기가 궁금하다면서 다시 책을 펼친다. 눈물이 그렁그렁해진다. 금세 책을 다 읽었는지 책을 탁 덮더니 말한다.
"뒷부분은 엄마가 직접 읽어 봐. 정말 재미있어."
아이는 '재미있다'라는 말이 깔깔 웃음이 난다는 뜻이 아니라 스토리에 몰입된다는 뜻으로 쓰인다는 걸 어떻게 알았을까. 눈물이 글썽거리는 걸 보면 웃긴 이야기 같진 않은데 말이다. 어쨌든 재미있단 아이의 말에 책을 받아 바로 읽기 시작했다.
예상과 다른 결말이다. 책장을 앞으로 몇 장 넘겨 결말 부분을 찬찬히 읽는다. 작가의 말 중에 있던 이 세상에는 사람 말고도 수많은 생명이 있고 우리는 그 많은 생명과 더불어 살아가고 있다는 문장이 마음에 남는다.
책을 한 번 더 읽자, 처음 볼 때와는 다른 부분이 눈에 들어왔다. 수용이가 들개인 악당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모든 장면에서 도움을 주는 어른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수용이가 악당을 어떻게 구할지 고민하는 그 모든 순간, 어른은 배제된다.
학원에 연거푸 빠지고 집에 늦는 수용이에게 엄마, 아빠는 어떤 일이 있냐고 추궁하고 소리를 지른다. 그 모습과 내 모습이 겹쳐 보인다. 내가 만약 수용이 엄마라면 수용이가 솔직하게 말했을 때 그 말을 진지하게 들어줬을까. 함께 악당을 만나러 수용이와 함께 산에 가주었을까.
"나도 안다. 엄마랑 아빠가 나를 미워할 리 없다. 내가 걱정된 나머지 화가 났을 뿐이다. 엄마 아빠에게 미안하다. 어제 일도 그렇고, 오늘 일도 그렇고. 조금 서운한 마음도 든다. 도와줄 일은 없냐고 물어보면 좋을텐데. 그렇다고 엄마 아빠에게 다 털어놓을지 어떨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p146, 147)"
믿음직한 어른이 될 수 있다면
생각해 보니 5학년 때, 나도 수용이 같았다. 친구들끼리 모여 아지트를 만들고 서로의 비밀을 공유했다. 학원을 빠지고 엄마가 왜 빠졌냐고 추궁하면 입을 꾹 닫고 있다가 거짓말을 했다. 수용이 엄마에게만이 아니라 수용이에게도 내 모습이 있다.
어릴 적 나를 기억하며 아이를 이해하는 어른이면 좋겠는데 현실에서의 나는 아이를 잘 이해하는 듯 하다가도 금세 아이에게 윽박지르곤 하는 갈팡질팡 어른이다. 어린이에게 항상 환영받을 순 없어도 필요할 땐 옆에 있어 주는 믿음직한 어른이고 싶은데 말이다.
동화 마지막 부분에 나와 비슷한 마음을 가진 등장인물이 나온다. 수용이의 담임 선생님은 이제라도 도움을 주고 싶다며 동물 보호 단체에 이 일을 알려 황 사장을 고발할 계획을 세운다. 다음에 또 고민되는 일이 생기면 수용이는 담임 선생님을 떠올리게 될 것이다. 그리고 세상에는 황 사장 같은 못된 어른만 있는 게 아니라는 것도 알게 됐겠지.
책을 다 읽고 아이에게 가서 말을 건다.
"네 말대로 이 책 정말 재밌는데!"
아이는 "그치? 그치?" 하며 활짝 웃는다.
"선생님 멋지다. 엄마도 선생님처럼 아이들의 마음을 잘 헤아리는 사람이 되고 싶어"라고 이어 말하니 아이는 나에게 엄지를 척 들어 보인다. 나의 이 다짐이 순간에 멈추지 않기를. 어린이 책을 더 많이 읽고 어릴 적을 떠올리며 내 안의 편견을 조금씩 부숴가야겠다.
덧붙이는 글
개인 브런치에도 올릴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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