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시민은 기자다

80대 엄마가 쓴 '육아 노트', 울컥한 딸이 다짐한 일

유머와 여유, 귀여움이 있는 노인의 일상... '여자 둘이 늙어가고 있습니다'를 쓰고 알게 된 것들

등록|2022.04.27 07:49 수정|2022.04.27 08:02
80대 엄마와 산 지 4년, 서로 늙어감을 이해하게 된 엄마와 딸의 이야기. 그리고 비혼인 50대 여성의 노년 준비를 씁니다.[편집자말]
사람은 강아지와 눈을 마주치기만 해도 행복 호르몬인 옥시토신이 분비된다고 한다. 강아지를 안고 있으면 옥시토신이 300%나 증가한다고 한다. 그뿐만이 아니다. 반려견을 키우면 심장마비와 뇌졸중 발병을 낮출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오기도 했고, 반려동물을 키우면 대인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나 우울증을 감소시킬 수 있다고 한다. 나의 경험이 전부는 아니겠지만, 나도 이 연구결과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내가 우겨서 키우게 된 강아지
 

▲ 알고 보니 엄마는 매일매일 밝힘이의 활동을 기록하고 있었다. ⓒ 고정미


우리집은 동물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분위기였다. 내가 어렸을 때에는 닭을 풀어놓고 키우는 집도 있었는데, 그때 닭들에 쫓겼던 경험이 있어 지금도 너무 무섭다. 고양이가 스윽 다가오는 것에도 깜짝깜짝 놀라곤 했다. 강아지도 무서워서 저 멀리서 강아지가 보이면 내가 먼저 피하기 일쑤였다.

그랬던 내가 강아지를 키우고 싶다는 마음이 든 건 갱년기를 지나면서다. 몸도 마음도 너무 힘들던 그때, 나 아닌 다른 존재를 보살피며 환기를 시키고 싶었다. 가족들의 동의가 필요했기에 넌지시 말을 꺼냈지만, 엄마의 거센 반대에 부딪혔다.

일단 돈도 많이 들고, 먼저 보내는 게 마음이 아프다는 이유였다. 그렇게 포기와 도전 사이를 반복하다가 하루는 내가 너무 힘들어 보였는지 엄마가 허락을 하셨다. 반려견을 만나기 전까지 공부도 열심히 했다. 그렇게 3년 전,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우리를 행복하게 해주는 반려견 밝힘이를 만났다.

분명 내가 우겨서 키우게 된 거였는데, 엄마는 마지 못해 허락을 한 것인데, 어찌된 일인지 엄마가 이 강아지에게 푹 빠져버렸다. '밝고 힘차게'라는 뜻의 밝힘이라는 이름도 엄마가 지어주었다.

밝힘이를 돌보는 것이 일상의 즐거운 자극이 된 엄마는 어느 날부터인가 노트에 무언가를 쓰기 시작했다. 뭐냐고 물으니 '육아 노트'란다. 알고 보니 엄마는 매일매일 밝힘이의 활동을 기록하고 있었다. 엄마가 잠들고 그 노트를 펴본 나는 난 눈물이 왈칵 나왔다.
 
"복덩이 밝힘이 이틀째 되는 날. 낯선 집에 와서 아직 적응이 안 되는 것 같다. 밝힘아. 할머니, 삼촌, 엄마가 사랑을 많이 줄게. 무럭무럭 건강하게 자라다오."

"오늘은 밝힘이가 기분이 좋은가보다. 깡충깡충 뛰면서 잘 논다."

"밝힘이가 힘이 없는 것 같다. 밤새 울타리를 탈출하려고 힘을 많이 쓴 것 같다. 애미가 병원에 데리고 갔다. 아무 일 없다. 와서도 저도 지쳤는지 오래 잤다. 오늘은 장난도 잘 치고 오래오래 놀다가 잠자러 들어간다. 귀여운 밝힘. 예쁘다."

"오후 늦게 행동이 이상했다. 자꾸 자리에 가서 눕는다. 결국 9시 30분쯤, 설사를 찍찍 한다. 두 번씩이나. 병원으로 둘이서 달려갔다. 검사 결과 장염이라고 주사 맞고 약먹으면 괜찮을 거라고 한다. 가슴이 덜컥. 밝힘이가 활발해졌다. 설사한 거라 회복이 빨리 되지는 않은 것인지 조금 그렇다."

"오늘은 삼촌이 하루종일 밝힘이와 같이 놀아주었다. 외출해서 오니까 반갑게 쳐다본다. 귀여운 것. 힘이 넘친다. 명랑하고 씩씩하다. 뛰는 것 보면 운동선수가 되려나 하고 웃는다. 점프를 잘한다."
 

▲ 엄마가 쓴 육아 노트. ⓒ 신소영


강아지를 향한 엄마의 마음과 시선이 너무 따뜻하고 애틋했다. 강아지 육아 일기를 보면서 동시에 나의 아기 시절은 어떠했을까 하고 궁금해졌다. 그때 엄마는 우리를 위한 육아 일기를 쓰지 못하셨지만, 분명 비슷한 마음으로 우리를 보고, 키우지 않았을까.

50대 딸이 쓰는 엄마와의 동거일기
 

▲ 엄마가 쓴 밝힘이 육아 노트. ⓒ 신소영


엄마는 비록 우리의 육아일기는 쓰지 못했지만, 나는 엄마를 위해 기록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간병일기라면 조금 무거웠을 텐데, 다행히 이제 보호자가 된 딸과 누군가를 의지할 수밖에 없게 된 엄마가 살아가는 이야기를 쓸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내가 50이 넘도록 엄마와 둘이 같이 살 수 있었던 덕분에 얻게 된 특별한 기회라 생각한다. 심심하고 단조로운 일상이지만, 규칙적이고 단정하고 다정한 엄마의 소박한 일상을 관찰하고, 응답하고, 쓸 수 있었으니 말이다.

노인의 일상은 아이의 일상만큼 주목받기 어렵다. 유쾌하지도 재밌지도 않으니 당연하다. 그러나 분명 노인의 일상에도 유머와 여유, 귀여움이 존재한다. 나이 들어가는 엄마에게서 그런 것들을 발견할 수 있어서 좋았고, 내가 잊어버리기 전에 생생하게 기록하며 오래 기억하고 싶었다.

기록한 것은 내 것이 된다고 하지 않던가. 글을 쓰는 것이 다시 한번 내 인생과 내 인생에 들어온 사건을 한 발 떨어져서 객관적으로 보며 해석할 수 있고, 그러면서 좀 더 나은 사람이 되고자 하는 원동력이 된다는 것을 경험으로 알고 있다.

엄마와의 일상을 쓰겠다고 결심한 이유도 그 때문이다. 글을 쓰면서 좀 더 엄마를 이전보다 세밀하게 관찰할 수 있었고, 이전에는 이해하지 못해 짜증을 냈던 것들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으며, 내가 엄마를 어떻게 돕고 질문해야 하는지 배울 수 있었다.

지난해 10월 13일부터 연재한 '여자 둘이 늙어가고 있습니다'는 엄마와 내가 서로를 돌보며 쓰는 기록이자, 점점 사그라드는 엄마를 남기기 위한 흔적이기도 하다. 글을 쓰는 동안 생각했다. 이런 흔적 하나쯤은 모두 필요하지 않을까. 또 다른 육아일기처럼 말이다.
덧붙이는 글 - 지금까지 '여자 둘이 늙어가고 있습니다'를 읽어주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원문 기사 보기

주요기사

오마이뉴스를 다양한 채널로 만나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