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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그때로부터 얼마나 멀리 와 있는가?

한상준의 장편 소설 '1986년, 학교'를 읽고

등록|2022.06.02 09:00 수정|2022.06.02 09:00

1986, 학교(문학들)우리는 그때 그곳으로부터 얼마나 멀리 와 있는가? ⓒ 안준철


한상준의 장편소설 <1986, 학교>(문학들)는 조금 지루하게 느껴질 수도 있는 학교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한 마디로 재밌게 술술 읽을 만한 책이 아니다. 아니,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데 그게 아니다. 재밌다. 내 건강을 위해서 쓴 약을 입에 털어 넣었는데 쓴 맛만 있는 것이 아니고 아기자기한 요상한 맛이 다 들어 있는 거다.
 
우리나라 꽃들에겐
설운 이름 너무 많다
이를 테면 코딱지꽃 앉은뱅이 좁쌀꽃
건드리면 끊어질 듯
바람 불면 쓰러질 듯
아, 그러나 그것들 일제히 피어나면
우리는 그날을
새봄이라 믿는다
(중략)
 산에 오르면서 이런저런 나무들과 이름 모를 풀들, 들꽃들을 보면서 마침, 요 얼마 전에 읽고 좋아서 외워둔 시가 생각났어요. 김명수 시인의 『하급반 교과서』라는 시집에 나오는, 「우리나라 꽃들에겐」이라는 십니다. 현실을 참 잘 드러냈다는 생각도 들고 해서 읊었어요. 노래할께요.(60쪽)

소설에 따르면, 식목일에 미혼 선생들의 모임인 '도화처총회' 야유회가 있었다. 3월 말부터 바람잡이 곽 선생의 끈질긴 독려의 결과다. 그런데 국어과 박 선생은 노래를 부르라는데 갑작스럽고도 분위기에 썩 어울리지 않는 시낭송을 한다. 곽 선생은 호들갑을 떨고 장 선생은 가슴이 콩콩 뛰는 것을 느낀다.

장 선생은 학교 도서모임 회장이다. 이번 야유회 목적이 젊은 사람들끼리 단합하고 어울리자는 데 있지만 초임 선생들의 면면을 확인하여 영입대상을 신중하게 탐색하고 있다. 박 선생은 점심시간을 이용하여 방송으로 명시감상이라는 교육실천을 하고 있다. 교장의 승낙을 받는 것이 쉽지 않을 터인데 허락을 받은 것만도 대단하다고, 장 선생은 생각하고 있던 터였다.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잘 모르는 곳, 학교

사람들이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잘 모르는 곳이 학교다. 흔히들 생각하는 것처럼 학교는 학생들을 가르치기만 하는 곳도 아니다. 어떤 집단 못지않게 권력관계가 작용하는 곳이기도 하다.

쉬운 예를 하나 들어보자. 가령, 학교에는 도서관이 있다. 그럼 도서관에 비치할 책을 구입해야 한다. 어떤 책을 구입할 것인가? 당연히 학생들의 정서함양과 지적 성장에 도움이 되는 책을 구입해야 한다. 하지만 교장의 생각은 다르다. 마진이 먼저다. 마진이라니?
 
교장은 마진이 얼마냐며 책값을 결재하지 않았다. 사전에 교장의 허락을 받아 진행을 했는데도 그랬다. 나는 국어교사이면서도 '마진'이라는 말을 처음 들었고 뜻도 몰랐다. '그나마 마진이 있다면 책을 더 사면 되는데, 왜 마진을 달라고 하느냐'며 대들었다. 그렇게 업무와 관련해 자주 대립했고, 교장은 나에게 사고내신을 하기 전에 다른 학교로 가라고 강요했다. - '작가의 말' 중에서

한 작가는 교사가 되기 전에 실제로 4주간의 교육실습을 섬학교에서 했다. 섬생활을 미리 익히겠다는 생각에서다. 교육실습 2주째 접어들 즈음, 국어과 담당 선배교사로부터 '4주 동안 배울 것이라곤 별로 없다. 공문서 잘못 작성하면 시말서를 쓰지만 아이들 잘못 가르쳤다고 누가 시말서 쓰라고 하지 않는다. 공문서 작성하는 거나 잘 배워 가거라'는 충격적인 조언을 듣게 된다.

이에 한 작가는 '공문서 잘못 처리해서 시말서 쓰라면 두렵게 생각하지 않겠다. 아이들을 잘못 가르쳐서 시말서 쓰라고 하면 두렵게 생각하겠다'고 응수한다. 그러자 '그 생각이 5년까지 가면 다행이겠다'는 선배교사의 단언이 즉시 돌아온다.

그리고는 5년이 흘렀다. 그는 거기서도 교장과 싸웠다. 교실이 섭씨 영도 이하로 내려가면 난롯불을 때주겠다는 약속을 교장이 지키지 않아서다. 교실에서 맨발로 떨고 있는 아이들이 안 보이느냐고 항의했지만 속수무책이었다. 그는 중학교 근무 5년째를 앞두고 교육실습 때 선배 교사에게 듣고 욕했던 말이 새삼 떠올랐고, '내가 지금 그러고 있지 않나, 하는 자책이 엄습했다'고 술회하고 있다.

<1986, 학교>는 작가의 창작이 가미된 소설이지만 전체적인 줄거리나 그 속살은 작가의 '기억의 복원'에서 온 것임이 분명하다. 놀랄 만한 복원력이다. 아니, 그 신산스런 기억들을 애써 떠올려 복원해낸 작가 정신이 먼저다. 추천사를 쓴 동료 작가인 정의연 소설가의 말대로 "작가 한상준이 아니었다면 만날 수 없었을 이야기"이다.  마지막 글귀가 가슴 찡하다. "우리는 그때 그곳으로부터 얼마나 멀리 왔는가?"

소설의 시대적 배경이 되는 1986년은 "교사는 교장의 명에 따라 교육한다"는 교육법 75조가 펄펄 살아 있던 시대다. 광주 5월 이후 전두환 일당의 신군부가 장악한 정치적 상황 또한 만만치가 않다. 소설에는 당시 학교에서의 고만고만한 일상들이 손금을 보듯 섬세하게 그려져 있다. 교사들의 열띤 논쟁과 대화 속에서 우리 교육의 구조적인 문제들이 아프게 드러나기도 한다. 교육현장의 누추하고 부끄러운 모습도 가감 없이 묘사되어 얼굴이 붉어질 때도 있다.

제왕적 교장의 오른 팔은 군인 출신의 교련 선생이다. 학생들 사이에서 '표톹'이라는 별명으로 통하는 그는 학생과장을 겸하고 있다. 그는 소설의 후반부에서 학생회 직선제를 요구하는 장호에게 무자비한 폭력을 가한다.

소설을 읽다가 잠시 책을 덮고 흐린 눈으로 허공을 바라보기도 했던 것은 소설 속 이야기가 허구만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까마득히 잊고 있었던 기억들이 되살아나기도 했다. 내가 생생하게 경험하고 고뇌하기도 했던 그때의 일들을 나는 마치 없었던 것처럼 잊고 있었던 것이다.

애써 기억하지 않으면 반복된다. 역사는 나선형으로 진보한다고 했던가. 그 반대의 경우도 있을 것이다. 그 야만의 세월이 나선형으로 다시 돌아올 수 있을 거라는 얘기다. 그것이 훌훌 털어버리고도 싶었을 지긋지긋한 교단에서의 기억을, 그 신산스런 고통의 시간들을 애써 복원하고자 했던 한상준 작가의 생각이기도 했으리라.
 
학생과장은 너 같은 놈은 몽둥이가 약이라면서 가릴 것 없이 온 몸을 후려친다. 장호는 손으로 막고 피하면서, 끓어오르는 분노를 자제한다. 막무가내로 폭력을 휘두르는 학생과장 앞에서 더 이상 있을 수 없다고 판단한 장호는 자리를 박차고 문 쪽으로 튄다. 학생과장 몽둥이에 출입문도 채 열지 못하고 어깻죽지를 강타 당한다.
"억, 억, 왜 이러십니까. 억, 억"
"이 개새끼, 너 같은 놈 때문에 학교가 망쳐지는 거야. 이 길도 새끼야."
-305쪽

장호는 '길도'에서 살고 있다. 장호와 함께 숙인도 길도에 산다. 학생과장은 길도에 사는 아이들을 유독 싫어한다. 길도는 일종의 '자활촌'으로 산업화 과정에서 생긴 소외지역이다.

차별과 배제 속에 억눌려 있던 농촌아이들은 시위를 일으켜 학교의 견고한 벽에 균열을 낸다. 장호는 이 사건으로 무기정학을 당한 뒤 자퇴하게 된다. 숙인은 학교에 남지만 머리를 깎고 비구니처럼 살아간다. 이 두 학생을 고통스럽게 지켜보는 두 교사가 있다. 장 선생과 황 선생이다. 그들은 나중에 부부가 되었고, 이 소설은 이들 부부교사가 숙인과 장호 두 제자를 만나러 가는 여정으로 시작된다.

이 소설은 프를로그와 에필로그는 빼면 총 19장으로 되어 있다. 목차에는 작은 꼭지 제목이 없이 숫자로만 표기되어 있지만 매 장마다 주제가 있다. 가령, 5장은 이 소설의 중요한 시대적 배경이 되기도 하는 <민중교육> 지를 둘러싼 교사들의 갑론을박이 소상하게 담겨 있다. 6장은 강제적인 보충 수업 문제가, 8장에는 입시교육의 문제가, 9장에는 교련조회를 하는 장면들이 아주 생생하게 그려져 있다. 소설은 마지막 19장 '교육민주화 선언'에서 절정을 이룬다.

이 소설은 <민중교육>지 사건이나 '교육민주화 선언'을 비중 있게 다루지만 거기가 정점은 아니다. 그 후 전교조 탄생과 해직교사의 길을 가게 된 장 선생의 상황도 시대적 배경으로만 잠깐 언급될 뿐이다. 그럼에도 '교육민주화 선언'의 일부라도 소개가 되었으면 아쉬움이 남는다. 하지만 에필로그를 읽으면서 그런 아쉬움은 상당 부분 해소가 되었다.

나중에 교사가 되고 시인으로도 등단한 숙인이 장 선생과 황 선생 앞에서 털어 놓은 말 때문이다. 나는 그녀의 말을 한상준 작가의 소회로도 읽었다. 마지막으로 그 대목을 소개하며 이 글을 마칠까 한다. 한 작가의 노고에 깊이 감사드린다.
 
제 어린 날부터 제게 덧씌워진 그 가난이 지금도 이어지고 있어요. (…) 시를 쓰면서 고향집을 수십 번도 다녀왔어요. 맞닥뜨려야만 할 것 같았어요. 발기발기 찢어버리고, 불태우고 싶었어요. 찢어지지 않았고 태워지지 않았어요. (…) 그럼에도, 계속 길도와 도화를 시로 쓰면서 어떤 울림이 오더라고요. 그 옷을 벗어버리는 버림으로 해서 미학적 성취를 거머쥐는 게 아닌 거라고, 벗어버리기보다는 스스로 제게 맞는 옷이라 여기며 입고서 거침없이, 거침없이 나아가야한다고 저를 끌어 올렸어요. - 39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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