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산 동네서점 열린 79세 현역 작가의 강연
책방 '봄날의 산책'서 '지역작가와의 아름다운 정담' 열려
▲ 지역 작가와의 아름다운 정담에 오신 인생 대선배 '최고의 작가 이숙자' ⓒ 박향숙
"인문이란 인간이 만든 무늬라고 하지요. 어떤 무늬가 가장 아름다울까요. 책, 음악, 미술 등의 소재로 만든 무늬에도 감복하지만 저는 사람의 몸에 새겨진 무늬를 가장 사랑합니다. 오늘 책방에 그 무늬를 가진 분, 지역의 이숙자 작가님과 정담(情談)의 시간이 있습니다. 봄날의 산책 모니카 올림."
이숙자 작가는 내 친정어머니와 동년배이시다. 당신의 나이 77세에 첫 책 <77세, 머뭇거릴 시간이 없습니다>를 출간해서 아름다운 그림, 자수, 티마스터로서의 삶을 이야기하셨다. 작년에는 <칠십대 후반 노인정 대신 나는 서점에 갑니다>를 출간해서 인생의 황혼기에 서점에서 책 읽고 강연을 듣고 사유하는 글을 쓰면서 온전히 당신만을 주인공으로 살고 있음을 전했다.
그러나 깊은 물은 소리가 없고 물이 깊어야 큰 배를 띄울 수 있듯이 작가의 그릇 속에 담겨있는 물의 깊이를 조금씩 헤아려보는 눈을 갖게 되었다. 사소한 일도 밝혀 다른 이들도 함께 동참해야 된다고 나서기만 하는 나와는 다른 모습에 저절로 고개가 숙어졌다.
에세이반 문우로서 인연을 맺고 난 후 글로 함께하는 활동에 참석하시는 일 역시 후배들에게 늘 모범이셨다. '80일간 명심보감 인문학 필사하기' '필사시화엽서나눔운동' '매일 한 줄 글쓰기' 등에 동참했다. 그 외에도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브런치 작가를 포함한 SNS 활동도 매우 열정적이다. 독자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는 작가의 모습은 정말 사랑스럽다.
팽나무 그늘 아래서 벌이는 작가와의 정담은 '대성황'
▲ 책방 앞 팽나무그늘 아래에서 이숙자 작가와의 정담. 쏟아지는 질문과 웃음소리에 말랭이동네가 들썩거렸다. ⓒ 박향숙
책방 '봄날의 산책'을 열면서 마음속으로 기획했던 첫 번째 일은 '지역작가와의 만남의 장'을 마련하는 것이었다. 작가와의 만남 시 작가 섭외에 적지 않은 비용이 든다는 것을 알고 있어서 설사 알고 있는 작가라 해도 선뜻 부탁할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다른 동네 책방들처럼 공모전에 통과하여 지원금을 받는 것도 아니고, 펀딩으로 책방을 후원하는 시스템도 어려우니, 책방에서 소요되는 비용은 온전히 나의 몫이었다.
'봄날의 산책'에서 기획하는 '지역작가와의 만남'은 그 색깔을 달리할 수밖에 없음을 말씀드렸다. 최소 올해는 작가 섭외에 들어갈 비용을 작가들이 온전히 기부로서 참여해주시길 부탁드렸다. 책방의 선물은 기껏해야 책 한 권이다. 문학이라는 씨를 온전히 지역민들과 함께 나누고픈 나의 선한 행위를 믿고 도와주시는 거였다. 일 번 타자 이숙자 작가는 역시 깊은 물이자 큰 배의 주인으로서 나의 제안에 흔쾌히 대답해주셨다.
지난 14일 매시간 초록으로 물들어가는 월명산너울이 책방 앞 팽나무에까지 흘러왔다. 초봄에 잎사귀 하나도 보이지 않아 무슨 나무인지 몰랐는데 마을에 심는 대표적 수종인 팽나무라는 것을 알았다. 매일 무성하게 자라나는 이파리들이 이제는 아름다운 신록의 그늘을 만들 정도가 되었다. 행사를 앞두고 '비만 오지 않는다면 저 팽나무 그늘 아래 방문객 모두 초록으로 지쳐보자'라며 기도했다.
언제나처럼 이숙자 작가는 티 세트와 간밤에 만든 아카시아 떡을 가지고 오셨다. 당신이 손수 손님에게 드릴 떡과 차를 준비하시고 나는 당신이 작명해준 '군산작가와의 아름다운 정담(情談)'이라는 플래카드를 붙였다. 책방지기들 역시 의자와 탁자를 정원의 팽나무 그늘 밑으로 옮겼다. 누가 봐도 정담 장소로 최고인 '봄날의 산책'이었다.
한명 두명 지인들이 찾아왔다. 그중에는 우연히 책방을 방문했다가 행사내용을 듣고 찾아온 이도 있었고, 타지역에서 일부러 찾아온 이도 있었다. 십여 명의 손님을 모시고 행사의 내용을 설명하고 작가님을 소개했다. 수줍은 소녀 같은 미소로 정말 수줍게 말문을 연 작가님의 나이를 듣고 모두가 놀랐다. 한참 아들딸 같고 손주 같은 손님들과 정담을 나눈다는 것이 얼마나 황홀한 일인가. 세대를 넘어선 긴 인연의 끈이 한자리에서 매듭을 지으며 또아리를 튼 모습은 눈물 나게 아름다웠다.
글을 쓰면서 변화한 당신 삶의 모습을 전해 듣는 우리들이야말로 팽나무 사이로 내려오는 햇빛방울들이 내뿜는 생명의 에너지를 다 받는 듯했다. 부부간의 삶, 부모와 자식 간의 삶, 형제들 간의 삶, 지인들 간의 삶, 타인들과의 삶, 그 모두가 글을 쓰면서 더욱더 평화로워졌으니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다고 하셨다. 노년의 황혼기에 글을 쓸 수 있는 삶은 정말 축복이라고 하셨다.
▲ 이숙자 작가의 두번째 책 <칠십대 후반 노인정 대신 나는 서점에 갑니다> ⓒ 박향숙
원래 부탁드리길, 40여 분 말씀하시고 10여 분 질의응답을 하시자고 했었다. 그런데 봄의 미풍과 햇살 담은 나무의 그늘에 앉아있는 사람들의 마음은 그런 격식을 따라가지 않았다. 인생의 대선배로부터 듣는 말씀 한마디 한마디에 감동이 일어 저절로 질문이 나오니 무슨 인생심리상담센터에 온 사람들처럼 마음의 고민을 털어놓기도 했다.
손님으로 왔던 이미경님은 작가의 말을 모두 기억하여 별도의 메시지를 보냈다.
"오늘 책방 덕에 군산의 좋은 작가를 만났어요. 나이가 들어가는 게 처음이라서 인생의 선배에게서 듣는 말들이 잔잔하게 공감되고 의미 있는 시간들이었네요. 특히 모든 일에 관심과 정성을 다하면 되는 삶, 결국 인생은 자기 몫이니 혼자 잘할 수 있는 일 즐길 수 있는 일을 찾는 삶, 무엇보다 자식이 자랑스러워하는 엄마의 삶을 말씀하실 때는 울컥했네요."
수필가 피천득의 <인연>에 나오는 이 말을 또 새긴 시간이었다.
"어리석은 사람은 인연을 만나도 몰라보고 보통 사람은 인연인 줄 알면서도 놓치고 현명한 사람은 옷깃만 스쳐도 인연을 살려낸다. 현명한 사람은 우연한 기회로 만난 짧은 시간을 만난 사람도 인연으로 살려낸다. 그만큼 그 사람과의 만나는 시간에 집중하고 노력하고 어필하는 것이라고 생각이 된다. 그리고 만남 이후의 노력과 시간을 쏟는 것까지..."
오늘 책방 <봄날의 산책>에 온 모든 분도 옷깃만 스쳐도 인연을 살려내는 사람들일 것이다. 만남 이후의 노력과 시간을 쏟아 언제나 인연의 품자락을 넓게 펼쳐낼 것이다. 그중 책방지기인 나부터 인연을 담는 그릇이 맑고 청명하길 수련해야겠다. 호수에 비친 하늘처럼 그 누가 오고 가도 그물에 걸리지 않는 자유로운 인연의 발걸음을 선사하는 책방을 약속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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