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다섯 스물하나' 결말, 여운 대신 물음표 남은 까닭
[리뷰] tvN 드라마 <스물다섯 스물하나>
결국 나희도의 남편은 백이진이 아니었다. 앵커가 된 백이진이 샌프란시스코에서 금메달을 딴 나희도와 인터뷰를 마치며 결혼 축하한다는 언급을 했던 회차가 끝나고, SNS는 뜨겁게 달구어 졌다. 그래도, 혹시나 하면서 이진과 희도가 사랑의 결실을 맺길 바랐던 이들은 '설마'하며 일말의 희망을 놓지 않았다. 하지만 헛된 기대는 물거품이 되었다.
레트로한 감성을 한껏 살린 tvN 드라마 <스물다섯 스물하나>는 IMF로 휘청였던1997년부터 시작해 2002년 월드컵으로 거리를 붉게 불들였던 시절의 이야기를 다뤘다.
두 주인공 백이진(남주혁 분)과 나희도(김태리 분)를 앞세웠지만 두 사람의 주변 인물들과 친구들의 이야기를 맛깔나게 곁들이며 그 시절을 살아낸 이들의 가슴을 먹먹하게 했다. 특히 tvN <응답하라> 시리즈가 시청자로 하여금 기승전 '남편 찾기'에 몰두하게 했듯이, <스물다섯 스물하나> 또한 현재의 나희도와 과거의 나희도를 오가며 그녀의 남편찾기라는 떡밥으로 시청자들의 호기심을 유발했다.
IMF 시절 이진과 희도의 동지애
시작은 판타지였다. IMF로 아버지의 사업이 무너지고 온가족이 뿔뿔이 흩어진 채 백이진은 나희도의 동네로 이사온다. 찾아온 빚쟁이들로부터 아버지 대신 수모를 당하며 '행복하지 않겠다'고 약속할 수밖에 없던 암울한 시절의 이진, 그런 이진에게 대번에 말을 놓으며 고등학생 희도가 다가간다.
건드리면 무너질 것 같은 책임감 속에 하루하루 신문 배달부터 책 대여점 알바까지 하는 이진의 무거운 어깨를 알아본 건 희도였다. 어린 시절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자신의 직업 때문에 바쁜 엄마와 살아가던 희도는 천재 소리를 듣던 펜싱 유망주에서 하루 아침에 재능 없는 일개 선수로 전락하는 쓰라림을 맛본다. 하지만 여전히 펜싱을 그만둘 수 없는 희도는 자신이 짊어진 외로움과 좌절의 무게를 견디며 이진의 버팀목이 돼 준다.
'행복하지 않겠다'는 이진에게 자신과 있는 순간만이라도 행복하라며 한껏 웃어 보이던 희도. 그런 희도로 인해 이진은 조금씩 세상에 서 있을 힘을 얻어 간다. 희도 역시 이진으로 인해 굳은살만큼이나 깊게 드리운 외로움의 늪에서 나올 수 있었다.
그렇게 두 사람은 사랑이라는 감정 이전에 어려운 시절을 견뎌내며 동지로서 함께 한다. 그리고 고통의 터널을 지나 두 사람은 각각 고졸 출신의 방송국 기자와 펜싱 금메달리스트가 됐다. 그리고 그들은 연인이 됐다.
존재가 사랑을 이겼다
그런데 늘 어디에 있던, 무엇을 하던 응원을 하겠다던 두 사람의 관계가 연인이라는 틀 속에 담기자 엇나가기 시작했다. 서로의 앞날을 응원만 하던 관계에서 서로에게 부담을 지우는 관계가 된 것이다. 국가 대표 선수와 가장 바쁜 사회부 기자는 서로에게 자꾸 미안하다는 말을 남기는 사이가 됐다. 서로를 한없이 응원하던 두 사람이 이제 그들의 존재로 인해 더는 사랑할 수 없는 사이가 된 것이다.
그런데 이상하다. <스물다섯 스물하나>의 미덕은 IMF라는 시대에도 불구하고, 무너진 집안의 무게를 짊어진 젊은이와 그저 가진 것이라고는 펜싱을 좋아하는 마음뿐이던 고등학생이 서로를 응원하며 동지애 이상의 관계를 만들어간다는 판타지에 있지 않았던가.
드라마는 그 비현실적인 설정을 통해 IMF라는 어려운 시절에 서로 응원하고 지지하는 씩씩한 연인들을 등장시켜 시청자의 마음을 빼앗아 놓더니, 15·16회차에 이르러 갑자기 현실을 말한다.
핸드폰도 없던 시절, 전화 한 통없이 사라진 백이진을 1년 넘도록 기다렸던 나희도가 이제 와서 갑자기 앵커였던 엄마의 기다림을 견디느라 힘들었다며 9.11 테러 현장으로 파견나갔던 백이진에게 이별을 통보한다.
제작진 역시 자신들이 설정한 현실적인 결말에 개연성을 부여하고자, 두 사람의 이별을 설명하고 또 설명한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설명하면 설명할수록 두 사람의 이별에 물음표가 붙는다. 저 둘은 그렇게 사랑하면서 왜 이별을 택했을까.
무엇보다 안타까운 건 젊은 시절의 그 선택들을 16회 나이 든 희도가 '연습'이란 말로 '퉁'쳐버리는 장면이다. 젊음은 연습일까? 그렇다면 여전히 나이가 들어서도 시행착오를 거듭하는 삶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엄마가 된 희도는 마치 세상을 달관한 것처럼 말한다. 사랑과 우정이 전부이던 시절이 있었노라고.
물론 존재가 사랑을 넘어서기 쉽지 않다는 것을 우리는 안다. 그래도 <스물다섯 스물하나> 속 나희도와 백이진의 대책 없이 순수하고 긍정적이던 젊음과 사랑이 예뻤다. 울며 불며 이별하겠다는 두 사람을 보며 눈물지으려 했던 게 아니다. 여운조차 느끼지 못하게 구구절절 이별에 대한 개연성을 설득하려 애쓴 '스물다섯 스물하나'의 결말이 아쉬운 이유다.
레트로한 감성을 한껏 살린 tvN 드라마 <스물다섯 스물하나>는 IMF로 휘청였던1997년부터 시작해 2002년 월드컵으로 거리를 붉게 불들였던 시절의 이야기를 다뤘다.
▲ tvN 드라마 <스물 다섯 스물 하나>. ⓒ tvN
IMF 시절 이진과 희도의 동지애
시작은 판타지였다. IMF로 아버지의 사업이 무너지고 온가족이 뿔뿔이 흩어진 채 백이진은 나희도의 동네로 이사온다. 찾아온 빚쟁이들로부터 아버지 대신 수모를 당하며 '행복하지 않겠다'고 약속할 수밖에 없던 암울한 시절의 이진, 그런 이진에게 대번에 말을 놓으며 고등학생 희도가 다가간다.
건드리면 무너질 것 같은 책임감 속에 하루하루 신문 배달부터 책 대여점 알바까지 하는 이진의 무거운 어깨를 알아본 건 희도였다. 어린 시절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자신의 직업 때문에 바쁜 엄마와 살아가던 희도는 천재 소리를 듣던 펜싱 유망주에서 하루 아침에 재능 없는 일개 선수로 전락하는 쓰라림을 맛본다. 하지만 여전히 펜싱을 그만둘 수 없는 희도는 자신이 짊어진 외로움과 좌절의 무게를 견디며 이진의 버팀목이 돼 준다.
'행복하지 않겠다'는 이진에게 자신과 있는 순간만이라도 행복하라며 한껏 웃어 보이던 희도. 그런 희도로 인해 이진은 조금씩 세상에 서 있을 힘을 얻어 간다. 희도 역시 이진으로 인해 굳은살만큼이나 깊게 드리운 외로움의 늪에서 나올 수 있었다.
그렇게 두 사람은 사랑이라는 감정 이전에 어려운 시절을 견뎌내며 동지로서 함께 한다. 그리고 고통의 터널을 지나 두 사람은 각각 고졸 출신의 방송국 기자와 펜싱 금메달리스트가 됐다. 그리고 그들은 연인이 됐다.
▲ tvN 드라마 <스물 다섯 스물 하나>. ⓒ tvN
존재가 사랑을 이겼다
그런데 늘 어디에 있던, 무엇을 하던 응원을 하겠다던 두 사람의 관계가 연인이라는 틀 속에 담기자 엇나가기 시작했다. 서로의 앞날을 응원만 하던 관계에서 서로에게 부담을 지우는 관계가 된 것이다. 국가 대표 선수와 가장 바쁜 사회부 기자는 서로에게 자꾸 미안하다는 말을 남기는 사이가 됐다. 서로를 한없이 응원하던 두 사람이 이제 그들의 존재로 인해 더는 사랑할 수 없는 사이가 된 것이다.
그런데 이상하다. <스물다섯 스물하나>의 미덕은 IMF라는 시대에도 불구하고, 무너진 집안의 무게를 짊어진 젊은이와 그저 가진 것이라고는 펜싱을 좋아하는 마음뿐이던 고등학생이 서로를 응원하며 동지애 이상의 관계를 만들어간다는 판타지에 있지 않았던가.
드라마는 그 비현실적인 설정을 통해 IMF라는 어려운 시절에 서로 응원하고 지지하는 씩씩한 연인들을 등장시켜 시청자의 마음을 빼앗아 놓더니, 15·16회차에 이르러 갑자기 현실을 말한다.
핸드폰도 없던 시절, 전화 한 통없이 사라진 백이진을 1년 넘도록 기다렸던 나희도가 이제 와서 갑자기 앵커였던 엄마의 기다림을 견디느라 힘들었다며 9.11 테러 현장으로 파견나갔던 백이진에게 이별을 통보한다.
제작진 역시 자신들이 설정한 현실적인 결말에 개연성을 부여하고자, 두 사람의 이별을 설명하고 또 설명한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설명하면 설명할수록 두 사람의 이별에 물음표가 붙는다. 저 둘은 그렇게 사랑하면서 왜 이별을 택했을까.
무엇보다 안타까운 건 젊은 시절의 그 선택들을 16회 나이 든 희도가 '연습'이란 말로 '퉁'쳐버리는 장면이다. 젊음은 연습일까? 그렇다면 여전히 나이가 들어서도 시행착오를 거듭하는 삶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엄마가 된 희도는 마치 세상을 달관한 것처럼 말한다. 사랑과 우정이 전부이던 시절이 있었노라고.
물론 존재가 사랑을 넘어서기 쉽지 않다는 것을 우리는 안다. 그래도 <스물다섯 스물하나> 속 나희도와 백이진의 대책 없이 순수하고 긍정적이던 젊음과 사랑이 예뻤다. 울며 불며 이별하겠다는 두 사람을 보며 눈물지으려 했던 게 아니다. 여운조차 느끼지 못하게 구구절절 이별에 대한 개연성을 설득하려 애쓴 '스물다섯 스물하나'의 결말이 아쉬운 이유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이정희 시민기자의 개인 브런치 https://brunch.co.kr/@5252-jh 에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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