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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받기 때문에 장애인이 된다" 이준석 대표에 필독 권하다

류변의 급진적 책 읽기 8회 <장애학의 도전 / 김도현>

등록|2022.05.04 18:20 수정|2022.05.06 18:21

▲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활동가들이 4월 21일 오전 서울 중구 2호선 시청역사 내에서 지하철 탑승시위를 하고 있다. ⓒ 이희훈


책꽂이에 꽂혀있던 <장애학의 도전-변방의 자리에서 다른 세계를 상상하다>라는 책을 펼쳐보게 된 건 순전히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 때문이다.

그는 수백만 선량한 시민을 볼모로 삼는다며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의 지하철 시위를 비난하면서 서울교통공사와 경찰의 개입을 요구했다. 노동자나 소수 집단의 파업, 집회·시위에 선량한 시민을 볼모로 한다는 보수 정치권과 언론의 비난은 늘 듣던 레퍼토리니 새삼스러운 것은 없다.

그러나 곧 집권당 대표가 될 사람이 아무런 반성 없이 오히려 장애인에까지 전선을 확대해 장애인과 비장애인을 서로 갈라치기하며, 자신이 얼마나 똑똑한지 과시하는 모습에 분노를 금할 수 없었다.

순간 화만 내고 말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많은 사람이 이 대표를 비판하고 장애인 문제에 무심했던 것을 반성하며 전장연 후원을 시작했지만, 여전히 이 대표의 논리에 수긍하고 열광하며 장애인에 대한 혐오를 증폭하는 사람이 존재하고, 스포츠 중계하듯 이 사태를 보도하는 현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단호히 틀렸다고 비판하면서 설득할 수 있는 언어와 논리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던 차 이 책을 꺼내 들었다. 그런 의미에서 누구보다 먼저 이 대표에게 이 책을 권하고 싶다. <장애학의 도전>은 장애 문제에 대한 우리의 통념을 근본적으로 뒤집으며 깊은 성찰과 고민거리를 안겨준다.

노들장애인야학의 교사이자 연구활동가인 저자 김도현은 2001년 2월 오이도역에서 발생한 장애인용 수직형 리프트 추락 참사를 기점으로 시작된 이동권 투쟁을 언급하며, "욕을 바가지로 먹든 한 트럭을 먹든, 욕을 더 많이 먹어서라도 우리 문제가 '100분토론'에 한번 나와봤으면 소원이 없겠다"고 한 박경석 전장연 대표의 말을 소개한다.

그 소원은 책 출간일인 2019년까지 18년간 이루어지지 않다가 21년만인 올해 4월에야 이루어졌다. 우리 모두가 함께 해결해야 할 문제가 아닌 장애인만의 문제로 취급되었기 때문이다.
 

▲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왼쪽)와 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 상임공동대표가 지난 4월 13일 오후 서울 마포구 상암동 JTBC 프로그램 <썰전라이브> 생방송 일대일 토론을 하고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박 대표가 이 대표와 일대일 토론을 하고, 주요 뉴스에서 전장연의 시위가 보도되고, 기재부 장관 후보자 인사청문회의 주요 의제가 된 지금, 우리는 장애 문제가 모두의 문제로 다루어지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그렇다면 전장연이 굳이 지하철 시위를 계속하지 않을 것이다.

왜 장애 문제가 장애인들만의 문제가 아닌 우리 모두의 문제일까? 흔히들 장애인에게 좋은 것은 비장애인에게도 좋은 것이다 혹은 누구나 장애인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근거로 든다. 그러나 저자는 그것으로는 부족하다고 말한다. 남성/백인이 여성/흑인이 될 수 있다거나 여성/흑인에게 좋은 것이 남성/백인에게도 좋은 것이라는 식의 이야기는 성립가능하지 않거나 별 설득력이 없다는 뜻이다.

궁극적으로 장애 문제는 '장애인의 문제'가 아니라 '장애인과 비장애인 간 관계의 문제'로, 비장애인이 장애 문제의 한 축을 이루고 있으며 장애 문제의 해결과 직접적으로 연관된 존재다.

이렇게 이해할 때 우리 사회는 장애인을 타자화하지 않고 그저 장애를 돕는 차원에 머물지 않으며 공동의 책임과 역할을 주체적으로 찾아 나갈 수 있다.

장애 문제가 장애인과 비장애인 간 관계의 문제라는 것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뜻하는가? 우리는 흔히 장애인이 차별받는 이유가 그의 장애 때문이라고 말한다.

신체적·정신적 손상(impairmetnt)이 존재하게 되면, 그 손상으로 인해 무언가를 할 수 없게 된 상태(disability)에 빠지고 결국 사회적으로 불리한 처지(handicap)에 놓이게 된다고 생각한다(손상→장애→핸디캡). 이는 어떤 사람이 무언가를 할 수 없게 된 원인을 개인의 신체적·정신적 손상에 귀착시키는 것이다.

차별받기 때문에 장애인이 된다
 

▲ 김도현 <장애학의 도전> ⓒ 오월의봄



그러나 저자는 통념을 뒤집는다. "장애인이기 때문에 차별받는 것이 아니라 차별받기 때문에 장애인이 된다"고. 흑인들이 노예가 되는 원인이 검은 피부가 아니라 차별과 억압인 것처럼 일정한 손상을 지닌 사람들이 무언가를 할 수 없게 되는 원인 역시 손상이 아니라 바로 차별과 억압이라는 뜻이다. 즉 '손상→차별과 억압→장애인'인 것이다.

이처럼 특정한 사회적 관계 속에서만 손상은 장애가 되므로 장애는 개인적 문제가 아닌 사회적 문제이고, 장애인만의 문제가 아닌 비장애인을 포함한 우리 모두의 문제이다. 장애 문제의 해결책은 개인의 손상을 뜯어고치는 것이 아니라 차별과 억압을 없애는 데 있다. 인간 존엄성의 기반 역시 인간 내부의 이성이나 자율성이 아닌 인간 존엄성을 존중하고 보장하는 사회적 관계들 속에서만 존재한다.

저자의 이런 관점은 김도균 교수의 <한국 사회에서의 정의란 무엇인가> 속 헌법 전문이 담고 있는 사회정의의 원리 중 하나인 '사회적 관계의 평등 원칙'에 대한 설명과 일맥상통한다.

김도균 교수는 "사회적 관계의 평등 원칙은 정의가 추구하는 궁극적 이상"이라고 말한다. 관계의 평등은 '동등한 존엄성을 가진 존재로서, 그리고 시민으로서 평등하게 존중하고 대우하라'는 심층적 차원의 근원적인 평등의 이상을 뜻하며, 사회적 평등은 균분을 넘어서 사회적 관계의 평등 실현에 그 핵심이 있다.

사회적 평등의 이상으로서 평등 원칙은 몫 없는 사람들의 들리지 않던 말, 의미 없는 소음을 사회정치적 의미를 갖는 목소리로 바꿀 것을 요구한다. "수많은 부스러기들의 외침이 유의미한 시민의 목소리로 제대로 고려되고 관심받고, 존중받는 사회"가 바로 정의로운 사회이고 이런 사회야말로 인류의 염원인 평등의 이상으로서의 사회적 평등 이상이 지향하는 바이다.

다만 롤스를 논의의 중요한 기반으로 삼는 김도균 교수와 달리 저자는 장애인, 특히 인지장애인을 배제한 이성주의 철학을 넘어 위계가 아닌 차이를 강조한 스피노자와 마굴리스, 모든 개체를 가로지르는 무한한 연관 관계가 각 개체의 실존 및 활동의 조건이 된다고 한 발리바르의 관개체성(貫個體性, transindividuality)을 강조한다.

그리고 경제적 분배와 문화적 인정 양자를 비환원론적인 방식으로 결합해, 정의란 "경제적 영역에서 모든 사회 구성원들이 평등하게 물질적 자원을 분배받을 수 있어야 하고, 문화적 영역에서 모든 참여자들의 동등하게 사회적으로 상호작용할 수 있어야 하며, 정치적 영역에서 모든 당사자가 합당하게 대표될 수 있어야 한다"는 낸시 프레이저의 참여 동등(parity of participation) 정의론을 옹호한다.

이처럼 사회적 관계의 평등이라는 관점에서 장애 문제를 보면, 자립과 정상은 바람직한 것, 의존과 비정상은 바람직하지 못한 것이라는 자립/의존의 이분법을 해체해 홀로서기도 낙인화된 의존도 아닌 '함께 어울려 섬', 즉 연립(聯立, interdependence)을 추구할 수 있다.

자립과 의존의 관계를 재구성하게 되면 자기결정권도 다르게 이해할 수 있다. 자기결정권은 흔히 오해하듯 독립적 주체가 혼자서 결정하고 원하는 대로 할 수 있는 권리가 아니다. 자기결정권이란 결정을 내리는 여러 주체가 서로 의존하고 의견과 판단을 소통, 조율해가며 실현할 수밖에 없는 권리이다.

사실 이 책은 읽기 쉽지만은 않다. 필자는 주로 장애가 사회적 관계의 문제라는 것에 초점을 맞추어 소개했지만, 그 외에도 더 많은 내용과 깊이 있는 철학적 사유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장애학이라는 용어부터가 생소할 것이다. 이 책으로 장애학을 공부함으로써 장애뿐만 아니라 여러 이유로 차별과 억압을 받는 소수자 문제를 이해하고 정의, 인권, 민주주의를 고민할 수 있는 새로운 시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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