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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세대 인권변호사' 한승헌 전 감사원장 별세

민청학련·동백림 간첩단 사건 등 변론... DJ 내란음모 사건 공범으로 투옥도

등록|2022.04.21 09:18 수정|2022.04.21 09:18

▲ 군사정권 시절 수많은 양심수와 시국 사범을 변호하며 '1세대 인권변호사'로 불렸던 한승헌 변호사가 20일 별세했다. 향년 88세. ⓒ 연합뉴스


군사정권 시절 수많은 양심수와 시국 사범을 변호하며 '1세대 인권변호사'로 불렸던 한승헌 변호사가 20일 별세했다. 향년 88세.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관계자는 이날 "민변의 원로회원인 한 변호사가 작고했다"고 밝혔다.

고인은 1957년 고등고시 사법과(8회)에 합격한 뒤 법무관을 거쳐 1960년 법무부·서울지검 검사로 법조계에 입문했다. 군사정권 시절 인권변호사로서 여러 시국사건의 변호를 맡아 국민의 기본권 보장을 위해 헌신했다. '민청학련', '동백림 간첩단' 사건과 김지하 시인의 '오적' 필화사건을 변론하는 등 '시국사건 1호 변호사'로 꼽힌다.

1975년 '유럽 간첩단 사건'으로 사형당한 김규남 의원(1929∼1972)의 죽음을 애도하는 '어떤 조사(弔辭)'를 기고했다는 이유로 구속됐다가 징역형의 집행유예를 선고받았지만, 재심 끝에 2017년 무죄 판결을 선고받았다. '어떤 조사' 필화 사건으로 구속됐을 당시 그의 변론을 맡았던 1차 변호인단만 104명이었고, 최종 변호인단에는 129명이 이름을 올려 화제가 되기도 했다.

고인은 또 1980년 김대중 전 대통령의 내란음모 사건 당시 공범으로 몰려 투옥되기도 했으며 1986년 홍성우·조영래 변호사 등과 '정의실현 법조인회'(정법회)를 결성했다. 정법회는 1988년 설립된 민변의 전신이다. 이후 김대중 정부 때인 1998∼1999년 감사원장을 지낸 뒤 노무현 정부 때는 사법제도 개혁추진위원장을 맡았고,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 당시 대리인단에 소속됐다.

문재인 대통령이 대선 후보였던 시절에는 선거 캠프 통합정부 자문위원장으로 활동했다. 이 밖에 한국기자협회 법률고문과 한겨레신문 창간위원장, 헌법재판소 자문위원, 관훈클럽 고문변호사 등을 역임했다.

고인은 국민의 기본권 보장을 위해 헌신하고 사법개혁과 사법부의 탈권위화를 위해 노력한 공로를 인정받아 2018년 사법부 70주년 기념행사에서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수상했다.

여러 차례 시집을 펴내는 등 문학과도 인연이 깊었다. 전북대 학보사 기자 시절부터 지면에 시를 수록한 고인은 검사로 일하던 1961년 첫 시집 '인간귀향'을 냈고 공직에서 물러나 변호사 활동을 하던 1967년 두 번째 시집 '노숙'을 냈다. 이어 2016년에는 세 번째 시집 '하얀 목소리'를 발표했다.

고인의 저술은 시집을 펴내는 데 그치지 않았다. 변호사로서 경험한 시대를 기록하는 수고를 아끼지 않았다. 변호사로 일하던 2009년 고인은 자신이 맡았던 시국사건들을 술회한 '한 변호사의 고백과 증언'을 펴내며 "변호사에게는 역사의 기록자로서도 책무가 있다"고 말했다.

2013년에도 에세이 모음집 '피고인이 된 변호사'를 펴내며 "과거에 눈 감는 사람은 현재에 대해서도 맹목이 된다"고 말해 귀감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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