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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딸기는 식욕을 저하 시키는 게 목적입니다

동물들로부터 딸기를 보호하기 위해 유인물을 만들었습니다

등록|2022.06.05 10:17 수정|2022.06.05 10:17
나는 과일을 그렇게 많이 즐기는 편은 아니지만 그중에 딸기는 좋아하는 편이다. 특히 여름엔 딸기와 블루베리를 얹어서 파이를 꼭 만들어 먹어야 할 만큼 나에겐 딸기가 중요하다.

그러니 농사를 지으면서 당연히 딸기를 키우고 싶었다. 그래서 주렁주렁 예쁘게 달린 딸기 사진을 찍고 싶기도 했고, 일 하다가 쓱 따먹고 싶기도 했다. 그러나 세상은 그렇게 만만하지 않았다.

딸기는 열려서 빨갛게 되기 무섭게 누군가가 먼저 드신다. 다람쥐인지, 새인지, 아니면 쥐인지... 심지어 공중부양 딸기 밭을 만들어 봤지만, 역시 그다지 재미를 보진 못했다.
 

▲ 벌레들로부터 지키기 위해 빗물받이 홈통에 딸기를 키우고 있다 ⓒ 김정아


그러던 차에, 모형 딸기를 만들어서 딸기가 익기 전에 미리 준비해 두면 좋다는 정보를 입수했다. 새들이나 다람쥐가 와서 허탕을 치고는 다시는 먹으려 들지 않는다는 것이다. 정말 얼마나 효과적일지는 모르겠지만, 재미있어 보였기에 나도 시도를 해 보기로 했다.

일단 작은 돌멩이를 줍는다. 딸기 모양이 될 만한 것들로 골랐다. 우리집 딸기는 그리 크지 않으므로 되도록 자그마한 것들을 고르려고 애를 썼다. 그렇게 한움큼 모아서는 일단 깨끗하게 씻었다.
 

▲ 울퉁불퉁한 것이 나중에 칠 해놓으면 더 실감 난다 ⓒ 김정아


이제 칠을 해야 하는데, 일반 수채화 물감은 쓸 수 없다. 비를 맞으면 다 지워지기 때문이다. 라커나 페인트를 사용해도 되지만 이럴 때에는 아크릴 물감이 제일 만만하다. 일단 다 마르고 나면 비가 와도 지워지지 않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는 문구점에 가면 그리 비싸지 않은 금액으로 아크릴 물감을 살 수 있지만, 여기 캐나다에서는 물감이 엄청 비싸다.

이걸 한 번 쓰려고 몇 가지 색을 사야 하나 고민하다 보니, 친한 친구가 물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떠올랐다. 취미로 그림을 그리는 친구인데, 옛날에 내가 캐나다에 올 때 친구가 아크릴 물감을 사다 달라고 부탁한 적도 있었던 것이 기억이 난 것이다.

친구는 흔쾌히 빌려주겠다고 했다. 약속을 잡았는데 그날 남편이 갑자기 아파서 약속이 취소되었다. 내가 그냥 사도 된다 했더니, 여기는 비싸다며 절대 사지 말라는 친구. 서로 시간을 맞추려면 날짜를 다시 언제로 잡나 하는데, 이틀 후에 친구는 지나는 길이라며 물감을 주고 갔다. 내가 빨리 하고 싶은 마음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친구가 고맙게도 일부러 우리 집 쪽으로 들러서 주고 간 것이다.

아크릴 물감으로 가짜 딸기 만들기
 

▲ 먼저 빨간 물감을 칠하고, 다 마른 후에 다른 색을 추가로 칠한다 ⓒ 김정아


나는 부지런히 작전에 돌입했다. 빨간색을 그냥 사용하려니 원하는 색이 잘 안 나와서, 검정도 섞어 보고, 노랑도 섞어 보았다. 주의할 점은, 마르면서 색이 진해진다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빨갛게만 칠할까 하다가, 아무래도 좀 더 실감 나게 하기 위해서, 빨강이 마른 후에 초록색을 덧대어 주었다. 그러고 나서 다시 씨를 칠할까 말까 갈등을 좀 했다. 딸기의 씨는 그리 돋보이지 않는 것이 사실이지만, 이왕 만들기 시작한 것, 좀 더 재미나게 하고 싶었다.
 

▲ 손에 얹을만큼 작은 돌멩이 딸기들 ⓒ 김정아


결국 흰색에 노랑과 검정을 섞어 씨앗 색을 만들어 씨앗까지 콕콕 받았다. 손 위에 얹어보니 진짜 딸기를 들고 있는 듯 재미났다. 묵직한 딸기.

남편이 예쁘다며, 만들어서 팔라고 농담을 던진다. 하하! 누가 이런 것을 사겠느냐만서도, 만드는 데 은근 공이 들고 시간이 꽤 걸려서 대량 생산해서 판매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결론이 몇 초도 안 걸려서 났다.
 

▲ 완성된 딸기 유인물 ⓒ 김정아


이런 것을 영어로 데코이(decoy)라고 부른다. 유인물이라는 뜻이다. 사냥꾼들이 오리를 잡기 위해 오리 모형을 만들거나, 낚시꾼들이 모형 지렁이를 사용하는 것들, 그런 것들이 모두 데코이다. 나는 사냥은 안 하지만, 이걸로 유인해서 식욕을 저하시키는 것이 목적이다.

새들은 딱딱한 것을 쪼는 것을 무척 싫어한단다. 그래서 이렇게 돌을 쪼고 나면 다시는 이 근처 딸기는 거들떠보지도 않는다는 이론이다. 나는 얼른 들고 나가서 우리 집 딸기 밭에 여기저기 던져 놓았다. 벌써 딸기 꽃이 피기 시작했기 때문에, 더 늦어서 걔네들이 진짜 딸기 맛을 보기 전에 돌멩이 맛을 보여줘야 한다.
 

▲ 가짜 딸기로 장식된 딸기밭 ⓒ 김정아


아직 딸기가 달리지 않았는데, 푸른 딸기 밭에 이렇게 놓으니 장식용으로도 참 예쁘다. 선명한 붉은색이 초록색과 흙색과 어울려 기분을 상큼하게 해 준다.

땅바닥에서 자라는 딸기 옆에도 놓아줬더니, 남편이 잔디 깎다가 깜짝 놀랐다며 껄껄 웃는다. 이미 알고 있었는데도, "아니, 벌써 딸기가?" 하는 순간의 착각이 들었다는 것이다.

이게 정말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는 두고 볼 일이지만, 재미 삼아 시도해볼 만한 일인 듯하다. 특히나 아이들이 있는 집이라면 놀이 삼아 해 봐도 좋을 것 같다.
덧붙이는 글 기자의 브런치에도 같은 글이 실립니다.(https://brunch.co.kr/@lachouette/4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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