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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발길이 만든 지름길, 그사이 이어진 두 마을

[골목에서 만난 사람들 2] 골목 없는 두 마을, 용인 남사 아곡로와 한숲로

등록|2022.04.29 14:42 수정|2022.04.29 14:42
골목은 공간적 가치를 이동하는 데 사용되는 길이다. 정서적 가치는 단지 이동수단에 머물지 않는다. 이웃에 모이고 또 흩어지며 겪는 생사고락이 고스란히 녹아 있는 공간이기도 하다.

하지만 골목의 규격이나 길이 등은 천차만별이다. 어떤 규정도 없다는 말이다. 때문에 골목을 세부적으로 형상화시켜 설명하는 것은 꽤 어려운 부분이다. 예를 든다면 폭은 어느 정도여야 하며, 주변에는 어떤 것이 있어야 한다 등등 획일화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마을 특성에 맞춰 때로는 인위적으로 또 자연적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주변보다 급격히 인구가 늘어난 마을길

처인구는 기흥구나 수지구와는 다른 특성이 많은 행정구역임이 틀림없다. 그중에서 최근 3년간 인구가 가장 많이 증가한 마을이 있다. 남사읍이다. 2019년 이후 3년여간 2300명이 늘었다. 주변 지역 상당수가 줄거나 정체된 것과 비교하면 분명한 변화를 직감할 수 있다.

이 기세에 맞춰 지난해 2월 남사면은 읍으로 승격했다. 인구 유입 이유는 확실하다.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들어섰기 때문이다. 그렇게 남사읍은 긴 세월을 보낸 마을과 고층아파트 단지가 공존하게 됐다.
 

▲ 농촌마을 골목에서 보이는 풍경(왼쪽)과 한숲로 고층 아파트에서 내려 보이는 풍경에 극명한 차이가 난다. ⓒ 용인시민신문


처인구 남사면 아곡리, 도로이름으로 하면 아곡로다. 인근에 최근 지어진 아파트 단지는 한숲로로 구분된다. 아주 정돈이 잘된 2차선 도로를 사이에 두고 마을은 갈라진다. 꾸미기를 마친 처인성으로 가는 길목에 50여 채 정도 되는 마을과 15층을 훌쩍 넘는 고층 건물이 꽉 차 있다.

발길을 주택이 듬성듬성 있는 마을로 먼저 향했다. 한창 바삐 움직여야 할 출‧퇴근, 등‧하교 시간이 지나서인지 한적했다. 마을에서 가장 이동이 많은 한길 근처로 가니 이동보조수단에 의지한 노파와 집 텃밭 농작물을 손보고 있는 권오형(84)씨를 만날 수 있었다.
 

▲ 농촌마을 집으로 들어가는 흙길. 봄을 맞아 주변은 마치 한 폭의 풍경화를 볼 수 있는 화랑으로 변했다. ⓒ 용인시민신문


이 마을에서만 80년째 살고 있다는 권오형씨는 마을에 그럴듯한 골목을 찾기 쉽지 않다는 말에 명쾌한 이유를 설명했다. 골목이 필요 없기 때문이란다. 그러고 보니 집과 집은 도심지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넓다.

그렇다 보니 골목이라고 정형화할만한 길은 없었다. 눈길을 돌려 다시 확인하니 앞마당과 농경지가 집과 집을 구했다. 도시에서 도로나 골목으로 주택이 구분된 것과는 많이 달랐다.

그렇다고 골목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집으로 들어가는 흙길과 차 한 대가 간신히 다닐 수 있는 마을에서는 나름 폭넓은 길도 있다.

넓은 공간 흐르는 미세혈관 같은 길

마을을 훑어보는 데 걸린 시간은 고작해야 30여 분 남짓. 앞만 보며 큰길 중심으로 걷는 데 걸린 시간이다. 아쉬운 마음에 왔던 길을 되돌아 반복해 걸었다. 집과 집 사이 빈 공간까지 꼼꼼하게 보니 처음에는 보이지 않던 것이 하나둘 보였다.

반백 년에 가까운 세월을 견딘 어느 집 벽과 대문, 마당으로 연결된 공간에는 가축우리도 있다. 400년을 훨씬 넘긴 보호수가 집 앞마당에 버젓이 서 있는 모습이 생뚱맞기까지 하다. 구멍가게 하나 없는 마을이라 사람이 모일만한 공간은 전혀 찾기 힘들었다. 유일하게 '아곡 경로당'이란 사랑방이 있었지만 아쉽게도 텅 비어 있었다.
 

▲ 마을길에서 만날 수 있는 오래된 벽도 원래 색을 모두 잃었다. ⓒ 용인시민신문


도랑을 가로지르는 돌다리 위에서 먼발치를 살펴보니 아주 정돈 잘 된 길이 보인다. 그 길 끝은 경기도 기념물 처인성이다. 처인성의 시대적 배경이 고려시대임을 감안하면 50여 집이 모여 있는 인근 마을 역사가 어렵지 않게 짐작된다.

마을에서 처인성으로 이어진 길에서 네다섯 명의 사람을 만났다. 20대 자매뿐 아니라 모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계층이었다. 반갑게 마을 주민인지 물으니 아니란다. 대부분 인근에 있는 아파트 단지에서 산보 삼아 나섰단다.

그들이 가는 길을 따라나섰다. 보호수를 지나치고, 어느 집 안마당으로 들어가는 흙길도 지나쳤다. 그리고 도착한 곳은 하늘이 제대로 보이지 않을 만큼 시야가 가로막힌 아파트 밀집 지역. 걸어 10분 채 되지 않았지만, 풍경이 확실히 변했다.
 

▲ 처인성으로 가는 길은 주민들의 인기 산책로가 됐다. 아곡로 농촌마을과 한숲로 대규모 아파트 단지 주민들이 만나지는 공간이기도 하다. ⓒ 용인시민신문


여기 골목은 없다. 길에는 사람도 없다

반려견과 함께 산책길에 나섰다는 김미애(36)씨는 2019년 한숲로 아파트에 이사 왔다. 평소 지인들과 처인성까지 산책을 자주 다니지만 인근 마을에 대한 관심은 크게 없어 보인다. 주변 골목에 대해서도 잘 모른다. 그냥 다니던 길만 습관처럼 이용한단다. 오래된 마을과 아파트 단지 간에 공통점을 찾기는 쉽지 않다.

그럼에도 닮은꼴이 있다. 골목을 찾기 힘들다는 것이다. 시골 마을은 확 트인 공간에 골목이 굳이 만들어질 필요가 없었다면, 아파트 단지는 골목이 만들어질 공간이 없기 때문이다.

빽빽하게 몰린 아파트 단지와 상가를 한 시간 가량 걸으며 확인하니, 상가를 오가는 짧은 도로가 골목을 대신했다. 그 외 공간이라고 조금 있으면 주차장으로 이용됐다. 하물며 아이들이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 길도 지하 주차장으로 가는 길목이다.

다른 낯선 풍경도 있다. 수천 명이 생활하는 공간이지만 정작 거리에서 사람을 쉽게 만나기 어렵다. 점심시간이 한창 지나서인지 인근에 상가가 즐비하지만, 눈빛을 교환할만한 사람은 드물다.

상가 곳곳에 자리한 커피판매점은 삼삼오오 무리를 지어 대화하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다닐만한 골목이 없으니, 거리에서 사람이 없어진 것인지, 사람들이 만나지 않으니 골목이 사라진 것인지는 모르는 일이다.

김미애씨는 "걷는 것 자체를 시간 내야 하는 상황인데 주변 사람과 길에서 만나는 경우는 거의 없다"라며 "굳이 만난다면 집이나 카페를 이용한다. 아파트 단지에만 커피를 마실 수 있는 가게가 5곳이 넘는다"며 상황을 설명했다.
 

▲ 아파트 단지 내 골목이라고 할 수 있는 길목. 이곳에서 사람을 만나는 것을 그리 쉽지 않다. 반면 상가 곳곳에 자리한 카페 내부는 삼삼오오 모인 사람들로 가득했다. ⓒ 용인시민신문


사람 발길이 만든 지름길, 이어진 두 마을

고층 아파트 테라스에서 내려다본 풍경과 옛 마을 주택 창문이나 앞마당에서 보는 풍경은 확실히 차이가 난다. 그 차이 나는 풍경을 이어주는 또 다른 길이 있다. 공터를 가로지르는 이른바 지름길이다. 한명 두명 발걸음이 쌓여 새로운 길이 만들어진 것이다.

폭 1미터 남짓한 그 길 끝은 아파트 상가가 있으며, 또 다른 끝자락은 들판과 직결된다. 30분가량 그곳을 서성이며 만난 사람은 7명이다. 여느 골목에서 한 시간가량 서 있어야 만날 수 있을 정도와 비슷하다. 지름길을 이용하는 다수는 한숲로에 사는 아파트 주민이다. 일방통행로인 셈이다.

다시 처인성을 업고 모여 사는 옛 마을로 가봤다. 그곳에서 만난 윤 할머니 말에 따르면 마을 주민 중 절반가량은 외지에서 이주했단다. 골목이라는 공간에서 사람을 만나기도 힘들지만 만나더라도 특별히 소통하지 않는단다. 그냥 인사 정도, 그것도 아니면 스쳐 지나는 경우도 많다. 그렇다고 그것이 갈등이나 불협화음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냥 그들만의 공간에서 각자 삶을 사는 것이다.

3년 전부터 이곳에서 생활하고 있다는 60대 부부도 이곳을 찾은 이유는 소통 보다는 오히려 고립에 가까웠다. 그러니 골목이란 공간은 그들에게 큰 의미가 없었다. 그나마 주변 풍경을 감상할 수 있는 갤러리 정도다.

세 시간 정도 아곡로 조용한 농촌마을과 한숲로 대규모 아파트 단지 내 골목을 찾기 위해 이용한 공간은 찻길이며 허름한 농로였다. 이를 골목이라 말하기에 무리가 있지만 굳이 아니라고도 말할 필요가 없어 보인다. 2차선 도로를 가운데 두고 맞닿아 있는 두 마을에는 마땅한 골목을 찾기 힘들기 때문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용인시민신문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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