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사 월급 200만원 공약 후퇴 속 또 하나의 '기만'
[주장] '군 적금'이라는 불공정... 병사 월급 최저임금 시대가 대안이다
▲ 안철수 제20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위원장이 지난 3일 오전 서울 종로구 통의동 인수위원회 공동기자회견장에서 국정과제를 발표하고 있다. ⓒ 인수위사진기자단
대통령직 인수위가 어제(3일) 국정과제를 발표했다. 그 중에서 눈에 띄는 부분을 하나 찾아보라 하면 병사 월급 200만 원 공약의 후퇴이다. 윤석열 당선자는 애초에 '취임 즉시' 이병부터 월급 200만 원 시대를 열겠다고 선언했지만, 결국 지켜지지 않았다. 더욱이 단계적으로 인상한다는 월급조차 실수령액 기준이 아니라 군 적금 등을 통해 모아지는 돈까지 포함해서 월급 200만 원인 것으로 보인다.
박근혜 정부 때 탄생한 군 적금
그러나 '공약'이기 때문에 실현은 해야 했는데, 2014년 박근혜 정부는 병사의 월급 '일부'를 적립해서 자산을 형성하고 정부가 일부 금액을 더 얹어주는 형식의 희망준비금 제도를 선보인다. 이른바 '군 적금'의 등장이다. 당시 군 적금은 5~10만 원을 매달 넣으면 5% 정도의 높은 금리로 전역 때 돌려주는 자산형성프로그램이었다.
문제는 병장 기준으로 당시 병사 월급은 15만원에 도달하던 시기였기 때문에 월급의 2/3을 저금해야 목돈 형성이 가능했다. 박근혜 정부 말 병사 월급은 취임 이전에 비해 2배나 올랐지만, 그 기준으로 해도 여전히 병사들은 자신의 월급 1/2은 저금해야 전역 후 통장에서 200만 원 정도를 챙길 수 있었다.
문재인 정부에서도 이 정책을 계승한다. 바로 '장병내일준비적금' 제도다. 이 제도는 월 40만 원을 납입하면 정부 지원금까지 합쳐 전역시 약 1000만 원의 목돈을 만들어 주는 정책이다. 박근혜 정부보다 더 파격적인 지원과 실질적인 목돈을 만들어주는 정책이었지만, 2021년 기준 병장 월급 기준으로 하더라도 2/3을 저금해야 하는 부담은 여전히 문제다.
군 적금의 문제
이제 군 적금의 문제를 살펴보자. 우선, 위에서 계속 언급한 이야기인데 월급의 1/2 이상을 떼서 저금해서 나중에 돌려주는 것이 아무리 월급 인상의 효과가 있다고 하더라도 타당한가의 문제다. 당장 군 월급이 많이 올랐다고 하지만 군 적금을 모으기 위해 월급의 절반 이상을 저금하라고 하는 것은, 실질적으로 병사 시절에 월급이 크게 오르지 않았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 또한, 그로 인해 병사 개인이 당장 쓸 수 있는 비용도 크게 줄어든다.
현재 군 적금은 개인 선택으로 가입하는 상품이지만, '충분한 전역에 대한 보상'이라는 심리 때문에 사실상 그 가입이 의무화 된 상황이다. 전역할 때 1000만 원을 받을 수 있다는데, 가입하지 않으면 큰 손해처럼 보이는 부분도 무시할 수 없다.
'저금 하는 사람만 지원금을 준다'는 군 적금이기 때문에 이를 받으려면 월급이 당장 크게 깎이는 효과를 감수해서라도 울며 겨자먹기로 어쩔 수 없이 저금을 해야 한다. 이런 상황은 강제 저금을 금지하는 근로기준법 제22조의 취지와는 크게 동떨어져 있기도 하다.
그럼에도 계속 언급했듯이 군 적금은 '선택'이다. 전역 후 목돈을 포기하고 그냥 의무복무를 이행할 수도 있다. 그러나 대신 군 적금으로 인한 정부지원금은 받지 못한다. 형평성의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다. 왜 같은 복무를 했는데 누구는 전역지원금을 얹어주고 누구는 받지 못하나? 만일 국방의 의무 수행에 대한 국가의 보상이라면 군 적금이 아니라 일괄적으로 전역지원금을 부여하는 게 맞았을 것이다.
병사 월급이 최저임금 이상이 되어야 하는 이유
▲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지난해 12월 20일 강원도 철원 육군 3사단 부대(백골 OP)를 방문해 생활관에서 장병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 국회사진취재단
최근 정치인들은 청년들이 군대 복무를 통해 얻는 고통에 동감한다고 하면서 이에 대한 적절한 보상을 강조하고 있다. 단골처럼 전역지원금을 얼마 이상으로 주겠다, 군가산점을 부활하겠다, 병사 월급은 얼마 이상으로 올리겠다고 말한다.
이 말잔치의 종착점이 병사 월급의 일부를 떼서 주는 군 적금이다. 물론, 군 적금의 효과에 대해서 부정하지는 않는다. 분명 전역 후 목돈이 쌓이고 그것을 받는다는 것 자체는 병사들의 보상심리를 충분히 채워 줄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복무 당시 월급의 상당수를 포기해야 하고, 적금을 선택하지 않으면 지원금을 받을 수 없는 불공정한 군 적금이 온전한 의무 복무 보상 방법이라고 생각되지는 않는다.
그렇다면 좋은 방안은 무엇인가? 우리는 원점으로 되돌아가야 한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공약한 대로 병사 월급 200만원 시대를 여는 것.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병사 월급을 최저임금 기준 월급인 191만4400원 이상으로 맞추자는 것.
왜 최저임금인가? 최저임금은 공적인 절차를 통해 확정된 적어도 한국 사회에서 '이 정도는 줘야 한다'는 노동력의 최소한의 대가다. 의무 복무에 있어 국가가 적절한 보상을 해줘야 한다면 가장 분명히 참고할 수 있는 지표이기도 하다. 병사 월급 문제는 한국사회에서 이미 합의된 '월급은 이 정도는 받아야 한다'는 개념에서 접근해야 한다. 적어도 그 이상은 되어야 최소한도의 보상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물론, 의무 복무에 그 정도의 보상은 필요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시대는 변했다. 한국 사회가 합의한 최저한도의 월급 이상이 주어지지 않는다면 징집 대상자들이 군대에 들어 올 요인은 많이 부족하다. 병영문화 개선도 더디고, 병사 월급도 사회 최저보다 적다면 누가 기꺼이 의무에 임하려고 할까?
지금 우리 시대는 사람을 강제로 끌고 무언가 시킬 수 있는 군사정권 시대가 아니다. 의무 이행이 국가 입장에서 절실하다면 충분한 유인을 주어야 한다. 그리고 최저임금 기준의 병사 월급은 그 대안이 될 수 있다. 윤석열 정부가 장기적으로 이 점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기를 바란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