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림선 뜯어보니, '안전구역' 있고 '바깥풍경' 보고
새로 개통한 신림선, 국산 전철 정점 서 있어... '경전철' 잔혹사 끊을까
우리가 매일 이용하는 교통, 그리고 대중교통에 대한 최신 소식을 전합니다. 가려운 부분은 시원하게 긁어주고, 속터지는 부분은 가차없이 분노하는 칼럼도 써내려갑니다. 교통에 대한 모든 이야기를 전하는 곳, 여기는 '박장식의 환승센터'입니다.[기자말]
▲ 28일 개통한 신림선 열차가 샛강역에서 회차 대기를 하고 있다. ⓒ 박장식
서울 대중교통망의 수혜를 받지 못했던 음영 지역을 채울 노선이 개통했다. 서울 여의도 샛강역에서 출발해 신대방동, 보라매공원과 당곡동을 거쳐 신림동, 대학동까지 향하는 경전철 신림선이 지난 5월 28일 첫 운행에 들어갔다.
그간 대중교통망이 빈약했다는 볼멘소리가 있어왔던 관악구와 동작구, 특히 대학동, 당곡동 등 지역의 교통 편의가 개선되고, 더욱 목적지까지 가는 속도 역시 빨라졌다. 서울대학교 앞에서 기존 대중교통으로 40분 가까이 걸리던 여의도까지의 거리는 샛강역을 기준으로 16분, 2배 가까이 줄었다.
3량짜리 경전철... '국산 열차' 기술 정점 찍었다
신림선은 3량 규모의 경전철로 설계됐다. 한국형 경전철 기술인 K-AGT(Korean Automated Guideway Transit) 시스템이 적용된 신림선은 철로를 따라 운행되는 보통의 전철과 다르게 고무바퀴를 이용해 움직인다. 즉 자동차 바퀴와 비슷한 타이어로 아래 설치된 콘크리트 길 그리고 측면에 깔린 가이드라인을 따라 운행된다.
2011년 개통된 부산 지하철 4호선이 고무차륜 경전철로 개통했고, K-AGT 기술을 사용했다. 하지만 10년이 지난 만큼 기술이 더욱 진일보했다. 도림천을 따라 지어진 선로에서 급회전을 할 때에도 열차 내 흔들림이 크게 느껴지지 않을 정도다. 차량 자체의 안정성이 높아진 덕분이다.
단순히 안정성만 높아진 것이 아니다. 신림선의 전동차는 사람이 운전석을 지키지 않아도 자동으로 열차가 운행되는 무인 운전을 채택했다. 물론 대다수의 경전철에서 이러한 무인 운전을 시행하고 있지만, 신림선의 경우 순수 대한민국 기술로 만들어진 첫 철도신호체계를 사용했다는 것이 차별화되는 특징이다.
▲ 신림선 차량의 내부 모습. 국산 경전철 기술의 정점을 찍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차량이다. ⓒ 박장식
신림선은 한국형 무선 기반 신호시스템 KRTCS(Korea Radio Train Control System)가 적용된 첫 번째 노선이다. 휴대전화 등에도 사용되는 LTE-R 기술을 이용해 범용성이 높은 KRTCS는 차량의 위치 그리고 현재 상황 등 고용량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열차와 관제센터가 주고받기 때문에 더욱 안정성이 높다.
KRTCS는 한동안 일반철도에서 시범 운행을 하고, KTX가 운행되는 강릉선 등에서도 구축되는 등 사례가 있었다. 하지만 도시철도에 도입된 것은 이번 신림선이 처음이다. 기차 맨 앞자리가 운전석 없이 텅 비어 시민들이 차창 밖 풍경을 기관사가 된 듯 구경하면서 갈 수 있는 이 자리가, 한국 철도의 기술을 뽐내는 자리가 된 셈이다.
다만, KRTCS가 도입된 것이 이번이 처음인 데다가 신림선 자체도 처음 영업 운전을 진행하니만큼 기관사 자격을 갖춘 안전요원이 반 년동안 신림선 열차에 탑승해 혹여나 있을 비상 상황에 대비한다는 것이 남서울경전철 측의 설명이다.
안전 위한 'CCTV 존'... 차 안에서 바깥 확인도 되네
이용객의 입장에서 더욱 섬세하게 접근한 점들도 눈에 띈다. 신림선의 모든 승강장에는 '안전구역'이 있다. 경전철의 특성 탓에 적지 않은 역에서 역무원이 눈에 띄지 않는지라 한산한 시간대에는 혹여나 다른 승객에 의해 불쾌한 경험을 하게 될 수도 있다. 그런 위험을 없앤 것이 바로 안전구역이라고.
의자가 놓여있는 평범한 지하철 승강장과 비슷해 보이지만, 안전구역의 장점은 CCTV가 상시 안전구역 안에서 가동된다는 데 있다. CCTV는 관제센터와 연결돼 있어 문제가 생기더라도 바로 파악이 가능하다는 것이 현장 관계자의 설명. 특히 안전지대에는 비상전화가 가능한 인터폰까지 설치돼 있어 비상 시 관제센터와 실시간으로 연결이 가능하다.
▲ 신림선의 열차가 정차하는 모든 승강장에는 이렇듯 '안전구역'이 마련되어 있다. ⓒ 박장식
9호선 2단계 구간 등에서 이러한 안전구역이 설치되기는 했지만, 개통 때부터 안전구역이 모든 승강장에 마련된 것은 신림선이 처음이다. 작은 CCTV 하나, 작은 인터폰 하나만이 설치됐을 뿐이지만, 1인 가구가 많은 신림선 연선 지역의 특성 상 심리적으로도, 실질적으로도 신림선을 이용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차 안에서도 승객들을 위한 배려가 눈에 띈다. 전철이 역에 도착할 때, 차량 내 LCD 화면에서 역 출구 바깥 풍경을 실시간으로 띄워주는 모습이 바로 그것이다. 다른 전철 노선에서는 한 번도 본 적 없는 기능이다. 현장 관계자는 "처음 시민단체 등에서 방문하셨을 때 '녹화화면이 아니냐'고 되묻기도 했다"며 웃었다.
간단한 LCD 화면이지만 쓰임새가 적지 않다. 버스를 갈아타야 하는데 환승 시간이 빡빡할 때 '내가 탈 버스가 오는지, 오지 않는지' 확인도 가능하고, 눈이나 비가 오는 등 기상 상황을 차 안에서 미리 확인할 수 있어 역 안에서 미리 우산을 사거나, 눈비를 덜 맞을 수 있는 교통편을 알아보는 등 대처를 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수요 따라 더욱 유연한 대처 가능해졌다
신림선의 특징이 있다면 다른 경전철에 비해 승강장이나 역사가 탁 트인 느낌이 든다는 것이다. 같은 서울 시내에 개통한 경전철인 우이신설선 그리고 김포 도시철도 등과 비교해봐도 승강장 규모가 비교적 큰 것이 눈에 띈다. 역에 전철이 들어오면 타고 내리는 승객들로 인해 승강장이 꽉 들어차는 다른 노선과 비교된다.
최근 건설되는 경전철의 경우 턱없이 부족한 승강장 그리고 역사 내 여윳공간 탓에 열차를 탈 때는 물론, 타기 전에도 승하차에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신림선의 경우 승강장이나 엘리베이터 등 주요 시설을 널찍하게 설계한 것이 특징이다. 설계 과정에서 다른 경전철 노선들을 참고했다는 것이 현장 관계자의 설명.
▲ 일반 전철역 못지 않게 널찍한 모습이 눈에 띄는 신림선 신림역의 모습. ⓒ 박장식
아울러 신림선의 경우 남쪽 그리고 북쪽으로 모두 연장을 앞두고 있다. 향후 경전철 서부선의 개통을 대비해 동여의도 방향으로의 연장이 계획돼 있고, 보라매공원역에서는 남쪽으로 가지를 치듯 갈라져 난곡동까지 연결되는 난곡선 사업이 한창 진행되고 있다.
그런 만큼 향후 차량 역시 더욱 많이 투입되고, 승객들 역시 더욱 늘어날 전망이기에 이러한 대비가 환영할 만 하다. 아울러 모든 역은 아니지만, 대다수의 역에 한 량 정도 열차가 더 들어갈 공간을 마련해두어 확장을 더욱 쉽게 추진할 수 있게 된 것 역시 장점이라 할 수 있다.
다만 아쉬운 것은 배차 간격. 신림선은 출퇴근시간 3분 30초까지 배차간격이 줄어들지만, 평시에는 10분까지 배차간격이 늘어난다는 단점이 있다. 배차간격이 늘어나는 시간대에는 전철을 놓친 경우 망설이지 않고 바로 지상으로 올라와 버스를 갈아타는 것이 오히려 빠른 시간대가 있을 정도이다. 향후 승객이 늘어날 때를 대비해 더욱 유연하게 배차간격을 조절할 필요가 있다.
신림선, '경전철 잔혹사' 끊을까
▲ 신림선 차량 내부에서는 역에 도착할 때마다 역 바깥 모습을 볼 수 있다. ⓒ 박장식
수도권에서 진행되는 경전철 사업은 유독 부침이 심했다. 수요 예측 실패로 인한 적자로 문제를 겪다가도, 이번에는 수요 예측을 너무 낮게 한 탓에 열차가 매양 콩나물시루가 돼 사회적 문제를 겪기도 했다. 경전철 문제가 중간이 없는 듯한 모양새를 이어온 것. 그리고 그로 인해 경전철 추진 사업들이 타격을 입은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신림선이 그런 잔혹사를 끊어내고 새로이 거듭날 수 있을 수 있다는 기대를 걸게끔 한다. 국산 기술로 완성된 경전철이라는 장점은 둘째치고라도, 지금까지 경전철의 단점으로 꼽혀왔던 문제들을 상당 부분 해소하려는 시도를 했다는 점에서 더욱 나은 청사진을 그려왔다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신림선이 단순히 음영지역의 교통 개선이라는 역할, 그리고 국산 철도 기술의 박람회장을 방불케 하는 장소가 되었다는 의의를 넘어, 그간 경전철에 씌워져왔던 부정적인 색안경을 벗어던지게끔 할 수 있는 역할을 해낼 수 있기를 바란다. 그래야 앞으로 '후배'가 될 경전철이 더욱 많이 교통 음영 지역을 누빌 수 있을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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