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통 농협 앞에서 춤춘 날, 그는 눈을 떼지 못했다
[암과 함께 춤을] 처음 춤과 만나던 순간... 춤에서 느낀 '이완'과 '연결'의 감각들
30대 암환자가 되고 나서야 제 삶을 더 사랑하게 됐습니다. 반려자의 보살핌 덕에 더 너그러워졌고, 치료 과정 중 느낀 점을 춤으로 표현하며 밝아졌고, 삶의 깊이를 더해가고 있습니다. 나를 살리는 춤 이야기를 나누고자 합니다.[기자말]
사랑이 시작되는 순간을 정확하게 기억하긴 어렵다. 다만 어렴풋이 그릴 순 있다. 홀린 것처럼 빠져든 시간과 공간 그리고 그때 함께한 나와 그대. 사랑처럼, 춤도 그렇게 만났다.
▲ 최보결의 커뮤니티댄스, 도시의 노마드 공연무용비전공자가 대부분인 도시의 노마드 팀원들이 2017년 광화문 세종대로에서 시민들과 함께 공연 중이다. ⓒ 곽승희
단조롭게 반복되는 음악과 가사에 맞춰, 하얀 옷의 그들도 단순한 동작을 반복했다. 걷고, 땅바닥에 손을 대고, 그 손을 다시 가슴에, 한 바퀴 몸을 돌렸다. 그 다음엔 다시 옆 사람과 손을 잡고 걷기 시작. 일고여덟 발자국 정도 움직인 후 두 손을 땅바닥부터 하늘까지 쓸어 올리는, 그리고 다시 걷는.
세종대로 양쪽 건물이 뿜어내는 불빛에, 춤추는 이들의 표정이 드러났다. 이완된 얼굴, 평화로운 미소. 이들은 주변의 구경꾼들에게 손을 내밀었다.
원은 조금씩 계속 넓어져 갔다. 나 같은 사람들이 원 대열로 끊이지 않고 들어왔다. 다음 노래는 내가 아는 곡이었다. 그런데 속도나 곡조는 낯설었다. 빠르고 경쾌한 템포의 <임을 위한 행진곡>이 흘러나왔다.
흰옷 입은 사람들이 춤 추기 시작했다. 다만 앞선 원의 춤처럼 같은 동작을 반복하지 않았다. 각자 움직이다가, 신나게 움직이다가, 느리게 움직이다가, 함께 얽히고설키며 교감했다.
춤이라고 하기엔 자유롭고, 막춤이라 하기엔 아름다웠다. 나도 그들처럼 팔다리를 흔들었다. 등 뒤 백팩의 무게감에 불편했지만 멈추고 싶지 않았다.
▲ 사랑처럼, 춤도 그렇게 만났다. ⓒ unsplash
음악이 끝났다. 공연인지 행사인지 무엇인지 정체를 알 수 없는 시간이 멈추자, 춤추는 이들은 사라졌다. 세종대로는 바쁜 보행자들이 다시 점령했다. 그 속에서 되물었다. 조금 전까지 내가 뭘 한 거지?
이런 춤이 있구나. 그러고 보니 나도 그 사람들과 함께 춤을 췄다. 그것도 즐겁고 신나게. 아니, 내가 춤을? 몸치인 내가?
그로부터 몇 년 후, 6개월 정도 이 춤(힐링커뮤니티댄스)을 배우며 깊이 빠져들어 갔지만 사정이 생기며 춤과는 다시 멀어졌다. 그리고 다시 몇 년 후, 나는 암환자가 됐다.
'이완'의 감각을 알게 해준 춤
지금에 이르러 춤이라는 끌림은 내 몸을 돌보는 일상이자, 다른 몸들과 함께 아름다움을 창조하고 싶은 꿈의 씨앗으로 자라났다. '암' 덕분이다.
암의 등 떠밂에 힘입어 아침마다 내 몸과 춤추는 시간을 갖는다. 방바닥에 등을 대고 천장을 향해 눕는다. 양팔과 두 다리를 길게 뻗은 후 무릎과 고관절, 골반을 이완한다.
오른 무릎과 허벅지에 왼 무릎과 허벅지를 기대고, 몸 전체를 바닥에 내맡긴다. 왼쪽 세 번째 손가락 끝에 연필심을 달아 바닥에 원을 그린다는 상상으로, 움직이기 시작한다. 이 동작(movement)의 이름은 '원리츄얼(one ritual)'이다.
바닥에 원을 그리며 내 몸, 뼈와 근막과 근육과 마음의 상태를 파악할 수 있다. 암 진단 직후에는 원리츄얼을 제대로 끝맺을 수 없었다. 복잡한 생각과 쌓였던 긴장에 몸이 제각각 놀았기 때문이다.
'춤추는 암환자'로서 스트레스 대신 이완된 몸 상태를 유지하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스트레스 호르몬은 휴면 암세포를 자극하고, 쌓인 스트레스는 근육을 딱딱하게 긴장시킨다. 이래서는 건강하게 살기도, 춤을 출 수도 없다.
원리츄얼을 다시 시작한 지 10개월이 조금 넘어간다. 이제 바닥에 원을 그리고, 골반을 오픈하고, 고관절을 바닥에 내맡기고, 자리에서 일어서는 과정들이 많이 편해졌다. 이완을 통해 내 몸이 회복되고 있음을 느낀다. 춤을 추는 일도 조금씩 늘려가는 중이다.
이렇게, 춤을 추며 산다
▲ 힐링커뮤니티댄스 공연 <soul of peace>지난 3월 서울 목3동깨비시장에서 열린 <목동워커스영화제> 개막식 축하 공연에 나선 춤의학교(대표 최보결) 춤꾼들. 나는 왼쪽에서 두 번째로 서있다. ⓒ 곽승희
지난 3월에는 과거 광장에서 만난 춤(<soul of peace>, <평화의 춤> 등)을 동료들과 시장통에서 공연했다. 지나가는 사람들로 빽빽한 서울 시내의 한 시장 공터, 그중 누군가가 발걸음을 멈추고 나에게 집중했다. 그의 시선을 느끼며, 동시에 내 춤을 추며, 신기한 감정에 휩싸였다.
나는 그저 교감했을 뿐이다. 내가 서 있는 아스팔트 바닥 위에서, 바람이 스쳐 지나가는 맑은 하늘 아래에서. 친근하게 느껴지는 가게 간판과 가게 안의 상인들과 지나가다 멈춘 구경꾼들과 관계 맺고 있을 뿐이다. 때로는 느리게 때로는 빠르게 움직이면서. 그런 나에게 누군가는 눈을 떼지 못했다.
▲ 힐링커뮤니티댄스 공연 <soul of peace>지난 3월 서울 목3동깨비시장에서 열린 <목동워커스영화제> 개막식 축하 공연에 나선 춤의학교(대표 최보결) 춤꾼들. ⓒ 곽승희
나의 몰입과 창조가 낯선 타인에게 전해졌다. 반대로 그가 감동하는 모습도 나에게 전해졌다. 이 모든 과정이 또 다른 춤이자 예술처럼 느껴졌다. 물론 오랜 시간 춤을 추거나 무용을 전공한 이들의 관점과는 다를 수도 있다.
그저 이완된 몸으로 느끼고, 느낌대로 움직이고, 움직임의 길 위에서 마주한 누군가와 관계 맺고, 하루하루 살아간다. 사랑하고 호흡하고 춤을 춘다. 춤을 추며 산다.
덧붙이는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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