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의 땅 거룩한 땅' 출간
[김삼웅의 인물열전 / 정의의 구도자 함세웅 신부 평전 36] 1984년은 함세웅에게 의미있는 해이다
▲ 6월민주항쟁 20주년을 맞이해 9일 오후 성공회대성당 마당에서 열린 기념식에서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사장 함세웅 신부가 인사말을 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미문화원사건의 1심 재판이 끝나갈 무렵 함세웅은 절친 김택암ㆍ안충석ㆍ양홍 신부와 넷이서(1982년 7월하순~9월하순)까지 약 두달 동안 5대주 27개국 55개 도시를 순방하였다. 휴식과 재충전의 기회였다. 포르투갈에서는 교통사고로 위험을 겪기도 했다.
1984년은 천주교 전래 200주년이다. 함세웅은 사회분과 책임을 맡아 행사를 준비하면서 5월에 초청된 교황 바오로 2세를 통해 '광주의 아픔'과 전두환 독재에 대한 비판을 기대했으나 의례적인 행사로 그치고 말았다. 아쉬움이 적지 않았다.
"제가 학교에 들어가면, 진취적인 성향을 지니고 있으니까 아무래도 시대적인 영향이 유입될 수 있겠고요. 기존 신학교의 규칙적ㆍ전통적ㆍ체제중심적 모습에 변화나 도전이 있을까 봐서요." (주석 1)
그의 개혁적ㆍ진취적 성향은 내부에서도 크게 견제를 받았다. 줄기찬 노력 끝에 전임대신 신학교 시간강사가 허용되었다.
"유학가서 공부할 때 펼치고 싶은 꿈이 있었는데, 이걸 선배들이 방해한 거니까요. 방해한 배경에는 새로운 시대적 흐름도 있고, 독재에 맞서 싸운 경력이 부담스러웠던 것도 있고 무책임한 주교들 탓도 있습니다." (주석 2)
이 해 10월 교통사고를 냈다. 강변도로를 달리는데 어린이가 차도로 갑자기 뛰어나와 차에 치어서 사망했다. 자동차 전용도로이기 때문에 법적으로는 문제가 없다고 했지만, 유족과 합의하고 검찰청에서 조사도 받고 하여 마무리가 되었다. 그런데 안기부가 압력을 해서 신문ㆍ방송에 악의적으로 보도되어 망신을 시켰다. 벌금 200만원을 납부했다. 가톨릭대학과 병합한 성심여대에 출강하여 종교학을 가르쳤다.
1984년은 그에게 의미있는 해이다. 정의구현사제단 창립 10주년이었다. 9월 24일 사제단은 명동성당에서 창립 10주년 기념미사를 갖고 "10년 전인 1974년 9월 26일에 이 민족, 이 사회, 이 역사에 공헌하는 삶을 살기로 결단한 우리들의 결의를 확인하고, 다시 한 번 우리의 마음 가짐을 하느님과 교회 그리고 온 국민 앞에 다짐한다"고 선언했다. 그리고 〈이 사회의 인간화를 위한 선언〉을 채택했다.
이 해에 그는 강론집 <고난의 땅 거룩한 땅>을 도서출판 두레에서 출간했다. 제1부 인간해방의 신학을 찾아서, 제2부 한국 교회의 반성과 과제, 제3부 고난에 참여하는 신앙, 제4부 교회와 사회의 정의, 제5부 민중의 고난의 현장에서, 제6부 특별강론 및 메시지 등 총 26편의 글을 실었다. 더러는 지금 읽어도 현실감이 있는 시론과 강론들이다.
개신교의 문익환 목사가 <벽을 깨는 글>이란 서문을 썼다. 글의 앞 부분이다.
함 신부님과 나는 글보다는 말로, 말보다는 몸으로 만난 사이다. 함 신부님과 나는 〈3.1 민주구국선언〉사건으로 피고석에 같이 앉는 것으로, 그 일로 같이 징역을 사는 일로 끊길 수 없이 묶여진 셈이다. 이렇게 해서 그와 나는 말이나 글이 아니라 몸으로 역사를 같이 사는 사람으로, 자주는 아니지만, 꼭 만나야 할 때는 어김없이 만나는 사이가 되었다. 앞으로도 이런 만남은 계속될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그 만남이 계속되지 않게 된다면, 뭔가 단단히 잘못되었던가 아주 썩 잘 되었던가 이 둘 중의 하나일 것이다.
몸으로 만날 때에 거기는 언제나 글이 되기 전의 말이 있다. 그러나 나는 그를 글로 보다는 말로 더 많이 만난 셈이다. 말을 통한 우리의 만남은 거울 같은 만남이었다고 자부한다. 기면 기고 아니면 아닐 뿐인 뚜렷하고 명쾌한 말의 만남이었다. 그는 우물쭈물하는 일이 없다. 한국 가톨릭교회 속에서 무거운 짐을 지고서도 어려운 결단을 명쾌하게 내리는 함 신부님을 볼 때면 나는 저 작은 몸 어디에 저런 힘이 있나 하고 놀라곤 하였다. 언제나 문제를 정확하게 보고 최선책이 아니라면 차선책이라도 놓치지 않고 잡는 기민한 확신을 보면서 나는 늘 머리를 숙이곤 했다.
주석
1> 앞의 책, 322쪽.
2> 앞의 책, 323쪽.
덧붙이는 글
[김삼웅의 인물열전 / 정의의 구도자 함세웅 신부 평전]는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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