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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대로 된 성평등'을 위해 여성가족부는 필요하다

[여가부 폐지를 폐지하라 ⑨] 성소수자 운동이 여성가족부 폐지 반대하는 이유

등록|2022.06.07 10:41 수정|2022.06.07 11:01
윤석열 인수위가 발표한 국정과제에는 여성가족부폐지가 없었으나 소위 이대남 여성혐오로 대통령이 당선된 국민의힘은 여가부폐지안을 발의하였습니다. 기본 여가부 관련 사업도 다른 부처와 같이 하는 방식으로 업무 분장을 하여 여가부의 실질적인 힘을 뺄 뿐 아니라 여가부 폐지 법안 상정까지 한 것입니다.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도 구조적 성차별을 외면하는 윤석열 정부의 입장은 변함이 없습니다. 이에 여성, 인권단체들로 구성된 ‘여성가족부폐지 저지를 위한 공동행동’은 다양한 위치에 처한 사람들에게 성평등 전담기구가 왜 필요한지를 연재합니다.[편집자말]

▲ 여성가족부폐지저지공동행동 소속 활동가들이 4월 14일 오전 서울 종로구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인근에서 여가부 폐지를 반대하며 공동행동 돌입 선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이희훈


성소수자 인권 활동가로서 여성가족부 폐지 반대에 관한 기고를 요청받고 다소 막막한 기분이 들었다. 그간 성소수자 운동에 있어 여성가족부(아래 여가부)는 관련 사업을 통해 도움을 받는 대상이라기보다는, 여성과 성소수자를 가르고 제대로 된 성평등을 실현하지 못하는 정부부처로서 투쟁의 대상이었기 때문이다.

성평등과 양성평등, 여가부의 모순된 태도

2015년 대전시는 성평등조례를 개정하여 성소수자에 대한 보호와 지원 내용을 추가했다. 그런데 이에 대해 보수개신교 단체들이 항의 민원을 제기하자 여가부는 대전시에 어처구니없는 공문을 내린다. "양성평등기본법은 여성과 남성의 동등한 권리와 책임, 참여기회를 보장해 남녀가 함께 만드는 양성평등 사회를 실현하기 위한 법"이고 "성소수자와 관련된 개념이나 정책을 포함하거나 이를 규정하지 않고 있으므로", 성평등조례가 상위법에 어긋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대전시는 이를 받아들여 성소수자 보호 내용을 삭제하고야 만다.

그 후 정권이 바뀌고 장관이 몇 차례 교체되었음에도 여가부의 태도는 그다지 달라지지 않았다. 2017년 여가부는 2018년부터 시행될 <2차 양성평등 정책 기본계획>에서 '성평등' 용어 사용을 재검토하겠다고 밝혔다. 2018년 2월, 정현백 여가부 장관은 한국기독교연합을 만나 성평등정책에 대한 오해를 해명하며, 여가부는 동성애를 옹호하거나 성소수자를 인정하는 정책과 무관하다고 밝혔다는 사실이 보도되기도 했다. 2019년에는 가족다양성정책포럼을 개최하면서 '동성애 관련 내용을 제외'라 이야기했고, 이에 발표자가 항의하며 불참하는 일이 발생하기도 했다.
 

▲ 2017년 10월 19일 '충남 인권조례 폐지를 위한 충남 범도민대회'에 참가한 참가들은 '양성평등 YES, 성평등 NO'라고 쓰여진 손팻말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 신영근


성평등과 양성평등, 둘 다 영어로 하면 'gender equality'이다. 헌법에 따른 평등을 실현한다는 법에 누군가를 차별하는 내용이 들어갈 리도 없다. 그럼에도 양성평등이라는 이름 아래 성소수자를 배제할 수 있다는 말도 안 되는 주장을 정부부처인 여가부가 이야기했다. 이렇게 만들어진 양성평등/성평등의 잘못된 프레임은 계속해서 차별을 만들어냈다.

여가부 폐지는 무엇을 위한 것인가

이처럼 계속해서 여성과 성소수자를 분리하고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와 차별을 확산시킨 여가부의 그간의 태도는 분명히 문제적이다. 그러나 이것이 여가부를 폐지해야 한다는 이유가 될까. 결코 그렇지는 않다. 왜냐하면 구조적 성차별을 부정하고 여가부를 폐지해야 한다는 윤석열 정부의 태도는 기존 이상으로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을 확대 재생산할 것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여가부 폐지에 동의한다고 한 김현숙 여가부 장관은 취임 시작부터 성소수자 혐오를 그대로 수용하는 태도를 보였다. 지난 5월 11일 인사청문회에서 김 장관은 성별정체성을 포함한 차별금지법이 제정되면 성범죄가 늘어나 여성들이 위험해진다는 서정숙 국민의힘 의원 질의에 그러한 주장의 문제점을 지적하지 않고 차별금지법 제정에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5월 23일에는 '2022년 버터나이프 크루 4기'를 모집한다는 공고를 내며 그동안 청년 성평등 추진단이라고 썼던 용어를 청년 양성평등 추진단으로 변경하였다. 여가부는 성평등/양성평등을 계속 혼용해왔기에 문제가 없다고 했지만 앞서 본 바와 같이 양성평등이라는 이름 아래 성소수자를 배제해 온 역사를 고려하면 이는 절대 사소한 일로 볼 수 없다.

이처럼 성평등 전담기구의 필요성을 부정하며 여가부를 폐지하려 하는 윤석열 정부의 일련의 조치에 깔려 있는 것은 모두의 인권을 집단 대 집단의 문제로 갈라치기하고, 누군가를 배제하려는 혐오와 차별이다. 따라서 그 의중대로 여가부가 폐지된다면 지금까지 이상으로 여성과 성소수자의 인권이 배제되고 구조적 차별이 고착화되는 결과가 초래될 것이다. 그렇기에 성소수자 활동가로서 나는 여성가족부 폐지에 단호한 반대를 표명한다.

지금 필요한 것은 더욱 강화된 성평등전담기구
 
우리는 여성성소수자이다. 여성이자 성소수자로서 인권을 보장할 책무를 국가에 요구할 수 있다. 우리는 성소수자들을 낙인찍고 차별하고 배제하고 혐오하도록 부추기는 성차별적 의식과 제도들에 맞설 것이다. 성차별에 맞서는 모든 행동들은 성소수자를 차별하는 행동과 한 편이 될 수 없으며, 성소수자에 대한 배제와 차별은 성평등이라 부를 수 없다. 성소수자의 인권 없이는 성평등도 없다. - 2015년 여성성소수자 궐기대회 선언문 중
 

▲ 2015년 여성성소수자 궐기대회 "나는 여성이 아닙니까" ⓒ 퀴어여성네트워크


사실 계속 여가부의 문제점을 지적했지만 그럼에도 여가부의 그간 사업을 통해 지원받은 성소수자들은 많을 것이다. 여가부가 한 성폭력방지 및 피해자 지원 사업을 통해 상담과 지원을 받은 여성 성소수자들이 있을 것이고, 청소년 지원 사업을 통해 도움을 받은 청소년 성소수자도 있을 것이다. 앞서 본 버터나이프 크루에도 청년 성소수자들이 활동을 했을 수도 있다. 이는 여가부가 의식적으로 성소수자에 대한 적극적인 지원 사업을 시행했기 때문은 아니다. 한 사람의 정체성은 다양하고 개인들은 여성 집단, 청소년 집단, 성소수자 집단으로 명확히 분리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지금 필요한 것은 구조적 성차별을 해소하고 모든 사람이 성별, 성적지향, 성별정체성 등에 상관없이 평등하고 존엄한 삶을 누릴 수 있는 정부 기구를 구성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는 결코 지금과 같이 여가부를 폐지한다고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양성평등/성평등이라는 모순된 프레임에서 벗어나 여가부를 보다 제대로 된 성평등전담기구로 강화하는 것, 이것이 진정으로 헌법이 규정한 평등을 실현하기 위한 국가의 책무임을 윤석열 정부는 명심하기 바란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을 쓴 박한희는 성소수자차별반대 무지개행동 집행위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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