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동구 주민자치회, '동네 복지'의 수장 무너지나
[위기의 주민자치회 ②] 신구 위원의 관점 차이가 낳은 갈등
서울시 강동구 주민자치회를 둘러싼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지난해 강동구는 주민자치회를 전체 동으로 확대한 원년을 가졌지만 일 년도 안 돼 파열음이 들려왔다. 그 중심에는 주민자치위원회와 직능단체에서 활동한 기존 주민들과 새롭게 주민자치회에 합류한 신규 위원들의 대립이 존재했다. 각각의 입장을 ①편과 ②편에 각각 담은 뒤, ③편에서 주민자치회 현안에 관한 전문가의 설명을 들어봤다. [기자말]
▲ 성흥수 새마을운동본부 강동구지회 회장 (전 명일2동 주민자치위원회장) ⓒ 주현우
"내가 월남에서 돌아와 서울로 올라왔을 때가 75년도쯤이었어요. 그때 암사동에는 연립주택만 몇 채 있었고 나머지는 다 비닐하우스였지요. 천호동에만 버스 종점이랑 기와집이 있었는데, 그래서 사람들이 강동구는 잘 모르고 '천호동' 하면 좀 알고 그랬어요. 그때 돈이 너무 없어서 자전거를 구해 계란이랑 얼음 파는 장사부터 했어요.
힘들어도 입대하기 전에 대합실을 돌며 잘 때보다는 낫다는 생각으로 버텼지요. 그렇게 살림이 나아지고, 주변을 둘러볼 여유가 생겼을 때부터 봉사를 하기 시작했어요. 그렇게 여기까지 온 거에요. (...) 내 나이대 사람들은 대체로 어려운 세상을 살았어요. 그때는 남들의 도움도 많이 받고 다들 그렇게 살았잖아요. 그래서 누구나 마음속에 남을 도와야겠다는 마음을 갖고 있어요. 이제는 그런 게 많이 없어져서 아쉬워요."
▲ ①새마을부녀회 사람의 김장담그기 ②암사2동 윷놀이대회 ③강동구 사랑의 온도탑 제막식 ④암사3동 어르신 행복잔치 ⓒ 강동구의회 의정갤러리
직능단체들은 주로 동네의 굵직한 행사를 주관하고, 지역 주민들을 위해 봉사하는 일을 도맡아왔다. 연중 최대행사인 경로잔치부터, 김장나눔, 척사(윷놀이)대회, 따뜻한 겨울나기 행사 등을 주관하고, 행정과 연계해 고독사 예방 활동, 저소득층 반찬 지원 등 다양한 복지 사업을 벌여왔다.
올해부터 'ㄴ'동 주민자치회장을 맡게 된 정모씨는 "직능단체들은 행정에서 미처 파악하지 못한 동네의 사각지대를 돌보는 역할을 해왔다"며 "결코 없어서는 안 될 존재"라고 강조했다. 가령 'ㄴ'동의 한 직능단체는 왕래가 끊긴 자식 때문에 받아야 할 생계비 지원을 받지 못하는 독거노인을 발굴하는 사업을 해왔다.
주민자치위원회는 직능단체 중에서도 '수장' 격인 단체였다. 유일하게 정부의 지원보조금을 받는 등 대표성이 있었던 건 물론, 보통 관내 직능단체 회장들이 주민자치위원으로 활동했던 까닭이다. 그만큼 동네에서의 위상 또한 높았다. 정성호 암사2동 주민자치회장은 "동네에서 제일 존경받는 어르신들이 주민자치위원으로 활동했다"며 "어디를 가든 위원이라 하면 인정받곤 했다"고 회상했다.
단 한 번의 투표로 동네 전통 파괴돼
문제는 주민자치회로의 전환이 이뤄지며 발생했다. 기존 체계에 익숙하지 않은 주민들이 새롭게 주민자치회에 합류했고, 기존 활동하던 주민들이 탈락했다. 대다수 안건 의결이 다수결로 이뤄지는 상황에서, 이는 기성 위원들에게 악재였다. 정원 50명 중 지역단체 활동이 전무한 신규 위원들의 비율이 얼마냐에 따라 주민자치회 내부 분위기는 달라졌다.
암사3동은 '신구의 대립'이 가장 첨예하게 벌어지는 동 중 하나다. 현재 강동구 내 18개 전동에서 유일하게 자체회비를 걷지 않는 동이기도 하다. 이홍구 전 암사3동 주민자치회장에 따르면 처음 전환했을 당시, 주민자치회 내에는 18명의 기성위원과 30명의 신규위원이 있었다. 관련 조례에서 정한 비율(단체 추천 40%, 공개 추첨 60%)대로였다. 하지만 이 전 회장은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 아는 사람을 이기는 구조"라며 "오랜 시간 시행착오를 거치며 만들어온 전통이 한순간에 파괴됐다"고 전했다.
당장 문제가 되는 건 예산이다. 동네 경로잔치의 경우, 강동구청이 280만 원가량의 예산을 지원한다. 신규 위원들은 지자체 예산이 나온다는 점을 근거로 회비 수합에 반대했고 자체회비 안건이 무산됐다. 이 전 회장은 논리적으로 이들의 주장이 옳다면서도, 현실은 그렇지 않다고 말했다. 동네 행사는 참여 인원을 예측할 수 없고 더 많이 온다고 내칠 수 없는 만큼 '여윳돈'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 전 회장은 "올해는 코로나19가 줄어 동네 행사가 많이 열릴 텐데 동네 주민들이 아쉬워할까 걱정된다"며 "특히 혼자 사는 어르신들에게는 사교의 장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했다.
주민자치 전환을 둘러싸고 기성 위원들의 불만은 적지 않다. 일 년 동안 주민자치회 활동을 지켜봐 온 주민자치위원회 관계자들은 최소한의 자격심사도 없이 새로운 위원을 선임하는 게 문제라고 입을 모은다. 선경숙 암사3동 지역사회보장협의체 회장은 "봉사의 중요성을 모르는 사람들을 굳이 모아서 파를 갈리게 하는지 모르겠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이어 "봉사이력을 확인하는 등 최소한의 자격심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행정자치부에서 2002년 발행한 '주민자치센터설치 및 운영조례준칙'에 따르면 주민자치위원은 지역단체에서 추천한 후보자 중에서 읍면동장이 위촉했다. 자격조건으로는 '봉사정신이 투철하거나 필요한 전문지식을 갖춘 자'여야 했다. 동네를 위한 봉사단체임을 명시한 셈이다. 반면 주민자치회는 연령별 T/O만 맞춘 뒤 무작위로 위원을 추첨한다. 다른 목적으로 참여하는 주민을 걸러낼 수 없는 것이다.
주민자치위원회와 주민자치회의 모습을 모두 봐온 지자체 관계자들은 신구 위원의 관점 차이가 이 같은 갈등을 낳았다고 분석한다. 진달금 암사3동 동장은 "신규 위원들 중에는 주민자치회 활동에 혜택이 주어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위원들이 많다"며 "기성 위원들과의 입장 차이가 물과 기름 같다"고 평했다. 방민수 강동구의회 의원(더불어민주당)은 최근 주변 이웃들을 돌아보는 반경이 좁아진 건 사실이라며 "관점의 차이로 인해 주민자치회 활성화가 안 되는 게 갈등의 핵심"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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