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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라고나, 역사와 사람을 기억하는 여행

[코로나 시대, 스페인 여행기 3] 타라고나 원형경기장과 대성당

등록|2022.05.09 09:32 수정|2022.05.09 09:36
2022년 4월 7일 스페인의 바르셀로나에서 여행 사흘째, 오늘은 세 동생들과 함께 바르셀로나 근교 도시인 타라고나에 가 보기로 했다. 타라고나에 가려면 산츠역에서 기차를 타야 한다. 바르셀로나의 산츠역은 지하철역뿐만 아니라 마드리드나 그라나다, 프랑스 파리도 가는 카탈루냐 지방 최대의 기차역이다.

우리가 가고자 하는 타라고나는 산츠역에서 1시간 10여 분 걸리는 비교적 가까운 거리여서 예매가 필요 없었고 좌석도 정해지지 않은 자유석이었다. 기차를 타려면 티켓 발권기나 매표소를 이용하면 되는데 타라고나행 기차표는 1인당 편도 1만 원 정도의 가격이었다. 기차를 타서 왼쪽 자리에 앉으면 바다가 보이는 풍경이 여행의 질을 더 높여 준다.

'지중해의 발코니'에서 본 풍경 
 

타라고나원형경기장과 바다 풍경 (2022.4.7) ⓒ 임명옥


타라고나 기차역은 바다를 끼고 있어서 해변이 지척이었다. 기차역에서 내려 우리는 해변가로 향했는데 가까이서 본 푸른 바다는 파란 하늘 끝 수평선까지 멀리 펼쳐져 있었다. 지중해의 발코니라 불리는 전망대에서 바라본 먼바다는 광활하게 쪽빛으로 빛나 눈부시게 아름다운 풍광이었고 내리쬐는 봄볕 속에서 평화롭고 한적했다.

세계적인 여행 안내 출판사인 론리 플래닛에서 발행한 책 <스페인>을 보면 타라고나는 기원전 218년, 최초의 정복민인 로마인들이 타라코라 이름 붙인 데서 기원하고 있다. BC 27년 로마 황제 아우구스투스가 이 도시를 히스파니아 타라코넨시스 지방의 수도로 삼고 머물며 군사 작전을 지휘한 곳으로 고대 로마시대에는 대도시로 번성했다 한다.

타라고나 기차역에서 언덕을 타고 올라가면 2세기에 지어진 고대 로마 유적지인 원형경기장이 보인다. 로마제국 시대에 검투사들이 서로가 서로에게 칼을 겨누며 혈투를 벌였던 곳, 야생동물과 싸워 이겨야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곳은 권력자들에게는 시민들에게 구경거리를 제공함으로써 정권을 유지하기 위한 수단이었고 검투사들에게는 목숨을 건 싸움터였다.
 

타라고나의 원형경기장2022년 4월 7일 타라고나의 원형경기장 모습 ⓒ 임명옥


두산백과에 따르면 타라고나의 원형경기장은 1만여 명을 수용할 수 있었다고 하니 그 당시 타라고나의 위상을 알 수 있다. 더구나 타라고나의 원형경기장은 넓게 펼쳐져 있는 푸른 바다를 배경으로 지어졌으니 어디서도 볼 수 없는 타라고나 시민들만 누릴 수 있는 혜택이었을 것이다.

원형경기장 한 켠에는 중세시대에 세워진 성당의 흔적도 남아있다. 론리플래닛의 책 <스페인>에 의하면 이 성당은 6세기와 12세기에 가톨릭 주교 프루크투오수스와 부제 두 명의 순교를 기념하기 위해 세워졌는데 이들은 AD 259년에 이곳에서 산 채로 화형당했다고 한다.

4월의 태양 아래 중세 시대의 성당은 석벽 몇 군데만 남아있고 원형경기장은 돌무더기의 잔해로 남아있다. 유네스코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한 타라고나의 원형경기장은 오늘날, 스페인의 어린 학생들과 우리와 같은 관광객들이 역사의 현장을 체험하는 장소가 되었다. 그래서 타라고나의 옛 시간들이 돌더미와 석벽을 통해서 먼 곳에서 날아온 우리에게 말을 거는 듯했다.

오늘날 타라고나는 바르셀로나에 비해 작은 도시라서 대체적으로 조용하고 한가로웠다. 타라고나 대성당이 위치해 있는 구시가지는 코로나 시대라 관광객이 줄어선 지 문을 닫은 가게들도 상당히 많았다. 하지만 선생님들의 인솔 하에 현장 학습을 나온 스페인 어린이들의 활기로운 모습이 보이면 거리는 잠깐씩 생기를 띠곤 했다.

감탄을 자아낸 타라고나 대성당
 

타라고나 대성당앞면 파사드 ⓒ 임명옥


타라고나 대성당은 구시가지의 언덕 꼭대기에 위치해 있는데 타라고나 대성당 팸플릿에 의하면 성당은 고대 로마제국 때 신전이 있던 자리에 1171년에 공사를 시작해 1331년에 축성되어졌다고 한다. 성당의 앞면 파사드는 웅장하고 둥근 장미창은 아름다웠다. 성당 내부는 사진 촬영이 금지되어 있어서 우리는 조용히 그리고 천천히 성당을 눈에 담았다. 중앙 회랑은 중세성당이 그렇듯 높고 어둡고 오랜 역사를 담은 기품이 느껴졌다.
 

타라고나 대성당성당의 정원 풍경 ⓒ 임명옥


복도 쪽 회랑을 지나면 정원이 나온다. 성당의 정원에는 주황빛 오렌지가 열려 있고 작은 연못이 있고 잘 가꿔진 나무와 푸른 잔디가 있다. 무엇보다도 정원에서 바라보는 성당의 모습과 회랑의 아치는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고즈넉한 멋이 있었다. 그저 바라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여유로워졌다. 오랜 역사를 품고서 이 고장 사람들의 생사고락을 함께했을 타라고나 대성당의 시간들은 돌 하나하나, 나무 한 그루에도 배어 있을 것이었다.

우리는 관광객이 없어 한가로운 작은 예배실에 앉아 둥근 돔 천장에서 쏟아지는 햇빛을 올려다  보았다. 거대하지 않아서 친근하고 조용하고 한가로워서 은혜로운, 복도를 장식하는 천장교차궁륭(X자 형태 아치모양)의 아름다움은 신에 대한 인간의 정성 어린 마음의 결과물이라는 생각을 나눴다.

성당을 나와 스페인의 점심인 메뉴 델 디아를 맛있게 먹고 동네 한 바퀴를 돌았다. 구시가지에는 로마시대 성벽이 남아있고 중세시대에 지은 건물들도 여기저기 흔적이 남아 있었다. 그래서 타라고나는 고대 로마시대의 모습과 중세의 골목들, 지중해의 반짝이는 햇살까지 역사와 휴양을 함께 누릴 수 있는 도시라는 생각이 들었다. 바르셀로나의 번잡함과 세련됨도 좋지만 타라고나의 한가로움과 고풍스러움도 매력적이었다.

오후 5시 반, 바르셀로나행 기차를 타고 이제 숙소에 가서 쉬자고 생각하면서 피곤해진 눈을 감고 타라고나 여행을 반추하고 있는데 얼마쯤 가다가 기차가 플랫폼에서 멈췄다. 그리고 스페인어로 방송이 나온다. 사람들은 술렁대고 기차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 알아보는 사람들, 그리고 돌아와서 가방을 들고 나가는 사람들도 많다. 스페인어를 모르는 우리는 무슨 영문인지 알 수 없었다.

스페인 사람으로 보이는 한 중년의 남자가 기차 밖에 나가서 알아보더니 여행객인 우리에게 영어로 설명을 해 주었다. 사고가 났는데 누군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수습을 하는 데 시간이 걸려서 기차가 언제 출발할 지 모른다는 말을 전해 준다. 그래서 바르셀로나에 가려면 버스터미널에 가서 버스를 타든지 아니면 언제 출발할 지 모르는 기차에서 기다려야 한단다.

한꺼번에 들어오는 모든 정보가 놀라워서 한동안 말문이 막혔다.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나... 여기가 어딘지도 모르고 버스터미널은 더더군다나 모르니 기차에서 기다리기로 했다. 언젠가는 출발하겠지, 느긋하게 기다리자, 그렇게 결정하고 나니 우리가 여행하는 사이 누군가 기차 철로에서 목숨을 끊었다는 소식이 떠올랐다.

삶과 죽음이 같은 공간에 있고 같은 시간에 공존하고 있었다. 살아있는 우리는 기차를 통해서 삶의 추억을 쌓으려 하고 누군가는 기차를 통해서 삶이라는 끈을 놓았다. 힘들고 고통스러웠을 한 영혼을 생각했다.

기차 안에서 기다리고 있던 우리는 근처에 앉아 있는 스페인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었다. 에콰도르에서 스페인으로 이민 와 갖은 고생을 해 가며 자식을 키우고 먹고사느라 힘들었던 세월이 얼굴에 그대로 새겨져 있는 60대로 보이는 마리, 마리의 스페인어를 영어로 동시통역해 주며 여행객인 우리에게 호의와 친절을 베풀어준, 대학에서 사회학을 가르친다는 서글서글한 중년의 다비드. 그들은 처음 보는 여행객인 우리에게 마음을 열어 주었고 그래서 우리는 누군가의 생이 마감된 곳에서 연민과 공감을 느끼며 소통하고 나눌 수 있었다.

19년째 런던에서 이민 생활을 하며 아버지 장례식과 누나 장례식에도 못 와 본 남동생, 13년째 미국에서 이민 생활을 하며 가장으로서 짐을 지느라 유럽에 처음 와 본 또 다른 남동생, 작년 코로나 시대에 혈액암으로 여동생을 떠나보내고 장례식에 못 왔던 남동생들과 슬픔을 함께 나누고자 처음 스페인에 와 본 두 살 터울 여동생과 나, 남은 4남매는 슬픔과 고통과 아픈 시간들을 함께 나누면서 우애를 다지게 되었다.

그래선지 마리 얼굴에서 보여지는 삶의 무게에 더 깊은 연민을 느꼈고 다비드의 친절과 배려에 감동받았다. 나는 또 마리의 이민생활과 남동생들의 이민생활이 겹쳐 보이면서 마음이 찡해졌다. 정직한 마리의 눈물 맺히는 이민사를 듣고 다비드와 남동생들의 대화를 듣고 있는 사이 기차는 서서히  움직이고 있었고 마침내 종착지인 바르셀로나역에 도착했다. 그렇게 우리는 작별 인사를 했다.

코로나 시대에 동생들과 스페인 여행을 잘 마치고 돌아온 나에게, 타라고나는 지중해 햇살이 반짝이는 이천 년의 세월을 지니고 있는 여행지로 추억될 뿐만 아니라, 삶과 죽음이 함께 공존하는 곳 그래서 겸손한 삶에 대해 성찰하게 하는 곳이 되었다. 그리고 국적과 피부색과 언어와 사는 곳, 모든 것이 다른 사람들끼리 공감하고 배려하며 연민을 함께 나눈 인간미가 살아있는 곳으로 기억할 것 같다. 
덧붙이는 글 다음 기사에서 여행기가 이어집니다. 제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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