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층이 있는 삶' 위한 법원의 함께 걸음
[광장에 나온 판결] 편의시설 경사로 설치 예외 규정(시행령)에 대한 차별구제
출퇴근길 지하철에서 장애인들의 이동권 보장을 요구하는 시위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차별 철폐 요구에 대해 공당 대표가 차별과 혐오의 언어로 폄훼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4월 20일 '장애인(차별철폐)의 날을 맞아 참여연대는 판결을 통해 우리 사회의 장애인과 비장애인에 대한 뿌리 깊은 차별에 대해 짚어보는 3편의 판결비평 시리즈를 준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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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1층이 있는 삶." 휠체어 뿐일까요? 보행 보조기구를 사용하는 노인들과 유모차를 대동하는 보호자 또한 편의시설에 경사로가 있다면 출입이 훨씬 쉬워집니다. 판결비평 두번째 특집은 일정 규모(300㎡ 미만)의 공중이용시설(편의점, 커피전문점 등)을 편의시설 의무 대상에 포함해 경사로와 출입문을 설치하거나 대체시설을 마련하도록 해 시민의 접근성을 보장하도록 한 판결입니다. 사업자 뿐 아니라 국가의 책임은 무엇이었는지, 공익인권법재단 공감의 조미연 변호사가 비평했습니다. [편집자말]
서울중앙지법 2022. 2. 21. 선고 2018가합524424, 한성수 부장판사, 백소영 판사, 임현수 판사
'1층이 있는 삶'이란, 휠체어를 이용하는 장애인이 모든 장소를 1층처럼 접근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활동에서 비롯된 말이다. 즉, 1층에 대한 접근성을 넘어 본질적으로 제품, 시설, 서비스를 설계할 때 이용하는 사람이 성별, 나이, 장애, 언어 등으로 인해 불편하지 않도록 하는 모두를 위한 디자인, '유니버설 디자인'과 일맥상통하는 의미라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는 1997년 장애인등편의보장법을 제정하여 장애인 등이 공중이용시설을 동등하게 이용하고 접근할 권리를 규정하였다. 다만, 시행령을 통해 경사로 등 편의시설 설치 의무 대상을 소매점·음식점·약국 등은 300㎡이상, 미용실·목욕탕 등은 500㎡ 이상인 경우로 기준을 정한 것이 독소가 되었다. 서울에 있는 슈퍼마켓의 98%, 일반음식점의 96%, 제과점 등 기타음식점의 99%가 바닥면적 기준으로 인해 편의시설 설치 의무를 면제받았기 때문이다.
소송이 제기된 이후, 투썸플레이스와 호텔신라는 자체 개선을 약속했다. 남겨진 피고들에 대한 재판이 진행되었고, 법원은 2022년 2월 10일 "300㎡ 미만인 공중이용시설을 편의시설 의무 대상에서 제외한 것은 장애인 등이 모든 생활영역에 접근할 권리를 보장하도록 한 법률의 위임 범위를 일탈했고, 행복추구권과 일반적 행동자유권을 침해했으며 평등원칙에 반해 무효"라고 판단했다.
법원은 GS25에 대하여 1년의 유예기간을 주고 직영점은 경사로가 설치된 출입구, 출입이 가능한 출입문을 설치하고, 이러한 편의시설 설치가 불가능하거나 현저히 곤란한 경우 대체 서비스를 제공하도록 했다. 가맹점에 대해서는 직영점과 같은 편의시설 설치를 위한 영업 표준을 마련하고 이에 따른 편의점 점포환경개선 권고 및 설치비용의 일부를 지원하라고 판결했다.
판결의 힘 : 차별을 시정하라
국가의 책임은 아쉽게도 인정되지 않았다. 그러나 법원은 "대한민국의 손해배상책임이 성립하지 아니한다는 것이 곧 장애인 보호를 위한 국가적 책무를 다하였다는 의미는 아니"라고 밝히며 "장애는 개인적인 것이라기보다는 사회적인 것이며, 장애인들의 모든 생활영역에 대한 접근권이 보장될 때 자기결정권이 비로소 실현될 수 있고 사회참여를 위한 물리적 장벽이 제거될 수 있다. 장애인이 비장애인과 동등한 생활수준을 누리기 위하여는 장애인에 대한 정당한 편의 제공이라는 적극적 의무가 사회구성원들로부터 폭넓게 수용되어야 하고 비장애인들의 장애감수성이 제고될 필요"가 있으므로 이를 위해 국가가 충분한 예산을 확보하고 제도개선을 적극적으로 모색해야 한다고 판시하였다.
2008년 장애인차별금지법이 시행되고, 2009년 UN 장애인권리협약이 국내에서 발효된 이래 법원의 문을 두드린 30건 남짓 장애인 차별사건들은 인용되더라도 구제조치의 내용이 추상적이어서 실제 당사자 권리 구제에 한계가 되는 경우가 있었다. 최근 대법원은 장애인 시외이동권 사건에서 차별의 존재와 시정의 필요성을 인정하면서도 원고와 연관된 노선에 한정하여 실제 실현가능한 범위를 중심으로 다시 판단하라는 취지의 판결을 선고하기도 했다.
반면에 이 사건 판결은 바닥면적을 기준으로 편의시설 설치의무를 나누고 있는 장애인등편의보장법 시행령이 위법·위헌적임을 명확히 확인하였으며, 차별행위를 차별로 보지 않도록 하는 정당한 사유에 대해서도 신중히 판단하였다. 나아가 법원의 적극적 시정명령을 이행할 기간을 정하여 구체적인 내용을 담았는데 GS25의 직영점뿐만 아니라 가맹점까지 편의시설 설치를 확대하도록 하였기에 실효성이 클 것으로 기대된다. 향후 장애인 차별구제 관련 좋은 선례가 될 것이다.
이 사건 원고들은 승소하였지만, 항소하였다. 피고들이 항소하지 않았기 때문에 승소한 부분은 확정되었고, 항소심에서는 바닥면적을 기준으로 편의시설 설치의무를 규정한 장애인등편의보장법 시행령에 대한 국가책임이 다퉈질 것이다. 사회적 약자 및 소수자의 권리를 보장하고, 불합리한 제도 개선을 이끌어 내는 공익소송의 대표적 예가 바로 장애인차별금지법에 근거한 차별구제청구소송이 아닐까? 그런 의미에서 이번 판결은 아쉬운 점도 있지만 1층 있는 삶을 위한 법원의 함께 걸음이라 평가하고 싶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 블로그와 인터넷언론 슬로우뉴스에 중복게재됩니다. 이 글의 필자는 조미연 변호사(공익인권법재단 공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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