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연 윤하가 쓴 '최고의 사랑 노래'
‘사건의 지평선‘, 윤하의 이별 노래는 우주를 바라본다
▲ 윤하의 정규 6집 리패키지 'END THEORY : Final Edition' ⓒ 씨나인이엔티
지난해 11월, 가수 윤하가 발표한 정규 6집 < END THEORY >(2021)는 가수에게나, 팬에게나 중요한 순간이었다. 오랜 부침을 거듭했던 윤하의 목소리가 완벽하게 궤도로 올라왔다는 것을 증명한 작품이었으며, 이른바 '록윤하'를 그리워했던 팬들의 마음 역시 만족시켰다. 2007년 한국 데뷔 이후, 15년 동안 윤하를 응원해왔던 나에게도, 이 앨범은 최고의 선물이었다. 스무살의 '피아노 락커'에게 푹 빠졌던 과거, 그리고 완숙한 싱어송라이터의 오늘이 모두 공존했기 때문이다.
< END THEORY >를 유심히 들어본 사람이라면, 윤하의 관심사가 결코 범상치 않다는 것을 포착했을 것이다. 뜬금없지만 '우주'였다. 윤하는 지난해 한 방송에서 이 앨범이 '존재론적 질문'에서 출발했다고 말했다. 코로나19로 상징되는 폐쇄와 축소의 시대, 윤하는 오히려 커리어의 어느 순간보다 확장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래도 이제는 '사건의 지평선' 너머로
▲ 윤하의 '사건의 지평선' 뮤직비디오 중 ⓒ 씨나인이엔티
윤하는 지난 3월, < END THEORY >의 확장판인 < END THEORY : Final Edition >를 내놓았다. 정규 앨범의 흐름을 하루의 흐름과 병치시켰던 그는, 리패키지 앨범의 트랙 순서를 바꾸었다. '살별', 'Black Hole' 등 세 곡의 신곡도 추가되었다. 이 중에서 팬들에게 가장 많은 찬사를 받고 있는 곡은 '사건의 지평선' 아닐까. 데뷔 초를 연상시키는 모던 록 풍의 편곡, 스타카토의 피아노 연주는 팬들의 오랜 노스탤지어를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사건의 지평선'이라는 제목 역시 흥미로웠다. 이벤트 호라이즌(Event Horizon)이라고도 불리는 사건의 지평선은 블랙홀의 경계면을 일컫는다. 일반 상대성 이론에 따르면 이 경계면을 기점으로 내부에서 일어난 사건이 외부에 영향을 줄 수 없다는 것이다. (1997년에는 폴 W.S 앤더슨 감독이 이에 착안해 <이벤트 호라이즌>이라는 호러 영화를 탄생시키기도 했다.) 윤하는 이 단절을 우리네 이별과 연결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사건의 지평선'은 이별을 받아들이는 태도에 대한 노래다.
"저기 사라진 별의 자리 아스라이 하얀 빛
한동안은 꺼내 볼 수 있을 거야 아낌없이 반짝인 시간은
조금씩 옅어져 가더라도 너와 내 맘에 살아 숨 쉴 테니"
열아홉 살의 윤하는 자신이 직접 작사한 '기다리다'(2006)에서 '아홉 번 내 마음 다쳐도 한 번 웃는 게 좋아', '천년 같은 긴 기다림도 그댈 보는 게 좋아'라고 노래했다. 맹목적이라 할 만큼 순수한 사랑이 있었다. 그로부터 16년의 시간이 지났다. 이야기는 나이테에 비례해 성장했다. 이제는 '아낌없이 반짝인 시간'을 과거의 것으로 인정하고, 묻어 두고자 하는 어른이 있다. 밝은 멜로디 뒤에는 영화 <봄날은 간다>처럼 추레한 눈물의 시간도 숨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윤하의 시간 속에서, 더 이상 과거의 아픔은 오늘을 움직이는 독립 변수가 아니다. 물론 필사적인 부정의 대상 또한 아니다. 그저 아련한 흔적으로 남아있을 뿐이다.
이 사랑이 아니라면, 무엇도 나를 구원할 수 없을 것이라 생각한 적이 있다. 그러나 이제 그 기억은 '아스라이 하얀 빛'이 되었다. 지금 당장 내 옆에 있는 사람과 오늘의 햇살이 더욱 귀하다는 것을 안다. '사건의 지평선'에는 이 이야기가 담담하게, 또 동화처럼 담겨 있다. 그렇게 흔한 이별은 우주의 섭리와 연결된다.
나의 첫 번째 아이돌이었던 윤하는 이제는 함께 나이 들어가는 시대의 동반자, 또 멋진 작사가로서 살아 숨 쉬고 있다. '사건의 지평선'은 그 근거다. 단연 윤하가 쓴 최고의 사랑 노래 중 하나일 것이다.
"여긴 서로의 끝이 아닌 새로운 길모퉁이 익숙함에 진심을 속이지 말자
하나둘 추억이 떠오르면 많이 많이 그리워할 거야 고마웠어요
그래도 이제는 사건의 지평선 너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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