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력으로 억만 개의 돌을 깔았다는 곳
무등산 등반, 원효사 쪽에서 출발해 규봉암 가는 길
▲ 무등산 규봉암. 규봉암과 광석대는 국가 명승으로 지정된 무등산의 절경 중 한 곳이다 ⓒ 임영열
봄 여름 가을 겨울, 두루 사시(四時)를 두고, 자연이 우리에게 내리는 혜택에는 제한이 없다. 그러나 그중에도 그 혜택을 풍성히 아낌없이 내리는 시절은 봄과 여름이요, 그중에도 그 혜택을 가장 아름답게 내는 것은 봄, 봄 가운데도 만산(萬山)에 녹엽(綠葉)이 싹트는 이때 일 것이다.
기억이 가물가물 하겠지만, 청춘시절에 다들 한 번쯤 읽어 봤을 문장이다. 5월이 주는 신록의 아름다움을 예찬하고, 자연과 더불어 살며 세속에서 벗어나 삶의 의미를 되돌아보게 하는 탐미주의 작가 이양하의 명작 수필 <신록예찬>은 위와 같이 시작한다.
어느덧 봄날의 강은 4월을 가로지르고 '계절의 여왕'이라는 5월의 초입을 흐르고 있다. 사람마다 다소 차이는 있을지언정 5월의 신록을 바라보며 번잡한 세상사 잠시라도 잊고 어린애처럼 맑고 순수한 아름다움을 누리고 싶은 마음은 누구나 똑같을 것이다.
▲ 봄꽃 지고 새순 돋아나는 이맘때 무등은 어느 계곡 어느 골짜기 하나 빛나지 않은 곳이 없다 ⓒ 임영열
울긋불긋 한바탕 꽃대궐을 이뤘던 봄꽃들이 서서히 지나간 뒤 끝. 산천은 연한 초록으로 곱게 곱게 물들어가고 있다. 사계절 중에서 어느 한 철이라도 아름답지 않을까마는 일 년 중 가장 아름다운 시간이 지나는 무등산은 지금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봄꽃 지고 새순 돋아나는 이맘때 무등은 어느 계곡 어느 골짜기 하나 빛나지 않은 곳이 없을 것이다.
광주 시내 어느 곳에서나 바라볼 수 있는 무등산을 오르는 방법은 두 곳이 있다. 통상적으로 사람들이 가장 많이 찾는 코스는 증심사에서 출발해 입석대를 거쳐 서석대까지 오르는 코스가 있다. 이 코스는 산정을 오르는 내내 가파른 오르막이 계속된다는 단점이 있다.
반면 증심사 출발보다는 다소 접근성이 떨어지지만 반대편 원효사 쪽에서 출발해 무등의 허리를 감싸 안고 돌고 돌아 증심사 쪽으로 하산하면 한결 수월하다. 총 6~7시간 이상 걸리는 장거리 코스지만 산길이 완만하고 부드러울 뿐만 아니라 걷는 동안 눈앞에 펼쳐지는 아름다운 풍광은 지루할 틈을 주지 않는다.
원효사행 1187번 시내버스를 타고 무등산행의 또 다른 출발점 원효사 종점으로 향한다. 버스 번호 1187은 무등산의 높이와 같다. 광주 사람들의 무등산 사랑은 참으로 각별하다.
▲ 원효사에서 규봉암 가는 초입에 자리한 옛 무등산 산장호텔, 국가등록 문화재로 지정됐지만 폐허 상태로 방치되고 있다 ⓒ 임영열
원효사 종점에서 하차 후 공원관리사무소와 식당가를 지나면 옛 산장호텔이 길손들을 반긴다. 1960~1970년대 신혼여행지로 인기가 좋았던 곳이지만 지금은 폐허 상태로 방치되고 있다. 5·18 민주화 운동 때 임시 피난처로 사용되기도 했다.
한국전쟁 이후 관광산업을 육성하기 위해 설악산, 서귀포, 무등산 등 국내 명승지에 정부가 건립한 관광호텔 중에서 유일하게 남아 있는 곳으로 국가 등록 문화재로 지정됐지만 방치되고 있는 현실이 안타깝다.
폐허의 호텔을 지나면 오르막이 완만하게 이어진다. 싱그러운 5월의 햇살 아래 아기 손처럼 피어나는 신록은 꽃 보다 아름답다. 눈을 들어 하늘을 보면 연초록 구름 피어나고 발아래 얼굴 작은 야생화들이 나그네의 발길을 붙잡는다.
▲ 꼬막재 가는 길가의 편백 나무숲 ⓒ 임영열
출발한 지 약 50 여분. 하늘 향해 쭉쭉 뻗은 편백나무 숲길을 지나고 나지막이 엎드린 고개를 만난다. 이름마저 앙증맞은 '꼬막재'다. 완만하게 이어진 오르막 때문인지 738m라는 높이가 실감 나지 않는다.
나지막한 고개가 마치 꼬막처럼 엎드려 있다 해서 꼬막재라 불렀다 한다. 옛 선조들이 나들이할 때 지름길로 이용했으며 봇짐을 진 보부상들도 이 길을 넘나들며 땀내 나는 삶을 살았을 것이다. 표지석마저 꼬막처럼 납작 엎드려 있다.
▲ 옛 선조들이 지름길로 이용했던 꼬막재. 표지석 마저 꼬막처럼 나지막이 엎드려 있다 ⓒ 임영열
국가 명승으로 지정된 광석대와 규봉암
꼬막재를 지나면 길은 탄탄대로다. 여기서 무등의 9부 능선에 위치한 베이스캠프, 장불재까지는 약 4km 남짓이다. 지금부터는 광주 시내에서 늘 바라봤던 눈에 익숙한 무등의 앞면이 아니라 달의 뒷면처럼 생경한 '무등의 뒷면'을 맛보게 될 것이다.
융단을 깔아놓은 듯 푹신한 흙길이 한동안 이어진다. 5월 햇살 아래 노랗게 빛나는 피나물 꽃이 나그네를 반긴다. 계속 이어지는 허릿길을 따라 걷다 보면 넓은 억새 평전과 신선대 갈림길이 나온다.
▲ 꼬막재를 지나고 길은 융단을 깔아놓은 듯 푹신하고 완만하게 이어진다 ⓒ 임영열
억새 평전은 무등산 북봉과 누에봉 사이에 있는 완만한 벌판으로 광주·담양·화순의 경계 지점이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 무등산 최대 억새 밭이었다. 과거엔 초가을이 되면 하얀 억새가 장관을 이루었으나 지금은 억새들이 자취를 감추고 잡목들만 우거져 있다.
건너편에 있는 신선대는 행정구역상 담양군에 속하는 곳으로 무등산 북봉에 있는 주상절리대다. 입석대나 서석대에 비하면 규모가 아주 작은 꼬마 절리대다. 꼭대기 바위틈에 무덤 1기가 있다. 누구의 무덤일까. 사연이 궁금하다.
억새 평전에서 바라보는 무등산 누에봉의 부드러운 곡선이 아름답다. 상처받고 돌아온 자식들 포근하게 안아주는 어머니의 따뜻한 가슴이다.
▲ 억새 평전에서 바라보는 무등산 누에봉의 부드러운 곡선. ⓒ 임영열
이곳을 지나면 온화하고 순한 사람들이 사는 화순의 땅이다. 이름과는 달리 길은 부드러운 흙길에서 돌길로 바뀐다. 돌이 많이 흩어져 있는 비탈을 의미하는 '너덜지대'가 가까이 있음을 예고하는 것이다.
길은 서서히 암릉으로 바뀐다. 군데군데 바위틈에 피어난 연분홍 철쭉꽃이 바람에 흔들린다. 어느 시인의 말마따나 흔들리지 않고 피어나는 꽃 어디 있으랴. 점차 속의 세계에서 신선의 세계로 들어서는 느낌이 드는 건 규봉암(圭峰庵)이 멀지 않음이리라.
원효사를 떠나온 지 두 시간 반. 하늘 속 암자 규봉암에 다았다. 지금부터 '산속의 암자들이 다 그렇겠지' 하는 선입견이 단번에 박살 나는 순간이 될 것이다.
▲ 금방이라도 와르르 쏟아질 것 같은 거대한 돌기둥들. 돌기둥 위에 위태 위태하게 낙락장송들이 버티고 서 있다 ⓒ 임영열
▲ 절벽 바위틈 사이에 뿌리내리고 꽃을 피운 가녀린 나무들 ⓒ 임영열
암자 입구부터 남다르다. 처다 보기도 아찔할 정도의 높이에서 일주문 겸 종루가 오느라 수고했다고 산행객들의 어깨를 토닥여 준다. 일주문 옆의 거대한 돌기둥 삼존석에는 이곳을 다녀 간 높으신 양반들의 관등성명이 새겨져 있다.
일주문을 지나 경내에 들어서는 순간 눈이 휘둥그레지고 벌어진 입은 다물어지지 않는다. 여기가 어딘가. 신선이 사는 곳인가. 금방이라도 와르르 쏟아질 것 같은 거대한 돌기둥들. 돌기둥 위에 위태 위태하게 버티고 서있는 낙락장송들. 절벽 바위틈 사이에 뿌리내리고 꽃을 피운 가녀린 나무들.
▲ 잘 그려진 수묵 담채화란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싶다 ⓒ 임영열
잘 그려진 수묵 담채화란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싶다. 그래서일까. 무등산 3대 석경(石景) 중 한 곳인 이곳 광석대와 규봉암은 입석대와 서석대와는 달리 '국가 명승'으로 지정됐다. 그만큼 경관적 가치가 뛰어나다는 반증이다.
규봉암의 창건에 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다. 신라 때 의상대사가 창건했고 그 뒤 순응대사가 이어서 중창했다고 전해진다. 또 보조국사 지눌이 고려시대에 창건했다고도 한다. 어찌 됐건 규봉암은 천 년 이상의 긴 역사와 숱한 사연이 담긴 무등산의 핵심 포인트 중 한 곳이다.
규봉암을 지나 장불재로 가는 두 갈래 길중에서 윗 길로 접어들면 규봉암과 함께 명승으로 지정된 지공 너덜을 만나게 된다. 나무 한 그루 없이 큼직한 바윗덩이만 널따랗게 펼쳐진 너덜 지역이다. 인도의 승려 지공 대사에게 설법을 듣던 라옹 선사가 법력을 발휘해 억만 개의 돌을 깔았다는 전설이 깃들어 있다.
▲ 지공 너덜길. 나무 한 그루 없이 큼직한 바윗덩이만 널따랗게 펼쳐진 너덜지역이다 ⓒ 임영열
▲ 지공 대사가 수도 했다는 지공 대사 석실 ⓒ 임영열
너덜길을 따라 다시 산 모퉁이를 돌아서면 광주와 화순의 경계가 되는 장불재에 이른다. 장불재는 무등산 9부 능선에 위치한 곳으로 입석대와 서석대를 거쳐 무등산 정상 천·지·인왕봉으로 가는 베이스캠프 같은 곳이다. 노무현 대통령도 여기에서 산상 연설을 했다.
장불재에서 내려다본 도시의 모습이 뿌옇다. 도시는 수많은 얼굴들을 감추고 있다. 희·노·애·구·애·오·욕의 얼굴들. 나는 어떤 얼굴일까. 무등은 이 모든 영혼들을 포근히 감싸고 안아주는 광주의 어머니다.
▲ 무등산 9부 능선에 위치한 장불재. 입석대와 서석대를 거쳐 무등산 정상 천·지·인왕봉으로 가는 베이스캠프 같은 곳이다 ⓒ 임영열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