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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의 '민간인 학살'... 푸틴을 단죄할 수 있을까

[임상훈의 글로벌리포트] 국제형사재판소에 거는 기대

등록|2022.04.08 19:34 수정|2022.04.08 19:34

▲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키예프) 외곽에서 묘지 작업자들이 부차 마을에서 살해된 민간인 희생자들의 시신을 안치소로 이송하기 위해 트럭에 싣고 있다. 러시아군이 이달 초 퇴각할 때까지 한 달가량 장악했던 부차에서 민간인을 대량 학살했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2022.4.7 ⓒ 연합뉴스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러시아군의 민간인 학살 의혹이 커지면서 국제여론이 들끓고 있다. 수도 키이우 인근의 부차 등에서 철수한 러시아군이 남긴 흔적에서 반인륜 범죄의 정황이 의심되고 있다. 러시아 측은 언론의 조작이라고 강변했지만 추가 증거가 나오면서 반박이 어려워지는 상황이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이를 '전쟁 범죄'로 규정하며 푸틴 대통령을 전범 재판에 회부할 것을 촉구하고 나섰다. 그가 최근 던진 러시아 정권교체 언급에 힘을 더 싣는 모양새다. 현장을 방문한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 역시 '전쟁 범죄'와 '집단 학살'을 주장했다. 유엔 책임도 거론했다.

이렇게 되면서 수사적 압박을 넘어 실제 러시아의 침략과 관련해 특정인들에 대한 재판 회부가 가능한지 관심이 모아진다. 실제 법집행의 강제성 여부도 국제적 이슈로 떠올랐다. 국제법에서는 전쟁에서 벌어진 특정 행위에 대한 처벌을 문서로 명시했다. 국제형사재판소(International Criminal Court, ICC)의 관할권에 해당한다.

러시아의 전쟁범죄
 

▲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5일(현지시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전쟁이 한창인 가운데 모스크바 외곽의 노보-오가료보 관저에서 농어업 발전 관련 화상 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2022.4.6 ⓒ 연합뉴스


국제형사재판소가 관할할 수 있는 범죄는 '집단살해(Genocide)', '반인륜 범죄(Crime Against Humanity)', '전쟁 범죄(War Crime)' 등이다. 창설 당시 규정됐던 '침략 범죄(Crime of Aggression)'의 경우 현재는 유보 상태. 관련 법규가 유엔의 다른 법률과 충돌 우려가 있어 논의 중인 상황이다.

결국 우크라이나 전쟁 후, 특히 부차 학살과 관련해 향후 '집단살해', '반인륜 범죄', '전쟁 범죄' 해당 여부를 놓고 법집행 요구가 거세질 전망이다. 이 세 가지 범죄에 대해서는 어떤 시효도 적용되지 않으며 강행규범에 해당해 이에 대한 무력 행위도 법적으로 정당화된다.

ICC는 2002년 7월 1일 설립됐으며 네덜란드 헤이그에 위치하고 있다. 국제사법재판소(International Court of Justice, ICJ)가 국제분쟁과 관련해 조정을 원칙으로 한다면 ICC는 국제 사회에서 명백한 반인륜적 행위가 발생할 경우 이를 강제 처벌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ICC 집행의 정당성은 '국제형사재판소에 관한 로마 규정(Rome Statue of the International Court)'에 근거하며, 한국을 포함해 총 123개국이 서명했다. 이 가운데 31개국은 인준을 거치지 않은 상태인데, 미국과 러시아, 우크라이나 등이 이에 해당한다. 북한, 중국 등은 로마 규정에 가입돼 있지 않다.

비가입국에 대한 제재와 처벌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수사를 요구할 경우 효력이 발생한다. 처벌의 대상도 개인에 한정되며 국가책임은 인정하지 않는다. 따라서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인 러시아에 대한 처벌은 여전히 불확실한 상황이다. 이 때문에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러시아의 유엔 안보리 퇴출을 강하게 요구하고 있다.

ICC 효력이 이렇듯 국제사회를 지배하는 정치 영향력의 영향을 받음에도 불구하고 우크라이나에서 벌어진 반인도적 행위에 대한 법적 책임 소재는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 앞서 언급한 대로 처벌에 대한 시효가 없는 만큼 당장의 실행 여부와 관계없이 국제사회의 법집행 압력은 계속돼야 하기 때문이다.

집단살해, 반인륜범죄, 전쟁범죄 적용 가능할까
 

▲ 국제형사재판소 건물 전경. 2021.5.20 ⓒ 연합뉴스


그렇다면 우크라이나에서 벌어진 반인륜적 행위에 대한 법적 책임은 어디까지 가능할까? '집단 살해' '반인륜 범죄', '전쟁 범죄'의 적용 범위가 관건이다.

ICC 설립에 앞서 1946년 12월 11일 유엔은 '집단살해'를 유엔 정신과 목적에 위반되며 문명사회가 금하는 인권 범죄에 해당한다고 선언했다. 2년 후 유엔은 총회 제260호 결의안을 통해 19개 조로 구성된 '집단살해범죄의 예방 및 처벌에 관한 협약'을 채택했다.

현재 한국을 포함 152개국이 비준했다. 미국, 러시아, 중국, 북한도 여기에 포함돼 있으나 일본은 가입하지 않은 상태다.

협약에 따르면 '집단살해(Genocide)'는 국가·민족·인종 또는 종교집단의 전체 또는 부분을 파괴할 의도로 ① 구성원 살해 ② 구성원에 대한 심각한 신체적·정신적 피해 ③ 전체 또는 부분적 물리적 파괴를 초래하도록 의도된 삶의 조건에 대한 가해 ④ 구성 집단에 대한 출생 방지 조치 행위 ⑤ 구성 집단 아동의 강제 이주 조치를 포함하고 있다.(제2조)

'집단살해'는 반드시 전쟁 상황이 아닌 경우에도 해당하며 위에 명시된 대로 '심리적' 해악 행위도 포함한다. 또한 행위의 결과뿐 아니라 이를 위한 모의, 교사, 미수, 공범 행위도 포함된다(3조). 이들 중 하나만 위반해도 고소될 수 있으며 해당 영토 내 사법권 또는 회원국에 관할권을 가진 ICC에 의해 재판을 받는다.

'반인륜 범죄(Crime Against Humanity)' 역시 앞서 말한 '로마 규정'에 근거한다. '집단살해'와 달리 조약(Treaty)의 형태로 명문화되지는 않았으나 ICC가 상설화되기 전 구 유고슬라비아 국제형사재판소(ICTY, 1993년), 르완다 형사재판소(ICTR, 1994년) 등에 의해 정의된 바 있다.
 

▲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8일(현지시간) 열린 유엔 법원(IRMCT) 항소심 공판에 라트코 믈라디치 전 세르비아계군 사령관이 출석해 있다. IRMCT 항소심 재판부는 이날 유엔 산하 국제 유고전범재판소(ICTY)가 지난 2017년 집단학살과 전쟁범죄 등 혐의로 종신형을 선고한 데 대한 믈라디치의 항소를 받아들이지 않고 종신형 판결을 확인한다고 밝혔다. 2021.6.8 ⓒ 연합뉴스


유엔은 '반인륜 범죄'를 "모든 민간인에 대한 광범위하게 또는 조직적으로 행하는 공격"으로 규정한다. 기소의 대상으로는 학살, 추방, 고문, 성노예 또는 이에 상응하는 성폭력 등이 있다. 2차 대전 후 일본에 대한 극동국제군사재판(IMTFE) 판결에서의 C급 전범이 '반인륜 범죄'에 해당한다. (A급 전범은 '평화에 반한 죄', B급 전범은 '전쟁 범죄')

ICC가 관할하는 세 가지 범죄 유형 가운데 가장 처벌의 역사가 긴 것이 '전쟁 범죄(Crime of Aggression)'다. 1899년 헤이그 협약에 의해 규정됐으며 이후 제네바 협약 등에서도 반복적으로 명확히 하고 있다. 분쟁 중의 양측 가운데 어느 한 곳이라도 군사적 충돌이 아닌 공격 행위를 금지하는 조치다.

ICC의 관할 내용 가운데 상대적으로 가장 내용이 명확하고 구체적이기 때문에 적용 범위 또한 광범위하다. 민간인, 포로에 대한 폭력, 군사시설이 아닌 지역에 대한 공격 등 인간뿐 아니라 비군사 시설에 대한 공격도 이에 해당한다.

범법 행위 규정이 구체적인 데 따른 한계도 지적된다. 위반한 군사 행위에 대해 영내 법 관할이 처벌 조치를 할 경우 ICC의 관여가 모호해질 수 있는 것이 대표적이다. 따라서 대부분의 경우 정전 후 재판이 이루어지는데, 그러다 보면 승전국 측에서 벌인 행위에 대해서도 처벌이 애매해진다. 2차 대전 후 승전국 측의 전범행위에 대해 명확한 처벌이 없었던 것이 구체적 사례다.
 

▲ 몰도바에 위치한 우크라이나 난민 임시대피소. ⓒ 피스윈즈코리아


우크라이나 전쟁이 장기화되면서 민간인들의 피해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6차까지 가는 협상이 진행 중이고 하부 실무 그룹이 관여하고 있다는 내용도 전해진다. 사실이라면 협상 진전의 신호다. 무엇보다 인명 피해를 줄일 수 있는 길이라면 어떻게든 찾아야 한다.

그렇지만 전후 사법 처리가 정치적 협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 ICC와 같은 강제성의 효력을 가진 국제사법기관이 생긴 것은 최소의 전쟁도 막기 위함이다. 국제관계에서 전쟁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외교의 영역이라면 전후 유사한 전쟁이 재발하지 않도록 하는 것은 국제형사법의 영역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에서와 같은 명백한 위법 행위에 대해서 확실한 단죄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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