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값도 못했으니 조금만" 그래서 더 드렸습니다
지역 동아리 사람들과 군산나운종합복지관에서 무료급식 봉사 하던 날
점심 한 끼를 위한 무료급식 봉사 현장에서는 긴장과 신속함 그리고 위생정신이 필수다. 다른 어떤 봉사 활동보다도 이 활동은 삶의 희로애락을 겪는 일상에 큰 보람을 느낀다. 비록 몸은 고되지만 온전히 누군가를 생각하며 밥을 준비하는 행위는 나 자신의 수신(修身)만큼이나 귀한 시간이다.
작년부터 급식 수혜자들의 도시락 위에 좋은 글과 시를 쓴 시화엽서나눔운동을 하고 있다. 도시락으로 배부될 때는 엽서 전달이 쉽고, 받는 이들도 읽어보고 가져갔다가 모아서 보여주기도 했었다.
올해는 코로나 완화로 인해 도시락 대신 급식처에서 직접 밥을 드신다. 그러다보니 작년처럼 온전히 엽서를 받아가지 못한다. 식판과 함께 드는 불편함, 식사 후 놓고 가는 건망증 등이 뒤따랐다. 그래도 나는 여전히 말한다.
"한 분이라도 읽으면 얼마나 좋아요!"
밥을 나누는 일
엽서만 나눠주는 것이 왠지 허전해서 올해부터는 시화엽서동아리 '책방향기' 팀이 직접 밥을 준비하는 현장에 나간다. 지난 5월부터 최소 한 달에 한 번씩 나운종합복지관 급식소에서 점심밥을 준비한다. '한 끼 식사를 위한 대장정이 어떻게 시작되는 줄 미리 알았더라면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했을 것이다'라고 지인들이 말할 정도로 정말 쉬지 않고 식사 준비를 한다.
지난 2년 동안 코로나 때문에 도시락을 준비하는 활동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분주하다. 나운종합복지관에서 급식을 받는 분들은 평균 350여 명이다. 군산에서 가장 많은 수혜자들이 있는 곳이어서 영양사를 비롯한 봉사자들의 수가 가장 많이 필요한 곳이다.
날이 길어져서 그런지 어르신들은 새벽부터 급식관 주변에 나와서 기다리신다. 이제는 낯이 익어서 인사를 드리면 응대해 주시고, 어떤 분은 먼저 '엽서 주는 사람이네'라고 말씀하신다.
이날 제공되는 식사 메뉴를 보고 봉사자들은 말했다. 밥과 반찬이 모자랄 수 있으니 넉넉히 해야 한다고. 어르신들이 좋아하는 반찬이 나온다는 뜻이다. 오늘도 영양 만점인 닭볶음과 싱싱한 참나물, 동태국 등이 선보였다. 반찬을 만드는 일은 조리사들의 역할이라 봉사자들은 각종 음식에 들어갈 양념을 준비한다. 먹을 사람의 수가 많으니 손놀림도 빨라야 한다.
특히 밥을 드실 어른들의 치아와 건강상태를 고려해야 한다고 조리사가 지도한다. 각종 양념으로 들어가는 재료의 길이는 4-5cm를 넘기면 안 된다 하고, 닭볶음탕에 들어가는 닭의 뼈 하나도 꼼꼼히 확인해야 된다고 말했다. 한 가지 일이 끝나면 바로바로 뜨거운 물에 소독을 하는 등 위생이 매우 철저함을 알았다. 말해 주는 모든 것들이 배울 거리다.
식사 배정 시간이 되면 봉사자들 역시 각자의 자리에 선다. 밥 푸는 일이 내 몫이 되어서 커다란 밥 뚜껑을 여니 '이렇게 고슬고슬한 밥이 또 있으랴' 싶은 밥이 보였다. 어느새 길게 줄 서 있는 어르신들 역시 밥 냄새에 혹 했는지, 흑쌀과 콩을 잘 섞어야 한다는 주문이 들어왔다. 난 무조건 '네'라고 답하고 부지런히 밥을 매만졌다.
"어서오세요. 아버님, 밥 더 드릴까요? 맛있게 드세요" 등의 멘트를 날린다. "더 많이 줘. 식판 빈 곳을 채워줘. 난 콩을 좋아해. 아니 그만하면 됐어" 등의 응답이 있다. 대부분의 어르신들은 봉사자들의 인사에 친절하게 답한다. 어떤 분은 살짝 농담도 하신다.
"밥값도 못했으니 조금만 주시오."
"더 드셔야 밥값하실 좋은 일이 생길 거예요. 맛있게 드세요."
나의 웃음에 당신이 내게 웃음을 선물했다고 하시며 지나 가신다. 참으로 정 많은 분이다.
급식소에 퍼진 '책방향기'에 한 솥 더
봉사 활동 현장에 있은 지 10여 년이 넘는 시간을 되돌아본다. 해가 갈수록 몸이 힘든 일에는 사람들이 없다. 나만 해도 청소년지도라는 활동으로 말로, 머리로 하는 일이 많았다.
그런데 코로나가 시작되어 마스크를 만드는 현장과 무료급식처에 가서 보니, 정말 내가 어떤 봉사를 하는 것이 더 바람직한지를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성적인 머리와 눈으로 하기보다는 부지런히 움직인 손과 발이 따뜻한 가슴과 한 덩어리가 되는 활동이 중요했다.
"나이 들수록 사람 사는 맛은 베품에 있다는 것을 이제라도 알았네. 함께 할 수 있도록 알려줘서 고마워요."
30년 넘게 학원장을 한 이미경님의 말이다.
"5시간이 금방가네요. 특별한 일 없으면 아침에 빈둥거릴 수도 있는데 시간이 어느새 가버렸는지 모르겠어요. 급식봉사는 다른 봉사와 다르네요. 처음 본 사람들과 협업을 해야하고 음식 얘기를 하다보니 재밌어요."
컴퓨터 관련 봉사를 30년 이상하신 김양옥님의 말이다.
설거지에 그릇 소독까지 다 마친 대장정이 끝나고 쉼터로 내려왔다. 영양사가 음료수를 주면서 오늘따라 사람들이 밥을 더 많이 달라고 해서 압력솥에 한 솥을 더 했다며 말을 이었다.
"아무래도 책방향기의 향기가 새벽부터 다 퍼졌나봐요.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봉사하는 날이라 그런지 그 향기가 다르다니까요. 어른들이 우리보다 더 잘 알아요."
꿈보다 해몽이라고 했지만 지인들 모두 만면에 웃음이 가득했다. 책방에서 보내는 '시가 있는 아침편지'에 오늘아침엔 이렇게 썼다.
"밥값도 못했으니 조금만 주시오."
"더 드셔야죠. 밥 값하실 좋은 일 생길 거예요. 맛있게 드세요."
어제 무료급식봉사활동에서 나눈 얘기입니다. 매일 300명이 넘는 점심준비는 완전히 전투현장이지요. 봉사자들의 무념무상한 노고와 온기의 손길은 하루 밥 한 끼를 위해 새벽부터 기다리는 사람들에겐 더없는 사랑의 인연입니다. 밥을 나누는 일은 목숨을 나누는 일, 이보다 더한 사랑은 없으니까요. 오늘의 시는 장석주 시인의 <밥>. - 봄날의 산책 모니카
밥
귀 떨어진 개다리 소반 위에
밥 한 그릇 받아놓고 생각한다.
사람은 왜 밥을 먹는가.
살려고 먹는다면 왜 사는가.
한 그릇의 더운 밥을 얻기 위하여
나는 몇 번이나 죄를 짓고
몇 번이나 자신을 속였는가. (중략)
작년부터 급식 수혜자들의 도시락 위에 좋은 글과 시를 쓴 시화엽서나눔운동을 하고 있다. 도시락으로 배부될 때는 엽서 전달이 쉽고, 받는 이들도 읽어보고 가져갔다가 모아서 보여주기도 했었다.
"한 분이라도 읽으면 얼마나 좋아요!"
밥을 나누는 일
▲ 식사중에 시화엽서를 읽는 어르신밥 한 숟가락에 시 한 줄을 반찬으로...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 박향숙
엽서만 나눠주는 것이 왠지 허전해서 올해부터는 시화엽서동아리 '책방향기' 팀이 직접 밥을 준비하는 현장에 나간다. 지난 5월부터 최소 한 달에 한 번씩 나운종합복지관 급식소에서 점심밥을 준비한다. '한 끼 식사를 위한 대장정이 어떻게 시작되는 줄 미리 알았더라면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했을 것이다'라고 지인들이 말할 정도로 정말 쉬지 않고 식사 준비를 한다.
지난 2년 동안 코로나 때문에 도시락을 준비하는 활동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분주하다. 나운종합복지관에서 급식을 받는 분들은 평균 350여 명이다. 군산에서 가장 많은 수혜자들이 있는 곳이어서 영양사를 비롯한 봉사자들의 수가 가장 많이 필요한 곳이다.
날이 길어져서 그런지 어르신들은 새벽부터 급식관 주변에 나와서 기다리신다. 이제는 낯이 익어서 인사를 드리면 응대해 주시고, 어떤 분은 먼저 '엽서 주는 사람이네'라고 말씀하신다.
이날 제공되는 식사 메뉴를 보고 봉사자들은 말했다. 밥과 반찬이 모자랄 수 있으니 넉넉히 해야 한다고. 어르신들이 좋아하는 반찬이 나온다는 뜻이다. 오늘도 영양 만점인 닭볶음과 싱싱한 참나물, 동태국 등이 선보였다. 반찬을 만드는 일은 조리사들의 역할이라 봉사자들은 각종 음식에 들어갈 양념을 준비한다. 먹을 사람의 수가 많으니 손놀림도 빨라야 한다.
특히 밥을 드실 어른들의 치아와 건강상태를 고려해야 한다고 조리사가 지도한다. 각종 양념으로 들어가는 재료의 길이는 4-5cm를 넘기면 안 된다 하고, 닭볶음탕에 들어가는 닭의 뼈 하나도 꼼꼼히 확인해야 된다고 말했다. 한 가지 일이 끝나면 바로바로 뜨거운 물에 소독을 하는 등 위생이 매우 철저함을 알았다. 말해 주는 모든 것들이 배울 거리다.
식사 배정 시간이 되면 봉사자들 역시 각자의 자리에 선다. 밥 푸는 일이 내 몫이 되어서 커다란 밥 뚜껑을 여니 '이렇게 고슬고슬한 밥이 또 있으랴' 싶은 밥이 보였다. 어느새 길게 줄 서 있는 어르신들 역시 밥 냄새에 혹 했는지, 흑쌀과 콩을 잘 섞어야 한다는 주문이 들어왔다. 난 무조건 '네'라고 답하고 부지런히 밥을 매만졌다.
"어서오세요. 아버님, 밥 더 드릴까요? 맛있게 드세요" 등의 멘트를 날린다. "더 많이 줘. 식판 빈 곳을 채워줘. 난 콩을 좋아해. 아니 그만하면 됐어" 등의 응답이 있다. 대부분의 어르신들은 봉사자들의 인사에 친절하게 답한다. 어떤 분은 살짝 농담도 하신다.
"밥값도 못했으니 조금만 주시오."
"더 드셔야 밥값하실 좋은 일이 생길 거예요. 맛있게 드세요."
나의 웃음에 당신이 내게 웃음을 선물했다고 하시며 지나 가신다. 참으로 정 많은 분이다.
급식소에 퍼진 '책방향기'에 한 솥 더
▲ 동아리<책방향기>의 무료급식봉사활동'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향기가 새벽부터 다 퍼졌나봐요' 영양사님의 해몽에 행복했다 ⓒ 박향숙
봉사 활동 현장에 있은 지 10여 년이 넘는 시간을 되돌아본다. 해가 갈수록 몸이 힘든 일에는 사람들이 없다. 나만 해도 청소년지도라는 활동으로 말로, 머리로 하는 일이 많았다.
그런데 코로나가 시작되어 마스크를 만드는 현장과 무료급식처에 가서 보니, 정말 내가 어떤 봉사를 하는 것이 더 바람직한지를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성적인 머리와 눈으로 하기보다는 부지런히 움직인 손과 발이 따뜻한 가슴과 한 덩어리가 되는 활동이 중요했다.
"나이 들수록 사람 사는 맛은 베품에 있다는 것을 이제라도 알았네. 함께 할 수 있도록 알려줘서 고마워요."
30년 넘게 학원장을 한 이미경님의 말이다.
"5시간이 금방가네요. 특별한 일 없으면 아침에 빈둥거릴 수도 있는데 시간이 어느새 가버렸는지 모르겠어요. 급식봉사는 다른 봉사와 다르네요. 처음 본 사람들과 협업을 해야하고 음식 얘기를 하다보니 재밌어요."
컴퓨터 관련 봉사를 30년 이상하신 김양옥님의 말이다.
설거지에 그릇 소독까지 다 마친 대장정이 끝나고 쉼터로 내려왔다. 영양사가 음료수를 주면서 오늘따라 사람들이 밥을 더 많이 달라고 해서 압력솥에 한 솥을 더 했다며 말을 이었다.
"아무래도 책방향기의 향기가 새벽부터 다 퍼졌나봐요.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봉사하는 날이라 그런지 그 향기가 다르다니까요. 어른들이 우리보다 더 잘 알아요."
꿈보다 해몽이라고 했지만 지인들 모두 만면에 웃음이 가득했다. 책방에서 보내는 '시가 있는 아침편지'에 오늘아침엔 이렇게 썼다.
"밥값도 못했으니 조금만 주시오."
"더 드셔야죠. 밥 값하실 좋은 일 생길 거예요. 맛있게 드세요."
어제 무료급식봉사활동에서 나눈 얘기입니다. 매일 300명이 넘는 점심준비는 완전히 전투현장이지요. 봉사자들의 무념무상한 노고와 온기의 손길은 하루 밥 한 끼를 위해 새벽부터 기다리는 사람들에겐 더없는 사랑의 인연입니다. 밥을 나누는 일은 목숨을 나누는 일, 이보다 더한 사랑은 없으니까요. 오늘의 시는 장석주 시인의 <밥>. - 봄날의 산책 모니카
밥
귀 떨어진 개다리 소반 위에
밥 한 그릇 받아놓고 생각한다.
사람은 왜 밥을 먹는가.
살려고 먹는다면 왜 사는가.
한 그릇의 더운 밥을 얻기 위하여
나는 몇 번이나 죄를 짓고
몇 번이나 자신을 속였는가. (중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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