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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능 없다 탓하지 마세요, 고수가 되는 법은 따로 있습니다

눈대중으로 옷 만드는 전문가는 없다... 과정을 타협하지 않는 마음이 낳는 결과

등록|2022.04.16 19:40 수정|2022.04.16 19:46
시민기자 그룹 '워킹맘의 부캐'는 일과 육아에서 한 발 떨어져 나를 돌보는 엄마들의 부캐(부캐릭터) 이야기를 다룹니다.[편집자말]
유튜브에서 티셔츠 만드는 영상 속 숙련자들이 옷 만드는 모습을 보면 꼭 밥 아저씨가 그림 그리는 영상을 구경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밑그림을 그려둔 것도 아니고 구도를 잡으려고 심사숙고 하는 것 같지도 않은데 쓱쓱, 툭툭 붓터치 몇 번에 그림 같은 풍경화가 완성되고 '참 쉽죠'라는 말로 마무리 하던 추억의 영상.

시침핀 없이도 위 아래 두 개의 천이 풀로 붙이기라도 한듯 가지런히 재봉틀에 말려들어가는 숙련자의 영상을 보면, 미리 시침핀으로 다 고정을 해놓고 박아도 허술하기 짝이 없는 내 모습이 오버랩 된다. '왜 이러지?' 싶지만 답은 모르겠고 결과물은 허접했다. 어디서 누구에게 무엇을 물어야 이걸 바꿀 수 있을지 길을 찾을 수 없어 더 막막했다.

계속 만들다보면 장인이 되는 줄 알았다
 

▲ 패턴봉제 학원 실습실, 공업용 재봉틀 ⓒ 최혜선


계속 만들다보면 저렇게 대충 눈대중으로 접어 박아도 말끔한 옷이 나오겠지? 기대하고 착각하며 줄창 만들어댔다. 그러다 찾아온 첫 번째 가르침은 옷을 만들 때는 박음질만큼이나 다림질이 중요하다는 것이었다. 앞판과 뒤판을 박고 바로 소매를 연결하는 것이 아니라 앞판과 뒤판을 박은 후 다려서 시접을 납작하게 눌러준 후에 어깨를 연결해야 한다는 것.

접어 박는 밑단은 특히나 다림질이 중요했다. 3센티미터를 접어 박는다면 자로 3센티미터를 재어 선을 그은 후 그냥 접어서 박는 게 아니었다. 다림질에도 녹지 않는 납작한 전용 자를 대고 3센티미터에 맞춰 천을 납작하고 매끈하게 접어서 다린 후에 박아야 한다. '대충' 혹은 '잘'이 아니라 결과가 잘 나오도록 도구를 써서 한 단계를 더 거쳐야 좋은 결과물이 나온다는 게 첫 번째 깨달음이었다.

재봉질 초반에는 주로 아이들 티를 만들었기 때문에 다리미는 해결사 역할을 톡톡히 해주었다. 목둘레에 고무단을 붙일 때 까딱 잘못하면 어설픈 티가 난다. 고무단의 신축성을 이용해서 연결하는 것이기 때문에 박고나면 몸판이 우글우글 주름져 보이는데 이때 다림질은 만능열쇠였다. 고무단을 달고 난 후 납작하게 눌러 다려주면 언제 울었냐는 듯 가게에서 파는 옷처럼 말끔해졌다.

티만 입고 살 수는 없으니 안감 달린 재킷에도 도전해 보고 싶고 지퍼 울렁증, 셔츠 포비아도 극복하고 싶어졌다. 주말마다 가서 패턴을 그리는 법을 배우고, 그 패턴 대로 옷을 만들어보는 실습을 할 수 있는 학원에 다녔다.

티셔츠를 만들 때는 천을 재단할 때 완성선을 그리지 않고 옷 본을 천에 올린 후 바느질을 하기 위한 1센티미터 시접선만 그린 후 잘랐다. 완성선은 실제로 옷이 만들어져야 할 선이고 시접은 완성선으로 옷이 만들어지기 위해 원단을 박을 때 필요한 여분이다. 보통 1센티미터 시접을 남기고 재단한다. 완성선을 굳이 표시하지 않아도 시접을 일정하게 두고, 박을 때 같은 간격으로 박으면 되니 완성선을 그리고 시접선을 또 그려 재단하기는 귀찮았다.

하지만 셔츠나 지퍼 달린 아우터, 카라 달린 재킷은 그렇게 만들면 안 되는 거였다. 학원에서는 완성선을 그리고 시접선을 또 그렸다. 반을 접은 천의 윗부분에 완성선을 그리면 아래에 깔려있는 천에는 완성선을 남길 수가 없으니 먹지를 대고 작은 도르레 같은 도구로 밀어서 아래 쪽에도 완성선이 남도록 가르쳤다. 티를 만들 때 한 번 그리던 선을 3번 그리고서야 재단을 시작할 수 있었다.

아, 이렇게 해야 좌우 대칭이 딱 맞는 셔츠를 만들 수 있구나, 뒤통수를 한 대 얻어맞은 것 같았다. 생각해보면 너무나 당연한 것인데 그렇게까지 해야 한다는 생각은 하지 못하고 '나는 왜 카라가 이렇게 비뚜름하게 달리지?', '역시 나는 재능이 없어'라고 자책했다. 잘 만드는 사람은 대충 툭툭 재단하고 드르륵 박아도 잘 만들 거라는 환상을 갖고 있었던 것이다.

그즈음 오뜨쿠튀르 의상을 만드는 아틀리에에서 장인들이 작업하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트위드재킷 만드는 과정을 보여주는 영상이었다. 바디에 천을 대고 몸의 굴곡에 맞게 촘촘히 시침핀을 꽂아 패턴을 정교하게 다듬고 재킷 만들 트위드 천의 올을 바르게 고른 후에야 패턴을 올려놓았다. 한 조각을 자른 후 그 조각을 천 위에 올려 똑같은 무늬 위에 패턴이 올라가도록 또 한 번 정성을 들였다.
 

▲ 장인들은 아무것도 우연에 기대지 않고, 잘못될 수 없을 정도로 밑작업을 철저히 한 후 어떤 공정도 허투루 넘기지 않는 사람들이었다. ⓒ Unsplash


보통은 두 겹을 겹쳐놓고 패턴을 그 위에 올려 한 번에 두 장을 자르는 게 일반적이지만 감탄이 나올 정도로 대칭을 이루는 재킷을 만들기 위해서는 그런 수고가 들어가는 것이었다. 그런 후 잘라낸 천이 늘어져 크기가 달라지지 않도록 조각마다 심지를 붙였다.

전문가라고 후루룩 만들어도 잘 만들어지는 게 아니었구나. 전문가란 아무렇게나 해도 잘 만드는 게 아니라 오히려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이렇게까지 해야 해?' 싶은 것까지도 빼먹지 않고 하는 사람이구나, 깨닫게 되었다. 장인들은 아무것도 우연에 기대지 않고, 잘못될 수 없을 정도로 밑작업을 철저히 한 후 어떤 공정도 허투루 넘기지 않는 사람들이었다. 마치 이겨놓고 전쟁을 시작한다는 손자병법 속 장수처럼.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내가 부러워했던 바느질 커뮤니티의 고수들이 떠올랐다. 별 생각 없이 툭 재단해서 대충 바느질했는데 그런 결과물이 나왔을 리 없다. 만족할 만한 결과물을 만들어내기 위해서 더 많이 고민하고 더 많이 뜯었을 사람들. 거의 다 만든 옷이라도 조금 거슬리는 부분이 있으면 휴지통에 처박아 버리고 다시 만들어서라도 자기 마음에 드는 결과물을 만들어내고야 마는 사람들이었던 것이다.

어쩌면 타협하지 않는 마음이 장인을 만드는 것이겠구나 생각했다. 나는 손재주가 없다고 하면서 사실은 안일하게 만들고 있었던 것이다.

지금은 '행복한' 사고를 수습하기 급급하지만

이제는 안다. 어려운 옷이 있는 게 아니라 손이 많이 가는 옷이 있는 것이다. 어깨와 몸판, 옆선만 박으면 완성되는 민소매 티셔츠든, 겉감, 안감, 카라, 입술 주머니가 달린 재킷이든 두 겹의 천을 맞대어 박는 것 이상 다른 차원의 작업은 없다. 이런 옷을 만들기 위해서는 타고난 재능이 필요한 게 아니라 그 많은 과정들을 하나도 빼먹지 않고 다 밟아가겠다는 각오가 필요한 것이었다.

물론 똑같이 공을 들여 만들어도 손끝이 더 야무진 사람, 더 나은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사람들이 있다. 그 차이를 극복하는 방법을 나는 아직 발견하지 못했다. 다만 남과 비교하는 것이 아니라 이전의 나보다 조금 더 나아지면 된다고 마음먹었다.

어느 한 단계 대충 넘기지 않고 차근차근 만들어보자고 결심한 후 재단 한 번 하려고 선을 세 번이나 그리다 보면 언제 다 만드나 싶어 답답할 때가 있다. 그럴 때는 심호흡을 한 번 하고 나에게 말한다.

"지금은 기회의 문이 열려 있는 기간이다. 지금 귀찮다고 눈을 질끈 감고 대충 넘어가고 나면 옷이 완성됨과 동시에 그 기회의 문도 닫힌다. 한 단계 한 단계 공들여 만든다고 해도 2~3주면 완성이 될테고 완성되고 나면 잘 만들어진 옷을 입으면서 느끼는 만족감은 몇 년을 갈테지. 그러니 지금 당장 더뎌도 기회의 문이 열려 있을 때 할 수 있는 것을 하자. 하나도 건너뛰지 말고. 그렇게 만들어진 옷이 주는 만족감을 오래 느끼자."

그래도 내 마음에 드는 수준의 결과물이 나올 때까지 몇 번이고 다시 만든다는 찐 장인의 근성은 내게 없다. 만든 옷의 시접이 풀리지 않도록 오버록을 하다가, 튀어나온 여분을 자르면서 박는 오버록의 칼날에 천이 씹혀 다 된 옷에 구멍을 내는 대형 사고를 치면 다시 만들기보다는 이미 망친 걸 잘 때워보는 쪽을 선택한다. '참~ 쉽죠'라는 말로 나에게 전문가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심어주었던 애증의 밥아저씨가 한 말을 떠올리면서.

"여러분, 우리는 실수를 하는 게 아니예요. 행복한 사고가 있을 뿐이지요. 걱정하지 마세요. 이미 그린 걸 활용하는 법만 익히시면 됩니다."

그의 위로에 기대어 아이디어를 짜내서 그 '행복한' 사고를 수습한다. 그의 말처럼 다음에 그리(만들)게 될 작품은 더 나아질 테니까.
덧붙이는 글 이 글은 저의 블로그와 브런치에도 게재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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