삭발하고... 애인과 부모님 앞에서 춤췄습니다
[암과 함께 춤을] 춤추는 암환자로서 시작점이 된 순간
30대 암환자가 되고 나서야 제 삶을 더 사랑하게 됐습니다. 반려자의 보살핌 덕에 더 너그러워졌고, 치료 과정 중 느낀 점을 춤으로 표현하며 밝아졌고, 삶의 깊이를 더해가고 있습니다. 나를 살리는 춤 이야기를 나누고자 합니다.[기자말]
그렇다고 내가 암환자가 아닌 것은 아니다. 화생성 유방암 진단을 받은 것은 작년(2021) 6월. 주치의는 전체 유방암 중 1% 정도라고 했다. 2000년대 초반 자료에 따르면 5년 생존률은 40%. 20여 년이 지났으니 생존률이 더 높아지지 않았을까 기대하며 묻는 나에게 주치의는, 너무 희귀해서 이후 연구를 업데이트할 조사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렇게 재발률을 가늠하기 힘든 이 암과 나의 동행이 시작되었다.
암환자가 된 지 얼마 안 된 것처럼, 춤추는 인생을 살리라 마음먹은 일도, '커뮤니티댄스'라는 생소한 춤 장르를 공부한 시간도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커뮤니티 댄스'가 무엇인지에 대해선 연재를 진행해 나가면서 차차 풀어보려고 한다). 공부나 고민이 덜 된 부분도 많아서, 내가 이런 글을 써도 되나 싶기도 하다.
하지만 작년(2021년) 겨울 나의 첫 춤 공연 때 배운 것처럼, 때로는 자신 없고 감추고 싶은 부분을 드러낼 때만 오히려 새로운 세계가 나타나, 나의 좁은 시야를 넓혀준다. 그래서 '춤추는 암환자'라는 단어를 그대로 사용하기로 했다.
춤추며 외쳤다, "괜찮지 않다"고
▲ 춤추는 암환자로서 오른 첫 무대 '재회'제3회 커뮤니티댄스 페스티벌 '몸, 연결과 소통'(총연출 및 안무코칭 최보결)이 열린 2021년 12월 25일 경복궁아트홀, 나는 암 치료 과정 중 깨달은 몸의 이야기를 담은 '재회'로 인생 첫 춤 무대에 올랐다. ⓒ 곽승희
춤추는 암환자로서 나의 본격적인 시작점은 앞서 언급한 작년 겨울, 무용 비전문가에게도 무대를 열어주는 커뮤니티댄스 페스티벌(2021.12.25~26)을 준비하면서였다. 당시 항암 약물 치료가 중반 이후를 향해 가던 시기라 주변에선 걱정들을 꽤 보냈다.
주사 약물로 신체 기능이 다 떨어진 상태일 텐데 연습한다고 무리하는 건 아닌지, 연습 장소와 공연장을 왔다 갔다 하다가 혹시 코로나에 걸리면 항암 치료를 중단해야 하는데, 그러면 지금껏 받은 치료가 물거품이 되지 않는지 등등.
주변의 우려는 알지만 나는 이 공연 기회를 포기할 생각이 없었다. 일단 공연 리허설 날짜와 약물 치료 날짜가 겹치는 바람에, 주치의에게 한 주를 쉬어도 괜찮다는 허락을 받았다. 매주 같은 요일 비슷한 시간대, 병원 침대에 누워 서너 시간 동안 몸에 들어가는 항암 약물을 보는 일은 정신적으로 쉽지 않다.
이처럼 고역인 일에 공식적으로 휴가를 받은 셈인데 어찌 가지 않고 배길까. 게다가 이 춤 공연은 내 인생 전환점을 기록하는 행위였다. 공연 제목은 <재회>, 암 치료 과정을 통해 내 몸을 다시 만나게 된, 내 몸이 들려준 이야기를 전하고자 했다.
사실 갑작스럽게 암 진단을 받은 후에도 내가 삶을 대하는 태도는 그전과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암 수술을 받은 후에도, 제거한 암 덩어리에서 이미 침윤(조직으로 침입하여 번짐) 상태임이 드러나서 항암 약물 치료를 받아야 한다는 의사의 이야기를 들은 후에도, 나는 내 '몸'에 대해 별생각을 하지 못했다.
'머리'로는 암환자가 됐다는 사실을 순순히 받아들였다. 이 모든 과정을 공부하고, 이해하고, 받아들이면 치료도 수월하게 받으리라 예상했다. 항암 부작용으로 대머리가 되는 일도, 치료 과정 중 일어나는 변화의 하나로 의연하게 맞이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오산이었다.
가끔 모자를 깜빡하고 화장실에 들어가면, 거울 속 내 모습에 내가 화들짝 놀랐다. 신체 일부분이 사라졌을 뿐인데 내가, 내가 아닌 것 같았다. 내 생각과 상관 없이 반려 고양이 '웅미'는 집사의 두피 털이 있든 없든 매일매일 무릎에 올라왔다. 반려자 '한몬' 역시 나의 대머리에 뽀뽀를 해주었다. 내가 가장 사랑하는 존재가 나를 사랑하는데, 정작 나는 스스로를 사랑하기는커녕 거울 속 내 모습을 마주 보기도 어려웠다.
항암 약물 치료는 3회 차 만에 멈춰야 했다. 4회 차 주사를 맞으러 병원에 간 날, 아직 주사를 맞지도 않았는데 주사 후 부작용인 구토가 '나도 모르게' 시작됐기 때문이다. 이 치료가 내 생명을 지속하기 위해 꼭 필요하기 때문에 감사히 받자, 꼭 주사를 맞아야 한다, 합리적인 이유를 아무리 갖다 댄들 소화기관은 경련을 멈추지 않았다. 주치의는 몸이 트라우마 상태가 돼버렸다고 말했다. 그때 깨달았다. 언제부터인지 모르지만 머리와 몸이 분리되었구나.
머리로는 용기 있고 담대하게 이 상황을 받아들인다고 하지만, 정작 내 몸은 이 상황이 무서워 어쩔 줄 몰라 했다. 그 몸이 내 몸인데, 이걸 이제야 눈치챘다. 따로따로 멀어져버린 내 삶의 조각을 통합해야했다. 그 첫 발자국은 몸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일이었다.
공연에서, 무대 위 나는 거울 속 나를 보며 춤을 추었다. 관객석을 뒤로한 채 무대 소품으로 마련된 의자에 앉아, 역시 무대 소품으로 올라온 거울에 시선을 던졌다. 전반부는 '괜찮지 않다'고 노래 부르며 춤췄고, 후반부는 가발을 끌어 내리며 춤을 췄다.
내 몸은 잘못하지 않았다
▲ <재회> 공연 중제3회 커뮤니티댄스 페스티벌 <몸, 연결과 소통>(총연출 및 안무코칭 최보결)이 열린 2021년 12월 25일 경복궁아트홀, 나는 암 치료 과정 중 깨달은 몸의 이야기를 담은 '재회'로 인생 첫 춤 무대에 올랐다. ⓒ 곽승희
손가락으로 천천히 가발을 잡아끌고, 그 속도만큼 두피가 드러나는 과정을 깊이 바라보았다. 대머리와 함께 빛나는 붉은 입술까지 거울 속 내 전체를 응시했다. 내가 내게서 마주한 첫 번째 감정은 부끄러움이었다. 붉은 입술과 대조되는 텅 빈 두피가 기괴하게 느껴졌다. 숨고 싶었다.
의자에 기대어 있던 몸을 바닥으로 조금씩 내리며, 최대한 거울에서 사라지려 했다. 그러다 화가 났다. 생김새가 흉해졌다는 이유만으로 숨어야 한다고? 내가 왜? 내가 뭘 잘못했다고 숨어야 하지? 의자에서 조금씩 몸을 일으켰다.
난 잘못하지 않았다. 내 몸은 잘못한 일이 없다. 물론 대머리라서 슬프긴 했지만, 슬픔 때문에 스스로를 미워하는 일은 더이상 하고 싶지 않았다. 내가 어떤 모습일지언정 나는 나일 뿐이었다.
거울 속 나에게서 벗어나 관객석으로 몸을 돌려 춤을 이어갔다. 또한 외쳤다. 자랄 거야. 자랄 수 있어. 목적어를 두지 않은 이유는 중의적으로 들리기 바랐기 때문이었다. 내 털은 자랄 거야. 난 잘할 거야. 내 털은 자랄 수 있어. 난 잘할 수 있어, 잘 살 수 있어.
감추기 급급했던 대머리는 무대 위에서만큼은 영감 덩어리였다. 그리고 그 덩어리는 시위를 날아간 활처럼 내 안에 움직이고 싶은 욕구를 자아냈다. 욕구대로 움직이는 몸은 진실한 춤이 되었다. 춤은 나의 상처와 접촉하여 나를 빛나게 해주었다.
이 자랑스러운 순간을 내 머리털 여부와 상관없이 나를 사랑해준 '웅미'에게 보여주지 못해 아쉬웠다. 다행히 부모님과 '한몬', 그리고 축제에 참여한 모든 사람들이 내 새로운 탄생의 증인이 돼주었다.
첫 춤 공연 후 새로운 꿈이 생겼다. 이 환희와 카타르시스를 다른 암 환우에게 나누는 미래를 상상한다. 다 같이 무대에 올라 가발 벗는 춤을 춘다면, 내가 느낀 그 시원함을 전할 수 있지 않을까.
물론 지금의 나는 머리칼이 꽤나 자란 탓에 가발을 벗어도 과거만큼 강렬한 감정은 느끼지 못할 것 같다. 춤추는 암환자로서 더 이상 나의 털 빠진 두피를 볼 수 없다는 점은 조금, 아주 조금, 정말 아주 조금 아쉬운 일이다.
▲ 춤추는 암환자로서 오른 첫 무대 '재회'제3회 커뮤니티댄스 페스티벌 <몸, 연결과 소통>(총연출 및 안무코칭 최보결)이 열린 2021년 12월 25일 경복궁아트홀, 나는 암 치료 과정 중 깨달은 몸의 이야기를 담은 '재회'로 인생 첫 춤 무대에 올랐다. ⓒ 곽승희
여기까지 읽으신 분들은 궁금할 것이다. 이 춤, 대체 뭐지? 어떤 춤이지? 평소에도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 내 소개를 할 때 많이 접하는 의문이다. <암과 함께 춤을> 2화에서는 내가 어떻게 이 춤을 만났는지 나누려고 한다.
덧붙이는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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