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고'도 내신도 비슷했는데 수능 점수 확 차이난 이유
피곤을 달고 사는 고1 딸을 보며... 슬기로운 학교 생활 노하우는 체력
시민기자 그룹 '사춘기와 갱년기'는 요즘 사춘기 아이들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갱년기 부모들의 사는 이야기입니다.[편집자말]
"아니, 엄마 나 피곤해. 그냥 쉬다가 학원 갈래."
봄 햇빛이 나른해지는 주말 오전, 문득 딸과 산책을 나가볼까 했던 나의 제안은 단박에 거절당하고 말았다. 몸을 좀 움직이면 나른한 피곤함이 좀 사라질 텐데, 말을 꺼내자니 잔소리가 될 거 같아 입술까지 나온 말을 꿀꺽 삼켰다.
▲ 친구와 나의 성적은 수능에서 확실히 갈렸고 그 결정적 차이는 아무래도 달리기 때문인 것 같았다. ⓒ envato elements
피곤하니 쉬어야겠다는 아이의 말에 몽실몽실 떠오르는 기억 하나가 있다. 때는 1995년 나의 고3 시절이다. 정규 수업이 끝나고 야자(야간 자율학습)가 시작하기 전, 1시간의 꿀같은 휴식시간. 저녁을 빛의 속도로 먹고 그대로 책상에 엎드린 내 눈에, 옆자리에서 꼼지락꼼지락 운동화를 갈아 신는 친구가 보였다.
"너 뭐해?"
"나 운동장 뛰려고. 같이 갈래?"
"아아니~"
졸음이 가득한 눈으로 그 친구를 신기한 듯 쳐다봤던 나는 안 그래도 피곤한데 운동장을 뛰겠다는 친구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뛸 시간 있으면 잠을 자지. 쯧쯧 하는 마음으로 나는 눈을 감고 잠이 들었다. 그런데 운동을 좋아하는 것도 아니면서 왜 이렇게 하루도 안 빼먹고 뛰러 나가는 걸까? 하는 나의 의문은 수능 성적표를 받아든 날 비로소 해소가 되었다.
늘 비슷한 '모고'(모의고사) 점수와 내신점수를 받았던 그 친구와 나의 성적은 수능에서 확실히 갈렸고 그 결정적 차이는 아무래도 그 달리기 때문인 것 같았다. 엉뚱한 데서 이유를 찾은 것 같지만 아니다. 일리가 있는 얘기다.
알고 보니 그 친구는 무려 4남매의 막내였고, 위로는 대입을 차근차근 마친 3명의 언니 오빠들이 있었다. 그 언니 오빠들이 입을 모아 말해준 '슬기로운 고3 생활'의 노하우가 바로 체력을 키우라는 것이었단다.
시간 없는 고3이 어디 가서 체력을 기르겠나. 반신반의하는 심정으로 야자 시간 전 운동장을 뛰었고, 그 시간이 쌓이자 공부할 때 훨씬 더 집중이 잘 되었다는 것. 그렇게 운동의 효과를 체험한 그 친구는 대학교 1학년, 남들은 소개팅에 한참 열 올리고 있을 시기에도 열심히 운동을 배우러 다녔다. 지금은 연락이 끊어졌지만, 모르긴 몰라도 지금쯤 열혈 체력의 40대가 되어 있지 않을까 싶다.
그런 뼈아픈 기억 때문인지 오늘도 나는 아이들에게 운동을 권장하건만, 초등학교 졸업 이후에는 이렇다 할 운동을 하지 못하고 있다. 큰 아이 같은 경우는 스포츠센터에 등록을 하려고 해도 수영이나 탁구를 비롯한 대부분의 종목은 청소년반이 없는 게 현실. 그래서 아예 등록을 포기하게 되었다.
그럼 남은 운동은 강제성이 없는 운동장 뛰기와 줄넘기뿐인데, 이것을 지속적으로 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그러니 어쩌겠나. 운동 안 하는 아이의 저질 체력을 끌어올릴 남은 방법은 영양제일 수밖에.
영양제 싫다는 아이가 웬일로
▲ 무책임한 엄마가 될 수 없다는 비장한 마음으로 오늘도 마음을 다잡고 영양제를 권해 보려는데... ⓒ 최은경
어릴 적 몸이 약해 친정엄마의 애간장을 태웠던 나는 일명 기력을 보충한다는 음식과 약에 나름 일가견이 있긴 하다. 몸만 약했던 것이 아니라 체구도 작았던 나는 우리 엄마의 가장 큰 근심거리였고, 그래서였는지 약을 권하는 엄마의 얼굴에서는 늘 비장함이 흘렀다.
그 때문에 엄마가 나에게 주는 약과 음식들을 대할 때, 쉽게 '노'라고 말할 수가 없었다. 엄마가 그 한 그릇의 무엇을 만들기 위해 밤새 냄새나는 것들을 손질하고 달였을 정성은 차치하고라도, 그것이 나를 건강하게 할 것이라는 엄마의 그 믿음에는 내가 쉽게 거절할 수 없는 힘이 서려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나와 달리 내 아이들은 각종 영양제와 보약들을 거부한다. 사실, 약 먹기 싫은 거야 나도 잘 안다. 건강보충제의 효력을 아는 나도 성인이 된 이후에는 여러 이유를 들며 그것들을 거부했으니까.
그리고 솔직히 말하면, 보양식과 보약을 먹으며 최대한 몸을 사리던 어릴 때와 비교해, 균형 잡힌 식사를 하며 규칙적으로 운동하는 마흔 중반의 지금 컨디션이 더 낫다고 생각한다. 정말이지 건강보충제는 거들 뿐, 진짜 체력 보충은 운동이 제일 낫다는 말이다.
알면서도 할 수 없이 권하게 된다. 운동할 시간도 없고, 운동할 마음도 없는 아이들의 피곤한 얼굴을 보고 있노라면 자연히 그렇게 된다. 엄마의 죄책감을 조금이라도 덜기 위해 나는 뭐라도 줘야 할 것 같은 마음이 생긴다.
혹시나 이런 말에 넘어갈까도 싶어, 비타민계의 에르메스라는 비타민을 권해 보기도 했는데 역시 단박에 거절당하고 말았다. 그런 피로회복제에 의존하는 게 겁난다나 뭐라나. 찾아보니 부작용도 있더라며. 먹다가 안 먹으면 몰려오는 피로함과 무기력함을 감당할 자신이 없다고 말하는 아이에게 딱히 해 줄 말이 없었다. 아무래도 아직 어려서 버틸 만한가 보다, 라고 생각하는 수밖에.
그렇지만 시간 없다고 운동도 못하는데 영양제마저도 안 먹이면 너무 무관심한 엄마 같지 않은가. 무책임한 엄마가 될 수 없다는 비장한 마음으로 오늘도 마음을 다잡고 영양제를 권해 보려는데 아이의 지친 얼굴이 먼저 말을 걸어온다.
"엄마, 나 힘들어서 못살겠어. 엄마가 좋다는 거, 그거 나 먹을래."
어, 나의 정성이 통했나? 하는 반가운 마음도 잠시, 하루 열다섯 시간을 학교에서 보내는 딸의 지친 말에 나는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르겠다. 진짜 이 영양제가 마법의 힘이라도 발휘해서 우리 딸 기운이 펄펄 나는 걸 볼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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