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원님, 이제 그만 이 모욕을 멈추어 주십시오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에게 보내는 성소수자의 편지] 평등에 합류하라, 차별금지법 제정하라
첫 발의 후 15년이 지난 오늘날, 여전히 차별금지법은 제정되지 않았다. 그 사이 차별과 혐오선동을 이용하거나 방치해 온 정치는 한국사회 민주주의를 후퇴시켰다. 차별금지법제정연대의 국회 앞 평등텐트촌 농성과 미류(인권운동사랑방), 종걸(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 두 인권활동가의 단식에도 불구하고, 더불어민주당은 차별금지법을 당론으로 채택하지 않고, 여러 핑계를 앞세워 평등을 미루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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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차별금지법의 4월 제정을 간절히 바라는 마음으로, 차별금지법을 반대하는 세력의 폭언을 제일 앞에서 맞아야만 하는 성소수자들이 더불어민주당의 책임과 역할을 요구하기 위해 4월 21일부터 법안 공포가 가능한 5월 2일까지 매일 한 명씩 공개적으로 편지를 적어 보낸다.[기자말]
▲ 이덕현 ⓒ 차별금지법제정연대
박홍근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윤호중 더불어민주당 공동비상대책위원장, 박광온 법제사법위원장께.
안녕하세요. 의원님.
그건 내가 남성에게 성적으로 끌린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과는 다른 것이었습니다. 저는 앞으로 보통 사람들처럼 살 수 없을 거라는 걸 받아들여야만 했죠. 평범하게 결혼하고 자식을 낳고 살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언제나 나를 숨겨야 하고, 이상한 사람 취급받으면서 살아야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조차도 나를 역겨워할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평생 혼자가 될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다행히도 성소수자 커뮤니티를 만날 수 있었고, 게이로서의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주는 페미니스트 친구들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자신을 긍정하게 되면서 주변 사람들에게도 커밍아웃하기 시작했죠. 그러다가 2007년 보수기독교의 항의로 차별금지 사유에서 성적지향을 빼려고 한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혐오의 바다를 열심히 헤엄쳐 나온 것 같은데, 다시 그 한 가운데에 던져진 것 같았습니다. 내가 나왔다고 생각한 것이 얼마나 큰 착각이었는지 국가가 비웃는 것 같았습니다.
그때 사람들이 모여 차별금지법 상황을 공유하고 무엇을 할 건지 이야기하는 '긴급 번개'라는 걸 했었습니다. 나와 같이 분노하는 사람들이 그렇게 많다는 것이 좋았습니다. 어떤 목사님이 보수기독교를 대신해 사과했었는데, 그분 잘못도 아닌 데라고 생각하면서도 눈물이 났습니다. 위로가 되었던 것 같아요. 긴급 번개 이후로 기자회견 퍼포먼스 준비도 하고 사람들과 팀을 꾸려 문화제 기획도 준비했습니다. 청와대 앞에서 일인시위도 했었죠. 결국, 차별금지법은 만들어지지 못했고, 지금껏 여러 차례 발의되었지만, 국회에서는 제대로 논의조차 되지 못했습니다.
▲ 2007년 차별금지법 대응 및 성소수자 혐오, 차별 저지를 위한 긴급 공동행동 ⓒ 차별금지법제정연대
그 후 저는 더 이상 성정체성을 숨기지 않기로 결정했습니다. 너무 당연하게 나를 이성애자로 대하는 사람들에게 "나는 게이"라고 말해줍니다. 차별당할지 안 당할지 모르지만, 차별받을 게 두려워 억지로 거짓말을 하지는 않기로 했습니다. 이런 선택조차도, 운이 좋게도, 내가 나로서 살 수 있는 공간이 어느 정도는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겠지요.
종종 미래에 대해 생각할 때도 이러한 결정이 영향을 미치는 것 같습니다. 다른 직장으로 옮기게 될 때, 동성애자라는 이유로 차별과 혐오를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이 머릿속을 떠난 적이 없습니다. 불이익을 받는 상황에 맞닥트리게 되면, 내가 성소수자라서 그런 건지 아닌지 항상 고민하게 될 테고, 명확한 증거가 있더라도 싸우기 시작하면 잃는 게 더 많아질 수 있겠죠. 참으면 속이 썩고 아플 테고요. 그런 두려움들이 알게 모르게 나를 더 가두고 있는 건지도 모릅니다.
차별금지법이 있다면 그래도 문제가 생겼을 때, 어떻게든 해볼 게 있다는 안정감이 생기지 않을까요. 최소한 국가가 이러한 차별은 방관하지 않을거라는 믿음이 생기지 않을까요. 어떤 사람들은 차별금지법을 가지고 더 잘 싸워서 좀 더 좋은 세상을 만들지 않을까요.
차별금지법 제정이 번번이 무산된 지난 15년간의 과정이 저에게는 모욕적이었습니다. 말도 안 되는 가짜 뉴스와 혐오 발언은 '의견'으로 존중되었고, 국회의원들은 이들의 표를 의식해 차별금지법 제정을 모른 척했습니다. 반복되는 이 상황이 저에게는 "너는 차별당해도 상관없어"라고 말하는 것과 같았습니다. 이런 모욕적인 말을 듣고서도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정말 차별당해도 괜찮은 사람이 되어버릴까 봐 두려웠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이렇게 편지를 쓰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의원님, 이제 그만 이 모욕을 멈추어 주십시오.
차별금지법을 제정합시다.
2022.4. 26. 이덕현 드림.
▲ 2022. 4. 16. 무지개행동 주관 차별금지법 제정 문화제 ⓒ 차별금지법제정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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