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교생 4명 중학교, 교사가 호들갑 떠는 까닭
[홍정희의 세상살이] 학생들에게 매일 감탄하며 삽니다
4월 하순. 찰나의 분홍 꽃비가 도시를 휩쓸고 지나간 뒤 못내 벚나무를 떠나지 못한 사람들의 환희가 도처에 남아 있을 그즈음, 이곳 산골 학교엔 드디어 벚꽃이 피었다. 사진 찍자며 전교생을 불러 모은다.
나는 올해 전교생 4명의 강원도 산골 중학교로 전근을 왔다. 두 달 가까이 두메로 출퇴근해 보니 가장 어려운 점은 그야말로 출퇴근이다. 급경사, 급커브길을 매일 오르내리는 일이 꽤나 힘에 부쳐 수시로 "아이고 대다('힘들다'의 사투리)"를 내뱉는다. 그럼에도 나는 3월 내내 아이들에게 이야기했다. 너희들에게 매일 감탄할 예정이니 그리 알라고, 나는 도저히 호들갑을 떨지 않을 수 없다고.
전교생 4명의 우리 학교는 강원도에서도 아주 작은 학교에 속한다. 그나마 5명이었는데 최근에 유일한 여학생이 시내로 전학 가는 바람에 남학생 4명만 남았다. 올해는 신입생이 없고 2학년 3명과 3학년 1명이 있는데 나는 무려 75%에 해당하는 2학년의 담임을 맡았다. 가히 사십 평생 이런 요직을 거머쥔 일은 처음이랄까.
욕을 하지 않는 사춘기 남학생들
이곳에 와서 가장 놀란 점은 사춘기 절정의 남학생들이 핸드폰에 의연하며 욕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개학 첫 주 조회 시간에 우리 반 아이들에게 내 전화번호를 저장하라고 했더니 주섬주섬 가방 안을 뒤지고 앉았고 그마저도 안 가져왔다는 학생도 있다. 원래 핸드폰은 대부분 손에 그대로 들려 있거나, 그나마 조회 시간이라는 상황을 참작하여 나름의 예의를 갖추었다고 해도 호주머니에서 나와야 하는 게 아니던가? 등교하여 핸드폰을 걷어가는 시스템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우리 아이들은 쉬는 시간조차 핸드폰 꺼내 노는 일이 드물다.
어느 날은 아이들의 행태를 유심히 살펴보니 욕이나 비속어도 쓰지 않아 대놓고 물어보았다.
"너네는 욕을 안 하니?"
교사가 학생에게 이리도 비교육적인 질문을 하다니! 허구한 날 학생들에게 "욕을 왜 해?"라든가, "욕 좀 하지 마!" 류의 지도를 해야 하는 도시의 대규모 학교에 있다가 이곳으로 와 보니 욕하지 않는 사춘기들에 놀라 저런 난감한 질문이 나오게 된 것이다.
나는 궁금했다. 선생님 앞에서만 안 하는지, 자기네들끼리 있을 때는 어떤지. 나의 우문에 돌아온 아이들의 현답은 이렇다.
"욕 할 일이 없는데요."
심지어 한 녀석은 어린이집, 초등학교도 항상 같은 반이었던 옆자리 친구를 가리키며 이렇게 말했다.
"선생님, 저는 OO이 욕하는 거 한 번도 본 적 없어요."
나는 감탄하면서도 못내 속세의 티끌이 묻은 2차 질문을 내뱉었다.
"OO아, 너는 속으로도 욕 안 해?"
"속으로는 할 때도 있는데요, 입 밖으로는 안 해요. 그러는 거 별로예요."
아우~멋진 녀석들!
그렇다면 이 아이들은 어떤 하루를 보내는 것일까? 주로 자기네끼리 수다를 떨거나, 빈 교실 이곳저곳을 뒤져 찾아온 퍼즐을 머리 맞대고 하루 종일 하거나, 또 어느 날은 보드게임을 찾아와 희희낙락하고 있다.
학교 운동장 구석에 늘어선 잣나무에서 떨어진 잣송이를 털어 기름지고 뽀얀 속살의 잣 까먹는 일도 소소한 재미가 된다. 요즘엔 고무찰흙으로 음식 미니어처 만들기에 심취해 세심한 손길로 짜장면 면발을 한가닥 한가닥 다듬고 있는 녀석, <아재개그> 책을 옆구리에 끼고서 선생님들께 맞혀보라고 퀴즈 내는 녀석들 덕분에 신록이 짙어지듯 애정과 웃음이 깊어진다.
도시 아이들은 수업이 적은 수요일엔 일찍 하교하는데 여기 아이들은 수업이 6교시에 끝나든, 8교시에 끝나든 4시 40분 스쿨버스가 올 때까지 학교에 있어야 한다. 이 산속에서도 더 들어가야만 집이 있는, 걸어서는 갈 수 없는 아이들이 있기 때문이다. 6교시에 수업이 끝나는 날엔 요즘 음악 시간에 배우고 있는 기타나 우쿨렐레 연습을 자발적으로 더 한다. 나는 우쿨렐레의 몇 가지 코드와 '도레미파솔라시도'를 아이들에게서 배웠다.
5월에는 우리 고기 사먹자!
어떤가! 호들갑을 떨지 않을 수 없다는 내 말은 호들갑이 아니지 않은가? 4월 어느 날 우리 반 아이들과 나는 하굣길에 읍내 유일한 중국음식점에서 짜장면을 사 먹었다. 5월엔 우리 고기 사 먹자고 약속하며 헤어졌는데 그날부터 아이들은 가끔 나를 걱정한다. 선생님 돈 너무 많이 쓰시는 거 아니냐고. 이 기사가 나가면 아이들에게 보여주고 고기 먹으러 가자고 할 것이다. 걱정 말아라, 얘들아. 선생님 원고료 받거든!
덧) 이 기사를 쓰고 있는 오늘, 2022년 4월 29일, 흩날리는 눈발을 와이퍼로 쓱쓱 밀며 출근했다.
나는 올해 전교생 4명의 강원도 산골 중학교로 전근을 왔다. 두 달 가까이 두메로 출퇴근해 보니 가장 어려운 점은 그야말로 출퇴근이다. 급경사, 급커브길을 매일 오르내리는 일이 꽤나 힘에 부쳐 수시로 "아이고 대다('힘들다'의 사투리)"를 내뱉는다. 그럼에도 나는 3월 내내 아이들에게 이야기했다. 너희들에게 매일 감탄할 예정이니 그리 알라고, 나는 도저히 호들갑을 떨지 않을 수 없다고.
욕을 하지 않는 사춘기 남학생들
▲ 방과후 기타 치고 노는 아이들(전교생의 허락을 받아 올리는 사진) ⓒ 홍정희
이곳에 와서 가장 놀란 점은 사춘기 절정의 남학생들이 핸드폰에 의연하며 욕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개학 첫 주 조회 시간에 우리 반 아이들에게 내 전화번호를 저장하라고 했더니 주섬주섬 가방 안을 뒤지고 앉았고 그마저도 안 가져왔다는 학생도 있다. 원래 핸드폰은 대부분 손에 그대로 들려 있거나, 그나마 조회 시간이라는 상황을 참작하여 나름의 예의를 갖추었다고 해도 호주머니에서 나와야 하는 게 아니던가? 등교하여 핸드폰을 걷어가는 시스템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우리 아이들은 쉬는 시간조차 핸드폰 꺼내 노는 일이 드물다.
어느 날은 아이들의 행태를 유심히 살펴보니 욕이나 비속어도 쓰지 않아 대놓고 물어보았다.
"너네는 욕을 안 하니?"
교사가 학생에게 이리도 비교육적인 질문을 하다니! 허구한 날 학생들에게 "욕을 왜 해?"라든가, "욕 좀 하지 마!" 류의 지도를 해야 하는 도시의 대규모 학교에 있다가 이곳으로 와 보니 욕하지 않는 사춘기들에 놀라 저런 난감한 질문이 나오게 된 것이다.
나는 궁금했다. 선생님 앞에서만 안 하는지, 자기네들끼리 있을 때는 어떤지. 나의 우문에 돌아온 아이들의 현답은 이렇다.
"욕 할 일이 없는데요."
심지어 한 녀석은 어린이집, 초등학교도 항상 같은 반이었던 옆자리 친구를 가리키며 이렇게 말했다.
"선생님, 저는 OO이 욕하는 거 한 번도 본 적 없어요."
나는 감탄하면서도 못내 속세의 티끌이 묻은 2차 질문을 내뱉었다.
"OO아, 너는 속으로도 욕 안 해?"
"속으로는 할 때도 있는데요, 입 밖으로는 안 해요. 그러는 거 별로예요."
아우~멋진 녀석들!
그렇다면 이 아이들은 어떤 하루를 보내는 것일까? 주로 자기네끼리 수다를 떨거나, 빈 교실 이곳저곳을 뒤져 찾아온 퍼즐을 머리 맞대고 하루 종일 하거나, 또 어느 날은 보드게임을 찾아와 희희낙락하고 있다.
학교 운동장 구석에 늘어선 잣나무에서 떨어진 잣송이를 털어 기름지고 뽀얀 속살의 잣 까먹는 일도 소소한 재미가 된다. 요즘엔 고무찰흙으로 음식 미니어처 만들기에 심취해 세심한 손길로 짜장면 면발을 한가닥 한가닥 다듬고 있는 녀석, <아재개그> 책을 옆구리에 끼고서 선생님들께 맞혀보라고 퀴즈 내는 녀석들 덕분에 신록이 짙어지듯 애정과 웃음이 깊어진다.
▲ 운동장 잣나무에서 떨어진 잣송이을 털어 전문기기로 뽀얀 속살을 꺼내 먹는다. 잣까는 도구쯤은 흔히 있는 것. ⓒ 홍정희
▲ 손가락 한 마디 만한 음식 미니어처 만들기에 심취해 있는 한 녀석의 작품. 햄버거 패티의 질감을 살리기 위해 찰흙을 섞고 검은 펜으로 콕콕 찍어 그릴에 구운 패티를 만들어 냈다. 옆에 있는 짜장면은 미완성인데 다른 친구가 이건 육개장이라고 놀린다. 빨간 것은 국물이오, 까만 것은 고사리라며. ⓒ 홍정희
도시 아이들은 수업이 적은 수요일엔 일찍 하교하는데 여기 아이들은 수업이 6교시에 끝나든, 8교시에 끝나든 4시 40분 스쿨버스가 올 때까지 학교에 있어야 한다. 이 산속에서도 더 들어가야만 집이 있는, 걸어서는 갈 수 없는 아이들이 있기 때문이다. 6교시에 수업이 끝나는 날엔 요즘 음악 시간에 배우고 있는 기타나 우쿨렐레 연습을 자발적으로 더 한다. 나는 우쿨렐레의 몇 가지 코드와 '도레미파솔라시도'를 아이들에게서 배웠다.
5월에는 우리 고기 사먹자!
▲ 자발적으로 연주하며 노는 틈에 끼어 들어가 아이들에게서 우쿨렐레를 배웠다. ⓒ 홍정희
어떤가! 호들갑을 떨지 않을 수 없다는 내 말은 호들갑이 아니지 않은가? 4월 어느 날 우리 반 아이들과 나는 하굣길에 읍내 유일한 중국음식점에서 짜장면을 사 먹었다. 5월엔 우리 고기 사 먹자고 약속하며 헤어졌는데 그날부터 아이들은 가끔 나를 걱정한다. 선생님 돈 너무 많이 쓰시는 거 아니냐고. 이 기사가 나가면 아이들에게 보여주고 고기 먹으러 가자고 할 것이다. 걱정 말아라, 얘들아. 선생님 원고료 받거든!
덧) 이 기사를 쓰고 있는 오늘, 2022년 4월 29일, 흩날리는 눈발을 와이퍼로 쓱쓱 밀며 출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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