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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통에 염소를 데려가 달라는 여자

모든 인간, 동물, 생명을 파괴하는 전쟁의 기록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

등록|2022.05.02 10:23 수정|2022.05.02 10:23
러시아의 침략으로 인한 우크라이나의 전쟁 상황 속에서 또 가슴을 아프게 하는 것은 반려동물들이 처한 상황이다. 전쟁은 인간만이 아니라 동물들도 상처 받고 굶주리고 죽어가게 만들고 있다.

강제로 이별하게 된 인간과 반려동물의 사연들도 눈물겹다. 러시아의 폭격과 점령 속에 고립된 반려동물들을 구출하고 도우려는 우크라이나 시민들의 조직적 캠페인 소식을 보면서 그 연대의 마음에 많은 것을 느끼게 된다.
 

▲ 책 ⓒ 출판사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로 유명한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는 보통 러시아의 작가로 알려져 있지만, 사실 우크라이나에서 태어나 벨라루스에서 자라났다. 그리고 2차대전에 참전한 '소녀 병사'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담아낸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는 전쟁 속에서 고통받는 인간만이 아니라 동물에 대해서도 다루었다.
 
"폭격이 쏟아지는데 갑자기 염소 한 마리가 우리 쪽으로 뛰어든 거야. 녀석도 우리와 같이 바닥에 엎드렸지. 우리 옆에 엎드려서는 꽥꽥 비명을 질렀어. 폭격이 멈추자 녀석이 우리를 따라오며 우리한테 자꾸 달라붙는 거야. 저도 살아 있는 생명이라고 무서웠던 게지. 마을에 도착하자 우리는 마을 여인에게 염소를 부탁했어. '데려가세요. 불쌍해서요.' 염소를 구해주고 싶었지……"

가장 기억에 남은 부분은 다음 이야기였다. 이 이야기는 인간과 동물이 결국 서로 별로 다르지 않은 소중한 생명이고 서로 공감하며 같이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느끼게 해 준다.
 
"우리 병사들은 물속으로 뛰어들었어. 하지만 강기슭에서 독일군 기관총들이 불을 뿜기 시작했지. 사방에서 비명소리, 신음 소리, 고함소리가 들리는데, 그야말로 아비규환이었어…… 나는 비록 여자지만 수영을 잘했기 때문에 한 사람이라도 구할 수 있으면 구하고 싶었어. 단 한 명이라도…… 갑자기 옆에서 누군가 물위로 떠올랐다 가라앉았다 하는 소리가 들리더라고. 떠올랐다 가라앉고 떠올랐다 가라앉고. 나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그 사람을 힘껏 붙잡았어…… 뭔가 차갑고 미끈한 게 만져지더군…… 부상당한 병사가 틀림없다고 생각했지. 폭발에 옷이 다 찢겨져나간 거라고. 사실 나도 거의 알몸이었거든…… 그 병사를 데리고 간신히 강기슭에 도착했는데…… 마침 하늘에서 신호탄이 터지면서 순간 사방이 환해졌어. 그런데 보니까 내가 데리고 나온 게 사람이 아닌 거야. 글쎄, 상처 입은 커다란 물고기더라니까. 사람 키만큼이나 커다란 물고기. 흰 철갑상어였어…… 죽어가고 있었지…… 나는 녀석 옆에 털썩 주저앉아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어. 어찌나 속상하고 화가 나던지 눈물이 났어…… 이렇게 물고기까지 고통을 당하는 게 너무 속상해서……"

또한, 알렉시예비치가 주목하는 것은 전쟁에서 벌어지는 것은 결국 살인, 살상이고 그것은 우리 모두의 영혼을 파괴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전쟁에서 어느 편에서 있든 마찬가지다.
 
"결국 그를 쏘기로 마음먹었지. 그래서 마음을 다지는데,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드는 거야. '사람이잖아. 비록 적이지만 저자도 사람이야.' 그러자 손이 덜덜 떨리고, 온몸에 전율이 흐르면서 오한이 나기 시작했어. … 맞히고 나니까 총을 쏘기 전보다 더 떨리고, '내가 사람을 죽였다'는 공포가 밀려들었어. 하지만 나는 곧 그 일에 익숙해져야만 했지. 그래…… 한마디로 끔찍했어! 결코 못 잊을 거야…"

서로를 증오하며 총부리를 겨누고 죽고 죽이고 있지만, 결국은 모두가 같은 사람이고 원래부터 '적'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그것은 지독한 증오와 적대의 시간을 지나서 고통의 시간 속에서 깨달을 수 있는 진실이다.
 
"우리 병실에 부상병 둘이 있었어…… 독일군 병사와 온몸에 화상을 입은 우리 전차병이었지. 그들을 살피러 갔어.
—좀 어때요?
—난 좋아요.
우리 전차병이 대답했어.
—하지만 저 친구는 안 좋은 거 같아요.
—저 사람은 파시스트인데……
—아니, 나는 괜찮다니까요. 저 친구가 안 좋지.
그들은 이미 적이 아니었어. 그저 사람들, 부상당해 옆에 나란히 누운 사람들이었지."

알렉시예비치는 이 작품을 시작하면서부터 자신은 "위대한 승리"가 아니라 "하찮은 이야기"를 하고 싶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 작품을 읽다보면 그 '하찮은' 이야기들이 가장 소중하고 중요한 이야기라는 것을 알게 된다.

반면에 어디서든 '위대한 승리의 이야기'를 강요하는 세력과 구조가 있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가 끝없이 서로를 증오하고 적대하도록 만든다. 그래서 전쟁이 다 끝나고, 다시 새로운 세상이 다가올 것이라는 희망을 가졌지만, 그것은 현실이 되지 못했다는 고백을 보면서 그 커다란 좌절감을 공감하게 된다.
 
"전쟁터에서 무슨 생각을 했는지 알아, 우리가? 우리는 그랬어. '아, 끝까지 살아남기만 한다면… 전쟁이 끝나면 사람들은 얼마나 행복해할까! 아, 얼마나 멋지고 아름다운 인생이 펼쳐질까! 이처럼 처절한 고통을 이겨냈으니 이제 사람들도 서로 가엾게 여기겠지. 서로 사랑할 거야. 달라질 거야.' 정말 그렇게 생각했다니까. 철석같이 믿었지. 하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서로 미워해. 다시 서로를 죽이고. 나는 그게 제일 이해가 안 돼……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 우리는… 우리는 도저히 그게…"

우리가 서로를 가엾게 여기고, 서로 사랑하고, 함께 행복해지기 위해서 달라지려는 것을 가로막는 세력과 구조, 그것이 지금 푸틴이 일으킨 침략 전쟁에서도 작동하고 있다.

푸틴이 일으킨 또 다른 전쟁인 체첸(러시아 남서부에 있는 공화국) 전쟁을 다룬 영화 <더 서치>를 보면, 그 작동방식이 나온다. 거기서 평범하고 순진한 한 러시아 청년은 군대로 끌려가서 학대를 당하고 살인을 배운다. 그리고 체첸으로 가서 자신이 겪은 모든 억압과 폭력을 가장 파괴적인 방식으로 분출한다.

우리는 이 모든 전쟁과 폭력과 학대와 억압에 정면으로 맞서야 한다. 지난 몇 년간에 나온 가장 빼어난 반전영화 중에 하나였던 <1917>의 마지막 장면이 기억난다. 모든 병사들이 진군 명령에 따라서 총을 들고 앞으로 달려가는 속에 주인공 병사는 공격을 멈추라는 명령서를 전달하기 위해 그 거대한 대열을 거꾸로 가로지르며 필사적으로 달려간다.

모든 생명체를 가엾게 여기고, 사랑하고, 함께 행복해지기 위한 필사적인 투쟁은 계속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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