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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커 하나면 되는데, 하루 2만이 '비명횡사'

[환경르포] 새에겐 죽음의 벽인 '유리창'... 충돌방지 스티커, 전체 건축 3%만 적용

등록|2022.06.17 05:49 수정|2022.06.17 05:49

▲ 새들을 비명횡사케 한 실제 건물들. 풍경을 반사해 나무 사이는 허공으로 보인다. ⓒ 조영재


단단한 땅의 고마움을 아십니까? "단단한 땅이 고맙다고? 단단한 땅의 충격 때문에 무릎도 아프고 허리도 아픈 거 아닌가? 근데 뭐가 고마울까?"라고 생각하실 수 있습니다. 단단한 땅의 고마움을 알기 위해 멀리 갈 것도 없습니다. 모래 백사장을 조금만 걸어보면 됩니다. 발이 푹푹 꺼져 얼마나 걷기가 힘이 들던가요? 뛰는 것은 말할 것도 없지요. 흔들림 없는 단단한 땅은 어쩌면 인체 항상성 유지의 기본 값이라 할 수 있습니다.

평소 늘 단단하던 땅이 조금만 흔들려도 우리는 생존의 불안을 느낍니다. 바로 지진이죠. 단단하던 땅이 지진으로 조금만 흔들려도 의지와 상관없이 몸부터 얼어붙습니다. 그래서 단단한 땅은 우리의 일상생활을 안정적으로 유지하게 만드는 기본 값인 겁니다.

이렇듯 단단한 땅에 대한 절대적 믿음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오늘도 안심하고 출근하고, 일을 하고 퇴근하며 주말 나들이를 즐길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절대적 신뢰의 대상인 이 단단한 땅이 한순간에 푹 꺼지고 사라지면 어떻게 될까요? 바로 싱크홀입니다.

이런 '싱크홀'을 방불케 하는 상황이 대한민국에서만 하루에 2만 번씩 일어나고 있다면... 믿겨지시나요? 예! 오늘도 2만에 이르는 생명이 비슷한 상황 속에 죽임을 당했습니다. 다만 이 어이없이 죽은 생명체는 사람이 아니라 새들입니다. 2018년 10월 환경부와 국립생태원이 발표한 '인공구조물에 의한 야생조류 폐사방지 대책 수립 보고서'에 따르면, 유리 등 인공구조물에 부딪히는 새는 하루 평균 2만 마리나 됩니다.

싱크홀과 같은 엄청난 재앙이 새들에게 하루 2만 번이나 벌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어떻게요? 인간에게 단단한 땅이 절대적이라면, 새들에게는 푸른 허공이 절대적입니다. 사람은 단단한 땅을 의심하지 않아야 맘껏 걷고 뛸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새들은 푸른 창공을 의심치 않아야 맘껏 날갯짓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만든 유리구조물이 새들에게는 싱크홀과 같은 재앙이 됩니다. 푸른 창공으로 의심치 않았던 공간이 순식간에 사라지고 '죽음의 벽'이 됩니다. 푸른 창공은 알고 보니 유리에 비친 가짜였기 때문입니다.

새들의 싱크홀 유리 

사람이 만든 유리는 주변의 풍경을 반사해 마치 자유로운 창공으로 보이게 합니다.
  

▲ 새들을 비명횡사케 한 실제 건물들. 풍경을 반사해 나무 사이는 허공으로 보인다 ⓒ 조영재

 
창공은 새가 살아가는데 반드시 필요한 공간입니다. 그런데 '유리'는 자신의 존재를 숨기고 푸른 창공을 흉내내며 새들의 두개골을 으깨고 있습니다. 새들에게 싱크홀일 수밖에 없는 유리는 하루가 멀다 하고 더 많아지고 그 밀도 역시 세지고 있습니다. 고급 건축물일수록 더 높고 더 넓게 통유리로 지어지고 있으니 말입니다.

새들이 사라진 세상은 상상할 수 없습니다. 마오쩌둥 시절인 1958년, 중국공산당이 식량증산을 위해 참새 박멸 작전에 돌입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는 곡식 낱알을 쪼아 먹는 참새를 해로운 새로 규정했습니다. 그 때 어떤 사태가 벌어졌을까요? 벌레를 잡을 참새가 사라지면서 중국 전역에는 온갖 해충이 창궐했습니다. 또 오히려 농작물 수확량은 반 토막이 나고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기아로 죽어갔습니다.

새는 3차원을 누비는 자유를 위해 강함을 포기했습니다. 몸을 한없이 가볍게 하기 위해 뼈두께를 달걀 껍질처럼 얇게 했고 뼈 중간 중간을 텅 비워 냈습니다. 그러니 유리에 부딪히면 즉사하는 겁니다.

삶과 죽음의 경계가 사라지는 순간이 제 눈앞에서 벌어진 적이 있습니다. '휙' 새가 지나가는가 싶더니 유리에 '탁'하고 부딪혔고 '픽' 떨어진 새는 미동도 하지 못했습니다.

'휙-탁-픽', 이걸로 끝이었습니다. 새들의 영역인 하늘에 떡하니 자리 잡고 마치 하늘인 척 자신을 감추는 유리건물 때문에 이토록 허망한 죽음이 일어나고 있는 겁니다.
 

▲ 필자가 직접 목격하고 찍은 새들의 비명횡사들. 위에서 소개한 유리건물이 실제 주범이다 ⓒ 조영재


  

▲ 필자가 직접 목격하고 찍은 새들의 비명횡사들. 위에서 소개한 유리건물이 실제 주범이다 ⓒ 조영재

 
다행히 정부는 야생조류의 유리창 충돌 죽음의 문제를 심각하게 받아들였습니다. 그래서 드디어 지난 5월 '야생생물 보호 및 관리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습니다. 당국은 이에 따라 조류를 비롯한 야생동물이 투명 유리창·방음벽 등 국가기관 인공구조물에 충돌하거나 추락해 폐사하는 피해를 저감할 수 있게 됐다고 설명했습니다. 법조문은 이와 같습니다.

"국가기관, 지방자치단체 및 '공공기관의 운영에 관한 법률' 제 4조에 따라 지정된 공공기관은 건축물, 방음벽, 수로 등 인공 구조물로 인한 충돌·추락 등의 야생동물 피해가 최소화될 수 있도록 소관 인공구조물을 설치·관리하여야 한다."

여기서 설치될 인공구조물은 비싼 것이 아닙니다. 일정한 간격으로 나열된 작은 점이 있는 '조류 충돌 방지 스티커'를 붙이는 정도죠.

문제는 여전히 민간이 지은 건축물, 방음벽 등은 적용 대상이 아니라는 겁니다. 공공기관 건축물은 국내 전체 건축물 중 3% 정도만 차지할 뿐입니다. 그래서 97%의 건축물에는 아무런 조치를 하지 않아도 상관이 없습니다.

새들을 위해 스티커가 필요하다 

생명의 무게는 똑같습니다. 오늘도 2만의 새들이 죽어가는 현실에 점 스티커 좀 붙이는 것이 그리 심한 민간 규제일까요?

▲ 필자가 부산환경운동연합 웹진 2021년 4월호에 게재한 만화. 끝에서 두 번째 그림에서 소개한 맹금류 사진은 효과가 없는 것으로 밝혀졌으니 참고 바란다) ⓒ 조영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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